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88화 (88/330)

# 88

Restaurant 87. 본선 3라운드

아침부터 유난히 바깥이 부산스러웠다.

“아니 일하는 데 방해돼요! 가시라니까!”

“그래도 저, 의원님께서 직접 사과를 드리시겠다고…… 잠깐 사장님 좀 불러주시면…….”

“이 김치들 안 보여요? 이거 빨리 실어서 날라야 하는데 그럴 틈이 어디 있어요!”

조미옥의 음성과 낯선 사내의 음성이 허공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그 바람에 강지한은 잠에서 깼다.

“……뭐야?”

왕! 왕왕! 왕!

설탕이도 현관문 앞으로 다가가 꼬리를 바짝 세운 채 짖어대고 있었다.

낯선 사람을 봐도 원체 짖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유난스러웠다.

이불을 걷고 일어난 강지한이 복도로 나가 창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한 명이 송구한 얼굴로 조미옥에게 사정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즘 의원님 바쁘셔서 오늘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바쁘다는 건 바로 경찰조사 때문이었다.

지금도 겨우 사정을 해서 시간을 낸 터였다.

“불러드리기 어려우시면 제가 직접 문 두드려 볼게요.”

결단코 강지한을 불러 달라 사정하는 이는 얼마 전 식당에 찾아왔던 민정욱의 수행비서였다.

직접 현관문으로 다가가려는 수행비서를 독고진이 막아섰다.

“사장님 푹 주무셔야 하니까 깨우지 마세요.”

“아니,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의원님께서 어떻게 사과를 합니까?”

“얘기 다 들었는데 그쪽 의원님 정말 질 나쁜 인간이더만요. 뭐? 사과? 상황이 본인한테 안 좋게 돌아가니까 이제 와서 어떻게든 빠져나가 보려고 발악하는 거지! 그게 진심이 들어간 사과겠냐고!”

독고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강지한과 일하는 사람들은 2주 전부터 이리나가 직접 만든 단톡방에서 일상적인 얘기나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정보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때문에 이틀 전에 있었던 일들도 모두가 알아버린 상황이다.

그러니 민정욱이 다른 직원들의 눈에 고까워 보이는 건 당연했다.

‘민정욱 의원이 직접 사과를 하러 왔다고?’

강지한은 이제 정말인가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인 자신에게 사과를 하러 국회의원이 직접 왔단다.

‘진 선생님 파워가 진짜 세긴 세구나.’

새삼 진상명이라는 사람이 얼마다 대단한지 피부로 와 닿았다.

강지한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드르륵.

그러자 지한 김치 식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수행비서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했다.

“강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수행비서가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강지한이 그 인사는 받을 생각도 않고 활짝 열린 대문 밖을 살폈다.

거기엔 도로변으로 세워진 독고진의 트럭과 그 뒤에 고급 세단 한 대가 보였다.

곧 세단의 뒷문이 열리며 민정욱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성정과는 달리 나름 슬림하고 검은머리를 2:8로 빗어 넘긴 스타일의 민정욱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는 거만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공손한 자세로 비굴한 웃음을 머금고서 마당으로 들어섰다.

창문 너머 보이는 김두찬에게 거의 절하다시피 허리를 숙여 보인 그가 용서를 구했다.

“강 선생님!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한 번만 이 어리석은 인간을 용서해 주시지요!”

갑자기 터진 고성에 수행비서를 제외한 모든 이가 놀라고 말았다.

‘국회의원들은 다 이런 식인가?’

이틀 전까지만 해도 분식집을 짓밟으려고 했던 인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존심 따위는 내다 버린 듯 허리 숙여 용서를 빌고 있었다.

뭐 자신의 의원직이 걸려 있으니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강지한은 그 민정욱에게 굉장히 큰 이질감을 느꼈다.

같은 세상에 사는 인간 같지가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가 과장되었고 뭔가 개연성이라는 것이 상실된 듯한 모양새였다.

사람이 아닌 인형, 혹은 다른 종족을 상대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알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진상명을 볼 때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감정이었다.

왕왕! 왕!

설탕이는 계속해서 짖는 중이었다.

강지한은 더 이상 저 인간과 어떠한 감정, 혹은 대화를 주고받기 싫었다.

“전 사과 받아들일 마음 없습니다.”

“용서해 주시지요!”

“돌아가시지 않으면 진 선생님께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진상명은 이틀 전, 서울로 떠난 뒤 로버트 정에게 강지한의 전화번호를 물어 직접 연락을 취해왔었다.

해서 그의 번호가 폰에 저장되어 있었다.

강지한의 한마디에 놀란 민정욱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제, 제가 실례를…… 그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민정욱이 뒤돌아서 차로 돌아가려다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콰당!

“의원님!”

수행비서가 기겁하며 달려와 민정욱을 흔들었다.

하지만 민정욱은 기절했는지 미동도 없었다.

이를 본 강지한이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네, 진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민정욱 의원이 지금 집 앞까지 찾아와서…….”

순간 자빠져 있던 민정욱이 벌떡 일어나 부리나케 도망쳤다.

수행원과 민정욱을 태운 고급 세단이 빠르게 출발했다.

“쇼한 거였어? 완전 지저분한 인간이네!”

조미옥이 소금을 한 바가지 들고 나가 세단이 있던 자리에 확 뿌렸다.

정신없이 짖어대던 설탕이는 그제야 조용해졌다.

나쁜 인간은 냄새부터 다른 모양이었다.

* * *

“또 한 번 실검에 오른 거 축하드려요~! 이제 손님 더 불어나겠네요.”

이리나가 출근하자마자 그리 말했다.

“실검?”

강지한은 그런 줄도 몰랐다.

뒤늦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해 보니 포털사이트 10위권 안에 강지한과 관련된 키워드가 세 개나 있었다.

어묵면 떡볶이. 춘천 지한분식. 어묵면 떡볶이 레시피.

세 개의 키워드 모두 하위권이었지만 그래도 10위권 안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전부 배틀 셰프의 파워 덕분이었다.

배틀 셰프 2화는 1화보다 시청률이 올라 19%를 기록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쾌조의 스타트였다.

“배틀 셰프 나도 다시보기로 봤지! 엄청 재밌더만.”

고중만의 말이었다. 이에 질세라 용성우도 끼어들었다.

“저도 꼭꼭 챙겨보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배틀 셰프를 보고 있다고 하니 확 부담되는 강지한이었다.

오전 10시 40분.

벌써부터 식당 앞에 웨이팅이 걸리고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방송의 효과는 참 어마어마했다.

지이이이잉-

이제 오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예소린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어제 바래다줘서 고마웠어요! 우리 오늘부터 1일 맞죠?

어제 새벽. 강지한은 예소린을 더 붙잡지 못하고 결국 집까지 바래다줬다.

예경천의 눈 밖에 나버리면 예소린이 외출에 크게 제약을 받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강지한이 싱글벙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네, 맞아요.

스물아홉 살 강지한.

그의 인생 두 번째 연애가 시작됐다.

* * *

일요일.

배틀 셰프의 촬영을 위해 강지한은 어김없이 서울로 향했다.

촬영장에는 저번 주보다 더 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탈락하는 인원이 늘어날수록 지원자들의 부담감은 늘어났다.

한돈선, 레이먼 박, 최현식.

세 명의 심사위원은 단상위에서 30명의 지원자들을 훑어봤다.

셋 중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한돈선이었다.

“배틀 셰프 본선 3라운드에 올라오신 지원자분들, 환영합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어김없이 두 번의 심사를 받게 될 테고, 여섯 분은 탈락하게 될 겁니다.”

이번 라운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원은 스물넷.

수천 명의 지원으로 시작되었던 대회의 인원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배틀 셰프는 요리로 말을 하는 곳이니만큼 긴 말이 필요 없겠죠? 바로 베네핏 미션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앞에는 하얀 천으로 덮인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한돈선이 앞으로 나와 천을 잡고 우아한 동작으로 걷어냈다.

그러자 드러난 테이블에는 열 개의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하얀색 갈색, 회색 등등의 가루들이 담겨 있었다.

“제 앞에 놓인 이 봉투들에는 각각 밀가루, 쌀가루, 미숫가루, 찹쌀가루, 감자전분가루, 도토리가루, 율무가루, 계피가루, 녹두가루, 들깨가루가 담겨 있습니다. 베네핏 미션은 바로 이 가루들이 주재료가 되는 음식을 만들어 오는 것입니다.”

한돈선의 말에 지원자들이 술렁였다.

하여튼 매번 사람 힘들게 하는 시험과제만 쏙쏙 골라오는 데는 능통한 방송국 놈들이었다.

다들 머릿속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강지한은 봉이라도 잡은 것처럼 기뻤다.

얼마 전 만들었던 상실운두병의 주재료가 열 가지 가루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토리 가루와 계피 가루가 있으니 더 고민할 것도 없지.’

일이 잘 풀려도 너무 잘 풀렸다.

한돈선의 입이 다시 열렸다.

“원하시는 가루는 얼마든지 사용해도 됩니다. 열 가지 가루를 전부 사용해도 무관해요. 단, 가루가 조연이 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주연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은 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시작하세요.”

시작 신호와 함께 지원자들이 팬트리로 향했다.

다들 팬트리에 놓인 가루 포대들을 보며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할지 머리를 팽팽 돌렸다.

도근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만들 수 있는 가루요리는 많지 않았다.

양식을 가장 잘하는 만큼 선택지는 간단했다.

도근한이 바로 밀가루를 한 컵 크게 퍼 담았다.

‘뇨키를 만들자.’

뇨키는 감자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이탈리아의 수제비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다.

이탈이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음식인 데다가 모든 가정에서 이것을 쉽게 만들어 먹기 때문에 그 조리법이나 레시피도 다양했다.

도근한은 그중에서도 ‘뇨키 알라 로마나(gnocchi alla romana)’를 만들 셈이었다.

뇨키 알라 로마나는 이름에서 보이듯 로마식 뇨키로 감자 없이 밀가루와 우유만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때문에 주재료가 감자가 되는 ‘뇨키 디 파타테(gnocchi di patate:감자 뇨키)’와 달리 밀가루가 주재료였다.

‘세몰리노(semolino)가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세몰리노는 듀럼밀(durum wheat)의 가루다.

듀럼밀이란 여러 밀 중에서 가장 딱딱한 종에 속하는 밀이다.

이것을 거칠게 갈아내 밀가루보다 더 오돌토돌한 가루의 형태로 만든 것이 세몰리나(semolina)이고, 그것보다 한 단계 더 거칠게 가공 된 것을 세몰리노라고 한다.

뇨키를 만들기 위해서는 바로 이 세몰리노를 사용하는 게 좋지만, 밀가루만으로도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도근한의 바구니에 우유와 버터, 달걀 두 알, 파르메산 치즈 가루, 소금이 담겼다.

‘됐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지원자들은 아직도 뭘 해야 할지 구상하며 재료를 선뜻 택하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내가 가장 빨랐어.’

내심 뿌듯해하며 팬트리를 나온 도근한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

텅 비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키친에 딱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강지한이었다.

도근한은 그가 아직 팬트리에 다녀오지 않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강지한의 조리대 위에는 요리에 사용할 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보다 빨랐다고?’

도근한은 자신이 만들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집중해서 담느라 강지한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여유가 넘치는 강지한은 도근한을 봤다.

그는 가장 먼저 재료를 찾아 담아 도근한보다 한발 빠르게 키친으로 돌아왔다.

도근한은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꾹 눌렀다.

강지한은 이겼다고 생각하면 한발 앞서 있고, 잡았다고 생각하면 다시 도망갔다.

오늘도 그랬다.

도근한은 또다시 강지한의 등을 보게 됐다.

‘음식으로 앞설 거야.’

마음을 다스린 도근한이 침착하게 자신의 음식을 만들어 나갔다.

* * *

“타임 오버. 지원자 여러분께서는 음식에서 손을 떼어주세요.”

레이먼 박이 제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렸다.

지원자들은 각자가 생각한 가루음식들을 무사히 만들었다.

도토리와 쌀가루로 만든 도토리쌀떡, 도토리묵, 녹두부침개, 생면파스타, 들깨죽 등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순서대로 음식을 들고 나오시면 됩니다. 오늘은 모든 분들의 음식을 전부 시식해서 평가할 것입니다.”

심사위원의 말에 늘 음식에 대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지원자들의 눈에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차올랐다.

“강지영 씨. 음식 들고 앞으로 나오세요.”

가장 먼저 호명된 건 생면파스타를 만든 삼십 대 주부 강지영이었다.

매번 강지한과 도근한의 콤비네이션에 빛을 못 받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대단한 실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강지영이 직접 반죽해 만든 크림파스타를 맛본 후 한 명씩 평가를 내놓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레이먼 박이었다.

“강지영 씨, 파스타 자주 만들어 먹나요?”

“네. 심심할 때마다 먹어요.”

“먹어보니 그런 것 같네요. 생면의 텍스쳐를 아주 잘 살렸어요. 크림소스도 묵직하고 과하게 느끼하지 않으면서 플레이버가 좋아요. 수고하셨습니다.”

감격하는 강지영에게 최현식도 감상을 내놓았다.

“다른 말이 필요할까요? 맛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한돈선이 입을 열었다.

“저도 맛있게 잘 먹었어요. 자리로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강지영이 심사위원들에게 손키스를 해 보이며 물러났다.

그 방정맞은 모습에 지원자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좌중을 훑는 심사위원들의 싸늘한 눈빛에 장내에는 다시 긴장이 감돌았다.

“다음은…… 강지한 씨, 음식 가지고 앞으로 나오세요.”

레이먼 박의 부름을 받은 강지한이 놋그릇에 담긴 상실운두병을 들고 나갔다.

이를 대번에 알아본 한돈선이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강지한 씨, 혹시 도토리가루로 상실운두병을 만든 겁니까?”

“네. 반죽에는 계피가루도 조금 들어갔습니다.”

“솔직히 좀 놀랍네요. 이 음식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아, 상실운두병은 한국의 옛음식으로 도토리수제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돈선이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럼 맛을 볼까요?”

심사위원들이 앞으로 나와 숟가락을 들어 개인 접시에 수제비와 국물을 조금씩 퍼 담았다.

레이먼 박과 최현식은 처음 접하는 음식에 기대를 했고, 한돈선은 오래간만에 접한 상실운두병이 반가워 미소 지었다.

“어디.”

한돈선이 한술에 수제비 한 조각과 국물을 담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입안으로 집어넣었 다.

그 순간,

콰르릉!

한돈선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이 맛은!’

그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부릅떠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한돈선이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강지한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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