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86화 (86/330)

# 86

Restaurant 85. 신사 진상명

“너 내가 또 오면 뒤진다고 했던 거 까먹었냐?”

도끼눈을 한 고중만이 김영태에게 다가가 으르렁거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김영태였지만 태연한 척하며 픽 웃었다.

“형님, 괜히 피 보기 전에 가만히 있어요.”

“뭐, 이 새끼야?”

“내 뒤에 누구 있는지 알면 형님 이러지 못합니다.”

“이 씹새끼가 근데……!”

고중만이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 김영태를 후리지는 못했다. 녀석의 뒷배가 신경 쓰인 건 아니었다. 다만,

‘제기랄.’

CCTV가 눈에 밟혔다.

김영태를 때리는 순간 그는 폭력으로 고소당하게 될 테고 그러면 합의금을 마련해야 한다.

딸아이 치료비용에 매달 갚아야 하는 빚에 생활비까지 간당간당한 마당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받아준 강지한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이 일 때문에 소문이 이상하게 퍼져 지한 분식의 명성에 먹칠하게 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우.”

고중만은 한 번 더 참고 올렸던 손으로 김영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냥 가라, 좀.”

‘어른 고중만’은 여전히 철이 없고 막무가내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장 고중만’은 내키는 대로만 하고 살기엔 짊어진 것이 너무 많았다.

“부탁인데, 그냥 가주면 안 되겠냐?”

고중만의 정중한 태도에 김영태는 기가 살았다.

‘어이고? 먹히네?’

김영태가 실실 웃었다.

“형님, 나 여기 그냥 밥 먹으러 온 건데 왜 이래요? 아니, 배고파서 들어온 손님 그냥 쫓아내는 식당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네!”

김영태가 테이블을 손으로 탕! 치며 홀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안하무인도 이런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그 소란에 상실운두병에 빠져 있던 진호산이 귀를 틀어막고 바르르 떨었다.

“시끄러워……. 아이고…… 무서워!”

이를 본 진상명의 눈에 불이 확 올랐다.

안 그래도 자신의 은인인 강지한이 난처해하는 것 같아 무슨 사연이 있는가 싶었다.

질이 좋지 않은 인간들이 작정하고 꼬장을 놓으러 온 것 같은데 강지한이 나서지 않으니 잠자코 있던 중이었다.

한데 그의 아버지가 괴로워하니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강 선생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저치들과 대화 좀 나눠보겠습니다.”

“네?”

강지한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진상명이 김영태에게 다가갔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김영태가 다리를 척 꼰 자세로 진상명을 올려다봤다.

“뉘슈?”

진상명은 주변을 휘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다 아는 사이신 것 같은데 네 분씩 테이블 세 개로 나눠 앉아 식사하시지요. 이러면 이후에 오는 손님들께서 불편해질 것 같은데요.”

“영감님, 우리 서로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 우연히 같이 들어온 것뿐이에요. 남의 일에 신경 끄시고 식사마저 하세요.”

진상명이 빙긋 웃었다.

그가 시선을 김영태에게 고정한 채, 옆에 서 있는 고중만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들 언제 또 온 적 있습니까?”

“이틀 전에 왔었습니다.”

그때 이리나가 진상명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얼마 전에 민정욱 의원 수행비서라는 사람이 대뜸 줄도 안 서고 들어와서는 자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근데 차별대우 해줄 수 없다고 보냈더니 다음 날로 바로 저 사람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렸었어요.”

자초지종을 듣고 난 진상명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알겠습니다.”

민정욱이 어떤 인간인지는 그도 잘 알고 있는 터.

민정욱의 성정이라면 이런 더러운 짓거리를 스스럼없이 할 만했다.

김영태가 여태 옆에 서 있는 진상명에게 물었다.

“영감님, 계속 여기 서 있다가 괜히 불똥 튀어요. 안 가세요?”

그 순간이었다.

짜악!

냅다 휘둘러진 진상명의 손이 김영태의 뺨을 후렸다.

“컥!”

노인의 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따귀였다.

김영태의 고개가 팩 돌아갔고 눈에는 별이 번쩍했다.

맞은 부위가 당장 붉게 물들며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김영태는 혼미한 정신을 붙잡고 벌떡 일어섰다.

“이 씨발, 미쳤나!”

하지만, 김영태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주저앉아야 했다.

턱!

고중만이 녀석의 어깨를 양손으로 짓누른 것.

그가 이글거리는 시선을 김영태에게 쏘아붙였다.

“야 이 못 배워 먹은 새끼야. 어르신한테 까불다가 뺨 한 대 맞는 걸로 끝났으면 감사합니다, 해야지. 거기다 대고 욕을 해? 너 정말 혼나고 싶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주도권을 잡아야 했고, 분명 그렇게 돌아간다 느꼈는데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영감이 개입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때 진상명이 김영태에게 물었다.

“이놈아, 너 누구 사주 받고 왔니?”

“……뭐?”

“내가 나쁜 짓 하는 놈들한테는 인내심이 없어요. 다시 묻는다. 누구 사주 받았니?”

“사, 사주를 받긴 무슨 사주를 받아!”

“민정욱이 사주 받은 거 아니야?”

“아이 씨, 그런 거 아니라니까!”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네. 가만있자……. 민정욱이 새통합당이었던가. 아, 김용주가 꽉 잡고 있겠구나.”

김용주.

민정욱이 속한 새통합당 대표로 진상명의 변호사 시절 후배이기도 했다.

그가 바로 김용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안녕하셨습니까. 하하.

진상명이 통화를 스피커폰 모드로 바꿨다.

“그래. 잘 지냈니, 용주야.”

-아, 그러믄요. 제가 늘 말씀 드리지 않습니까. 선배님께서 길 잘 닦아놓으신 덕에 제가 지금 이렇게 입신양명해서 남부러울 것 없이 꽃길 걷고 있다고요.

“내 덕 많이 보고 있으니 내가 부탁 하나 해도 되겠네?”

-아쉬운 소리 안 하시기로 유명한 우리 선배님께서 저한테 부탁을 하신다고요? 영광으로 받잡아야죠, 제가! 무슨 일입니까? 달을 따오라면 달을 따오고 용을 잡아오라면 잡아오겠습니다.

“오버하지 말고. 나 지금 춘천이거든.”

-춘천이요? 아니, 그럼 말씀하시죠! 거기 몇 명 연락 돌려서 잘 모시라고 부탁했을 텐데요.

“그런 건 필요 없고. 지금 내가 아주 존경하는 선생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왈패 같은 무리들이 홀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야. 이거 어떻게 해야 되겠니?”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민정욱이 알지?”

-우리 당원인데 왜 모르겠습니까.

“그놈아가 며칠 전에 여기 왔었다나 봐. 근데 워낙 잘되는 식당인지라 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기 자리 당장 만들라고 억지를 부렸나 보지. 우리 선생님은 공명정대하셔서 그런 강짜는 받지 않는 분이시거든. 해서 돌려보냈더니만 왈패들을 보내서 농성하라 시킨 거 같아. 나도 정치판에 있었으니 결국 내 후배가 깽판을 친 거 아니겠냐고. 내가 지금 선생님 뵐 면목이 없어요.”

-네에? 내가 민정욱이 호로개새끼를!

쾅!

스마트폰 너머에서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꺽!

그와 동시에 김영태를 비롯한 모든 건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요. 당장 민정욱이한테 전화 넣겠습니다. 그리고 벌어진 일에 대한 모든 책임과 배상을 확실히 하라 전하겠습니다.

“나 이런 상황에서는 오래 못 기다리는 거 알지?”

-아무렴요. 딱 5분만 기다려 주세요!

“응, 그래.”

진상명이 전화를 끊고 김영태를 바라봤다.

순간 진상명의 눈동자에 어린 한기에 김영태의 등줄기가 바짝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춥지도 않은데 김영태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걸려도 된통 걸렸다. 빠져나오지 못할 늪에 발을 들였다는 예감이 그를 옭아맸다.

“지금이라도 바른 대로 말할래? 사실이 네 입에서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오면 정말 큰일 날 거야.”

김영태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민정욱 의원님이 시켰습니다.”

“민정욱 의원이랑 친한 사이인가 보네. 아무 대가도 없이 이런 일을 그냥 해주는 것 보면. 그러니까 어찌 보면 이게 민정욱의 지시도 있었지만 자의로 벌인 일들이라는 말도 되겠지?”

순간 김영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백퍼센트 누군가의 사주로 한 게 아니라 자의로 나섰다는 식으로 얘기가 되면 스스로에게 더 불리해질 판이었다.

“아, 아닙니다! 도, 돈을 대가로 한 일입니다.”

“얼마 준다 그랬는데?”

“처, 천만 원을…….”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다른 건달들의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민정욱이가 천만 원을 주고서 깽판 놓으라 사주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잘 들었다.”

말을 마친 진상명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 액정을 터치했다.

고중만이 곁눈질로 그것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녹음하고 있었어?’

진상명은 김용주와 전화를 끊자마자 스마트폰의 녹음 모드를 켜서 김영태와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다.

대화 역시 김영태가 모든 사실을 자백하도록 유도했으나, 딱히 그렇게 끌고 갔다는 늬앙스는 받지 못할 만큼 유연했다.

돌아가는 판으로 봐서는 저런 증거자료가 없어도 일이 처리될 것 같았다.

한데 만에 하나를 위해 녹음까지 해놓는다.

무서운 영감이었다.

“뭐해? 안 나가고?”

진상명이 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김영태를 비롯한 건달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너희들 좋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응당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될텐데, 뉘우치지 못하고 또 못된 짓 하고 돌아다니다 나한테 접수되면 남은 여생이 편치 않을 거야. 알겠니?”

진상명의 으름장에 누구도 대답을 못했다.

그건 협박이 아니라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하얗게 질려서 바짝 얼은 그들을 보며 진상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음에 드는 표정들이네. 가봐.”

“아, 안녕히 계십시오! 사장님! 죄송했습니다!”

김영태가 대표로 인사와 사죄의 말을 건네고 도망쳤다.

그 뒤를 따라 다른 건달들도 우르르 빠져나갔다.

식당을 오픈하기 15분 전.

진상명이 상황을 종료시켰다.

“아이고, 어르신! 보통 분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사장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중만이 넙죽 고개를 조아렸다.

“허허, 아니에요. 아직 내가 받은 것에 십분지일도 갚지 못했어요. 우리 아버지 좀 보세요.”

진호산은 건달들이 나가자마자 힘없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상실운두병을 떠먹고 있었다.

“내 가슴 속에 평생 남을 모습입니다. 강 선생님, 앞으로도 계속 은혜 갚으면 살겠습니다.”

진상명이 강지한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 해주신 일만 해도 저한테는 컸어요. 전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인 만큼 국회의원을 상대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지 못해 많이 난감했거든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의원이라는 것들이 국민을 위한 일꾼이 되어야 하는데 제 밥그릇만 챙기고 갑질을 일삼는 쌩양아치들이 참 많아요. 은퇴한 마당에 제가 그 바닥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강 선생님 주변에서는 그런 인간들이 설치지 못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말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저 진상명이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앞으로 지켜보십시오. 허허.”

그리 얘기하며 강지한을 바라보는 진상명의 두 눈에 애정이 가득 담겼다.

강지한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우와~ 우리 할아버지 다 드셨네?”

어느새 진호산이 그릇을 싹싹 비웠다.

진석기가 그런 진호산의 입 주변을 냅킨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아버지, 맛있게 드셨어요?”

“이제…… 집으로 가자. 나 이제 어마이 보러 가련다.”

“할머니 좋은 곳에 잘 계실 텐데 뭘 그리 급히 가시려 그래요. 성질 급하시기는. 석기야, 두식아, 할아버지 차로 모셔라. 강 선생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진상명이 인사를 건네자 로버트 정과 진석기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반가웠어요.”

강지한이 공손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러자 로버트 정이 신나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강 사장님, 덕분에 제 면도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네 사람은 식당을 나서 차에 올랐다.

천천히 멀어지는 차를 강지한이 문 밖까지 나가 마중했다.

어느새 따라 나온 고중만이 강지한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이야~ 강 사장! 아주 엄청난 인맥을 얻었네! 이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고 봐야 돼! 으하하하! 이크! 손님들 몰려온다. 시간됐으니 오픈합시다!”

고중만의 활기찬 음성이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 * *

민정욱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때 전화 개인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을 확인한 민정욱이 번개처럼 전화를 받았다.

“네, 김 대표님.”

전화를 건 이는 새통합당 대표 김용주였다.

-너 대체 어쩌자고 그분 지인을 건드린 거야!

“아니 일개 식당 사장 나부랭이가 그런 분과 연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내가 손을 써보려고 했는데, 이건 건드릴 수가 없어. 괜히 그분 눈 밖에 났다가는 나까지도 위험하다고!

“저…… 옷 벗게 되는 건 아니겠죠?”

-그분이 마음 독하게 먹으면 충분히 벗길 수 있지.

“아니 일선에서 물러난 영감인데 무슨 힘이 그리 많답니까?”

-그 영감이 왜 일선에서 물러난 줄 알아? 자기가 가진 힘을 억압받지 않고 사용하려고 그런 거야.

“네?”

-나랏일 하고 있다는 딱지가 붙어 있으면 무슨 행동을 하든 감시당하게 마련이니까. 홀가분하게 누리려는 거라고. 그분 잘못 건드렸다가 골로 간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대화를 하면 할수록 민정욱의 피가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렇게 성정이 강하고 대쪽 같은 사람한테 어째서 ‘신사’라는 별명이 붙은 걸까?

민정욱이 거기에 희망을 걸어 은근히 떠 보았다.

“그래도 별명이 신사이신 분인데 고작 이런 일로 칼을 드시겠습니까?”

-이 친구가 소식 밝은 줄 알았는데 왜 이리 귀가 어두워?

“네?”

-그건 그 영감님이 원래 별명으로 불리는 걸 싫어하니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그리 부르기 시작한 거고.

“그럼 원래 별명이 뭔데요?”

-신사. 거꾸로 읽어봐.

“사…… 신?”

-그분한테 밉보이고 이 바닥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못 봤어. 앞으로 이런 전화하지 말게. 자네와 나, 연은 여기서 끝일세.

김용주와의 통화는 그렇게 끊겼다.

민정욱이 허망한 얼굴로 스마트 폰을 내려놓았다.

한데 그러기가 무섭게 또 누군가에게 전화가 들어왔다.

발신인을 확인한 민정욱이 마른침을 삼켰다.

-세무조사팀 정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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