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Restaurant 84. 어머니 손맛 따라 가면
상실운두병은 강지한으로서도 처음 만들어 보는 음식이었다.
해서 대접하기 전에 스스로 한 번 만들고 시식해 볼 필요가 있었다.
강지한은 새벽부터 일어나 도깨비 시장에 들러 도토리 가루와 계피 가루를 사왔다.
상실운두병의 기본은 도토리가루를 묽게 반죽하는 것이다.
일반 수제비 반죽처럼 되직하게 하지 않고 묽게 만들어 끓는 국에 넣을 때 손으로 뜯는 게 아니라 숟갈로 떠 넣어야 할 정도다.
그렇게 만들 반죽에다 계핏가루, 간장, 다진 파, 참기름을 넣고 섞는다.
그리고 국은 된장을 넣고 끓인 장국을 준비한다.
거기에 먹을 만한 크기로 반죽을 떠 넣어 익히면 상실운두병이 완성되는 것이다.
한데, 이것은 평민들의 레시피다.
양반들의 레시피엔 두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고기.
다진 소고기와 잘 삶아서 죽죽 찢은 닭고기가 필요했다.
다진 소고기는 반죽에 들어가 버무려지고, 삶은 닭고기는 장국에 들어간다.
그럼 반죽에서도 국에서도 고기가 씹히게 되는 것이다.
과연 양반가의 레시피답다 할 수 있었다.
강지한이 레시피에 따라 상실운두병을 만들었다.
닭 삶는 시간을 빼면 상실운두병 자체는 조리 시간이 그리 긴 음식은 아니었다.
완성된 상실운두병을 놋그릇에 정갈히 담아냈다.
놋그릇은 일전에 식기구들을 구매할 때 관심이 동해 몇 개 사뒀던 터였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빛을 발했다.
상실운두병이 놋그릇에 담기니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강지한은 그것을 상으로 가져와 놓았다.
놋그릇과 함께 구매한 방짜 수저까지 정갈하게 준비하니 음식의 위로 등급창이 나타났다.
[강지한의 대단한 상실운두병]
요리 등급: LV5
-한식 장인 한정신의 레시피를 이어받아 최대한 비슷한 맛을 재현해 냈다. 어지간한 양반집에서 끓여먹던 맛의 평균치 이상은 장담할 수 있다.
‘됐다.’
이 정도 레벨이면 괜찮았다.
놋그릇 안에 진한 갈색의 걸쭉한 장국과 두툼한 수제비만 구름처럼 담겨 있는 것이 투박하기 그지없는 모양새였다.
강지한이 본격적으로 상실운두병을 시식했다.
숟가락으로 우선 국물의 맛부터 음미했다.
“호록.”
국물이 입안으로 들어가며 느껴지는 첫맛은 단조롭다는 것이었다.
이 상실운두병의 국맛이라는 게 잘 담근 된장을 푼 것이 거의 전부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단조로운 국물 안에 묘한 감칠맛이 잡히는가 싶더니 고소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감칠맛은 한 번 삶아낸 닭과 반죽 속 소고기에서 흘러나온 육수가 잡아주었고, 고소한 향은 도토리 반죽이 국물에 풀어헤친 것이다.
이번엔 반죽 하나를 입에 넣고 씹으며 그 맛을 천천히 탐닉했다.
도토리수제비는 밀가루 수제비보다 그 식감이 더욱 쫀득했다.
수제비 옷을 찢고 들어가니 다진 소고기가 잘근 씹히며 간직하고 있던 육즙을 뿜어냈다.
별다른 간을 크게 하지 않아 심심한 와중에 소고기의 육향과 즙은 큰 만족감을 주었다.
강지한은 수제비와 국물을 충분히 만끽하며 계속해서 숟가락을 놀렸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한 그릇을 깔끔하게 비워 버리고 말았다.
“아……. 좋다.”
먹자마자 그런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상실운두병은 잡스러움 없이 담백한 그 맛처럼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렇게 뜨겁거나 매운 것도 아니었는데 이마에 송글송글 땀까지 맺혀 있었다.
“이대로만 내어드리자.”
아침 8시.
이제 출근 준비를 서두를 시간이었다.
* * *
“강 사장. 그거 뭐 만드는 거야?”
고중만이 도토리반죽을 보며 물었다.
“수제비 반죽이요.”
그에 용성우도 끼어들었다.
“근데 반죽색이 왜 이럽니까? 되게 어둡습니다?”
“도토리가루로 만들었거든.”
“아까 소고기 다진 것도 넣던데.”
주방을 치우던 이리나까지 다가와서 참견했다.
“응, 그것도 들어가.”
그러자 고중만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떤 수제비를 만들려는 건지 감도 못 잡겠네. 그건 그렇고 굳이 수제비를 왜 만드는 거야? 혹시 나 주려고? 이것 참. 그제의 공로를 보상받는 건가? 그 깡패 놈들 쫓아낸 게 뭐 대수라고. 하핫! 아침도 먹고 나왔는데. 우리 여봉봉이 밥에 물 말아서 김치랑 내어 줬거든. ……아무튼 그래도 강 사장이 만들어 주면 또 먹을 수 있지.”
용성우가 말을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고중만을 보며 조금 질린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말도 없고 인상도 세서 과묵한 양반인 줄 알았더니 지내면 지낼수록 이런 수다쟁이가 또 없었다.
그런데 눈치는 또 어찌나 빠른지.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용성우 선배님!”
찰나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고중만이 물었다.
화들짝 놀란 용성우가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야, 양파 좀 까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뭐 양파랑 원수 졌어? 툭하면 양파를 까래?”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며 강지한이 웃었다.
“두 사람 그러다가 정들겠어요. 근데 중만 아저씨, 어쩌죠? 제가 지금 만드는 음식 다른 분 드릴 건데.”
“으응? 아, 그런 거였어? 알고 있었어. 그냥 농 한 번 던진 것 가지고 그렇게 진지하게 나오면 내가 무안하잖아. 하하하하!”
고중만이 괜히 크게 웃으며 용성우의 등을 팡팡! 쳤다.
“쿨럭! 쿨럭!”
용성우가 기침을 할 때, 그게 신호라도 되는 양 고급 SUV 한 대가 식당 앞에 멈췄다.
‘오셨나?’
강지한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28분.
도착을 약속했던 30분에 근접한 시각이었다.
차 안에서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은 로버트 정, 그리고 그와 동년배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가 바로 이번일의 의뢰인이자 로버트 정의 친구 진석기였다.
진석기는 운전석에서, 로버트 정은 조수석에서 나왔다.
그리고 뒷좌석 문이 열리며 나이 지긋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진석기의 아버지 ‘진상명’이었다.
그의 옆엔 거동이 불편한 노인 ‘진호산’이 초점 잃은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었다.
진상명이 차 안에서 휠체어를 꺼내 아들에게 건넸다.
진석기가 넘겨받은 휠체어를 펴서 차 뒷문 앞에 뒀다.
진상명과 로버트 정이 진호산을 부축해서 휠체어에 태웠다.
그러자 진석기가 휠체어를 뒤에서 천천히 밀며 식당으로 다가왔다.
이를 지켜보던 강지한이 주방에서 나와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강 사장님!”
로버트 정이 얼른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강지한을 바라보는 진석기와 진상명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아, 이분께서! 처음 뵙겠습니다. 진석기라고 합니다. 두식이…… 아니, 로버트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진석기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진상명입니다. 석기 애비 되는 사람이에요. 사정은 들어 알고 계시겠지만 한날한시가 급해 이런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상명도 강지한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강지한에게 비추어진 그는 중후하고 묵직한 사람이었다. 잠시 마주친 눈빛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머리엔 서리가 하얗게 내렸고, 덩치는 왜소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태산과도 같았다.
예순은 족히 넘은 것 같은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주름을 가진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보시다시피 아버지께서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가끔 정신이 들 때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언지 알 방도가 없어 답답하던 차에 강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한달음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이렇게 와주셨는데, 제가 만든 음식이 할아버지께서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아니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신경 써주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따름이지요. 강 선생님의 인정 깊은 마음 잘 받았습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강지한이 손님들을 안으로 들였다.
그러자 눈치 있는 이리나가 얼른 달려와 테이블에 의자 하나를 치워주었다.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준 것.
네 사람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진호산의 옆에 진상명이 자리했고, 나머지 두 사람이 그 맞은편에 엉덩이를 깔았다.
강지한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던 상실운두병을 마무리 지어 놋그릇에 정갈히 담아 테이블에 내놓았다.
방짜 수저도 잊지 않았다.
“이것이…….”
상실운두병을 감상하는 진상명의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진석기와 로버트 정도 비슷한 시선으로 상실운두병을 바라보았다.
진상명이 방짜 숟가락을 들었다.
그때,
“킁킁.”
여전히 초점 없는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던 진호산의 코가 벌름거렸다.
그러더니 천천히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가 힘없는 목을 아래로 떨구어 앞에 놓은 음식을 눈에 담았다.
“……어어?”
상실운두병을 확인한 진호산의 입에 미소가 어렸다.
수제비를 봤을 때도 처음엔 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맛을 보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는 일.
진상명이 국물을 조금 떠서 후후 불어 진호산의 입에 천천히 넣어주었다.
“꿀꺽. 쩝쩝.”
진호산이 입안에 들어온 국물을 삼키고서 혀에 남은 맛을 음미했다.
그때였다.
“……어어!”
병환으로 앓아누운 이후 진호산의 입에서 가장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상실운두병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이것도……!”
놀란 진상명이 기대감을 품고 얼른 수제비를 떠서 충분히 식혀 진호산의 입에 넣어주었다.
“쩝쩝. 우물우물. 꿀꺽! 아, 아아!”
수제비를 씹어 삼킨 진호산의 얼굴이 확 펴졌다.
그가 전율하듯 몸을 부르르 떨고서는 소리쳤다.
“맛있다. 이거야……. 내가 먹고 싶었던 거…… 어마이가 늘 해주셨던 거…… 도토리수제비.”
“아, 아버지! 이게 맞아요? 아버지가 드시고 싶어 했던 음식이 맞아요?”
진호산이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어마이 손맛보단 못하지만…… 이게 맞다, 이게 맞아. 어마이, 이제 당신 보러 가오. 꿈에서도 그립던 우리 어마이 보러 가오. 가기 전에 이승에서 어마이 손맛 한 번 느껴보려 했소! 저승 가서 그 맛만 기억하며 가다 보면 우리 어마이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마이! 이제 곧 보러 가오! 끄흐으으.”
그토록 말이 없던 진호산의 입에서 쏟아지듯 한탄이 터져 나왔다.
저승 음식이라고 이승 음식과 다르랴?
어머니 손맛만 기억해 저승 음식 먹으며 찾아가다 보면, 어딘지 모를 그곳에서도 언젠가는 해후할 수 있으리.
큰 눈에서 흘러내리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름 사이사이에 스며들었다.
“할아버지!”
진석기가 그런 진호산의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진상명도 천장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로버트 정은 마치 자기 가족의 일인 양 오열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리나와 용성우, 고중만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진상명이 겨우 눈물을 끊어내고 벌떡 일어나 강지한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강 선생님. 우리 아버지 소원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러시면 제가 부담스러워요. 그냥 음식 한 그릇 대접한 게 전분데요.”
“그 한 그릇이 저승길 앞둔 우리 아버지에게는 전부인 거예요. 아버지가 왜 저렇게 음식에 집착하는가 했더니 할머니 손맛 찾아 가려고 그랬었네요. 우리 아버지 저승에서 어머니 찾을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 마음 잘 알았으니, 그만 허리 펴세요.”
그제야 비로소 허리를 편 진상명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은혜를 입으면 절대로 저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앞으로 제 힘이 강 선생님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다면 언제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진석기가 그 말을 거들었다.
“우리 아버지 말씀 그냥 하는 얘기로 듣지 말아주세요, 선생님.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장관직까지 지내셨고, 여전히 인맥도 아주 좋으세요.”
진석기는 진정 어떤 도움이라도 되어드릴 수 있다는 뜻으로 얘기한 것이지만 괜히 나섰다가 진상명의 눈총을 맞았다.
“이 녀석이 쓸데없는 소리를.”
“죄송해요, 아버지.”
진석기가 얼른 꼬리를 말자 진상명이 다시 강지한을 쳐다봤다.
“저놈 사족은 신경 쓰지 마시고, 곤란한 일이 있거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무조건 제게 먼저 연락을 주시면…….”
그때였다.
딸랑-
식당 문이 열리며 김영태 일당 열두 명이 홀로 들어섰다.
“사장님! 장사하죠? 어? 이미 손님 받으셨네?”
껄렁거리며 들어온 일행들이 테이블 하나씩을 차지해 앉았다.
이미 한 테이블이 사용 중이어서 두 명은 같은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았다.
“어디 오늘 뭘 먹어볼까~?”
진상명은 좋던 분위기가 갑자기 찬물을 휙 끼얹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주변을 둘러봤다.
껄렁패들이 머리 하나당 테이블 하나씩을 끼고 앉아 있었다.
“이놈들 다 뭡니까, 선생님?”
진상명의 묵직한 음성이 강지한의 귀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