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84화 (84/330)

# 84

Restaurant 83. 상실운두병(橡實雲頭餠)

강원도, 구름을 닮은 음식.

그 두 가지 키워드가 정체 모를 음식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핵심이었다.

브레이크 타임 내도록 강지한은 식사를 하면서 수수께끼의 음식이 무언지 고민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그러자 한 가지 실마리가 잡혔다.

‘상실운두병(橡實雲頭餠).’

상실이란 상수리나무 열매를 일컫는 것으로 도토리를 뜻한다.

운두병은 수제비를 일컫는 옛말로 수제비의 모양이 구름을 닮아 그리 붙여진 것이다.

즉 상실운두병이란 도토리반죽으로 만든 토토리수제비를 말한다.

특히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먹었다고 한다.

아마도 로버트 정의 친구 할아버지가 수제비를 봤을 땐 화색을 보였다가 먹어보고 고개를 저었던 것이, 반죽의 질감과 맛이 차이 때문일 것이다.

밀가루로 반죽을 하는 보통의 수제비와 달리 상실운두병은 도토리가루로 수제비를 만들기 때문이다.

강지한은 이 상실운두병의 조리법에 대해 찾아보았다.

한데 인터넷에 나와 있는 조리법은 하나로 통일된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나와 있었다.

멸치와 다시마로 맑은 육수를 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된장을 푼 장국을 기본으로 한다는 말도 있었다.

반죽을 하는 데 들어가는 재료 역시도 여기저기 달랐다.

그러니 무엇이 제대로 된 조리법인지 알기가 힘들었다.

‘그냥 이 정도만 해도 되긴 할 텐데.’

이 정도면 로버트 정에게는 충분히 도움 되는 정보일 터.

그럼에도 강지한이 계속 이 비밀을 파헤치려 하는 건, 이제 스스로도 이 음식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요리에 취미가 확 붙어버린 이후, 요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놀이처럼 즐거워하게 된 그였다.

해서 상실운두병의 조리법은 꼭 로버트 정에게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욕심 때문에라도 알아내고 싶었다.

짧은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후, 다시 손님이 몰려들었다.

저녁 피크 타임이 지나고 장사를 마무리하는 시간 까지도 어제의 그 건달 무리들은 식당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았다.

“끝났네, 끝났어.”

고중만은 김영태 일당이 자신에게 겁을 먹었으니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강지한은 이대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강지한도 식당 문을 닫은 뒤 애견 카페로 향했다.

한데 그때 김숙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한 총각! 오늘 어땠어?

“똑같죠, 뭐. 어머님은요?”

-우리는 어제보다 손님이 더 많이 들었어. 완전 대박이야!

“그래요?”

-응. 방금 매출 정산해 봤는데, 글쎄. 놀라지 말고 들어.

김숙자의 매출 얘기에 강지한이 침을 꼴깍 삼켰다.

과연 200만 원이 넘었을까?

이어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 강지한이 만세를 불렀다.

-227만 원!

“와!”

-엄청 많이 벌었지?

“최고예요, 어머니.”

-어제 지한 총각 지인이라고 왔던 BJ들인가 하는 학생들 방송 덕을 톡톡히 봤나 봐. 호호호.

“진짜 그런가 보네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강지한은 손님 부스터만 생각했지 유정미와 BJ들의 광고 효과를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애초부터 그 두 가지의 효과를 합쳐놓고 추론해 보면 오늘 일 매출 200 이상을 찍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을 것이다.

‘근데 왜 시스템 메시지가 뜨지 않았지?’

목표를 클리어했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 이상했다.

‘혹시 이것도 만족도처럼 매장에 직접 찾아가야 확인할 수 있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어머니, 이제 퇴근하세요?”

-뒷정리가 좀 남아서~ 하고 가려고.

“그럼 제가 모시러 갈게요. 제 타 차고 같이 가요.”

-정말? 그럼 너무 좋지!

김숙자는 운전면허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오가는 중이었다.

강지한이 서둘러 애견카페에 들러 설탕이를 찾았다.

“설탕아~!”

설탕이는 벌렁 드러누운 소금이의 배에 턱을 괴고 잠이 들어 있었다.

한데 아빠의 음성이 들리자 귀를 쫑긋 세우더니 꼬리를 팽팽 돌렸다.

몸이 벌떡! 일어난 건 그다음이었다.

왕! 헥헥!

설탕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강지한에게 마구 달려들어 힘껏 점프했다.

그런 설탕이를 강지한이 품에 꼭 받아 안았다.

“읏차. 설탕아. 너도 이제 제법 무거워서 받아주기가 힘들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탕이는 강지한의 뺨을 마구 핥아댔다.

“지한 씨, 고생했어요.”

예소린이 늘 그렇듯 음료수 한 잔을 내밀며 말했다.

“소린씨도요. 별일 없었죠?”

“있었어요. 설탕이 때문에요.”

“네? 설탕이가 왜요?”

“정확히 얘기하자면 설탕이 팬클럽 때문이겠네요.”

“팬클럽이요?”

“몰랐어요? 설탕이 팬클럽 생겼어요, 춘천에.”

“허어.”

강지한이 황당하고 놀란 시선을 설탕이에게 던졌다.

설탕이는 눈을 살짝 감고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으스대는 것 같았다.

“얘 팬클럽이 생겼어요?”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카페도 나와요. 설사모라고. 설탕이를 사랑하는 모임이래요. 회원수가 100명은 넘던데요? 이제는 설탕이가 지한 씨보다 유명할걸요?”

살다 살다 강아지 팬클럽이 생겼다는 얘기는 또 처음 들어보는 강지한이었다.

“설마 팬클럽 회원들이 여기 찾아오기라도 했었나요?”

“네. 스무 명 정도가 우르르 찾아와서 설탕이 앞에 두고 팬클럼 창단식을 했지 뭐예요.”

예소린은 말을 하며 낮의 광경이 떠올라 쿡쿡 웃었다.

설탕이에게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씌워주고 애견용 케이크를 앞에 놓은 채 박수 치며 노래 부르던 사람들의 모습은 은근히 귀여웠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모두 강아지 상이었다.

“회원분들이 간식이며 먹을거리도 많이 갖고 왔어요.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오늘 포식했네요. 고마워, 설탕아.”

예소린이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기분 좋은지 감고 있던 설탕이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얘는 강아지가 어쩜 표정이 이렇게 많을까.”

“그러게요.”

“그나저나 요새는 지한 씨 통 바빠서 같이 밥 한 번 먹기가 힘드네요.”

“하하. 아무래도 그렇죠.”

“대신 술을 마실래요? 이번 주 중에 하루 어때요?”

예소린이 먼저 제안한 술자리를 거절할 강지한이 아니었다.

“좋아요. 음……. 모레 어때요?”

“괜찮을 것 같아요.”

“장소는…….”

“지한 씨 이사 간 집 구경도 못했는데, 집들이 겸해서 소박한 홈파티 해요. 물론 요리는 지한 씨가 하는 걸로. 콜?”

“단 둘이…… 요?”

“네, 이상해요?”

전부터 느껴왔던 거지만 예소린은 은근히 남자보다 대담하고 털털한 면이 있었다.

“아뇨, 괜찮아요. 네, 그렇게 해요.”

“오케이! 벌써 즐겁다.”

“하하.”

강지한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애견카페를 나왔다.

* * *

설탕이와 함께 차를 몰아 김친전골 식당 앞에 도착했다.

“설탕아, 잠깐 차에 있어.”

왕!

설탕이를 차에 두고 식당 안에 들어선 강지한.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팡파르가 울리며 폭죽이 터졌다.

펑! 퍼펑!

빰빠밤빰빠! 빰빠밤빰빠!

[축하합니다. Bonus Stage 2. 김치전골 매장의 목표를 완수했습니다.]

[보상 ‘한국 요리 장인의 지식’이 지급되었습니다.]

[한국 요리 장인 고(故) 한정신의 지식을 흡수합니다.]

[일부의 지식만 오픈됩니다.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 할 때마다 새로운 요리들과 조리법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좋아.’

메시지가 사라지며 강지한의 머릿속으로 생소한 지식과 익숙한 지식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그것들이 머릿속에 갈무리될 때쯤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누적된 만족도 포인트 10,931을 흡수합니다.]

단 이틀 동안 만족도가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그만큼 김치전골집의 장사가 잘됐다는 얘기였다.

강지한은 과연 이번 달 매출을 얼마나 찍게 될지 기대됐다.

“지한 총각, 왔어?”

어두운 홀과 달리 아직 불이 켜진 주방에서 퇴근 준비를 마친 김숙자가 나왔다.

“네, 다른 분들은 다 들어가셨어요?”

“응. 나만 남았어. 준비 끝났으니까, 가자고.”

“그래요.”

* * *

김숙자를 집에 내려다 주고 귀가한 강지한은 오늘 새로 얻게 된 한정신의 지식을 천천히 살피고 있었다.

한데 그 안에 상실운두병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것은 오래된 한식 문화의 기본에 대한 부분이라 기초 지식 안에도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아울러 한정신은 다른 누구보다 오랜 한식 문화에 대해 공부를 해온 사람이라 그 앎의 깊이가 달랐다.

그로 인해 강지한은 상실운두병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된장을 푼 물에 도토리반죽으로 수제비를 떠 익혀 먹는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지역에 따라 특색이 변하고 조리법도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계급제도에 따른 레시피의 변화였다.

아직 양반들이 존재하던 시절, 양반가에서 해먹던 것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해먹던 레시피가 달랐다.

강지한이 바로 로버트 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밤늦게 죄송해요. 혹시 그 친구 분 할아버지의 성씨와 어디 성씨인지 알 수 있을까요?

답장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풍기 진씨랍니다! 이런 정보도 도움이 되나 보죠?

-그럼요. 감사합니다!^^

풍기 진씨면 양반 가문의 혈족이다.

물론 할아버지의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신분제도가 철폐된 다음에 태어나셨겠으나, 이어져 내려오던 풍습 같은 것들이 금방 사라지지는 않았을 터.

강지한은 양반들이 먹던 상실운두병의 레시피를 참고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로버트 정에게 다시 문자를 전송했다.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_+

-네^^ 상실운두병이라는 옛수제비인데 제가 그 레시피대로 요리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데 문제는 할아버님이 춘천에 계시지 않는 이상 제가 이동하기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말씀 전해드리면 당장 내일이라도 찾아온다고 하실 분들이에요.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 분들이거든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강지한은 상실운두병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찾아 꺼냈다.

어지간한 재료들은 있었지만 도토리가루와 계피가루는 따로 구해야 할 판이었다.

‘내일 브레이크 타임에 갔다 올까?’

아무래도 그때 밖에는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로버트 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정 디렉터님.”

-강 사장님, 말씀 드렸는데 내일 당장 모시고 오겠답니다!

“내일이요?”

-그게 할아버지께서 몸 상태가 갈수록 안 좋아지시는 터라 이번 주 중에는 입원을 해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시네요. 혹시…… 내일 시간이 되실까요?

“내일이라고 하면 브레이크 타임이나 늦은 밤 정도밖에 시간이 안 될 텐데요.”

-친구 녀석이 아버지와 함께 움직이고 싶어 해요.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건 친구보다 친구 아버지께서 더 간절하시거든요. 한데 그렇게 하려면 이른 아침밖에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죄송합니다. 부탁드리는 처지에 제멋대로라서. 친구 놈도 아쉬운 쪽에서 조건이 까다로워 면목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 아니요. 차라리 오픈하기 전이면 괜찮아요.”

-그런가요?

“몇 시쯤 도착하실 수 있으십니까?”

-늦어도 열시 반 정도에는 도착할 것 같다네요.

대답이 즉각 즉각 돌아오는 게 뭔가 이상했다.

“혹시 지금 친구분이랑 같이 계신가요?”

-들켜 버렸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역시 강 사장님의 촉은 베리 굿.

촉이 아니라 머리가 있는 사람이면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내일 열시 반까지 모시고 오도록 하세요. 음식은 시간에 맞춰 준비해 놓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참고로 제 친구가 상당히 괜찮은 녀석입니다. 친구 아버님도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 분이시죠! 절대로 강 사장님의 노고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그렇다네요.

“은혜는요. 저도 재미있어서 덤빈 일인데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로버트 정과의 통화가 끝나고 강지한은 계획을 수정했다.

“아무래도 새벽 일찍 도깨비 시장에 나가 재료를 구해야겠다.”

도토리가루와 계피가루 정도는 도깨비 시장에서도 충분히 구입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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