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Restaurant 76. 본선 2라운드
베네핏 배틀의 시험 재료는 생닭이었다.
‘닭으로 요리를 하라는 건가?’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과제는 그것보다 단순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부터 레이먼 박 셰프님께서 이 생닭을 어떻게 해체하는지 보여드릴 겁니다. 여러분들께서는 그 과정을 눈여겨보시고 똑같이 생닭을 해체해야 하지요.”
그 말을 듣자마자 지원자 대부분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차라리 요리를 시키지, 해체라는 건 정말 골치가 아픈 작업이었다.
‘어류에 이어 육류의 손질법까지 보겠다는 거구나.’
강지한은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며 생닭의 해체법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거의 동시에 레이먼 박이 칼을 잡고 생닭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잘 벼려진 칼날이 닭의 날개부터 공략해 들어갔다. 관절을 정확히 알고 겨드랑이 안쪽의 연골에 칼을 집어넣으니 날개는 두부 썰리듯 쉽게 잘려 나갔다.
다음에는 다리살과 가슴살 사이의 경계에 칼을 깊이 넣어 자른 뒤, 닭다리를 양손으로 잡아 뒤로 확 꺾으니 관절과 연골이 드러났다.
그 부위를 거침없이 도려내니 다리도 쉽게 떨어져 나갔다.
다음으로는 닭가슴살 정중앙에 칼집을 깊숙이 내고 두 덩이로 나뉜 가슴살에 칼을 조금씩 집어넣고는 손으로 뜯으니 살이 깔끔하게 분리됐다.
그리고 살 주변의 지저분한 닭껍질과 지방을 잘라내니, 예쁜 물방울 모양이 됐다.
살이 다 뜯겨 나간 위시본(wishbone:닭이나 오리의 목과 가슴 사이에 있는 V 자형 뼈)은 더 이상 손대지 않고 놓아두는 것으로 해체가 끝났다.
그 과정에서 손실된 살은 전혀 없었다.
와아!
짝짝짝짝!
지원자들 사이에서 탄성과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는 해체 실력이었다.
다들 넋이 나간 얼굴인데 반해 강지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해체의 실력이 그가 관찰의 눈으로 보고 익혀왔던 다른 달인들의 그것과 비슷했다.
충분히 재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해체를 마친 레이먼 박이 좌중을 둘러보며 특유의 느끼한 발음으로 말했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테크닉입니다. 좋은 재료, 럭셔리한 인그리디언트(ingredient:식재료)가 눈앞에 있으면 그걸로 딜리셔스한 음식을 쿡(cook) 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손질을 잘못하면 재료 자체의 밸류(value)가 확 떨어집니다. 그럼 음식의 테이스트(taste) 역시 저하되겠죠. 배틀 셰프의 취지 중 하나가 뭐죠? 바로 기본입니다. 그것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이런 배네핏 배틀을 과제로 준비했습니다.”
레이먼 박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출연자들에게 닭이 한 마리씩 지급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의 실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라운드를 겪어봐서 아시겠지만 배네핏 배틀의 위너에게는 고져스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최선을 다해서 임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럼 5분 동안 해체를 시작하세요.”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지원자들이 일제히 닭에 칼을 들이밀었다.
도근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이긴다.’
도근한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닭을 해체해 나갔다.
혹시 이런 미션이 또 주어질지 몰라 시간이 날 때마다 닭, 소, 돼지, 생선들을 열심히 해체하며 연습했다.
그의 손이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며 닭의 날개와 다리를 분리했다.
그 속도가 놀랍도록 빨랐다. 게다가 손실되는 살점이 거의 없을 만큼 깔끔했다.
주변의 어떤 지원자도 그를 따라오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가슴살.
흘러간 시간은 겨우 2분 10초 남짓.
이 기세라면 2분 30초 만에 해체를 완료할 수 있을 터였다.
승리의 기운을 느낀 도근한의 칼이 가슴살의 중앙을 호쾌하게 가를 때였다.
“강지한 씨, 해체 다 끝내셨나요?”
갑자기 들려온 레이먼 박의 음성에 가슴살을 가르던 도근한의 칼날이 우뚝 멈췄다.
그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강지한을 쳐다봤다.
“네, 끝났습니다.”
“깔끔하게 손질하셨겠죠? 아시다시피 무조건 빨리 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깔끔하게 했습니다.”
강지한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해체 작업을 시작한 지 고작 2분 14초가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강지한이 완벽하게 해체를 끝냈다고 한다.
닭을 잡고 있는 도근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말려들면 안 돼.’
속에서 불거지는 분노의 기운을 그가 얼른 꺼뜨렸다.
시기질투에 잡아먹히면 될 것도 안 된다.
남을 미워할 시간에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던 자신이 아니던가.
“후우!”
한 숨 한 번으로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자 손의 떨림이 멎었다.
결국 도근한은 강지한에 이어 두 번째로 해체를 끝냈다.
5분은 빠르게 흘러갔고 모든 지원자들이 해체 작업을 마쳤다.
심사위원들은 가장 먼저 해체를 끝낸 강지한에게 다가갔다.
레이먼 박이 해체된 부위들을 자세히 살폈다.
1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날개와 다리, 가슴살, 위시본을 쏘아보던 레이먼 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놀랍네요. 퍼펙트해요. 살점의 손실이 없고, 스킨 역시 상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브레스트는 예쁜 물방울 모양이죠? 절단면을 봐도 칼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칼집이 많이 들어가면 조리했을 때 퍽퍽해져 버리죠. 이 이상 완벽하기는 어려울 듯한데 가장 빨리 해체를 마쳤으니 아무래도 이번 베네핏 배틀의 위너 역시 강지한 씨가 될 것 같네요. 수고했어요.”
레이먼 박이 빙그레 웃으며 강지한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도근한의 속은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레이먼 박은 자신의 스승이다.
적어도 스승에게만큼은 강지한보다 더 인정받고 싶었다.
심사위원들은 강지한의 우승을 확정하다시피 해놓고서도 다른 지원자들의 닭 해체 상태를 전부 살폈다.
결국 이변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편, 레이먼 박은 그대로 도근한이 안타까웠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의 실력은 다른 출연자들보다 뛰어났다.
얼마든지 배틀 셰프에서 탑을 먹을 만했다.
그런데 너무 센 상대가 함께 있었다.
하나,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것이고 어떠한 혜택을 줄 생각은 결단코 없었다.
그것은 제자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스스로 이겨내고 업그레이드하도록 하렴.’
레이먼 박이 속으로 도근한을 응원했다.
* * *
강지한이 배틀 셰프에서 맹활약을 하는 시각.
조미옥과 독고진, 그리고 진경혜는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벌이는 중이었다.
회의의 주제는 ‘삼겹살 집 김치 납품, 단가 조정 얼마까지 가능한가?’였다.
조미옥이 주도적으로 회의를 이끌어 나갔고 진경혜는 이런저런 의견을 보태는 중이었다. 독고진은 그냥 멀뚱멀뚱 두 사람을 지켜봤다.
“경혜 씨, 식당 여기저기 옮겨가며 일 좀 해봤지? 보통 한 달에 김치 얼마나 나갔어?”
“매출 규모와 주 메뉴가 뭐냐에 따라 다르긴 한데 소규모 백반집 같은 경우 한 달에 60킬로 정도 써요. 육류가 주 메뉴인 가든의 경우는 50킬로 정도 나가고요.”
“장사 잘되는 집 기준으로는?”
“하루 80 정도 매출 날 때는 배추 두 포기. 100 이상 넘어가면 세 포기 되더라고요. 진짜 사람 많이 오는 곳은 네다섯 포기까지도 나가요.”
“배추 세 포기면…… 큰 놈으로 10킬로 정도 되는데.”
“그렇죠.”
“매장 가봤더니 상당히 넓더라고. 50평은 되는 것 같던데.”
“장사만 잘되면 세 포기 이상은 매일 나가겠네요.”
삼겹살집에서 김치는 반찬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고기와 함께 김치찌개를 곁들이는 손님들이 많아서 찌개용으로도 소모된다.
그러니 진경혜의 말대로 장사만 잘되면 세 포기 정도는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장사가 잘되느냐, 이게 문제란 말이야.”
조미옥이 입맛을 다셨다.
“잘된다고 치고 계산해 봐요. 하루 최소 세 포기. 그럼 10킬로. 한 달 30일로 계산하면 300킬로. 킬로당 6,000원씩 잡아주면 180만 원이네요?”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근데 인터넷에만 찾아봐도 10킬로에 3만 원 언저리에 파는 곳이 수두룩한데, 저쪽에서 이 가격에 김치를 받으려고 할까?”
“180 투자해서 1,800 벌 수도 있어요. 사장님 김치가 보통 김치예요? 없는 고기 맛도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김친데.”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세 달만 해보고 괜찮으면 지속적으로 계약하자고 하는 거야.”
“그쪽에서 받아들이면 우리야 못할 거 없죠.”
“그래, 사장님한테는 그렇게 전할게. 그리고 진아~”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독고진이 조미옥을 쳐다봤다.
“응?”
“넌 아주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
“나도 말할 게 없는 건 아닌데 괜히 재 뿌리는 것 같아서.”
“얘기해봐, 뭔데?”
“우리 지금도 잘 먹고살 만큼 김치 팔리잖아. 근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팔아야 될 이유가 있어? 거기 한 곳에 팔아서 얼마나 남기겠다고.”
“그게 아니지. 지금은 당장 한 곳에서만 팔리는 건데, 이게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서 김치 달라고 해봐. 이런 식당 다섯 군데만 잡아도 달에 900만 원이야. 매장에서 파는 것 제하고 따로 그만큼이 더 들어오는 거라고.”
조미옥의 말을 진경혜가 거들었다.
“근데 내가 보기엔 소문나면 다섯 곳이 아니라 열댓 곳은 김치 달라고 할 것 같은데?”
독고진이 듣고 보니 또 그럴 듯한 얘기였다.
세 달 해보고 아니면 말고, 잘되면 좋은 일이다.
“음, 그렇네. 사장님 김치 정도면 충분히 그렇겠지? 그럼 김치 담글 사람도 더 들여야겠네?”
“전골집도 하시니까 무조건 한 명은 더 들여야지. 삼겹살 납품도 대박 나면 또 늘리고. 그러다 공장 계약까지 하게 되는 거 아니겠어? 너는 딴생각 말고 더 열심히 김치나 담으면 돼.”
“알겠어.”
그렇게 세 사람의 회의는 마무리 되었다.
* * *
같은 시각.
이향숙은 자기 방에서 가정용 미싱으로 뭔가를 계속 만드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곁엔 설탕이가 엎드려서 가지런히 모은 앞발 위에 턱을 괸 채로 눈동자만 위로 올려 미싱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드드드드드.
한참 동안 작업에 몰두하는 이향숙.
그걸 내내 지켜보던 설탕이가 입을 쩍 벌리고 하품했다.
끄아앙~
그 소리에 미싱을 하던 이향숙이 풉! 하고 웃었다.
“푸하하하! 설탕이 또 하품했다! 넌 어쩜 하품 소리가 그러니? 끄아앙이래. 킥킥.”
헥헥헥!
작업에만 열중하던 이향숙이 자신을 봐주자 신이 난 설탕이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동시에 쳐져 있던 꼬리가 팽팽 돌았다.
“우리 설탕이 심심했지? 우쭈쭈~”
이향숙이 설탕이의 입에 뽀뽀를 하고서는 작업이 끝난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짜잔! 이게 뭐게! 바로바로~ 설탕이 옷이야!”
그녀가 종일 만들었던 건 설탕이에게 입을 앙증맞은 옷이었다.
설탕이의 사이즈를 재서 조금 넉넉하게 만들었다.
아직 성장기라 금방 금방 자라기 때문이다.
옷은 분홍색 바탕에 검은색 강아지 발자국 데코가 여기저기 찍혀 있는 디자인이었다.
“입어보자 우리 설탕이~”
왕!
설탕이는 아무런 반항 없이 얌전히 이향숙이 입혀주는 옷을 입었다.
그렇게 옷을 다 입히고 나니 설탕이의 귀여움이 열 배는 더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았다.
“와앙~ 너무 귀여워!”
이향숙이 설탕이를 품에 안고 마구 뺨을 비벼댔다.
“설탕이도 맘에 들지?”
왕! 헥헥헥.
“쪼우아~! 그럼 우리 사진 한 방 찍어볼까?”
이향숙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러자 설탕이가 당장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더니 카메라를 지그시 바라보는 게 아닌가?
이미 한 번 모델을 해본 경험이 있던 설탕이인지라, 카메라를 보자마자 저절로 포즈를 잡아 버린 것이다.
“우와~ 설탕이 짱 귀여워!”
찰칵! 찰칵! 찰칵!
이향숙은 신나게 설탕이를 찍어댔다.
그리고 그 사진 중 가장 잘나온 것 몇 장을 포토샵으로 손봤다.
설탕이 자체는 워낙 완벽해서 손 볼 곳이 없었고 뒷배경만 전부 날려서 이모티콘처럼 만들었다.
“완성! 설탕아. 이 사진 내 쇼핑몰에 사용 좀 해도 되지?”
왕!
“히히. 고마워.”
이향숙이 이모티콘처럼 만들어진 설탕이 사진을 자신의 온라인 쇼핑몰 구석구석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 * *
“베네핏 배틀의 우승자 강지한 씨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두 가지 부위 독점입니다.”
심사위원 최현식의 말을 듣는 순간 지원자들은 술렁댔다.
“강지한 씨.”
“네.”
“사용하고 싶은 두 가지 닭의 부위를 말씀해 주세요. 강지한씨가 독점하는 두 가지 부위를 다른 지원자들은 사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첫 라운드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라운드의 배네핏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지원자들은 일제히 긴장해서 강지한을 바라봤다.
이제 그의 선택에 다른 모든이들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뭘 선택할 거냐, 강지한.’
도근한도 긴장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강지한이 닭다리와 닭가슴살을 선택하면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건 날개 정도가 전부다.
이건 완전히 베네핏의 우승자에게 페일 배틀까지 이기라고 만들어 놓은 혜택이나 다름없었다.
다들 숨죽이고 강지한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드디어 그의 입이 열렸다.
“닭 연골과 닭 목을 사용하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