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Restaurant 75. 달라진 일상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
지이이이잉-
한 달 만에 최영진에게 전화가 왔다.
동창회 이후 최영진은 강지한에게 달에 한 번씩은 전화로 안부를 묻고는 했다.
허사린은 아무리 친해도 원체 전화를 안 하는 성격이라 통 연락이 없었다.
“어, 영진아.”
-야, 너 뭐야!
최영진의 음성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 원인을 강지한은 알 것 같았다.
“봤구나.”
-아침에 인터넷 검색어에 네 이름 뜬 거 보고 설마설마했다. 근데 검색해 보니까 그게 정말 내가 아는 강지한의 이름이 맞더라? 배틀 셰프에서 꽃미남 지원자로 유명세 탔던데!
그게 참 강지한도 의아했다.
배틀 셰프 1화에서 후반부에 단 2분 정도 등장했을 뿐인데 실검을 장악했다.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노영철이라는 피디의 이름이 브랜드 그 자체였다.
일찍이 요리 프로그램을 계속 승승장구시키면서 최근 종영한 푸드 서바이벌 예능은 27퍼센트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후속작으로 배틀 셰프를 런칭했고 스타 셰프 3인방을 영입한 데다 방영 전부터 꾸준히 광고를 때려왔으니 배틀 셰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대단했다.
첫 화부터 시청률은 14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었다.
동시간대에 케이블 채널의 요리 예능 한식 전쟁은 14퍼센트로 전주 대비 1퍼센트가 떨어졌다.
시청자들이 배틀 셰프로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프로그램이 화제에 오르며 강지한도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최영진의 호들갑에 강지한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 방송에서 시청률 높이려고 수작 부린 거지.”
-그 수작도 본판이 어느 정도 되니까 먹힐 수 있는 거지.
사실 강지한의 미모는 미소가 동반되어 주어야 꽃이 핀다.
그냥 입 닫고 가만히 있으면 훈남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가 꽃미남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것은, ‘요리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자 치고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어. 난 그냥 얼떨떨해.”
-아무튼 축하한다. 분식집 더 잘되겠네.
“잠깐 나온 건데 뭐.”
-잠깐 나왔어도 인터넷에서 저렇게 떴잖아. 너 식당은 언제 쉬어?
“매주 일요일.”
-그럼 조만간 시간 내서 허사랑 찾아갈게.
“그래, 꼭 와. 춘천까지 온 거 후회 안 하게 해줄게.”
-알았다. 기대할게.
최영진과의 통화가 끝났다.
강지한이 마저 출근 준비를 해나가는데 옆에 있는 설탕이가 신경 쓰였다.
‘저 녀석 또 저러네.’
설탕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계속 천장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이제 네 달을 조금 넘긴 설탕이는 짤뚱한 팔다리가 제법 길어졌고 덩치고 커졌다. 털도 많이 자라 시바견의 특징적인 부분들이 많이 부각됐다.
하지만 그래도 얼굴이나 전체적으로 덜 자라 어린 티가 팍팍 났다.
아무튼 그런 녀석이 심각하게 천장을 노려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웃겨서 절로 웃음이 나는 강지한이었다.
“오늘은 상자가 걸릴 것 같니, 설탕아?”
그간 설탕이의 물어오기 스킬은 레벨 5 까지 업그레이드됐다.
그리고 물어오기는 레벨 5가 최고치였다.
설탕이는 상자를 물어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늘 저렇게 심각한 얼굴로 허공을 노려봤다.
사실 허공이 아니라 주변에 둥실 떠다니는 상자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강지한이 출근 준비를 마쳤다.
“설탕아~ 이제 가자.”
그때였다.
강지한의 목소리가 신호탄이 된 듯 설탕이가 그대로 뛰어 올랐다.
폴짝!
그러고는 입을 쩍 벌려 상자를 물었다.
탁!
바닥으로 내려선 설탕이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뒤를 슥 돌아 강지한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입에는 작은 상자가 물려 있었다.
“어? 해냈구나, 우리 설탕이!”
설탕이는 꼭 큰 기대가 없을 때 이렇게 한 건씩 해주곤 했다.
강지한이 손바닥을 내밀자 그 위에다 상자를 내려놓는 설탕이.
“뭘 물어왔나 한 번 볼까?”
왕! 헥헥헥.
강지한은 팽팽 돌아가는 설탕이의 프로펠러 꼬리를 보며 선물을 개봉했다.
[축하합니다! 설탕이가 아이템을 물어왔습니다. ‘단골 포인트 20’을 얻었습니다.]
“크으, 역시 설탕이!”
설탕이가 물어온 단골 포인트로 인해 누적 포인트 23을 합해 총 43이 되었다.
이제 7단골 포인트만 더 모으면 상점에서 아이템 하나를 구입할 수 있게 된다.
강지한이 다음에 구매하기 위해 노리는 건,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발전과 배틀 셰프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 당장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제 정말로 가볼까?”
왕!
대답하는 설탕이에게 목줄을 채운 강지한은 함께 집을 나섰다.
* * *
오늘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내내 정신이 없었다.
방송의 여파 때문이었다.
“사장님~! 방송 진짜 잘 봤어요!”
“화면발 장난 아니시던데요?”
“끝에 조금만 나와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멋졌어요!”
여기까지는 그냥 감사하다는 인사만 건네면 되니 받아줄 만했다.
문제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었다.
“사장님! 그래서 탈락한 거예요? 합격한 거예요?”
“모자이크됐던 음식 뭐예요?”
그런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스포일러를 하게 되는 모든 정보를 누설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난감해하는 강지한을 대신해 이리나와 최지민의 입이 바빠졌다.
“그런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답니다~!”
“우리 사장님 난감해하시니 질문은 거기까지만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정신없는 피크 타임이 슬슬 마무리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딸랑-
두 명의 손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이리나가 인사로 반기며 보니 생김새가 비슷한 게 형제 같았다.
그녀의 짐작대로였다.
지한 분식을 찾은 두 사람은 선동호, 선동엽 형제였다.
선동호가 올해로 스물여섯, 선동엽이 스물여덟이었다.
적당한 키에 눈코입이 얼굴의 중앙으로 좀 몰려 있는 것 같은 외모가 재미있었다.
그들은 이리나의 안내에 따라 빈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맞아?”
“응, 확실해.”
선동호가 주방에서 요리에 정신이 팔린 강지한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일단 음식을 주문했다.
강지한에게 볼일이 있어서 오긴 했지만 지금처럼 바쁠 때는 말을 거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었다.
해서 일부러 브레이크 시간이 다 되어갈 때를 맞춰서 방문한 것이다.
음식이 나오기에 앞서 밑반찬이 서빙됐다.
밑반찬은 콩자반과 멸치볶음, 햄구이, 단무지, 그리고 김치였다.
형제가 분식집을 방문한 목적은 선동호가 먹었던 김치의 출처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혹시?’
선동호가 혹시나 해서 김치를 한 조각 집어 먹었다.
선동엽도 김치부터 집어 먹었다.
입에 들어간 김치가 아삭거리며 씹히는 순간.
“어?”
“와…….”
형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김치의 맛이 완전히 미쳐 있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동호야. 이거다, 내가 찾던 김치.”
“그치?”
“응.”
선동엽의 얼굴에 희열이 차올랐다.
이를 보는 선동호의 가슴이 뿌듯해졌다.
고기를 굽는 기술에 대해서는 선동엽에게 말했더니 고기만 두꺼우면 자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해서 김치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고기와 달리 선동엽이 관심을 보였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지한 분식에 오게 된 것이다.
더불어 찾고 싶어 했던 김치도 찾아냈다.
음식을 주문하고 10분 정도 지나 요리가 서빙됐다.
“주문하신 김치 볶음밥, 김치찌개 나왔습니다.”
그릇을 내려놓는 이리나에게 선동엽이 물었다.
“혹시…… 여기 김치는 따로 판매 안 하죠?”
강지한이 한가해지면 직접 물어보려 했던 질문이었다.
한데 마음이 급해진 선동엽이 참지 못하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분식집에서 김치만 따로 파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팔아요.”
“……네? 팔아요?”
“네, 근데 여기서 안 팔고 지한 김치라는 매장을 차려서 팔고 있어요.”
“거, 거기가 어디예요?”
“카운터에 명함 놓여 있거든요? 거기에 약도 나와 있어요. 이따 가져가세요.”
“감사합니다!”
이리나가 미소로 화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 * *
식사를 마친 선동엽, 선동호 형제는 신세계를 맛본 감격에 넋을 놓고 있었다.
김치도 김치지만 파는 음식들도 대박이었다.
왜 이 분식집에 웨이팅이 그렇게 걸렸는지 알 수 있었다.
브레이크 타임이 다가오니 홀이 거의 비었다.
주문을 받지 않게 된 강지한에게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에 선동호와 선동엽이 주방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저…… 안녕하세요. 선동호라고 합니다.”
“선동엽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강지한은 그들 형제가 배틀 셰프를 보고 아는 척을 해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명의 얼굴이 눈에 많이 익었다.
그를 어디서 봤는지 고민하던 강지한이 답을 찾아냈다.
“혹시 얼마 전 삼겹살집에서……?”
“맞아요! 기억하시네요. 하하.”
강지한이 알아보는 게 반가운 선동호였다.
그가 용기를 얻어 지한 분식에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강지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우리 김치를 지속적으로 구입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안 그래도 강지한 역시 삼겹살집에 김치 납품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가장 걸리는 것이 가격이었다.
삼겹살집에서 무상으로 제공되는 김치를 킬로당 8,500원이나 하는 가격에 사가서 운영이 될 것인가 싶었다.
강지한이 이러한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자 두 형제의 얼굴에도 그늘이 어렸다.
“아……. 그렇네요.”
“사장님, 우리가 다달이 좀 많이 구입하면 가격을 디스카운트 해주는 식으로는 거래가 어려울까요?”
“가능하죠. 한데 얼마나 할인해 드릴 수 있을지 저도 생각을 해봐야겠네요.”
선동엽이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알겠습니다. 꼭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걸고 시작해 보려 하는 일입니다. 어지간하면 우리도 사장님께서 제안하는 가격이 얼마가 됐든 김치를 구입하고 싶습니다. 정말 이 정도 김치맛이면 삼겹살이랑 케미가 너무 좋아서 매출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말미에 선동엽이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엔 ‘동스 삼겹살’이라는 상호명과 선동엽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꼭 연락 부탁드릴게요.”
“네. 너무 늦지 않게 연락드리겠습니다.”
선동엽과 선동호가 더 이상 강지한을 붙잡지 않고 식당을 나섰다.
손에 쥐어진 명함을 바라보는 강지한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 * *
밤 11시.
강지한은 장사를 끝낸 후, 집으로 가지 않고 곧 오픈 예정인 김치전골 전문점으로 향했다.
김치전골 전문점의 이름은 ‘지한 김치전골’이었다.
거기서 한창 김숙자를 교육하는 중이었다.
“한 번 먹어봐, 지한 총각.”
김숙자는 강지한이 알려준 대로 김치 전골을 완성한 뒤 말했다.
김치 전골에 들어가는 모든 핵심 재료들은 강지한이 공수해 주었다.
때문에 김숙자는 각각의 재료를 정해진 용량에 맞춰 담아 레시피대로만 끓여내면 되는 일이었다.
강지한이 전골의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자신이 만든 김치전골과 아주 흡사한 맛이 났다.
강지한은 긴장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김숙자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맛있어요. 이 정도면 이제 장사 시작해도 되겠네요.”
“그래?”
“네. 예정대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오픈하는 걸로 해요. 어머니께서 구인하신 분들도 당장 나오실 수 있는 거죠?”
“응~ 그럼. 전부 스탠바이 중이야.”
“알겠어요. 우리 직원들도 일주일 전부터 식당 찾는 손님들한테 홍보 많이 하고 있어요. 분명히 잘될 거예요.”
“그럼~ 누가 알려준 김치전골인데? 당연히 잘되지. 호호호.”
김숙자의 입에서 행복에 가득 찬 웃음이 흘러나왔다.
* * *
일요일.
배틀 셰프의 본선 2라운드가 시작됐다.
이전 라운드에서 살아남은 36명의 지원자들이 다시 배틀 셰프 키친으로 모여들었다.
강지한도 그들 안에 섞여 단상 위에 선 심사위원들을 바라봤다.
녹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형식적인 멘트가 한마디씩 흘러나온 뒤, 한돈선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단상 밑에는 서빙카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빙카트의 위에는 커다란 디쉬 커버가 무언가를 덮은 상태로 올려져 있었다.
“그럼 여러분에게 베네핏 배틀의 시험 주제를 알려드리겠어요.”
우아한 발음으로 말을 한 한돈선이 여성스러운 동작으로 디쉬 커버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디쉬 커버 안에 감추어져 있던 시험 재료가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