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Restaurant 73. 이게 손맛인가?
“1라운드 우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우승자는.”
방송을 잘 아는 레이먼 박은 한 템포 끊은 뒤 지원자들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콩그레츄레이션! 미스터 도근한!”
“됐어!”
도근한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베네핏 배틀에서 강지한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페일 배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선방했다 볼 수 있었다.
“우승을 차지한 도근한 씨에게는 다음 라운드 탈락 면제권이 주어집니다. 축하드립니다.”
최현식의 말에 도근한에게 다른 지원자들은 부러운 시선이 쏟아졌다.
그가 합격자 석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오더니 강지한의 옆자리에 앉았다.
“축하한다.”
강지한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가 워낙 작아 도근한에게만 들릴 정도였다.
심사위원이나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그의 음성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오디오 감독은 예외였다.
“축하는 무슨. 너 언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어? 아니, 원래 박식했냐?”
도근한이 툭 던지듯 물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했어.”
“칼도 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잘 다루던데.”
“그것도. 틈틈이.”
“……그래.”
둘 사이의 대화가 툭툭 끊겼다.
피차 좋은 감정이 있는 게 아니니 부드러운 이야기가 오고가는 건 무리였다.
한데 이를 듣고 있던 오디오 감독이 노영철 피디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강지한이랑 도근한, 서로 아는 사이인가 봐요.”
“응? 아는 사이라고?”
“친구 같은데…… 썩 좋은 감정이 있는 것 같진 않고요.”
“그래?”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두 사람이 라이벌 구도를 그려줬으면 좋겠다고 바란 노영철이다.
그런데 그들이 친구란다.
그것도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그런 두 사람이 1라운드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으로 통과를 했다.
‘종합예선전에서도 그랬지.’
강지한이 가장 먼저 광어를 해체했고 그다음으로 해낸 것이 도근한이었다.
‘하늘이 돕는군.’
아주 드라마를 만들라고 판을 짜주는 것만 같았다.
어느덧 합격자 석의 의자는 하나둘 채워지고 이제 단 한 자리만 남아 있었다.
심사위원의 앞에 선 다섯 명의 탈락 후보들은 그 자리가 제발 자신의 것이길 바랐다.
“마지막 합격자는 강지영 씨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심사위원님들!”
주부 지원자 강지영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합격자석으로 가서 앉았다.
결국 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네 사람은 앞치마를 벗고 배틀 셰프 키친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1라운드가 종료되고 36명의 사람이 살아남았다.
* * *
강지한의 마당에서는 늘 그렇듯 독고진과 조미옥, 진경혜가 김치를 담그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용성우와 이리나도 함께였다.
서울에서 돌아와 마당에 들어선 강지한은 평소와 다른 광경에 놀라 물었다.
“다들 고생이 많으십…… 어? 성우랑 리나는 어쩐 일이야?”
“사장님 오셨어요? 헤헤.”
“오빠! 합격했어요?”
용성우와 이리나가 당장 강지한에게 한마디씩 건넸다.
조미옥 모자와 진경혜도 강지한의 합격 여부가 궁금한지 인사도 건네지 않고 답변만 기다렸다.
“응, 합격했어.”
“와, 오빠 대박!”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헤헤.”
“우리 강 사장, 합격했어? 경사 났네. 그게 전국에서 요리사들 모이는 거니까 첫 라운드만 통과해도 대단한 거잖아.”
“당연하지, 엄마. 사장님 실력이 보통 실력이야? 우리 가족 먹여살려 주는 실력이잖아. 난 통과할 줄 알고 있었어.”
“축하드려요 사장님~ 호호호.”
강지한의 대답을 듣자마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씩 던졌다.
왕!
그때 마당 저편에서 놀던 설탕이가 마구 달려와 강지한을 반겨주었다.
강지한이 그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설탕이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감겼다.
“근데 너희는 어쩐 일로 온 거야?”
“오빠 기다렸어요.”
“기다리는 김에 겸사겸사 김치 담그는 것도 도와드렸습니다!”
“일 도와준 건 고마운데 날 기다려?”
“오늘도 배틀 셰프 통과하면 기념으로 축배나 한 잔 들까 해서요.”
이리나가 말했다.
그녀는 오늘 낮부터 지한 분식 식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강지한이 1라운드를 통과하면 축하주를 마시는 게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고중만은 주말에 무조건 가족과 함께하자는 신조였다.
최지민과 막내 이주희는 다른 약속이 있었다.
해서 용성우와 둘이서만 오게 된 것이다.
사실 축하주를 핑계로 강지한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래, 강 사장. 우리 가볍게 한 잔 마시자고. 나도 간만에 목 좀 축이게.”
조미옥이 강지한을 부추겼다.
자리에 모인 사람 중 가장 어른이 그리 나오니 강지한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네, 그래요. 일 마저 끝내고 다 같이 움직이죠.”
“거의 다 끝났어요, 사장님. 오늘은 손이 더 늘어서 진척이 빨랐거든요.”
독고진이 말미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런 것 같네요. 저도 거들게요.”
강지한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함께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 * *
일을 끝내고 난 뒤, 강지한 일행은 동네 고깃집으로 향했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검증이 되지 않은 곳이었다.
사농동에는 워낙 술집이 없었다.
해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안주가 괜찮은 술집을 찾으려면 차를 타고 좀 더 나가야 했다.
그런데 강지한은 녹화를 마치고 왔고 다른 사람들은 종일 김치를 담근 터라 피곤해서 멀리 움직이기가 싫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안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목적은 술이었다.
지어진 지 제법 오래된 것 같은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다른 손님상에 고기를 서빙하던 할머니가 눈인사를 보냈다.
“어서 오세요~”
참 곱게 늙었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인상이 좋은 할머니였다.
식당 안에는 한 테이블만 손님이 차 있었고 나머지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강지한 일행이 둥그런 철제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모여 앉았다.
이리나가 착석하자마자 재빠르게 메뉴를 스캔했다.
“이런 자리에서 메뉴는 막내가 고르는 거죠?”
“호호호! 리나가 뭘 좀 아네. 맡길 테니까 한 번 골라봐~”
조미옥의 허락에 이리나는 잠시 고민하다 삼겹살을 주문했다.
“할머니~ 여기 삼겹살 6인분 우선 주시고, 소주 한 병이랑 맥주 한 병, 사이다 한 병 주세요!”
“네~ 알았어요.”
주인 할머니는 느릿느릿하게 주문 받은 것들을 내오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강지한 일행보다 먼저 와 있던 남자 손님 두 명이 다 익은 고기를 한 점씩 입에 넣고 씹었다.
“윽……. 별로다.”
손님 중 한 명이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주인 할머니는 주방에 들어가 삼겹살을 챙기느라 듣지 못했다.
하지만 강지한 일행의 귀에는 그 말이 똑똑히 들렸다.
“이거 긴장되네요.”
막내의 입장에서 고기를 구워야 하는 이리나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윽고 고기가 나왔다.
집게와 가위를 든 이리나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런 이리나에게 용성우가 물었다.
“리나야, 내가 구울까?”
“아뇨.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이리나는 방긋 웃고서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치이이익.
고기의 한 면이 노릇하게 익자 뒤집어서 반대쪽 면을 구웠다.
그런 식으로 여섯 번 정도 뒤집은 다음 삼겹살을 잘랐다.
“여기는 고기가 좀 두껍게 나오네요. 다 익었으니 드셔보세요.”
고기가 익었다는 희소식에 사람들이 일제히 건배를 하고 젓가락을 움직였다.
모두의 입에 고기가 한 점씩 들어갔다.
이어 오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정말 고기가 별로였던 것이다.
고기에 육즙이 너무 없었고 육질도 질겼다.
강지한이 소주로 입안을 달랜 뒤, 아직 구워지지 않은 생삼겹살을 확인했다.
그렇게 좋은 삼겹살은 아닌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맛없을 것도 아니었다.
“우리 조금 피곤해도 다른 곳으로 갈 걸 그랬나요? 이거 너무 심한데.”
독고진이 툴툴댔다.
그에 조미옥이 혀를 쯧! 하고 찼다.
“그냥 먹어. 술 좀 들어가서 취하면 다 맛있어.”
“어유, 그게 뭐야.”
사실 다들 말만 안 할 뿐이지, 독고진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대단한 맛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삼겹살에서 기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 전혀 없었다.
“아, 저 다다음 주부터 김치전골 장사 시작할 것 같아요.”
분위기가 가라앉으려 하자 강지한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강지한이 던진 얘기에 관심을 보였고 술자리는 그럭저럭 괜찮게 흘러갔다.
이리나가 구운 고기 한 판을 다 먹은 뒤, 사람들은 조금 거북해진 얼굴로 남은 고기를 바라봤다.
이리나는 이걸 더 구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자 강지한이 집게와 가위를 가져와 고기 세 덩이를 불판 위에 턱턱 올렸다.
“아, 오빠. 제가 할게요.”
“이번엔 내가 구워볼게.”
강지한이 마다하고 본격적으로 고기 굽기에 돌입했다.
‘얼마 전에 봤던 이일천 씨 영상을 생각하자.’
이일천은 고기 굽기 달인으로 얼마 전 전파를 탔었다.
그는 돼지고기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직접 손님들에게 구워주는 것이 그의 운영 철칙이었다.
따라서 식당 내에 테이블도 다섯 개가 전부였다.
그 이상은 이일천이 케어할 수 있는 능력 밖이었다.
그는 두꺼운 삼겹살을 팔고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구워야 안에 육즙이 꽉 잡히면서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익힐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두꺼운 삼겹살의 경우 잘못 익히면 육즙이 다 빠져나가고 고무처럼 질겨질 수 있으니 신경을 써서 구워야 한다고 했다.
강지한의 눈앞에 고기 굽는 이일천의 손놀림이 나타났다.
배틀 셰프에서 혹시 고기 굽는 것과 관련된 시험이 나올지 몰라 종종 연습을 해둔 터.
그는 이일천의 실력을 80퍼센트 이상 흉내낼 수 있었다.
치이이익-.
고기의 한쪽 면이 지글거리며 바짝 익었을 때, 강지한이 그것을 한 번 뒤집었다.
그리고 반대쪽 면도 바짝 익힌 뒤, 바로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냈다.
가위에 잘려 드러난 속은 바삭한 겉과 달리 덜 익은 상태였다.
강지한이 잘린 면들을 철판 쪽으로 향하게 해서 지졌다. 그쪽 면이 충분히 익자 반대쪽 면도 익혔다.
그다음부터는 고기를 가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자 고기 속으로 침투한 열기가 육즙과 수분을 머금고 촉촉하게 익게끔 만들었다.
“이제 먹어보세요.”
강지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다들 번개같이 젓가락을 뻗었다.
가장 먼저 고기를 입에 넣은 건 진경혜였다.
‘아무리 사장님이라도 고기가 다 똑같은 고긴데 뭐 크게 다를 게 있겠…… 엥?’
크게 기대 안 했던 진경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기를 씹는 그녀의 입놀림이 빨라졌다.
‘어머, 어머. 이게 뭐야?’
이리나가 구웠던 고기는 질기고 퍽퍽해서 맛이 없었다.
그런데 강지한이 구운 고기는 부드럽고 육즙이 팍팍 터져 황홀할 지경이었다.
고기 하나를 다 씹어 삼킴 진경혜가 바로 또 한 점을 집으려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젓가락 네 쌍이 우르르 불판으로 몰려들었다.
전부 진경혜처럼 강지한이 구운 고기에서 신세계를 맛본 것이다.
“강 사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리나가 구운 거랑 달라도 너무 다른데?”
“그러게. 고기는 똑같은데. 마술 같아요, 사장님. 이게 손맛이라는 건가?”
조미옥과 독고진의 말이었다.
“고기가 좀 두껍죠? 이런 고기는 앞뒤로 돌려가면서 굽기보다 얼른 잘라서 네 면을 고루 익혀주는 게 좋아요. 그다음엔 정신없이 계속 굴려줘야 돼요. 가만히 두고 너무 강한 열로 익히면 육즙이 다 빠져 나가거든요.”
“어머나. 그런 건 어떻게 알았대요? 진짜 신기하다.”
진경혜가 감탄을 했다.
“그냥 공부하다 알게 됐어요.”
그때 조미옥이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열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건 잘 익은 배추 김치였다.
“아무래도 이걸 꺼내야겠네. 집에 김치 떨어져서 싸놨던 건데 참을 수가 없어.”
조미옥은 미리 잘라 담아놓았던 김치를 불판에 올렸다.
그러자 돼지기름에 김치가 구워지며 고소한 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김치를 보는 사람들의 목으로 군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지한 김치다.
그런데 돼지고기 기름에 구워 버리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인고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사람들의 젓가락이 바빠졌다.
돼지고기 한 점을 잘 익은 김치에 둘둘 말아서 마늘을 올리고 쌈장을 조금 찍어 입에 넣었다.
“으음~!”
“겁나 맛있다!”
“죽여줍니다.”
그야말로 입안에서 맛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김치를 꺼낸 스스로의 선택이 대견했던 조미옥은 신나서 떠들었다.
“삼겹살 집 김치가 전부 사장님 김치만 같으면 고기 맛이 좀 덜해도 얼마든지 와서 먹겠네.”
그 말을 들은 강지한이 혹했다.
‘삼겹살 집 김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