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Restaurant 72. 양민 학살
심사위원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지원자들은 하나같이 강지한을 바라보다가, 심사위원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했다.
음식을 어떤 순서로 서빙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아예 내가지를 않을 것이라고 답을 하니 황당할 법도 했다.
장내에 큰 파문을 일으킨 강지한.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치 태풍의 눈이라도 되는 양 평온한 상태였다.
심사위원들이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일식 대가 최현식이 물었다.
강지한은 망설임 없이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궁합이 최악인 재료들로만 구성된 코스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몇몇 지원자들이 무릎을 탁 쳤다.
“아!”
“……가장 기본적인 걸.”
후회를 해도 기회는 이미 날아갔다.
최현식이 강지한에게 더 얘기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꽃게는 식중독균의 번식이 잘되는 고단백 식품입니다. 반면 감은 타닌 성분이 들어 있어서 게와 감을 함께 먹을 경우 소화불량 및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때문에 꽃게가 주재료인 비스크와 감으로 만든 홍시 스무디는 최악의 궁합을 자랑하는 요리입니다.”
“시금치와 두부도 그런가요?”
최현식이 물었다.
이번에도 강지한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네, 시금치에는 수산 성분이 있고, 두부에는 칼슘이 있죠. 때문에 두 식품을 같이 먹으면 수산칼슘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칼슘 흡수를 방해하며 결석을 유발하게 됩니다. 따라서 시금치 파스타와 오리엔탈 두부 샐러드 역시 최악의 궁합인 요리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요리들을 제 소중한 손님들께 서빙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부 강지한이 공부하던 요리와 식재료의 기초 지식에 있는 내용들이었다.
강지한의 말을 듣고 난 지원자들 대부분은 완전히 허를 찔린 표정이 됐다.
도근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 심사위원들의 얼굴엔 미소가 어렸다.
짝짝짝!
한돈선이 기꺼워하며 박수를 쳤다.
“정답이에요, 강지한 씨. 가장 먼저 정답을 맞췄으니 베네핏 배틀에서 우승하신 겁니다. 축하드려요.”
한돈선의 말에 다른 지원자들이 일제히 강지한에게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
“축하드려요.”
“종합 예선 때부터 장난 아니시네요.”
“너무 클라스가 다른 분이 나왔는데. 위험하네.”
강지한의 주변에 있던 지원자들이 한마디씩을 건넸다.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던 강지한은 어색해하며 웃었다.
어느 집단에 가건 그는 늘 중심에 속하기보다는 겉에서 맴도는 입장이었다.
그가 오너로서 운영해 나가는 지한 분식을 제외하고는 인생 통째로 중심에 섰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많은 사람들의 중심에 서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마치 머리 위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강지한 씨.”
박수가 잦아들었을 때 최현식이 그를 불렀다.
“네.”
“우승 하셨으니 베네핏을 드려야겠죠. 따라오세요.”
최현식과 심사위원들이 돌아서자 막혀 있던 무대의 벽이 양옆으로 스르르 열렸다.
벽 너머에는 세 평 남짓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강지한은 심사위원들을 따라 그곳으로 들어섰고, 열렸던 문이 다시 닫혀 벽으로 돌아왔다.
그가 사라지자 장내에 있던 지원자들이 수군댔다.
“저분 종합 예선 때부터 장난 아니네.”
“어디 유명한 레스토랑 셰프야?”
“내가 알기로는 춘천에서 작은 분식집 한다던데.”
“무슨 분식집 사장이 저런…….”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강지한에 대한 얘기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근한은 강지한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영 고까웠다.
그에게 당한 수모를 설욕하겠다고 출연했는데, 갈수록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멀어지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더 추해져서는 안 돼.’
도근한은 애써 강지한에 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동창회가 있던 그날, 강지한은 자신에게 수모만을 안겨준 건 아니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노력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 덕에 도근한 스스로도 많은 발전이 있었고 지금 배틀 셰프라는 무대에 도전할 용기도 얻게 됐다.
최고의 스승은 경험이라는 말이 있다.
강지한이 만들어준 경험이 아니었다면 그는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만 보자. 흔들리지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나가면 되는 일이다.
남을 부러워하고 질투할 시간에 조금 더 노력하는 게 더 나았다.
“후우.”
도근한이 안 좋은 감정들을 한숨에 담아 내보냈다.
* * *
“이게 뭔지 알겠어요?”
강지한과 심사위원 사이에는 서빙 카트가 있었다.
강지한은 서빙 카트 위, 흰 접시에 담아진 음식을 보며 대답했다.
“만두네요.”
“그렇죠.”
만두가 올려진 서빙카트 옆에는 또 다른 서빙카트가 놓여 있었는데, 검은색 천으로 덮어놓은 상태였다.
한돈선이 그 천을 휙 걷어 올렸다.
그러자 접시에 담긴 스무 가지의 재료가 모습을 드러냈다.
돼지고기, 양파, 부추, 미나리, 취나물, 후추, 표고버섯, 마늘 등등.
강지한이 그 재료들을 훑어보고 있자니 한돈선이 입을 열었다.
“강지한 씨, 그 만두는 제가 직접 빚어 찐 거예요.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안 그래도 먹고 싶어 죽겠던 참이었다.
그 이유는,
[한돈선이 만든 최고의 만두]
요리 등급: LV 7
-쫄깃하고 탄력 있으면서도 얇은 만두피가 환상적이다. 스무 가지의 재료를 섞어 만든 만두소 역시 각 재료의 장점이 확실히 살면서 조화롭기까지 하다. 보통의 한국식 만두에서 경험하기 힘든 육즙까지 잡아낸 것이 특징. 완벽하다. 그러나 이것이 한돈선의 전력은 아니다.
요리의 등급이 무려 레벨 7이었다.
지금껏 강지한은 레벨 7의 요리를 맛본 적이 없었다.
강지한이 만두를 들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얇으면서도 쫀득한 만두피를 이가 찢고 들어가는 순간, 만두소가 품고 있던 육즙이 입안으로 사르르 퍼졌다.
‘아.’
속으로 감탄한 강지한이 계속해서 턱을 움직였다.
육즙에 이어 만두소가 부서지며 제법 큼직한 입자들이 입속 가득 돌아다녔다.
‘만두소를 자잘하게 갈지 않았어.’
그 덕분에 소를 씹는 치아에서 충분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이어 고소한 향이 비강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맛과 향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입안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꿀꺽!
이건 정말 삼키기가 아까운 요리였다.
입안에 한없이 담고 싶다는 욕망을 겨우 억누르고서 만두를 삼켰다.
“하아.”
강지한의 입 밖으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반응을 한돈선이 만족스레 지켜봤다.
“어떤가요?”
“정말 맛있어요.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네요.”
“페일 배틀의 시험 과제가 무언지 짐작할 수 있겠어요?”
강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도…… 이 만두를 그대로 재현해 보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돈선이 빙긋 웃었다.
“맞아요. 강지한 씨의 베네핏은 바로 만두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알고 시작한다는 거예요. 다른 참가자들은 단 두 가지 재료만 오픈된 상태로 만들어야 하죠.”
“아……!”
실로 어마어마한 베네핏이었다.
이런 베네핏을 얻은 상태에서 경쟁하는데 탈락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 가지 더. 참가자들에게 오픈되는 만두 속 재료 두 가지가 무엇인지, 그것을 강지한 씨가 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요?”
“네, 그들에게 오픈할 두 가지 재료를 선택하세요.”
강지한이 천천히 재료를 살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헤매길 원한다면 비교적 알아채기 쉬운 재료, 이를테면 돼지고기나 소금 같은 것을 오픈하면 된다.
그건 만두소를 먹어보면 누구다 유추가 가능했다.
반대로 조금 난이도를 쉽게 해주려면 만두에 잘게 갈려 섞인 미나리나 취나물 같은 것을 알려주면 된다.
즉, 전자의 경우 강지한은 더 쉬운 길을 걷게 될 테고 후자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강지한의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담기고 있었다.
강지한은 손을 뻗어 두 가지 재료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에 심사위원들이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 * *
“……대박.”
강지한이 얻게 된 베네핏에 대한 설명을 심사위원으로부터 듣고 난 뒤 강지영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였다.
다른 참가자들도 입만 열지 않았지 다들 그녀과 같은 심정이었다.
이건 답안지를 보여주고 나서 문제를 풀라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지원자들에게 오픈되는 만두 속 두 가지 재료는 강지한이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쉬운 재료를 오픈했을 리 없지.’
도근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현재 지원자들은 한 알씩 지급된 만두를 전부 먹어본 터였다.
‘대체 이 안에 뭐가 스무 가지나 들어갔다는 거야?’
‘열다섯 개까지는 어떻게 알겠는데 그 이상은 도저히…….’
만두 속 재료가 무언지 오리무중에 빠져 있을 때 드디어 강지한이 선택한 재료 두 가지를 심사위원들이 오픈하려 했다.
“강지한 씨가 여러분에게 오픈한 첫 번째 재료는 바로 이것입니다.”
한돈선의 손이 두 개의 접시를 덮고 있는 디쉬 커버 중 하나를 들어올렸다.
모든 지원자들이 그 속에서 어떤 재료가 나올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다.
디쉬 커버가 완전히 치워지고 드러난 재료는 바로 취나물이었다.
“와우!”
“그렇지!”
지원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몇몇 사람들은 강지한에게 정말 고맙다는 시선을 던졌다.
이어 두 번째로 드러난 재료는 미나리였다.
“와……. 천사인 줄.”
지원자들 중 가장 어린 스무 살의 여인 조설희가 애정 가득한 눈망울로 강지한을 바라봤다.
다른 지원자들 역시 강지한의 배려에 감동한 상황.
노영철 피디는 예상했던 것보다 멋지게 돌아가는 그림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잘생겼고, 패션 감각 좋고, 키 크고, 요리 잘하는 데 매너 좋기까지. 난리 나겠네.’
그가 프로그램의 앞날을 점치는 사이 최현식의 말이 이어졌다.
“강지한 씨, 이건 경쟁입니다. 때로는 독해져야 할 때도 있는 법인데 주어진 베네핏을 너무 착하게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다른 분들은 고작 두 가지만 봤을 뿐인데요. 저는 스무 가지 재료를 전부 봤고요.”
“그럼 이번 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할 자신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최현식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그 자신감은 다음 라운드에서 보여줘야겠네요.”
“……네?”
“강지한 도전자는 오늘 요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측의 합격자 석에 앉아 다른 지원자들의 경합을 편히 지켜보시면 되겠습니다.”
우와아.
지원자들의 부러운 시선이 강지한에게 꽂혔다.
강지한은 생각지도 못했던 베네핏에 얼떨떨해하며 합격자 석으로 향했다.
합격자 석에는 36개의 의자만이 놓여 있었다.
그중 가장 안쪽 좌측 의자에 앉았다.
‘이거 완전히 프리패스네.’
어차피 이럴 거 뭐하러 재료를 보여주고 직접 다른 지원자들에게 두 가지 재료를 오픈하라고 한 것일까?
그건 모두 방송의 재미를 위해 마련된 장치였다.
아무튼 강지한은 그 덕분에 이미지도 챙기고 다음 라운드에 편하게 진출하게 되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럼 나머지 분들은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한돈선 대가님의 만두를 재현하도록 하세요.”
최현식의 말에 도전자들이 바쁘게 팬트리로 향했다.
이를 지켜보는 강지한과 도근한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도근한이었다.
‘……따라잡을 거야.’
도근한이 결의를 다졌다.
한편 편한 마음으로 경합을 지켜보는 강지한을 한돈선이 눈에 담았다.
종합예선에서는 무쌍을 찍어버리더니 본선 1라운드에서는 다른 이들을 학살해 버렸다.
‘보기 드문 물건인데…….’
근 몇 년 동안 강지한 같은 인물을 도근한은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그의 주변에서는 그랬다.
‘저 청년이라면 어쩌면…….’
한돈선이 강지한에게 은근한 기대감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