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Restaurant 71. 본선 1라운드
이리나의 스마트폰 액정에 떠 있는 건 수두룩한 강지한의 사진이었다.
“이게 뭐야?”
“그러게요. 이게 뭘까요? 오빠 어디서 남성복 쇼핑몰 모델 하셨어요?”
그제야 사진이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강지한은 하나같이 스타일리쉬한 옷을 입은 채 포즈를 잡고 서 있었다.
“아……!”
강지한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6일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이향숙의 부탁으로 쇼핑몰 모델을 해줬었다.
한데 이상한 건 그의 사진이 왜 쇼핑몰 홈페이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블로그들에서 검색이 되느냐는 것이다.
“향스리닷컴? 다들 여기에서 사진 퍼오는 것 같던데.”
“응. 그거 향숙이가 운영하는 쇼핑몰이야.”
“향숙이? 아……. 전에 살던 집 건물주 따님이요?”
“급하게 사진 올려야 하는데 모델이 사정이 생겨서 못 나왔다더라고. 그래서 내가 대신 모델 해줬어.”
“대박. 오빠 이런 거 싫어하지 않아요?”
“동생 부탁인데 별수 있나.”
강지한이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고 내 사진이 왜 다른 사람들 블로그에 떠?”
“왜겠어요? 쇼핑몰 사이트에서 오빠 사진보고 뿅 간 거죠. 봐봐요.”
이리나가 블로그 미리보기에 작성된 제목들을 보여주었다.
-모델 완전 개졸멋. 취저 당함. 개심쿵.
-향스리닷컴? 거기 모델 봤음? 설레서 잠 못 자고 있다능. 이름이 강지한이라던데.
-이웃분들~ 혹시 이 모델분 정보 알 수 있을까요? ㅠㅠ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네요.
-요즘엔 막 되게 조각 같은 얼굴은 아닌데 마성의 매력을 가진 이런 모델들이 좋더라.
“헐.”
강지한의 입에서 나오는 건 그야말로 ‘헐’이었다.
주변에서 함께 액정을 확인한 지한 분식 막내 이주희가 아기새처럼 양팔을 퍼득거렸다.
“대박대박. 그럼 사장님 온라인 스타 되는 거예요? 와~ 짱이세요.”
“아냐, 모델일은 이번 한 번만 한 거야. 스타는 무슨. 지민이 정도 되면 모를까.”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최지민에게 쏠렸다.
최지민은 그 시선을 즐기며 멋진 포즈를 척 지어 보였다.
그에 이리나가 웃었다.
“풉! 지민이 확실히 생긴 건 넘사벽인데 좀 푼수 같잖아요. 오빠는 외모도 괜찮고 특히 미소가 살인적인 데다가…… 그리고……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이리나의 고민을 고중만이 끝내주었다.
“오랜 시간 숙성된 진짜배기 같은 매력이 있지, 우리 강 사장.”
“아, 맞아요! 그런 매력이 있어요.”
강지한을 칭찬하며 활짝 미소 짓는 이리나.
그때 고중만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가만 있어봐. 딸내미는 그런 사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거 어떻게 알았어?”
고중만은 밝고 싹싹한 이리나를 가끔 딸내미라 부르곤 했다.
“……네?”
“아니 이거 딱 보니까 검색 가능한 키워드가 ‘강지한’밖에 없잖아. 강 사장 이름을 인터넷에 가끔 쳐보기도 하고 그러나 봐? 이거 뭐야? 사랑이야?”
고중만이 돌직구를 날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 바람에 얼굴이 붉어진 이리나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사장님 잡지에도 나오고 해서 유명세라도 탔는지 궁금했던 것뿐이에요.”
“응~ 그래~ 밥 먹자, 딸내미.”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아닙니다아~ 내 마음은 그런 게에~ 아닙니다아~”
난데없이 트로트를 불러대며 이리나를 더 놀리는 고중만이었다.
“중만 아저씨 나중에 두고 봐요.”
이리나의 입이 댓발 나왔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 고중만은 킥킥 웃어버렸다.
반면 부끄러워하는 이리나를 보는 용성우의 마음은 쿡쿡거리며 아렸다.
눈치 빠른 고중만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에잉, 이 녀석은 자극을 줘도 나아가지를 않네.’
사실 이리나가 인터넷으로 강지한을 검색해 봤다는 사실은 그녀가 사진을 보여주는 순간 다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걸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굳이 터뜨린 건 용성우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일전에도 몇 번 이런 식으로 용성우를 자극했지만 통 발전이 없었다.
‘아무래도 방법을 바꿔야겠구만. 이 아재가 도와줄 테니 힘내라, 용 선배.’
고중만은 은연중 용성우를 응원하고 있었다.
* * *
일요일.
드디어 배틀 셰프 본선 1회전이 시작되는 날이다.
강지한은 남춘천역에서 9시 47발 ITX에 몸을 실었다.
미리 예매해 둔 창가 쪽 자리에 앉은 그의 손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바로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모든 나라의 요리들의 기초 지식과 핵심 포인트에 관해 저술된 책이었다.
강지한은 배틀 셰프에 지원한 이후 각종 요리 서적들을 섭렵하며 지식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가 배틀 셰프 종합 예선전을 겪어본 결과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기본’과 ‘맛’인 것 같았다.
해서 무엇보다 기초 지식을 익히는 데 노력하는 중이었다.
책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강지한을 그의 옆자리에 앉은 여인이 가끔씩 흘끔거리며 훔쳐보았다.
처음에는 훈훈한 외모와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이 마음에 들었다.
바이커진에 하얀색 셔츠와 그 위로 겹쳐 입은 브라운 니트, 그리고 가벼운 라이더 재킷이 부담스럽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어울렸다.
옷에 맞춰 신은 검은색 스니커즈도 좋았다.
향수는 뿌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 대신 맡아지는 은은한 비누향이 괜히 기분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래서 순전히 이성적 호기심으로 강지한을 몰래 보게 됐다.
한데 계속 보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은데…….’
여자는 강지한을 신비한 동물의 세계라는 프로그램과 도그앤라이프 잡지, 그리고 이향숙의 쇼핑몰 사이트 향스리닷컴에서 봤다는 걸 끝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 * *
배틀 셰프 본선 1라운드는 인원수가 줄어든 만큼 제대로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촬영을 진행하게 됐다.
약 300평의 넓은 내부 무대는 40개의 조리대와 모든 조리도구 및 식재료가 갖추어진 팬트리(pantry)가 존재했다.
지원자들은 이곳에 11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
강지한은 30분이나 이른 11시에 도착해서 다른 지원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진행요원이 와서 이름표를 건네주었다.
저번 주까지는 414번이었는데, 지금은 ‘강지한’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박힌 이름표를 착용하게 됐다.
11시 반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도근한도 촬영장에 도착했다.
그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강지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공부하냐.”
“응.”
도근한은 강지한이 얼마나 대단한 책을 읽고 있는지 표지를 슬쩍 봤다.
표지에는 이런 제목이 적혀 있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의 기초 지식과 기본기’
제목을 읽고 난 도근한의 눈 밑에 경련이 일었다.
‘뭐야 이거?’
저번 주에 어마어마한 실력을 보여주었던 강지한이었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건 요리의 기초 지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너무 상극이라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 행동에 도근한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래. 공부 많이 해라.”
더 상대하지 않는 게 답이다 싶어서 멀리 떨어졌다.
그 무렵 모든 지원자들이 도착했고 심사위원들도 전방의 낮은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연자들이 세팅되자 노영철이 큐 사인을 날렸다.
카메라가 돌아가며 한돈선이 입을 열었다.
“지역 예선, 그리고 종합 예선을 거쳐 본선 무대인 이 자리까지 오신 마흔 명의 지원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한돈선이 멘트를 치는 동안 노영철은 카메라에 잡히는 도전자들의 비장한 얼굴을 살폈다.
그러다 강지한의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어우~ 오늘도 패션 좋고.’
앞치마 때문에 조금 가려지긴 했지만 옆태와 뒤태만 봐도 이 사람이 패션을 안다는 게 확 느껴졌다.
게다가 얼굴은 저번 주보다 더 훈훈해진 것 같았다.
‘벌써부터 카메라 마사지 받나?’
성형보다 무서운 게 카메라 마사지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어색해서 굳어 있고 경직되어 있던 인상이 자연스럽게 풀어지며 더욱 예쁘거나 멋있게 비추어지는 현상이었다.
‘적응도 빠르고.’
확실히 스타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강지한뿐만이 아니었다.
양식 분야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 도근한 역시 외모가 제법이었다.
아울러 흙수저인 강지한과 달리 도근한은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은수저 도련님이었다.
두 사람의 대조되는 매력이 인상적이라 만약 라이벌 구도가 잡히면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제발 그렇게 되라.’
노영철이 속으로 염원했다.
그러는 사이 한돈선과 다른 심사위원들이 형식적인 멘트를 끝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본선 1라운드의 심사 과제가 주어질 때였다.
1라운드에서는 총 두 번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첫 번째 시험은 ‘베네핏 배틀(Benefit Battle)’이다.
말 그대로 혜택을 받기 위한 싸움이었다.
이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은 두 번째 시험에서 유리하게 적용될 베네핏, 즉 혜택을 얻게 된다.
두 번째 시험은 ‘페일 배틀(Fail Battle)’이다.
이 역시 말 그대로 탈락자를 가리기 위한 시험이었다.
1라운드에서는 총 네 명의 탈락자가 발생하게 된다.
“그럼 첫 번째 시험 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한돈선의 말에 진행 요원들이 심사위원의 앞으로 서빙카트를 대령했다.
서빙카트 위에는 총 네 개의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전부 디쉬 커버가 씌어져서 무슨 요리가 담긴 건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해하는 지원자들의 면면을 살피며 심사위원들이 하나씩 디쉬 커버를 오픈했다.
그러면서 레이먼 박이 각 요리에 대해 설명을 곁들였다.
“첫 번째 디쉬에 담긴 것은 꽃게 비스크입니다. 비스크가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음식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됩니다.”
비스크는 갑각류를 사용해 만드는 진하고 크리미한 프랑스의 전통 수프다.
비스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깊은 맛과 향을 손실하지 않는 것인데, 이를 위해 갑각류의 껍질을 굽고 육수와 함께 푹 고아 퓌레로 만드는 등의 조리과정을 거치는 동안 같은 냄비를 사용한다.
“두 번째 음식은 홍시 스무디입니다. 아주 스윗하겠죠?”
얼린 홍시에 물, 설탕, 레몬즙, 요거트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믹스해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료였다.
“세 번째 디쉬에 담긴 건 시금치 크림파스타입니다.”
크림소스에 시금치를 갈아 넣어 민트 색감이 아름다운 파스타였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크림소스의 풍미에 산뜻한 시금치의 향과 질감이 곁들여져 한결 더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었다.
“라스트 디쉬는 오리엔탈 두부 샐러드입니다.”
생두부와 어린잎 채소, 삶은 달걀, 햄이 오리엔탈 소스와 잘 어우러진 샐러드였다.
오리엔탈 소스와 두부의 조합은 워낙 좋은지라 맛은 보장이 된다.
모든 음식을 소개한 레이먼 박이 지원자들을 좌에서 우로 훑어보며 시험과제를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아주 중요한 손님이 레스토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의 가족 구성원은 서른 초반의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두 살배기 아이. 그리고 연로한 시부모님까지 총 다섯입니다. 이들에게 앞에 놓인 음식을 어떤 순서로 서빙하겠습니까?”
문제를 접한 순간 지원자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답을 맞추는 사람에게는 아주 특별한 베네핏이 주어집니다. 먼저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 시험은 끝나지 않습니다. 손을 들어 발언권을 획득할 수 있으며 한 번 발언을 한 뒤엔 1분 간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손을 들어 주세요.”
그러자 지원자들이 빠르게 손을 들기 시작했다.
레이먼 박이 삼십 대 주부 ‘강지영’을 지목했다.
“오리엔탈 두부 샐러드를 에피타이저로 내놓고 꽃게 비스크를 서빙한 뒤, 메인으로 시금치 파스타를, 디저트로 홍시 스무디를 내어줄 거예요.”
강지영의 대답에 손을 들었던 다른 지원자들이 한숨을 쉬었다.
다들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
하지만.
“틀렸습니다. 1분간 발언권을 얻지 못합니다.”
레이먼 박은 그녀의 대답이 틀렸다고 했다.
진행요원 중 한 명이 강지영의 발언권 제지 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지원자가 강지영과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꽃게 비스크를 먼저 내오고 오레엔탈 두부 샐러드를 그다음으로 내놓을 것이라 말했다. 나머지 순서는 강지영과 같았다.
“틀렸습니다. 1분간 발원에 제한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옳은 답은 아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도근한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뭐지? 문제 어디에 함정이 있는 걸까. 가족 구성원? 그걸 중점에 두고 생각해 봐야 하나.’
한편 강지한은 서빙 카트에 놓인 음식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봤다.
‘꽃게 비스크, 홍시 스무디. 시금치 파스타, 오리엔탈 두부 샐러드. ……아!’
순간 강지한의 뇌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여태 가만히 있던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강지한 도전자, 발언하세요.”
레이먼 박이 강지한을 지목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음식들을 제 소중한 손님들에게 서빙하지 않을 겁니다.”
일순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