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71화 (71/330)

# 71

Restaurant 70. 폭풍 같은 일주일

다음 주부터 본선 무대에 진출하게 될 40인이 가려졌다.

이제부터가 진짜 게임인 것이다.

40인의 지원자들은 프로그램 관계자에게 다음 주 주말에 와야 할 장소와 시간, 주의사항 등을 들은 뒤 해산했다.

강지한이 관계자에게 들은 것들을 숙지하며 건물을 나설 때였다.

툭.

누군가 그의 등을 쳤다.

돌아보니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오래간만이다.”

“근한아.”

“너 은근히 사람 놀래는 재주 있더라. 배틀 셰프에 나왔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그렇지. 근데 분식집 일 하는 녀석이 뭔 생선 해체를 그렇게 잘해? 여기 나오려고 연습 좀 했나 봐?”

“응. 그랬어.”

도근한은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대화가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어색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이러기도 힘들었다.

할 말이 궁해진 도근한이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래. 다음 주에 보자.”

“고생해.”

“고생은 춘천 올라가는 네가 해야지. 가~”

“그래.”

강지한이 도근한에게서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도근한이 상념에 빠졌다.

‘너랑 나도 보통 악연은 아닌 모양이다.’

그의 목표는 배틀 셰프에 출연해 20위권 안에는 들어가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활약이 TV 전파를 타면 강지한도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이상 자신의 모습을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테니, 일전의 일은 충분히 설욕하는 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강지한은 자신과 함께 배틀 셰프에 도전했다.

게다가 발군의 기량을 보여 주목까지 받았다.

빠득.

도근한이 이를 갈았다.

이렇게 된 이상 목표는 20위권이 아니라 무조건 강지한보다 나중에 탈락하는 것이다.

결의를 다진 도근한이 걸음을 옮겼다.

그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본 도근한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네, 선생님. 근한입니다.”

-언빌리버블! 우리 스윗 가이가 배틀 셰프에 지원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남성적인 음성과 발음에서 느껴지는 진한 버터의 향.

양식 요리의 대가이자 배틀 셰프 메인 심사위원 중 한 명인 레이먼 박이었다.

그는 도근한의 스승이기도 했다.

지금의 도근한을 레이먼 박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까 시험장에서 선생님 뵀을 때, 포옹이라도 하고 싶은 걸 참느라 힘들었어요.”

-나라고 안 그랬을까? 내 밑에서 배운 제자가 한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챌린지한다는 건 정말 가슴 벅찬 일이지.

“방송 관계자들은 심사위원에 대해선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놀랍고 반가웠어요.”

-얘기 듣기로 오늘부터는 언론에 오픈하고 홍보 영상에서도 우리 세 사람이 심사위원임을 밝힐 거라더구나.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이 얼마나 뜻깊은지 몰라. 하지만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는 거 알고 있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하하하. 그래. 부디 다음 테스트에서도 멋진 실력 보여주길 바라마.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굿 럭.

통화가 끝났다.

레이먼 박의 말마따나 그가 도근한에게 따로 혜택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근한은 레이먼 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가 어떤 요리를 좋아하는지, 요리사로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면 싫어하는지.

때문에 적어도 심사위원들 한 명의 입맛은 무조건 맞출 수 있었다.

그건 도근한에게 커다란 어드밴티지로 작용할 것이었다.

* * *

서울에서 춘천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맡긴 설탕이를 찾기 위해 이향숙의 집으로 향했다.

오후 6시로 달려가는 시간.

김숙자는 저녁을 준비하다가 강지한을 반갑게 맞았다.

“지한 총각~ 고생했어. 테스트는 어떻게, 잘된 거야?”

“네. 본선 진출 했어요.”

“세상에~ 우리 지한 총각 진짜 히트다, 히트. 밥 안 먹었지? 우리랑 같이 먹고 가. 저녁 금방 차리니까.”

“저 어머니가 차려준 밥만 먹으면 과식하는데, 미리 벨트 풀어야겠네요.”

“어쩜~ 말도 저리 잘할까. 혀에 꿀 발라놓은 줄 알았어, 나는. 호호호.”

그때였다.

이향숙이 닫혀 있던 방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왔다.

그런 이향숙의 뒤를 설탕이가 따라서 달렸다.

“오빠 왔구나!”

왕!

강지한이 폴짝 뛰어오른 설탕이를 품에 안고서 당황한 시선을 이향숙에게 던졌다.

설탕이를 데려가려고 올 때면 으레 침울해지는 녀석이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신나 있나 싶었다.

“오빠. 저녁 먹기 전에 나 좀 잠깐 도와줘.”

“뭘?”

“일루 와!”

이향숙이 강지한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그걸 본 김숙자가 소리를 빽 질렀다.

“지한 총각 피곤해, 이년아!”

그러거나 말거나 강지한과 방에 들어온 이향숙이 침대 위에 쌓여 있는 옷 한 무더기를 가지고 왔다.

“오빠. 이 옷들 내가 코디해 주는 대로 입어봐.”

“뭐하려고?”

“사진 찍게. 한 번만 내 홈페이지 모델 좀 해주라.”

“갑자기?”

“오늘 모델 해주기로 한 사람이 안 나왔어. 사고가 생겼대.”

“근데 난 전문모델도 아니잖아.”

“도그앤라이프 봤어. 오빠 완전 모델 뺨칠 정도로 잘나왔던데? 물론 우리 설탕이가 더 잘나왔지만, 히히.”

왕! 헥헥헥.

설탕이가 기분 좋은 듯 짖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입어본 옷들은 전부 줄게. 응? 응?”

이향숙이 어쩐 일로 애교 섞인 눈빛으로 보이며 칭얼댔다.

강지한은 그 모습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구~ 우리 향숙이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정말?”

“그럼. 안 들어줬다가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하려고.”

“헐. 누가 들으면 나 악마인 줄.”

강지한은 갈수록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이향숙의 행동이 너무나 좋았다.

정말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쑥스럽지만 흔쾌히 모델을 해주기로 했다.

저녁상이 차려지는 동안 강지한은 총 세 벌의 옷과 세 켤레의 서로 다른 신발을 신고 사진을 찍었다.

이향숙의 방은 이미 촬영에 적합한 스튜디오처럼 꾸며져 있었다.

벽 한 면을 하얀색 배경으로 만들어 조명과 반사판까지 구비해 놓은 상태였다.

촬영은 오래지 않아 끝났다.

모델이 워낙 좋으니 대충 찍어도 원하는 그림이 나왔다.

“끝!”

“벌써? 빨리 끝났네.”

그때 마침 김숙자가 밥 먹으러 나오라며 두 사람을 불렀다.

다시 원래 입고 왔던 옷으로 환복한 강지한이 나가려 하자 이향숙이 옷과 신발을 챙겨주었다.

“이거 가지고 나가. 이따 까먹고 갈라.”

“옷 안 줘도 돼. 괜찮아.”

“안 돼! 가져가야 돼!”

이향숙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쩜 사람이 저리 무신경한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옷 안 가져가면 사진 찍어준 의미가 없단 말이야.’

사실 모델이 개인 사정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모델은 부르지도 않았다.

이향숙은 강지한에게 새 옷을 챙겨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냥 주기가 민망해서 모델 핑계를 댔다.

강지한은 패션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중요한 자리에 갈 때면 일전에 이향숙이 줬던 옷만 입고 다녔다.

‘이제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올 텐데 어떻게 맨날 그 옷만 입어.’

그것이 신경 쓰여서 이향숙은 강지한에게 옷을 준 것이다.

한데 그런 속도 몰라주니 강지한이 야속할 지경이었다.

이향숙의 강경한 태도에 강지한이 얼른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갖고 가서 잘 입을게. 고마워, 향숙아.”

“서울 갈 때마다 다른 옷으로 입고 가. 알았지?”

“그럴게.”

강지한이 대답에 비로소 이향숙이 미소 지었다.

* * *

“그래서 내일부터 리모델링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저녁을 먹으며 김숙자가 꺼낸 말이었다.

그녀는 저번 주에 예경천과 열심히 발품을 팔아 김치전골 장사를 하기에 적당한 건물을 찾아냈다.

건물은 30평으로 석사동에 있었다.

지한 분식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며, 성업 중인 식당 자리였는데 임차인의 개인사정으로 급히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보증금은 2,500에 월세가 50이었다.

권리금은 시설비 포함 1000만 원으로 깔끔하게 조정했다.

현재 강지한의 수중에는 2000만 원 정도가 있었다.

부족한 1500만 원은 포인트를 환전해서 마련했다.

그렇게 건물 계약을 마치고서 내부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갈 참이었다.

한데 리모델링 비용은 김숙자가 전액 지불하겠다며 나섰다.

그것마저 내지 못하게 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같이 일 못한다는 엄포에 강지한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리모델링하는 데 일주일은 걸리겠죠?”

“그럴 거야.”

“그럼 그 다음 주에 저한테 교육받으시고, 다다음 주부터 바로 장사 시작하시죠. 어때요?”

“나야 좋지. 아, 그리고 같이 일할 사람은 내가 알아서 구해볼게. 내 인맥 제법 짱짱한 거 알지? 괜찮은 사람들 많으니까 냅다 집어 와서 식당에 꽂아버리려고. 호호호.”

“네. 그렇게 하세요.”

이로써 김치전골 전문점에 필요한 모든 것이 대부분 갖추어졌다.

강지한이 바라는 일들이 하나같이 수월하게 풀리고 있었다.

* * *

지한 분식에서 새 메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바로 김치 만두와 만둣국, 순대였다.

김치 만두는 김치전골을 만들며 개발한 레시피 그대로 만들어 내놓았다.

만둣국에도 이 김치 만두가 들어갔다.

집에서 만둣국을 직접 만들어 본 결과 레벨 4정도의 수준이 나왔었다.

만둣국에 들어가는 육수가 조금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

그에 강지한은 육수를 살짝 손봤고 만둣국의 레벨을 5로 만들어 내놓을 수 있었다.

순대는 강지한이 직접 만들 수가 없어 시제품을 떼어와 팔았다.

사실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손님들이 순대를 워낙 많이 찾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윤이 식품 이상철 사장의 도움으로 가장 맛 좋은 순대를 받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식사 메뉴가 많아진 만큼 반찬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은데.’

현재 지한 분식의 반찬은 가짓수도 적고 너무 조악했다.

기껏해야 김밥용 재료를 만들 때 볶은 햄과 직접 담근 김치, 깍두기, 단무지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김치만 있어도 손님들은 열광했지만 아무리 맛있는 것도 매일 먹으면 무감각해지고 질리는 법.

해서 강지한은 요새 열심히 반찬을 만들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었다.

반찬이라는 게 간단한 것 같아도 레시피의 미묘한 차이로 요리 레벨이 확 달라지고는 했다.

심지어 똑같은 레시피임에도 설탕을 먼저 넣느냐 나중에 넣느냐로 레벨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주일을 꼬박 연습해 본 결과 이제 반찬들은 대부분 3에서 4레벨 사이에 안착했다.

강지한은 4레벨이 된 반찬들은 손님상에 그날그날 돌려가며 내놓았고, 3레벨의 반찬들은 더욱 고민하고 연구했다.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새 토요일이 되었다.

이제 내일이면 강지한은 배틀 셰프의 무대를 위해 다시 서울로 상경해야 한다.

폭풍 같은 점심시간을 보내고 찾아온 브레이크 타임.

직원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이리나가 스마트폰을 강지한에게 들이밀었다.

“맞다, 오빠! 이것 좀 보세요!”

“응?”

갑자기 코앞에 다가온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 강지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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