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Restaurant 69. 무쌍 찍는 414번
타타타타타탁!
여기저기서 양파를 썰어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얏!”
그 와중에 긴장했는지 손을 베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그런 이들에겐 대기 중이던 의료진이 다가와 바로 지혈을 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손가락을 베인다거나 해서 탈락되는 일은 없었고, 3분은 무사히 흘러갔다.
“전부 칼을 놓으세요.”
한돈선의 지시에 사람들은 일제히 칼을 도마 옆에 내려놓았다.
그에 한돈선이 좌중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체육관 전면 양측면의 문이 열리면서 유명세가 조금 떨어지는 셰프 열 명이 우르르 걸어 나왔다.
“지금부터 우리는 여러분이 양파를 얼마나 아름답게 썰어냈는지 직접 확인할 겁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기본적인 관문을 통과하기를 바라겠습니다.”
말을 마친 한돈선을 위시한 이 인의 셰프가 움직이자 다른 열 명의 셰프들도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지원자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당락 여부를 결정했다.
“채 썬 양파의 간격이 일정치가 않습니다. 앞치마를 벗어주세요.”
“양파의 간격이 일정하나 누가 봐도 2㎜가 넘죠? 불복하시겠다면 자로 직접 재드리고요.”
“채 썬 모양이 엉망입니다.”
“모양도 좋고 간격도 일정하네요. 앞치마 잘 가지고 계세요.”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할 때마다 뒤에 따라 붙은 스탭들이 들고 있는 지원자들 목록에 당락여부를 체크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몇몇 합격자들에겐 붉은색 동그라미 스티커를 손등에 붙여주곤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참가자들은 아직 몰랐다.
그러다 도근한의 차례가 됐다.
도근한의 앞에 선 것은 양식 요리의 대가 레이먼 박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한 순간 레이먼 박은 일순 미소를 지을 뻔했으나 꾹 참았다.
도근한은 애써 시선을 옆으로 흘렸다.
레이먼 박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양파를 살폈다.
세 개의 양파가 일정한 간격으로 채 썰어져 있었다. 두께는 대략 1.5㎜ 정도.
스테이크집을 운영하며 양파는 지겹게 썰어봤을 테니 이 정도야 문제도 아니었다.
“좋군요. 합격입니다.”
레이먼 박은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도근한이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강지한에게도 심사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의 앞에 선 사람은 한식 대가 한돈선이었다.
그는 사실 단상 위에서부터 강지한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낭중지추라 했다.
뾰족한 송곳은 주머니 속에 숨기려 해도 반드시 뚫고 나오는 법.
강지한의 칼놀림은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정확히 눈에 들어올 만큼 대단했다.
한돈선은 강지한이 썰어낸 양파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칼 쓰는 손놀림이 예사가 아니더라니 완벽에 가깝게 채를 썰어냈네요. 칼 한 번 잡아보시겠어요?”
강지한은 시키는 대로 칼을 쥐었다.
그 손 모양을 본 한돈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봐요. 칼등을 검지 두 번째 마디까지 오게 해서 엄지랑 함께 잡죠? 이렇게 해서 야채를 썰어야 안정감이 있어요. 제대로 쥐는 법을 안다는 얘기죠. 요즘 요리사들 보면 기본적으로 칼을 어떻게 쥐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그냥 편한 대로 잡고 썰죠. 맛있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이에요. 물론 맛이 가장 중요하지만 기본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한돈선의 극찬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노영철과 춘천 지역 1회차 촬영을 진행했던 서브 피디 우제호가 씩 웃었다.
노영철이야 처음부터 강지한의 진가를 알고 있었다.
우제호는 춘천 예선전을 촬영하며 강지한으로 인해 드라마가 펼쳐지는 걸 겪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돈선까지 강지한에게 관심을 보이니 두 피디는 신이 났다.
강지한은 배틀 셰프의 확실한 이슈 메이커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다음 라운드에서 보도록 해요.”
한돈선이 강지한을 지나쳤다.
그에게는 붉은색 스티커가 붙지 않았다.
“후우.”
강지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테스트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으나 카메라 울렁증이 힘들었다.
심사가 전부 끝났다.
열세 명의 심사위원이 지나가고 나니 지원자의 수가 절반 이상 줄어 있었다.
강지한은 지금 벌어진 이 상황을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양파를 채 써는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빠졌다고?’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심사위원 열세 명은 단상 위로 올라섰다.
이번에도 한돈선이 대표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살아남은 지원자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심사위원들에게 붉은 스티커를 받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손들어 보세요.”
강지한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손을 들고 있었다.
‘스티커를 받아야 합격하는 건가?’
설마 저토록 많은 이들이 탈락할 리 있겠나 싶었다.
강지한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손을 든 분들은 앞치마를 벗고 떠나주세요.”
그러자 스티커를 받은 지원자들이 웅성거렸다.
개중에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눈치채고 절규하는 이들도 몇 보였다.
하나 대부분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한돈선의 설명이 이어졌다.
“스티커를 받으신 분들은 질이 떨어지는 양파를 사용하셨습니다. 한 번 본인이 썬 양파를 확인해 보세요. 눈으로 이상한 걸 모르겠으면 냄새를 맡고 맛을 봐보세요.”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아, 이런 게 어디 있어.”
한편 도근한은 덜컹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설마설마했는데.’
그는 처음 별생각 없이 양파 세 알을 집어왔다가 너무 단단하지 않아 다른 것으로 바꿔서 채 썰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탈락자들 사이에 도근한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건 요리사의 기본입니다. 제가 말했죠. 이 시험은 기본을 보기 위함이라고요. 여러분은 누가 지적해 줘야만 좋은 재료를 찾아 사용할 건가요?”
탈락자들은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반박할 말이 없어서 힘없이 체육관을 나섰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은 총 57명이 됐다.
‘살벌하네.’
강지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단지 양파를 썰었을 뿐인데 300명이나 됐던 인원이 반의 반도 안 되는 수로 줄어들었다.
“자, 그럼 여기 남아 계시는 분들께서는 요리사의 기본 자격을 갖추었다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하나를 더 보고 싶네요.”
한돈선이 말을 하며 뒤로 빠지자 일식 요리 대가 최현식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셰프들 중에서는 나름 외모로 인정받는 이였다.
뿐만 아니라 큰 키와 운동으로 균형 잡힌 몸매 역시 그의 미모를 더 빛나게 해주는데 한몫을 했다.
최현식은 단상 한편에 놓인 테이블로 다가갔다.
거기엔 도마와 칼, 비늘 칼, 그리고 광어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최현식이 비늘 칼을 들자 단상 위 대형 모니터에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각자 광어 한 마리씩을 해체하게 될 겁니다. 그 전에 제가 직접 시범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짧게 말을 마친 최현식이 광어의 머리를 V 자 모양으로 절단했다.
퍼덕거리며 머리가 잘려 나간 광어가 절단면에서 피를 뿜어냈다.
그것을 씻어낸 후, 물기를 닦아내고 꼬리 쪽부터 칼을 넣어 뼈를 중심으로 살을 포 떴다.
그러자 두 덩이의 넓적한 살이 나왔다.
그걸 다시 반씩 갈라 총 네 덩이의 살로 만든 뒤, 번개같이 껍질을 벗겨냈다.
최현식이 벗겨낸 껍질을 들어 보였다.
거기엔 살 한 점 붙어 있지 않았다.
실로 귀신같은 칼놀림이었다.
순식간에 광어 한 마리를 해체시킨 최현식의 솜씨에 지원자들이 경외의 시선을 던졌다.
강지한 역시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최현식보다 더욱 정교하고 빠른 칼놀림을 선보이는 사람을 알고 있었기에.
최현식이 시연하는 동안 57명의 지원자들에게 광어와 회칼이 주어졌다.
“그럼 지금부터 5분 드리겠습니다. 시작하세요.”
시작 사인과 함께 지원자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들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긴장감을 안고 조심스레 칼을 놀렸다.
그 속에서 강지한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자신을 찍는 카메라에 서서히 적응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강지한이 회칼을 들고 광어의 머리를 절단했다.
이윽고 최현식이 선보인 것과 같은 수순으로 광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 정확하면서 바람처럼 빨랐다.
참가자들을 두루 둘러보던 심사위원들 중 최현식의 시선이 강지한에게 향한 순간 그대로 고정되어 버렸다.
강지한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미 광어 해체를 끝낸 것.
‘설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만약 정말 광어 해체를 제대로 끝냈다면 최현식보다 더 빠른 시간에 해낸 것이기에.
“414번 지원자.”
최현식이 강지한을 불렀다.
“네.”
“해체 끝났습니까?”
“끝났습니다.”
“단순히 광어의 살덩이를 마구잡이로 발라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해체라는 건 최대한 많은 살을 손실 없이, 그리고 찢어지거나 어그러지지 않은 예쁜 모양으로 발라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8분 후에 보도록 하죠.”
최현식이 2분 30초에 걸려 해낸 걸, 강지한은 2분 만에 해냈다.
물론 지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속도를 조금 늦춘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2분은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한편 광어를 해체 중인 도근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탈락하려고 작정했군.’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광어에 고정되어 있었기에 414번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경쟁자가 한 명 줄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끝!’
3분.
도근한이 강지한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칼을 놓았다.
그가 414번이 누군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사람들 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모두 칼을 놓으세요.”
주어진 5분이 끝났다.
57명의 지원자들은 무사히 광어를 해체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천차만별이었다.
“모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 중 열일곱 분은 여기서 여정을 끝내게 될 것이고, 나머지 마흔 분만 다음 주부터 시작될 본선 무대에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확인해 보도록 할 텐데요. 개인적으로 결과물을 가장 궁금하게 만드는 지원자가 한 분 계셨습니다. 414번.”
“네.”
강지한이 대답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최현식과 한돈선, 레이먼 박이 강지한에게 다가갔다.
“2분 만에 해체를 끝냈죠?”
최현식은 위압적으로 물었고 강지한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결과물이 어떤지 한 번 보도록 하죠.”
최현식의 눈이 발라낸 광어살 네 덩이를 날카롭게 훑었다.
‘분명히 살이 어그러져 있거나 껍질을 깨끗이 발라내지 못했겠…… 음?’
광어살을 자세히 살피던 최현식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2분 만에 해체를 끝난 살덩이들은 전부 손상 하나 없이 예쁘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이런…….’
어지간한 고수가 아닌 이상 2분 만에 이 정도 수준으로 살을 발라내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근데 그걸 이름도 모르는 한 지원자가 해냈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이 놀라운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관찰의 눈 덕분이었다.
그간 강지한도 나름대로 배틀 셰프를 대비해 여러 가지 연습을 해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기와 생선의 손질법이었다.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셰프들이 육류와 생선을 손질하는 걸 관찰의 눈으로 기억한 뒤 몇 번이고 연습을 해왔다.
그 결과 그들의 손놀림을 100퍼센트 흡수하게 됐다.
광어 해체 정도는 강지한에게 가벼운 놀이 같은 것이었다.
“완벽하게 해체했군요.”
최현식의 옆에 서 있던 한돈선의 말이었다.
“그레이트. 놀라워요. 언빌리버블하네요. 이 정도면 칼을 다루는 실력은 참가자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레이먼 박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렇겠지요.”
결국 최현식도 강지한을 인정했다.
“414번 지원자. 축하드립니다. 예선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해서 통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지한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맺혔다.
일순 이를 카메라로 담고 있던 촬영 감독의 가슴이 덜컹했다.
레벨 업 시스템의 버프를 받은 강지한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미소 하나는 아이돌 저리 가라네.’
방송이 나가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이 그에게 확 몰리게 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강지한을 잡고 있는 메인 카메라의 영상이 전면의 대형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러자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짝짝짝짝짝-!
하지만 도근한은 그럴 수가 없었다.
‘강지한…… 너도 나왔어?’
생각지도 못했던 강지한이 그와 함께 배틀 셰프 무대에 서 있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2분 만에 광어를 완벽히 해체했다는 사실이었다.
‘말도 안 돼.’
도근한의 가슴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며 얼굴에 열이 올랐다.
414번 지원자 강지한은 57명의 도전자들 사이에서 무쌍을 찍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