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69화 (69/330)

# 69

Restaurant 68. 새로운 동업자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어제, 강지한은 김치의 레벨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때문에 김치가 재료로 들어가는 요리들의 맛 또한 레벨 업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드는 강지한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시험해 보려면 김치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도 지한 분식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중에는 구자승도 있었다.

“크으……. 이것 참 진국이군.”

구자승은 일전에 등산모임에서 김밥을 먹은 이후 매주 한 번 이상은 꾸준히 지한 분식을 찾았다.

그는 이미 지한 분식의 단골이었다.

“근데 그새 수저가 바뀌었네? 이 끝내주는 음식들과 잘 어울리는구만.”

열심히 된장찌개를 떠먹던 구자승이 고급스럽게 변한 수저를 보며 감탄했다.

지한 분식의 수저는 얼마 전, 강지한이 단골 포인트로 구매하며 고급 수저로 바뀌었다.

그것을 다시 레벨 3까지 업그레이드했다.

해서 지금은 고풍스러운 수저로 바뀐 상태였다.

고풍스러운 수저는 겉보기에는 일반 수저와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적어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예술에 제법 조예가 있는 사람들의 눈엔 고풍스러운 수저의 진가가 드러났다.

특히 춘천에서 이름 있는 조각가 구자승의 눈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수저뿐만이 아니었다.

벽에 걸린 그림 또한 그 깊이를 하루 온 종일 헤아려도 다 알 수 없을 만큼 명작이었다.

천장에 그려놓은 청명한 하늘은 또 어떠한가?

얼핏 보면 조악한 것 같으나 조금만 집중해서 감상하면 선 하나하나가 살아 춤추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런 인테리어로 비추어 볼 때 가히 이곳의 주인장이 얼마나 예술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식사를 거의 다 끝낸 구자승의 시선이 주방에서 쉬지 않고 요리 중인 강지한에게 향했다.

그는 안목만 예술적인 것이 아니라 외모까지 예술이었다.

구자승은 갈수록 강지한이 마음에 들었다.

‘같이 술 한 잔 걸치면 좋은 말벗이 될 수 있을 텐데.’

늘 바빠 보이니 도통 말을 걸 시간이 없었다.

친분을 쌓고 싶어도 마음만 앞설 뿐이었다.

‘다음번엔 아주 늦은 시간에 와야겠어.’

차라리 마감 즈음 와서 식사를 하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었다.

구자승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이 집 음식들은 참 하나같이 어마어마하군.’

그는 지한 분식의 모든 음식들을 한 번씩 전부 섭렵했다.

놀랍게도 모든 메뉴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엄청난 맛을 자랑했다.

‘명옥정과 비교하면 어떨까?’

천명옥이 운영하는 명옥정은 춘천 최고의 맛집으로 유명인사들까지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춘천에만 총 세 개의 분점을 내놓은 명옥정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연일 사람으로 붐볐다.

구자승은 명옥정의 음식과 강지한의 음식을 가만히 비교했다.

‘어렵군.’

명옥정은 전통 한정식을 코스로 내놓는 한식당이다.

지한 분식은 분식과 가벼운 식사들이 주 메뉴였다.

잠시 고민하던 구자승은 비교 대상을 명옥정에서 천명옥이 직접 만들어 내는 음식으로 바꿨다.

그러자 답은 금방 나왔다.

‘천 선생 솜씨가 더 낫지.’

명옥정은 천명옥 본인이 없어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레시피를 간결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맛이나 음식의 완성도 역시 천명옥이 직접 손을 댔을 때보다 조금 부족해지는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춘천에서는 퀄리티 있는 음식을 내놓는 곳이 명옥정이었다.

한데 구자승은 천명옥이 진심을 다해 직접 만들어 내오는 음식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먹는 것들도 좋지만 천명옥의 솜씨에 따라가기엔 조금 모자랐다.

‘그래도 연륜이라는 것을 무시 못 하는 법인데……. 아직 창창한 나이에 이 정도 수준에 올랐다면 천 선생 정도의 연배가 되었을 땐 어떠할까.’

강지한의 앞날이 기대되는 구자승이었다.

* * *

강지한은 요즘 설탕이를 애견 카페 대신 이향숙에게 맡기고 있었다.

도그앤라이프 4월호에 설탕이의 모습이 실리면서 녀석을 찾는 손님들이 계속 넘쳐 났다.

때문에 사람들의 과도한 손길로 설탕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얼마 동안 이향숙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조금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예소린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설탕이를 데리러 온 강지한을 김숙자가 반겼다.

“지한 총각~ 설탕이 데리러 왔어?”

“네, 그리고 이것 받으세요.”

강지한이 양손 가득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김치 떨어질 때 되셨죠?”

“어머나. 우리 집 김치 떨어진 건 어떻게 알았대? 고마워~ 잘 먹을게. 요즘 이 김치 덕분에 반찬 걱정 없어서 좋다니까. 귀찮을 때는 김치찌개 보글보글 끓여서 먹으면 밥 한 공기 뚝딱이고, 김치 볶음밥 해 먹어도 맛있고. 물리지가 않아, 글쎄.”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 근데 향숙이는요?”

“아까 방에 잠깐 들어가 보니까 설탕이 안고서 같이 잠들었던데. 어제 홈페이지 관리하고 배송할 물건을 포장한다고 밤 샜거든.”

“장사가 좀 되나 봐요?”

“말도 마. 본인도 그렇게 잘될 줄 모르고 시작한 건데 생각보다 괜찮나 봐. 전달에는 돈 깨나 만지더라고. 평생 백수로 살다 갈 줄 알았는데 저런 식으로도 돈을 버네 그래. 호호.”

“와아~ 언제 축하 파티라도 해야겠어요.”

“우리야 언제든 좋지. 지한 총각이 바빠서 문제지.”

그때였다.

살짝 열린 이향숙의 방문 틈새로 검고 촉촉한 코가 쑥 튀어나왔다.

앙증맞은 코가 킁킁대더니 짤따란 앞발이 틈새를 비집고 나와 문을 젖혔다.

이윽고 넓어진 틈새에서 설탕이가 토다다다 달려 나왔다.

왕!

언제나 그렇듯 놀라운 점프력을 자랑하며 강지한의 품에 안기는 설탕이.

그 와중에 팽팽 돌아가는 꼬리를 보니, 다리로 점프를 한 건지 꼬리를 휘저어 날아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설탕아~ 잘 놀았니? 집에 가자.”

강지한이 그만 가보려고 김숙자에게 인사를 건네려 했다.

근데 그때 마침 김숙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한 총각 잠깐만. 응~ 용희 엄마. 응. 아냐 괜찮아. 되는지 안 되는지만 얘기해 주고 끊어. 응~ 응응, 그렇대? 안타깝네. 알았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

전화를 끊은 김숙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푸념했다.

“참 취직하기 어렵네.”

그에 강지한이 의아해서 물었다.

“어머니 취직자리 알아보고 계세요?”

“건물주가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다니까 이상하지? 호호.”

“그게…… 네.”

그냥 세만 받으면서 편하게 살아도 될 터인데 왜 굳이 취직자리를 알아보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냥 점점 인생이 무료해지더라고. 놀고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무슨 일이라도 좀 하고 싶은데 내가 혼자서 뭘 하자니 그럴 깜냥은 안 되잖아. 일이라고는 우리 남편 만나기 전에 식당 주방에서 몇 년 보냈던 게 전분데. 그래서 소일거리라도 구해보는 중이었어. 다른 사람 밑에 들어가서 하라는 일만 하고 다달이 월급 따박따박 받는 게 속 편할 것 같아서.”

그 말을 듣는 강지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머니. 그럼 저랑 같이 일해 보실래요?”

“지한 총각이랑? 무슨 일?”

“실은 제가 김치전골 전문점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김치전골 전문점?”

“네.”

“지한 총각 지금 분식집 하고 있잖아. 장사가 잘되는 분식집 분점을 내지 않고 왜?”

“분점을 맡기려면 그만큼 제 손맛을 흉내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요.”

“하긴……. 그럼 김치전골은?”

“그건 제가 만들어 주는 육수랑 양념장, 김치를 정량만 넣고 끓이면 되니까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아하, 그렇겠네. 나도 지한 총각이 건네줬던 김치랑 육수로 김치찌개 끓였더니 비슷한 맛이 났었잖아.”

“그렇죠. 어때요? 저랑 한 번 해보시겠어요?”

김숙자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볼래. 해보고 싶어, 지한 총각.”

“좋아요, 어머니. 우리 같이해 봐요.”

* * *

강지한이 집으로 돌아오니 열두 시가 넘어 있었다.

주방에 서서 김치전골을 만들던 강지한이 김숙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되새겨봤다.

우선 적당한 건물은 김숙자가 알아보기로 했다.

강지한은 바빠서 그럴 틈이 없었다.

게다가 김숙자는 예경천과 친하니 목 좋은 건물 잡는 것이야 쉬울 터였다.

건물은 일단 월세로 들어가기로 했다.

보증금은 강지한이 부담하고 월세는 반반씩 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

월급은 기본급 200만 원에 순매출액의 15% 지급.

김치 장사를 하는 조미옥 모자와 똑같은 조건이었다.

물론 혼자서는 장사하기는 힘들다.

알바나 직원들 들이면 그들에 대한 비용도 강지한이 지급하는 것으로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김치전골이 완성됐다.

[강지한의 대단한 김치전골]

요리등급: LV5

-김치와 육수가 훌륭하다. 들어가는 신선한 재료들 또한 맛의 균형을 잘 잡아준다. 그중 일품은 단연 김치만두다.

‘이 정도면 됐어.’

앞으로도 레벨을 올리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겠지만 우선은 레벨 5만 해도 충분히 잘 팔릴 것이란 계산이 섰다.

이로써 김치전골 전문점의 오픈이 한발 더 가까워졌다.

* * *

배틀 셰프의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됐다.

지역 예선을 거쳐 서울로 올라온 지원자들의 수는 총 300여 명.

그들은 오늘 거대한 체육관에 모여 또 한 번 종합 예선전을 치르게 된다.

체육관 내부에는 일자로 길게 이어진 테이블이 스무 줄이나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삼백 개의 도마와 칼이 놓여 있었다.

각 테이블의 사이사이에는 양파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배치해 놓았다.

배틀 셰프 지원자들은 각기 하나의 도마 앞에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을 체육관의 단상 위에 올라선 세 명의 셰프가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양식 요리의 대가 레이먼 박.

일식 요리의 대가 최현식.

한식 요리의 대가 한돈선.

그들이 배틀 셰프의 메인 심사위원이었다.

셋 다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는 이들로 스타 셰프라는 칭호가 부족하지 않았다.

지원자들은 전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큐.”

배틀 세프를 기획한 메인 피디 노영철의 사인에 카메라가 돌았다.

그러자 마이크를 쥔 한돈선의 인사로 배틀 셰프의 무대가 시작됐다.

“배틀 셰프에 지원해 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한돈선입니다.”

대단히 여성스러운 어조와 톤으로 말을 한 한돈선이 말미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두 셰프도 자기소개를 마치자 지원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왔다.

한돈선은 박수갈채가 끝나자 대본으로 미리 받아본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저는 스스로의 의지로 이 무대에 걸음하신 여러분의 용기를 높이 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리사로서의 기본 자질도 되지 않는 분들에게 칼을 쥘 기회를 줄 생각은 없습니다. 몇몇 분들께서는 요리를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이곳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 우스꽝스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까지 환호를 보냈던 사람들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지원자들 틈에는 강지한도 섞여 있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서 정면만 주시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자질을 테스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근처에 바구니 가득 담긴 양파가 보일 겁니다. 어느 바구니에 있는 양파를 사용해도 상관없습니다. 양파를 세 개씩 골라 일정한 간격으로 채 써는 것이 여러분께서 해야 할 일입니다. 채 썬 양파의 두께는 2㎜가 넘지 않아야 합니다. 제한 시간은 3분. 시작하세요.”

한돈선이 입에서 마이크를 뗐다.

3분.

양파 세 알을 채썰기에 그리 촉박한 시간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이 일제히 바구니에서 양파를 가져가 껍질을 벗기고 채 썰기 시작했다.

한데 강지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 잡힌 양파들의 정보 때문이었다.

[보통 양파]

품종 등급: B

신선도: 3/5

-신선함이 많이 빠진 상태. 양파의 가장 안쪽이 살짝 물렀다.

[보통 양파]

품종 등급: B

신선도: 3/5

-신선함이 많이 빠진 상태. 양파의 가장 안쪽이 살짝 물렀다.

[보통 양파]

품종 등급: B

신선도: 5/5

-품종 등급은 높지 않지만 매우 신선하다.

강지한은 신선도가 가장 좋은 것들로만 세 알을 집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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