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66화 (66/330)

# 66

Restaurant 65. 오디션

왕년의 아이돌스타 윤선아는 그룹 해체 이후 인기가 급격히 하락했었으나 요즘엔 예능 프로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다시 인지도를 쌓아나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매니저 선동수는 요즘 많이 바빠졌다.

윤선아의 스케줄이 늘어난 것도 이유였지만, 그녀의 특별한 부탁 역시 그의 바쁜 일상에 한 몫을 했다.

선동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춘천을 다녀와야 했다.

바로 지한 분식의 음식을 공수하기 위해서였다.

교통이 좋은 평일, 빠르게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면 왕복 세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음식이 상할 걱정은 없었다.

사실 선동수도 지한 분식의 음식 맛에 완전히 반해 버린 터라 춘천행이 고되지 않았다.

초반에는 김밥만 포장해 가곤 했다.

지금은 한 번 들렀을 때 포장이 가능한 음식들은 모조리 챙겨갔다.

지한 분식의 음식은 김밥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맛있다는 걸 알아버린 탓이었다.

분식집 막내아들의 오디션 참가자 대기실.

윤선아는 그 곳에서 다른 무명 배우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배우들 속에는 좌경우도 있었다.

“탑 배우들은 개인 대기실에서 극진한 대우받고 있겠지?”

누군가의 푸념에 윤선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디션 보는 날 자체가 다른 것 같던데요? 오늘 오디션 보는 건 우리가 다예요.”

“그래요? 아예 날짜를 달리해 버리는구나. 좀 속상하네.”

“그러니까 이 악물고 열심히 해서 확 떠야죠.”

“근데 확실히 송 감독님이 대단하긴 대단해. 매번 작품 들어갈 때마다 배우들을 오디션 캐스팅 하다니.”

보통 송만대 정도 되는 감독이 드라마 메가폰을 잡으면 거대 기획사에서 자신의 배우를 꽂아주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감독의 입장에서는 뿌리치기 힘든 사안이다.

인기스타를 다량 보유한 거대 기획사에게 잘못 보이면 다음부터는 그 감독의 작품에 자신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걸 막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만대 감독은 대쪽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철학대로 밀어붙였다.

그는 인기스타가 단 한 명도 없는 드라마를 제작해 40%가 넘는 시청률까지 이끌어 낸 전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5년 전부터는 이 바닥의 정치질이 짜증나서 지금처럼 탑스타와 무명 배우를 가리지 않고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두 그룹의 오디션 날짜가 다른 건 송만대의 의견이 아니라 유명 탑스타들을 가진 소속사들의 단합으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어쨌든 우리 모두 잘해 봐요.”

윤선아가 파이팅을 외쳤다.

그때 그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이이잉-

선동수에게 메시지가 왔다.

-선아 씨, 여유 있으면 배 채우고 가. 김치볶음밥이랑 김밥 사왔어.

윤선아가 시간을 확인했다.

오디션 시작까지 2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한 윤선아가 후다닥 대기실을 나섰다.

* * *

“이거야! 아빠가 늘 만들어줬던 그 떡볶이 맛…… 그 맛이라고!”

좌경우가 환희에 가득 찬 얼굴로 절절한 감성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지켜보는 송만대 피디와 나일영 작가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좌 배우.”

송만대가 좌경우를 불렀다.

그의 차가운 음성은 피어오르는 불씨에 물을 들이붓는 것만 같았다.

연기에 빠져 있던 좌경우의 정신이 급격히 현실로 돌아왔다.

“네, 감독님.”

“좌 배우가 왜 안 되는지 알아?”

“제가 여러모로 부족해서…….”

“아니, 좌 배우 여러모로 썩 괜찮아. 마스크 괜찮고 허우대 특히 좋아. 연기도 욕먹을 정도는 아니지. 그런데 결정적으로 작품을 못 잡아.”

좌경우도 익히 느끼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그 말을 차마 자신의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건방진 인상을 풍기는 건 캐스팅 오디션에서 악수를 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 악수가 개성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주인공 배역에 딱 들어맞아 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좌경우는 그런 모험을 하기 싫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좋은 작품을 잡아야겠죠. 그리고 송 감독님과 나 작가님의 분식집 막내아들이 그런 작품이고요.”

“잘 알고 있잖아, 좌 배우. 근데 왜 준비를 이렇게 안 해왔어?”

“아닙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1화 대본을 통째로 외울 정도입니다.”

“경우 씨, 여기 머리 좋은 거 자랑하러 왔어요?”

가만히 있던 나일영이 못마땅한 듯한 마디를 쏘아붙였다.

“아니요. 제 말은…… 죄송합니다.”

좌경우의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그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운 송만대였다.

“휴우, 좌 배우. 봐봐. 이 드라마의 핵심이 뭐야. 요리하고 먹는 거잖아. 분노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뭐 그런 감정 표현이야 누구라도 할 수 있지. 그러니까 핵심은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음식의 맛을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거라고.”

“……네.”

“근데 좌 배우는 그런 게 전혀 없어. 무슨 음식을 얼마나 어떻게 맛있는 건지 전달이 안 돼. 입으로는 맛있다고 하는데 그냥 거짓말하는 것 같다는 거야.”

너무나도 정확한 지적이었다.

관록의 노장은 좌경우를 완벽히 꿰뚫었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주연을 따내겠다는 거야? 주연은커녕 조연도 힘들어. 좌 배우 벌써 이 바닥 생활 8년째라며? 이제 더 늦으면…… 휴.”

송만대가 말을 끊고 고개를 저었다.

이미 본인도 알고 있는 사실일진대 계속 얘기하는 건 까진 살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나가봐요.”

나일영 작가가 냉정하게 그를 내보냈다.

* * *

좌경우가 터덜거리며 건물에서 나왔다.

그는 주차장 쪽으로 가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는데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밴의 뒷문이 열리며 반가운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

“오빠~! 어떻게 됐어?”

윤선아였다.

그녀는 5년 전 취미로 하는 볼링 모임에서 좌경우를 만나 친해지게 됐다.

좌경우는 윤선아보다 한 살이 많았다.

두 사람의 성격은 자석의 극과 극처럼 완전히 딴판이었다.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윤선아와 달리 좌경우는 조용하고 말이 적었다.

밴에서 내린 윤선아가 폴짝거리며 다가왔다.

좌경우가 피우려면 담배를 다시 집어넣고 쓰게 웃었다.

“안 될 것 같아.”

“그럴 줄 알았어. 평소에 먹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떻게 연기로 나와.”

“너는 어땠어?”

“예쁘게 봐주시면 비중 있는 조연도 가능할 듯?”

“와. 넌 요새 승승장구하는구나. 다행이다.”

“흠.”

윤선아가 좌경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왜?”

“오빠.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잖아.”

“응.”

“근데 이렇게 포기할 거야?”

“나라고 포기하고 싶겠냐.”

좌경우가 송만대 감독의 작품에 도전한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앞서의 두 번은 모두 보기 좋게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이번 역시 별다를 게 없을 것 같았다.

“오디션 한 번 더 남았잖아. 나흘 뒤에.”

“그건 탑스타들 전용 오디션인데 내가 발이나 담글 수 있겠니.”

“그래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오늘 해봤더니 알겠더라. 그리고…… 다음에 내가 도전한다고 해도 무슨 무기가 있어야지.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야 굴뚝같은데 매달릴 바짓가랑이가 있어야 말이지.”

“있어.”

“……그게 뭔데?”

윤선아가 차에서 내릴 때부터 손에 들고 있던 김밥 한 알을 내밀었다.

‘아깝다.’

단지 한 알일 뿐인데도 그게 그렇게 아까웠다.

좌경우는 김밥을 건네주며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의아해했다.

“너 왜 그래?”

“아까워서.”

“이 김밥이?”

“먹어봐.”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윤선아의 행동에 좌경우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김밥을 입에 넣었다.

김밥이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건 ‘식어서 차갑다’였다.

그리고 김밥을 이빨로 씹어 속안의 내용물들이 풀어헤쳐지며 혀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건 ‘맛있다’였다.

‘음? 김밥치고는 꽤…….’

그때였다.

턱의 운동에 따라 속재료와 밥, 김이 자연스레 섞이면서 그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맛의 향연이 벌어졌다.

‘……!’

이미 식어버린 김밥이었건만 안에 들어간 재료들은 시들거리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서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했다.

밥알은 한 알 한 알이 낱낱이 살아 탱글거리며 입안을 돌아다니면서도 다른 재료들과 따로 놀지 않고 잘 어우러졌다.

‘밥을…… 어떻게 한 거야?’

밥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가되었다.

밥알 속에 가득 담고 있던 단맛과 짠맛이 은은히 흘러나오며 계속해서 모든 재료들의 풍미를 증폭시켰다.

‘삼키기 싫다.’

좌경우가 저도 모르게 그리 생각했다.

계속해서 이 맛을 더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식도는 성급히 혀를 잡아 당겼다.

꿀꺽.

“…….”

김밥을 삼킨 좌경우에게 윤선아가 물었다.

“어때?”

“……맛있어. 정말 맛있어.”

“대박이지?”

“응.”

좌경우는 이런 김밥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몰랐다.

식도락에 관심이 없으니 평소에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않던 그였다.

그는 비로소 먹는 걸 하나의 낙으로 삼는 이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여태 이런 것만 찾아 먹고 다닌 거니, 선아야?”

윤선아는 동료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미식가였다.

요리에는 재주가 없지만 먹는 걸 좋아해서 전국 팔도의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다.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맛집 찾아가서 늘 성공하겠어. 근데 착각하면 안 돼, 오빠. 지금 먹어본 그 김밥은 맛집의 평균치가 아니라 그보다 더 높아.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김밥 중 두 손가락 안에 들어. 놀라운 건 그 김밥 파는 식당은 다른 음식들도 전부 맛있다는 사실!”

“이거 어디서 샀어?”

윤선아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춘천.”

* * *

사흘 전부터 손님 한 명이 꾸준히 지한 분식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는 점심, 저녁을 모두 지한 분식에서 해결했다.

하루에 세 번을 방문할 때도 있었다.

한 번 올 때마다 꼭 2~3인분씩을 시켜서 혼자 다 먹고 갔다.

이제는 모든 직원들도 그의 얼굴을 외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한 분식이 오픈하자마자 그가 들어왔다.

훤칠한 키의 미남인 그는 좌경우였다.

무명 배우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펙 자체가 훌륭하니 식당의 다른 여성 손님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하곤 했다.

하지만 좌경우는 그런 것도 인지 못하고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했다.

지금 그가 느끼는 이 맛.

혀에서 전해지는 이 황홀함.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전해지는 모든 것들을 기억해야 했다.

좌경우는 그동안 지한 분식의 메뉴를 전부 먹어봤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떡볶이와 꼬마 김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꼬마 김밥과 떡볶이는 따로 먹어도 맛있었지만, 김밥을 양념에 찍어서 먹으면 눈이 사르르 감길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이거야, 이거.’

지한 분식의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의 마음속에서는 확신이 자라났다.

오디션에서 송만대 감독이 원하는 느낌을 분명히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잘 먹었습니다.”

좌경우는 오늘도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강지한의 시선이 문을 열고나서는 그의 등에 잠시 꽂혔다.

‘못 보던 얼굴인데 춘천으로 이사 오셨나.’

하지만 다음 날, 좌경우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 * *

장내의 분위기가 냉랭했다.

송만대 감독과 나일영 작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미 오디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좌경우가 막무가내로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좌 배우, 이렇게까지 해놓고서 아무런 성과가 없으면 이 바닥에 자네 소문 어찌 돌지는 알고 있을 거야.”

“어차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이번 오디션에 제 배우 인생 걸었습니다.”

“……해봐.”

송만대는 별 기대 없이 말을 했다.

좌경우는 극 속의 주인공 ‘강만두’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의자에 앉아 준비해 온 포크를 꺼냈다.

그리고 지한 분식의 떡볶이를 떠올렸다.

붉은 양념 옷을 입은 매콤달콤한 밀떡들과 사이사이 보이는 고소한 어묵, 완전히 물러버린 파.

이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맛이 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좌경우가 포크로 허공을 찌른 다음 가상의 떡볶이를 자신의 입으로 넣고 씹었다.

‘떠올리자, 그때 그 맛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식도락의 즐거움을 그가 상기했다.

‘그래……. 그래, 온다.’

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 없는 그 맛이 뇌리를 건드렸다.

‘맛있다. 정말 맛있어.’

좌경우의 얼굴에 행복함이 퍼져 나갔다.

그다 이번엔 어묵을 찍어 먹었다.

풍미 가득한 소스와 어묵이 둘도 없이 잘 어울렸다.

특히 얇은 어묵의 식감이 너무나도 좋았다.

‘꿀꺽!’

정말 어묵을 씹은 것도 아닌데 꿀꺽 소리가 나며 무언가가 넘어갔다.

그런 좌경우의 연기를 보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존재하지 않는 음식을 거짓으로 먹는 것뿐인데, 뭔지 모르겠지만 나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떡볶이의 양념만을 찍어 맛본 좌경우가 대사를 쳤다.

“이거야! 아빠가 늘 만들어줬던 그 떡볶이 맛…… 그 맛이라고.”

말미에 좌경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그분의 자랑이던 떡볶이를 재현해낸 것에 대한 희열이 보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탕!

송만대가 테이블을 때리며 벌떡 일어났다.

“오케이, 컷!”

그의 입에서 오케이 소리가 나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좌경우가 두 명의 심사위원을 바라봤다.

송만대는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고 그 시크한 나일영 작가가 미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독…… 님.”

송만대가 어리둥절해하는 좌경우에게 말했다.

“강만두가 바로 여기 있었네.”

“……!”

송만대의 그 한마디에 좌경우는 전신이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동시에 강지한을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강지한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순간 그를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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