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65화 (65/330)

# 65

Restaurant 64. 꼬마 김밥

지한 분식의 거래처가 윤이 식품으로 바뀌는 목요일.

새로운 홀 식구도 한 명 늘어났다.

이름은 이주희.

올해 스물두 살 전업 작가 지망생으로 상당히 귀여운 외모에 짧은 갈색 단발과 안경이 잘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고3 시절 이미 로맨스 소설 한 편을 출간한 경력이 있었다.

그러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이후로도 줄곧 집필 활동을 해왔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해서 연이은 출간은 무리였다.

현재는 의정부에 있던 2년제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서 춘천 본가로 돌아와 계속 습작만 집필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법.

이주희는 알바를 구하려고 구인광고를 살펴보다가 지한 분식에 지원하게 됐다.

다행스럽게 다른 지원자들을 제치고 그녀는 채용이 됐다.

강지한이 보기에 조금 소심한 면은 있어도 맡은 일에 대해서는 여타 지원자들보다 책임감 있게 임할 것 같아서였다.

아울러 직장이 온통 남탕이다 보니 여종업원이 한 명 더 있으면 이리나의 말동무도 되고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리나 역시 가끔 여동생 같은 알바가 들어오면 참 좋겠다고 한마디씩 하곤 했다.

물론 그런 건 사족일 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됨됨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가장 먼저 식당에 나온 강지한이 주방을 돌보고 있을 때 윤이 식품 사장 이상철이 들어왔다.

그가 양손 가득한 식자재를 주방에 놓고 빠진 것이 없나 확인 과정을 거쳤다.

그 동안 강지한은 식자재의 등급을 살폈다.

[보통 양파]

품종 등급: B

신선도: 5/5

-품종 등급은 높지 않지만 매우 신선하다.

[보통 당근]

품종 등급: B

신선도: 5/5

-품종 등급은 높지 않지만 매우 신선하다.

[보통 팽이버섯]

품종 등급: B

신선도: 5/5

-품종 등급은 높지 않지만 매우 신선하다.

식자재의 신선도가 하나같이 5점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강지한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빠진 것 없죠?”

“네. 좋은 것들로 가져다 주셔서 감사해요.”

“하하. 좋은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셔야죠. 최대한 하자 없는 놈들로 보내드리려고 노력하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가끔 그런 놈들이 섞여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땐 바로바로 연락주세요. 다음 날 좋은 걸로다가 바꿔 드릴게요.”

말하는 것 자체가 윤석찬과는 달랐다.

윤석찬은 무조건 좋은 물건으로 가져왔으니 걱정 말라 안심시키기 바빴다.

하지만 이상철은 하자가 있을지도 모르므로 잘 확인해 보고 연락을 달라 한다.

거래업자를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알겠습니다. 고생하세요.”

볼일이 끝난 윤석찬을 강지한이 일별했다.

그런데 그가 선뜻 나가지 못하고서 머뭇거렸다.

“저…… 강 사장님.”

“네?”

“혹시 지금은 음식 안 되죠?”

“시장하세요?”

“아니 그, 저번에 주셨던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요. 한 번 먹고 난 뒤로는 상사병 난 사람처럼 그 김밥 맛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하하하.”

이상철이 멋쩍게 웃었다.

“음…….”

강지한이 주방 상태를 확인했다.

김밥에 들어가는 육수밥은 지어놨지만 다른 재료들이 전부 준비되지 않았다.

지금 있는 건 햄과 시금치였다.

반찬으로도 나가는 햄은 많은 양을 미리 볶아 놓았고 시금치는 삶아서 탈수기에 돌려 물기를 쫙 빼놓은 상태였다.

나머지 재료 준비는 곧 출근하는 용성우의 몫이었다.

강지한은 좋은 식자재를 가져다 준 이상철에게 뭐라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운전하면서 간단히 먹기엔 김밥이 최고긴 한데……. 꼬마김밥 같은 걸 만들어 볼까?’

꼬마김밥은 들어가는 재료가 간단하다.

햄이나 옛날 소시지, 단무지, 시금치 정도가 끝이었다.

전부 지금 준비가 된 재료들이었다.

강지한이 장고(長考)에 들어가자 덜컥 미안해진 이상철이 얼른 말을 바꿨다.

“이거 제가 괜히 강 사장님 불편하게 해드린 것 같네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해본 거였어요. 이따 오후에 와서 사먹을게요. 하하.”

“사장님, 이 분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제가 금방 해드릴게요.”

“네? 김밥이…… 됩니까?”

“네.”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 이상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거 참 염치없지만 감사히 사먹겠습니다.”

이상철은 그 와중에도 그냥 받아가겠다는 말은 안했다.

강지한의 손이 김을 집어 물기 없는 도마 위에 착 펼쳤다.

그것을 세로로 길게 2등분한 뒤, 미리 간을 해놓은 육수밥 반 주먹을 퍼서 잘 펴 발랐다.

끝부분의 김밥은 여분을 남겨뒀다.

그래야 나중에 김밥을 말았을 때 마무리가 깔끔하게 된다.

밥 위에 데친 시금치와 볶은 햄, 단무지를 넣고 두 손으로 빠르게 말았다.

그 동작이 어찌나 정확하고 깔끔한지 보고 있던 이상철은 혀를 내둘렀다.

다시 두 번째 김밥을 마는 강지한.

이를 바라보는 강지한의 눈에 희미한 잔상이 나타나 겹쳤다.

‘저건…… 시장 김밥 전문점 아주머니의 손놀림?’

발도 없이 김밥을 마는 능숙한 동작은 시장거리에서 김밥만 십수 년을 말아온 아주머니의 그것과 같았다.

순식간에 꼬마김밥 네 줄이 완성됐다.

강지한이 그것에 참기름을 바른 뒤 반으로 잘라 여덟 개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깨를 뿌려 개별 포장하지 않고 일회용 도시락에 담았다.

그때 요리 조언자가 꼬마김밥의 요리 등급을 보여줬다.

[강지한의 대단한 꼬마김밥]

요리 등급: LV5

-고슬고슬 지어진 환상적인 육수밥이 음식의 등급을 확 올려준다. 육수밥으로 인해 맛의 밸런스가 완벽히 잡혔다. 밥에 따로 한 간 또한 이상적이다. 안에 들어간 재료가 적으나 서로 다른 식감과 맛이 잘 어우러진다.

‘높다.’

방금 즉흥적으로 생각해서 만들어낸 메뉴 치고는 등급이 높았다.

거기에는 육수밥과 강지한이 잡아낸 간이 크게 한몫을 했다.

강지한은 순간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좋고 비싼 재료가 많이 들어간다고 맛있는 음식이 아니지.’

들어가는 재료 값싸거나 가짓수가 적어도 얼마나 조화로운 맛을 이끌어냈느냐 하는 것이 요리의 등급을 좌우한다.

강지한의 꼬마김밥은 바로 그 요리의 기본인 조화로운 맛에 충실한 음식이었다.

“맛이 어떨진 모르겠네요. 방금 생각해서 만든 건데.”

“그럼 여기서 처음으로 만든 음식 제가 개시하는 거네요? 맛있게 잘 먹을게요.”

꼬마김밥의 맛은 다 거기서 거기다.

어제 먹은 김밥의 맛은 절대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상철은 고마웠다.

강지한의 정성이 담긴 김밥이었으니.

“이건 얼마죠?”

“그냥 드셔보시고 맛이 어떤지만 냉정하게 평가 부탁드려요.”

“이거 시식요원 된 기분인데.”

“맞아요, 사장님. 사장님께서 맛있다고 하면 내일부터라도 팔 거예요.”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꼬마김밥은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밑 준비가 간편하고 만드는 것도 쉬웠다.

‘떡볶이 양념에 찍어 먹어도 대박일 것 같은데.’

강지한이 그런 생각을 하며 나가는 이상철을 배웅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중만과 용성우가 출근을 했다.

“여~ 강 사장, 좋은 아침.”

“사장님, 안녕하세요!”

두 사람은 바쁘게 복장을 갖추고서 주방에 들어왔다.

고중만은 식자재들을 용도에 맞게 씻고 다듬었다.

용성우는 그것을 넘겨받아 김밥 속 재료와 비빔밥 고명 등, 각 요리에 어울리는 형태로 만들었다.

* * *

끼이이이이익!

냉동탑차가 길가의 도랑 끝에서 겨우 멈춰 섰다.

탑차를 모는 이상철은 입에 김밥을 문 채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일 날 뻔했네.”

그는 꼬마 김밥의 맛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가는 재료가 전부 비슷한 만큼 맛의 편차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를 먹는 순간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김밥의 나라가 펼쳐졌다.

“아니 대체 뭘 넣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이번에는 김밥을 만드는 과정까지 이상철의 두 눈으로 직접 봤다.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그런데도 여태 그가 먹어왔던 꼬마김밥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마약김밥이다, 마약김밥.”

부아아앙-

이상철이 다시 액셀을 밟았다.

마약 김밥으로 배를 채우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이상철의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 * *

“여기요!”

“네, 네! 갈게요!”

“여기 주문이요.”

“네, 가겠습니다!”

“김치 좀 더 주세요~”

“김치 여기 있습니다!”

오늘부터 일을 하게 된 신입 이주희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일을 하는 게 많이 서툰 모습이었지만 열심히 임하려는 능동적인 자세가 강지한의 마음에 들었다.

브레이크 타임.

손님들이 다 나가고 한산해진 식당에서 지한 분식 직원들이 식사를 했다.

오늘의 메뉴는 떡볶이와 꼬마김밥이었다.

이주희는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먹으면서 계속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 진짜 맛있어요.”

“와…….”

“대박.”

이를 본 이리나가 풋 하고 웃었다.

“주희 씨, 그렇게 한 숟갈 먹을 때마다 감탄하면 살 빠지겠어요.”

“앗, 저도 모르게 그만.”

“주희 씨 진짜 귀엽다.”

“어, 언니도 예쁘세요.”

“어머나, 그렇게 말하니까 더 귀여워. 우리 말 편하게 할래요?”

“언니가 하자는 대로 따를게요.”

“짱 귀여워! 주희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네, 언니!”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주희.

급기야 이리나가 그녀의 뺨을 살살 어루만졌다.

“주희 진짜 인형 같다.”

“에헤헤.”

고중만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두 여인의 모습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자기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겠지. 그래서 얘들처럼 밝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때 식당 문이 열리며 반가운 사람이 들어섰다.

로버트 정이었다.

“여러분! 제가 왔어요~! 로버트 정이 그리우셨……!”

정신 산만하게 등장한 그가 상기된 음성으로 떠들다가 식사 중인 광경을 보고 후다닥 달려와 직원들 틈에 합류했다.

“뭐, 뭐야 당신!”

로버트 정을 처음 보는 고중만은 놀라 소리쳤고, 이주희는 어쩔 줄 몰라 눈치만 살폈다.

“중만 아저씨, 로버트 정이라고 잡지사 디렉터세요.”

“아……. 그렇군.”

“사장님, 식사 중이셨네요.”

“네. 식사하셨어요?”

“그럼요. 하하하.”

짐짓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로버트 정은 침을 줄줄 흘리며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을 바쁘게 스캔했다.

대답과 행동이 정반대였다.

“그럼 같이 드세요. 넉넉하게 했어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말과 달리 로버트 정은 벌써 꼬마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있었다.

빠르게 김밥 한 줄을 씹어 삼킨 그가 놀란 시선을 강지한에게 던졌다.

“이 김밥 진짜 맛있는데요?”

그러자 이리나가 끼어들었다.

“그쵸?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어봐요. 더 대박이에요.”

로버트 정은 시키는 대로 했다.

과연 입에서 어우러지는 맛의 조화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 맛있네요. 진짜 맛있어요. 어우, 배불러. 점심 괜히 먹었네. 여기서 배 채울걸.”

로버트 정이 합류하자 꼬마김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걸 보고 있던 최지민이 살짝 짜증스레 물었다.

“근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참.”

그제야 정신을 차린 로버트 정은 옆에 있던 박스를 강지한에게 건넸다.

“도그앤라이프 4월호! 출간됐습니다.”

“오!”

강지한이 반색하며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표지에 설탕이의 귀여운 모습이 박힌 잡지 20권이 들어 있었다.

“사진 엄청 잘나왔네요.”

“졸귀탱. 어쩜 좋아, 우리 댕댕이.”

“고놈 참 귀엽네.”

“와……. 저 심쿵했어요. 얘 누구예요? 사장님이 기르시는 강아지예요?”

잡지를 본 직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했다.

강지한의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컸다.

* * *

‘기회를 잡고 싶다.’

무명 배우 좌경우가 8년째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올해 그의 나이 스물여덟.

스무 살에 엑스트라로 영화에 발을 담근 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된 무명 생활을 해왔다.

그는 잘생겼다.

키도 크고 몸도 좋다.

연기력도 보통 이상은 됐다.

그럼에도 뜨지를 못했다.

지금껏 가장 큰 역할을 맡았던 것이 어린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정의의 사도로 변신해서 악당과 싸우는 히어로물인데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까놓고 말해 망했다.

결국 좌경우는 망한 어린이 드라마 주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력만 추가해 버린 셈이었다.

‘이번에도 안 되면…… 그만두자.’

이제 좌경우는 불확실한 꿈만 붙잡고 갈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든 배우로 성공해 보겠다고 자신만 바라보는 부모님께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불효만 해왔다.

좌경우의 시선이 스마트폰의 액정으로 향했다.

거기엔 ‘분식집 막내아들’이라는 신작 드라마의 캐스팅 오디션 일자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분식집 막내아들의 메가폰을 잡은 이는 흥행 불패의 신화를 이룩한 드라마계의 거장 송만대 감독이었다.

방송가에는 그런 말이 있다.

‘한 번에 뜨고 싶으면 어떻게든 송만대 감독의 작품에 출연해라.’

실제로 송만대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이들은 신인이든 무명 배우든 전부 엄청난 인지도를 얻으며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좌경우도 그 감독의 작품을 노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분식집을 이어받아야 하는 막내아들이야. 본격 미식드라마인 만큼 먹는 장면이 많이 방영될 테니 음식을 먹을 때 풍부한 표정으로 맛있다는 느낌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게 문제였다.

좌경우는 식탐이 별로 없었다.

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차라리 주연 말고 다른 배역을 노려봐?’

갈수록 근심이 커져 가는 좌경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