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Restaurant 62. 파악의 눈
“속이 이러니까 딴딴하지가 않지. 이거 그냥 채 썰어 버리면 속살이 물러버린 줄도 모르고서 음식에 넣게 되는 거라고.”
“와……. 그렇구나.”
용성우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껍질은 광택이 막 흐르면서 선명한 적황색이나 주황색을 띄는 놈이 최고야. 보니까 가끔 껍질 벌어진 놈들도 있던데, 이러면 알맹이에 상처 나서 안 좋다고.”
“그런 건 어떻게 아세요?”
“한때 식자재 나르는 일 했었거든. 상품은 업체에서 준비하고 나는 배달만 뛰었는데 오래 보다 보니까 절로 알겠더라고.”
“아~”
용성우가 고중만이 말해준 것들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보니까 전부 다 이런 건 아니고 몇 개가 섞여 있네.”
강지한은 자기가 받아들이는 상품들에 일말의 하자도 없다고 생각했다.
고중만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는 빈번히 벌어지는 일이야. 이 정도는 뭐 티도 안 나니까 슬쩍슬쩍 섞어주는 거지. 물론 노련한 식당 사장은 바로 따지고 드니까 이런 짓 못하고. 강 사장한테도 처음에는 제대로 된 상품만 줬을걸? 그러다 하나 섞어봐서 별말 없으면 두 개 섞고, 다섯 개 섞고. 눈썰미가 빨리 늘어나서 이런 걸 파악해야 돼. 그래야 따지지. 따지면 또 그다음부터 좋은 걸로 갖다 줘요. 안 따지면 모른다는 거잖아. 그러면 계속 이런 걸 주는 거야.”
“아니 무슨 장사를 그따위로 한답니까?”
용성우가 버럭 화를 냈다.
“장사치가 열에 여덟은 그렇지. 양심보다 계산이 앞서니까.”
그제야 강지한의 의문이 풀렸다.
그의 요리 레벨이 5등급에서 6등급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이유.
재료의 품질 때문이었다.
강지한의 머릿속에 늘 사람 좋은 웃음을 달고 다니던 석찬 식품 사장 윤석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는 식당을 오픈하고 나서부터 죽 거래를 해왔다.
지한 분식이 일요일날 쉬게 된 것도 이 근방에 학원이 있어 주말 장사가 재미를 못 본다는 윤석찬의 조언 덕분이었다.
그는 강지한을 볼 때마다 늘 미소로 대하며 따뜻한 말을 해줬다.
그런데 그게 다 만들어진 것이었다.
“무른 양파가 열 알은 나오네.”
고중만이 대수롭잖은 듯 말했다.
그에 용성우가 열이 올라 물었다.
“아니, 그래도 이런 짓 하면 안 되죠. 믿고 거래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봤자 몇 푼이나 더 번다고.”
“지한 분식 한곳에다가만 그러면 얼마 안 되겠지만 그게 열댓 군데 된다고 생각해 봐. 한 달이면 제법 이득이 남지 않겠어?”
“길게 봐야죠. 지금처럼 들통 났다가 거래 끊기면 손해잖아요.”
“말했잖아. 얘기하면 다음부터 장난 안 친다니까. 그리고 이 정도는 막상 요리에 넣어도 크게 맛 차이가 없어. 그러니 모르고 그냥 쓰는 거야.”
일반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지한의 눈에는 요리 등급의 차이가 보였다.
고중만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강지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윤석찬 사장님……. 저한테는 이런 일 절대 없을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강지한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고중만이 양파를 썰다 말고 놀라 물었다.
“방금 누구라고?”
윤석찬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고중만의 귀에 콱 박혔다.
“윤석찬? 윤석찬이라고 했어, 강 사장?”
“네. 아시는 분이에요?”
“내가 식자재 배달 일했다는 곳이 거기야. 석찬 식품 맞지?”
“맞아요.”
“삼 년 전에 석찬 식품에서 한 일 년 반 식자재 탑차 몰았었다고. 그 일 때려치운 다음에 리어카 장사 시작한 거고.”
참 재미있는 인연이었다.
춘천 바닥이 좁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근데 일을 때려치웠다고요?”
지금 한 푼이 아쉬워서 자신에게 머리 조아리도 들어온 사람이 고중만이다.
한데 일을 때려치웠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짤렸어. 아무튼 그 형님 딱히 질이 좋진 않아. 부끄럽지만 내가 강 사장한테 입버릇처럼 말했던 거 있지?”
‘남는 재료는 다음 날 섞어 팔아라.’
강지한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었다.
“그런 썩은 정신 전부 그 형님한테 배운 거거든. 원하면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곳 연결해 줄 테니까 거기랑 거래하는 게 좋을 거야.”
식자재 배송 일을 하면서 여기저기 경쟁사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레 얻게 된 그였다.
개중 가장 깨끗하게 일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고중만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겠어, 강 사장?”
“일단 전화번호 좀 주세요.”
“응. 그래.”
고중만에게 전화번호를 받고 난 강지한은 속이 무르다며 옆으로 빼놓은 양파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양파를 자세히 살폈다.
‘애초부터 믿을 건 나밖에 없었던 거야.’
요리 실력을 키운다고 다짐하면서 열심히 노력해 왔는데 좋은 재료를 구분하는 안목은 아직도 멀었다.
그래도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기본적인 안목은 생겼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으나 지금 같은 경우는 생각 못했다.
고중만처럼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초짜들은 누구나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고중만을 식당에 들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식재료의 신선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 테니 말이다.
‘하지만 중만 아저씨에게 계속 의지할 순 없지. 식당의 오너가 나인만큼 내 실력을 빨리 키워야 돼.’
강지한이 그런 생각을 하며 손에 들린 양파를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눈의 숙련도가 100이 되어 레벨 업 합니다.]
[눈의 레벨이 4가 되었습니다.]
[‘파악의 눈’을 얻었습니다. 레벨 업 현황을 확인하세요.]
‘파악의 눈?’
강지한이 레벨 업 현황을 열었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
.
.
[특수 능력]
요리 조언자
관찰의 눈
파악의 눈
특수 능력란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파악의 눈이라는 것이 추가되어 있었다.
강지한이 그것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파악의 눈-재료의 등급을 파악할 수 있는 눈입니다. 언제든 본인이 원할 때 이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강지한은 보너스 스테이지를 진행하며 눈의 숙련도에 대해 신경을 전혀 못쓰고 있었다.
한데 손님들의 여유도와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는 아이콘을 보면서 눈의 숙련도는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오늘 100이 되었고 레벨 업 했다.
강지한이 손에 들고 있던 양파를 보며 신선도를 알고 싶다 생각했다. 상념이 이는 동시에 양파 위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보통 양파]
품종 등급: B
신선도: 3/5
-신선함이 많이 빠진 상태. 양파의 가장 안쪽 부분이 약간 물렀다.
‘이거다.’
파악의 눈은 양파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이제는 장사치들의 장난에 속을 일이 없었다.
강지한은 고중만이 건네준 메모지를 읽었다.
‘033-241-XXXX. 윤이 식품’
윤이 식품이라면 강지한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후 밝고 에너지 가득한 사내의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윤이 식품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석사동에서 분식집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강지한이라고 해요.”
-아! 혹시 지한 분식 사장님이세요?
“어떻게 아셨어요?”
-왜 몰라요. 인터넷에서 그렇게 핫한 곳을.
식자재 납품 업자인 만큼 그런 소문에 밝은 것이 당연했다.
-전화 주셔서 영광이에요. 저는 윤이 식품 이사 윤시연입니다~
“네 반가워요, 윤 이사님.”
-어쩐 일로 전화 주셨어요?
“식자재 거래를 하고 싶어서요.”
그 말에 고중만이 놀라서 강지한을 쳐다봤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 사장, 그렇게 바로 바꿔 타고 돼? 아무리 내 추천이라도 좀 알아보고…….”
강지한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중만도 바보는 아니다.
당장 돈벌이가 급해 나이 어린 사람에게 머리까지 숙이며 들어온 일터다. 이런 상황에서 지한 분식에 해가 될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경험자다.
경험자의 말보다 믿을 만한 건 또 없었다.
강지한의 거래 얘기에 윤시연의 상기된 음성이 돌아왔다.
-어머, 지금 하는 곳 있지 않으세요?
“문제가 좀 생겨서요.”
-그러시구나.
“조금 빨리 받아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 네! 저희는 농축산품 위주고 필요한 품목 이틀 전에 말씀해 주시면 가장 좋아요. 전날 말씀해 주셔도 어지간한 건 전부 맞춰 드리고요. 많이 급하세요?
“모레부터 필요할 것 같긴 해요.”
-그럼 이따 우리 남편 보낼게요. 지금 전화로 주문하셔도 되는데 일단 얼굴은 한 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죠, 아무래도.”
-식당 언제쯤 한가하세요?
“세 시 반부터 네 시 반까지 브레이크 타임이에요.”
-그럼 세 시 반에 도착하도록 말해 놓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지한이 이번엔 윤석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강 사장님.
“윤 사장님. 내일은 계란 빼고 주세요.”
-네네~ 오늘 이틀 치 받았으니까 충분하시겠죠. 말씀 안 해주셔도 다 알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하하.
“그럼 내일 뵐게요.”
-그래요~
강지한이 통화를 끝내자 고중만이 물었다.
“그냥 윤 사장님한테 내일부터 물건 달라고 하지 왜?”
“끝내더라도 얼굴은 보고 끝내야죠. 그리고 중만 아저씨.”
“응?”
“고마워요.”
갑작스런 감사의 말에 고중만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가 괜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어허험! 날씨 좋다.”
홀을 청소하던 이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먹구름이랑 황사가 장난 아닌데요?”
“나는 먹구름이랑 황사 좋아해! 그럼 안 돼?”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뻘쭘해진 고중만이 소리를 치자 이리나가 쩔쩔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용성우가 도끼눈을 떴다.
“고중만 아저씨!”
“깜짝이야! 왜?”
욱해서 부르긴 했는데 막상 눈을 마주치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혼란해진 용성우의 머릿속 회로가 오작동을 했다.
“야, 양파를 좀 더 까놓으시겠습니까!”
“아니 이 집 양파 장사해? 얼마나 더 까놓으라는 거야. 나참.”
고중만은 투덜대면서도 다시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강지한이 속으로 웃었고, 용성우는 얼떨떨한 얼굴로 다시 자기 일에 집중했다.
그런 용성우의 모습을 이리나가 가만히 바라봤다.
‘나 감싸주려고?’
처음으로 자신에게 향항 용성우의 마음을 느낀 이리나였다.
* * *
“윤이 식품 사장 이상철입니다. 윤이 식품의 이름이 저랑 아내 성을 하나씩 따서 만든 겁니다. 우리 부부 성을 걸고 하는 장사인 만큼 장난치거나 속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브레이크 타임에 지한 분식을 찾은 이상철의 인사말이었다.
그는 참 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물론 정말 그런지는 겪어봐야 알겠지만 고중만의 추천이니 강지한은 믿어보기로 했다.
“여~ 이사장. 간만이에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고중만이 아는 척을 했다.
“어? 고 선생님. 여기서 일하고 계셨어요?”
“그 선생님 소리 좀 그만하라니까. 요새 경기는 괜찮고?”
“제가 열심히 하면 경기가 안 좋아도 어떻게든 돌아는 가더라고요.”
“그렇지. 이사장네랑 계약하면 거의들 끝까지 가니까.”
“거래처 사장님들이 우리 부부 은인입니다. 그분들 덕에 우리가 먹고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더더욱 신경 써서 잘해야지요. 하하.”
고중만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리어카 장사를 하던 자신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그 신념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식자재가 모레부터 필요하시다고요?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메모해 놨다가 모레 일찍 갖다 드리겠습니다.”
강지한은 이상철에게 필요한 것들을 말해주었다.
메모를 마친 이상철이 바쁘게 식당을 나서려 했다.
“거래처 또 들러봐야 돼서 그만 가보겠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은 바빠서 통 그럴 틈이 없었네요.”
강지한이 미리 말아두었던 김밥 세 줄을 건네주었다.
보통 김밥 하나와 치즈 김밥, 참치 김밥이었다.
“어이쿠, 안 이러셔도 되는데.”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로 받아주세요.”
“그럼 맛있게 먹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사장님!”
밝게 인사를 건넨 이상철이 탑차를 몰고 떠났다.
그제야 강지한과 직원들을 식사를 챙길 수 있었다.
직원들은 오늘 식사를 된장찌개로 통일했다.
강지한이 재료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잘 다듬어진 야채들 옆에 따로 봉지에 담아놓은 야채들이 보였다.
하자 있는 것들이었다.
고중만은 아침에 재료들을 정리하며 양파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들에서도 약간씩의 하자가 있는 걸 알아냈다.
강지한은 하자가 있는 재료를 사용해 된장찌개 하나를 끓였다.
나머지는 하자가 없는 재료를 사용했다.
그러자 완성된 음식의 레벨이 나타났다.
[강지한의 환상적인 된장찌개]
요리등급: LV6
-육수, 양념, 들어간 재료들까지 무엇 하나 흠 잡을 게 없다. 그럼에도 발전의 여지가 남았다.
[강지한의 고급 된장찌개]
요리등급: LV5
-육수와 특제양념이 맛을 전부 살렸다. 더욱 맛있어질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랬구나.’
요리 조언자의 조언을 읽어본 강지한의 고개가 미미하게 끄덕여졌다.
레벨 6의 된장찌개는 육수, 양념, 재료들이 흠잡을게 없다고 한다.
그런데 레벨 5 된장찌개는 육수와 양념이 맛을 전부 살렸다고 되어 있다.
재료에 대한 얘기가 없다.
요리 조언자는 늘 요리가 더 나아가기 위한 방향에 대해 확실히 짚어주지 않았다.
강지한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약간의 힌트만을 던질 뿐.
완성된 된장찌개를 최지민과 이리나가 날랐다.
과연 내일은 윤석찬이 어떤 식자재를 가져올지 기대가 됐다.
* * *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오늘 마지막 거래처를 들른 이상철에게 겨우 여유가 생겼다.
꼬르륵.
숨통이 트이니 당장 기본적인 욕구부터 고개를 들었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밥도 넣어줘야지.”
이상철은 사무실로 차를 몰며 강지한이 줬던 김밥을 꺼냈다.
포장된 은박을 찢어 별생각 없이 한 알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입에서 확 퍼지는 맛에 놀라 일순 정신을 놓았다.
‘이, 이 맛은……!’
차가 길가의 전봇대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대로 가면 김밥 맛은 천국의 맛이 되고 만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가 얼른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기, 김밥 먹다 저승 갈 뻔했네.’
이상철이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한참 놀란 와중에도 그의 손은 김밥 하나를 다시 입에 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