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60화 (60/330)

# 60

Restaurant 59. 의외의 지원자

영화를 보고 돌아온 강지한은 설탕이를 품에 안고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설탕아, 향숙이 누나랑 잘 놀았어?”

왕! 헥헥.

설탕이가 그렇다는 듯 짖었다.

“형도 잘 놀다 왔다.”

강지한은 영화가 끝난 후, 예소린과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다.

‘설마 먼저 영화를 보자고 할 줄은 몰랐네.’

사실 강지한이 용기가 없어서 말을 못한 건 아니었다.

영화 보자고 해놓고서 식당일만 생각하느라 깜빡했던 것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영화는 재미있었고 밥도 맛있었다. 분위기도 좋았다.

예소린은 헤어지며 다음번에는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나저나 영화관도 오랜만이었어. 영화도 재미있었고.”

두 사람이 선택한 영화는 요리사의 일대기를 다룬 ‘맛객’이었다.

웹툰 원작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다가 영화화 되었는데 평단과 관객의 평가가 고루 좋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조금도 없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탄탄했다.

한데 강지한에게 이 영화는 단순히 재미를 넘어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작중의 주인공은 일류 요리사인 만큼 여러 가지 요리 기술을 선보였는데 배우가 직접 연기한 것이 아니라 손 대역을 썼다.

진짜 요리사를 데려와 요리하는 장면을 대체한 것이다.

물론 강지한이 그런 정보까지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주인공의 손이 클로즈업 되면 그 놀림이 예사가 아님을 느꼈다.

강지한은 주인공의 요리를 할 때마다 그 손기술을 관찰의 눈으로 기억하려 했다.

그런데 카메라가 계속해서 손을 잡는 건 아니었다.

긴박감을 주기 위해 주인공의 얼굴이나 주변인들의 놀라는 모습을 교차 편집해 놓는 바람에 관찰의 눈에 영상을 담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운 좋게도 한 컷은 오로지 요리하는 손기술만 보여주었던 것이다.

바로 만두를 빚는 방법이었다.

주인공이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만두피로 만든 뒤, 그 안에 소를 넣어서 잘 빚는 장면까지 자세하게 나왔다.

강지한은 관찰의 눈에 담은 그 장면을 재생시켰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영화 속 명인의 손이 홀로그램처럼 나타나 열심히 반죽을 밀고 만두를 빚어댔다.

강지한이 허공에서 그 손동작을 따라했다.

“만두라……. 김치가 맛있으니 소만 제대로 만들면 괜찮지 않을까?”

지한 김치의 맛이 일품인 것이야 이미 연일 이어지는 매진 사례로 증명되고 있었다.

오픈한 이후부터 5일 동안 김치 매장은 파리가 날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일매일 김치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준비해 놓은 김치들은 영업이 끝나기도 전에 다 팔리곤 했다.

조미옥은 이제 사람을 한 명 더 써서 김치 담그는 양을 늘리자고 할 정도였다.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지한 김치는 오픈을 하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오후 3시면 모든 김치가 동이 나곤 했다.

아무리 그래도 춘천 땅이 넓지 않아 수요가 정해져 있을 텐데 어찌 매진 행렬이 계속되느냐.

한 번 맛본 사람들은 주변에 선물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이나 친인척들에게 열심히 김치를 선물했다.

그럼 김치를 맛본 이들 중 반 이상은 지한 김치를 재주문 해주기를 원했다.

선물이 아니라 돈을 입금할 테니 택배로 보내 달라는 식이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며 지한 김치는 전국 팔도로 빠르게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이것이 오픈 단 5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튼 그런 김치를 이용해서 김치 만두를 만들어 팔면 분명히 잘 팔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냥 김치찌개 전문점이라고 해서 내기엔 조금 심심했단 말이야.”

강지한은 계획하고 있던 김치찌개 전문점을 김치 전골 전문점으로 수정했다.

“돼지고기 생고기도 팍팍 넣고, 김치 만두도 넣고, 떡도 넣어야지. 두부랑 표고버섯에…… 어묵도 조금 넣으면……. 으음, 어묵은 빼자. 고기를 넣든 어묵을 넣든 한 가지만 넣는 게 더 깔끔할 테니.”

강지한은 머릿속으로 김치 전골의 맛을 그려봤다.

예전의 그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아는 맛이라면 그것들을 상상으로 섞어서 어떤 맛이 나올지 추측 가능한 경지까지 이르렀다.

레벨 업 시스템에만 의존했다면 결코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김치 만두만 해결하면 완벽하겠는데.”

아직 강지한은 만두소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스마트폰을 들고 만두소 만드는 법을 검색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설탕이가 그런 강지한을 쫑쫑거리며 따라와 발치에 앉아 꼬리를 흔들며 올려다봤다.

“돼지고기는 있고. 두부랑 부추…… 당면도 있고.”

강지한이 필요한 재료들을 체크하며 하나하나 꺼내 싱크대 위에 늘어놓았다.

이제는 집 안에 거의 모든 식재료를 구비해 놓고 사는 그였다.

요리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할 때 식재료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김치는 양념부터 씻어내야 하는구나. 음……. 다진 김치를 양파망에 담아 물에 넣어 놓으면 훨씬 수월하다고?”

늘 사용하는 부엌칼을 집어 들려던 강지한이 멈칫했다.

그의 손이 부엌칼 옆에 두었던 또 다른 부엌칼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과도에서 진화시킨 날이 무딘 부엌칼이었다.

‘숙련도를 올려야 진화가 가능하니까.’

진화용 부엌칼로 김치를 서걱서걱 잘랐다.

칼이 정말 무디긴 무뎠다.

그나마 강지한의 손기술이 좋아서 수월하게 썰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다음엔…….”

강지한은 열심히 레시피를 따라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두피도 사다 쓰지 않고 직접 반죽을 쳤다. 이 경우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은 숙성 없이 바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가 영화 속 명인의 손놀림을 재생하며 만두피를 밀대로 열심히 밀었다.

명인은 밀대의 끝부분만을 사용해서 수초 만에 만두피를 하나씩 만들어냈다.

강지한은 그 손놀림을 아직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연습할수록 기술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기술을 29% 익혔습니다.]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수치에 강지한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만두피를 밀어낸 후엔 본격적으로 만두를 빚어나갔다.

한데 완성된 모양이 엉망이었다.

이것 또한 처음 해보는 것인지라 익숙하지가 않았다.

강지한은 눈앞에서 움직이는 명인의 손가락을 따라 몇 번이고 만두를 빚어나갔다.

그렇게 열 번 정도 하자 드디어 봐줄 만한 수준의 만두가 탄생했다.

[기술을 33% 익혔습니다.]

“3분의 1만 익혀도 이 정도는 빚게 되는구나.”

강지한이 새삼 감탄했다.

이후로 바쁘게 손을 움직여 김치 만두 한 접시를 완성해냈다.

[강지한의 맛있는 김치 만두]

요리 등급: LV3

-맛은 있으나 보통 수준이다. 반죽은 숙성이 덜 되었고 큰 특징 없는 만두소는 그나마 김치가 살렸다. 맛있는 김치가 아깝다.

“이러면 안 되지.”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레시피로는 좋은 김치 만두를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그에 강지한이 일식 요리 장인 미야타케 카즈타카 지식을 살폈다.

그 안에는 그만의 방법으로 빚는 교자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강지한은 당장 교자피와 교자속을 새로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은 인터넷에서 보았던 김치 만두보다 간단했고 들어가는 재료도 훨씬 적었다.

그야말로 잡스러운 것 없이 고기소의 담백함을 살린 맛이 강지한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기에 김치를 섞어보자.’

완성된 교자소에 김치를 섞은 뒤, 교자피에 넣어 빚었다.

그리고 그것을 굽지 않고 쪄냈다.

일본식 교자라 함은 기본적으로 기름에 구워내야 하지만 강지한은 교자의 탈을 쓴 김치 만두를 만들 예정이었으므로 찌는 쪽을 선택했다.

“어디.”

강지한이 찜기 속 젖은 면보 위에서 15분 동안 사우나를 한 김치 만두들을 접시에 담았다.

[강지한의 상당한 수준의 김치 만두]

요리 등급: LV4

-맛으로만 따지면 상당히 괜찮다. 일본식 교자를 한국식 김치 만두로 재해석했다. 김치 만두 답지 않게 육즙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매력적이나 국물 요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만두피가 약간 아쉬우며 여러 가지 조리에 어울리려면 만두소의 개선도 필요하다.

강지한이 김치 만두 하나를 집어 후후 불어서 입에 넣었다.

입 속으로 들어간 만두피가 찢어지며 안에서 육즙이 팍 터져 나왔다.

김치 만두에서 이런 육즙을 느껴보기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한국의 만두보다 육즙을 살리는 방식의 일본식 교자로 소를 만들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맛은 진짜 좋은데.”

하지만 요리 조언자의 평가대로 만두피가 아쉬웠다.

굽지 않고 쪄냈더니 안에 가득 퍼진 육즙으로 인해 흐물거리며 탄력이 사라졌다.

육즙은 조금 줄이고 피는 더 단단해야 했다.

“오늘 잠은 다 잤네.”

강지한이 이상적인 김치 만두를 만들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 * *

동이 트는 시각.

강지한은 결국 이상적인 김치 만두를 완성했다.

[강지한의 고급 김치 만두]

요리 등급: LV5

-모든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맛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만두 위로 뜨는 정보창을 보며 강지한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만두소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육즙이 적으면서도 김치와 고기맛의 밸런스가 잘 맞는 비율을 찾아냈다.

만두피는 밀가루에 감자 전분을 많이 섞어 더욱 탱탱하게 만들어 오래 끓여도 쉽게 터지지 않게 했다.

맛도 기가 막혔다.

이제 남은 건 이 김치 만두를 이용해 김치 전골을 만들어보는 것뿐이다.

‘그건 내일하자. 두 시간이라도 자고 일어나야지.’

강지한이 설탕이를 끌어안고 잠자리에 누웠다.

김치 전골 전문점을 런칭하겠다는 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 * *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지한 분식 직원들은 출근하는 족족 이틀 전까지는 없었던 천장의 무늬를 보고 놀랐다.

천장의 무늬는 강지한이 3레벨까지 업그레이드해서 구름이 떠 있는 하늘 무늬로 바뀌어 있었다.

“사장님은 쉬지도 않으시나 봅니다! 헤헤.”

“오빠, 저거 칠한 거 아니죠? 자세히 보니까 스티커 같은데.”

“와, 엄청 예쁜데요. 천장이 뻥 뚫린 건물에서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네요.”

지한 분식 식구들은 저마다의 감상을 한마디씩 던졌다.

오늘도 지한 분식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강지한은 얼마 전 직원 공고를 새로 냈고 네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주방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한 명, 서빙을 하겠다는 사람이 셋이었다.

강지한은 우선 오늘 브레이크 타임에 주방 쪽 지원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장소는 노영찬 피디와 대화를 나눴던 식당 근처 카페였다.

‘근데 좀 이상하네.’

지원자는 지원 의사를 문자로 전해왔다.

해서 강지한이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았다.

그는 전화가 조금 불편하니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아도 되겠냐고 했다.

결국 강지한은 그에게 약속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통보했다.

* * *

주방 쪽 지원자를 만나기로 한 시각.

강지한은 직원들끼리 식사를 하라 이르고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카운터 쪽 테이블에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강지한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설마.”

놀란 강지한이 설마설마 하며 다가가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자 맞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