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Restaurant 57. 완벽한 피사체
4월의 첫째 날.
강지한은 눈을 뜨자마자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밤사이 설탕이가 물어오기 스킬로 선물을 물어왔습니다.]
강지한의 머리맡에는 작은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설탕이는 선물 상자 뒤에 앉아 꼬리를 흔들며 강지한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의 공을 칭찬해 주길 바라는 것처럼.
“우리 복덩이가 또?”
강지한이 설탕이의 뺨을 잡고 옆으로 쫙쫙 늘리다 입에 뽀뽀를 했다.
설탕이는 마냥 좋다고 헥헥댔다.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레벨 2 물어오기의 숙련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물어오기의 레벨이 3으로 올라갑니다.]
[설탕이가 선물을 물어올 확률이 증가합니다.]
[레벨 업 보너스로 1회에 한정, 물어오기 성공률이 100%가 됩니다.]
밤사이 설탕이의 물어오기 스킬이 레벨 업 했고, 성공률 100%가 되어 선물을 가져온 것이었다.
“와~ 축하해 설탕아. 어떤 걸 물어왔나 볼까?”
강지한이 선물 상자를 건드리자 안에서 메시지가 나타났다.
[럭키 박스 즉시 레벨 업 이용권]
[이용권은 하루 안에 사용하지 않을 경우 사라집니다.]
설탕이가 또 기가 막힌 것을 물어왔다.
“설탕아, 이름 바꾸자. 갓설탕으로.”
강지한이 온갖 애정을 가득 담아 설탕이의 뺨에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그때 럭키 박스가 강지한의 앞에 나타났다.
박스의 위에는 [럭키 박스 LV7-물어오기 1회 성공]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럭키 박스의 레벨 업 조건, 물어오기 1회 성공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행운의 아이템이 무작위로 증정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럭키박스 이번 레벨 업 조건이 물어오기 성공이었지.”
자고 일어났더니 참 많은 것이 해결되어 있었다.
럭키 박스의 뚜껑이 열리며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설탕이의 레벨 업 사탕 한 개를 얻었습니다.]
“요거 또 나왔네.”
강지한이 눈앞에 둥실 떠다니는 붉은색 하트 모양 사탕을 손으로 집었다.
그러자 럭키 박스가 업그레이드됐다.
[럭키 박스 LV8-NEXT 새로운 단골 8명]
“새로운 단골 8명 모으는 건…… 패스.”
그가 럭키 박스 즉시 레벨 업 이용권을 사용했다.
[럭키 박스 즉시 레벨 업 이용권을 사용했습니다. 럭키 박스가 조건 없이 한 단계 레벨 업 됩니다. 행운의 아이템이 무작위로 증정됩니다.]
럭키 박스가 또다시 아이템을 내놓았다.
[10 단골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10 단골 포인트면 상당히 후한 아이템이었다.
이로써 강지한이 지금까지 적립한 단골 포인트는 17.
3단골 포인트만 더 모으면 단골 포인트 상점에서 인테리어 아이템을 하나 살 수 있었다.
이제 럭키 박스는 9레벨이 되었다.
레벨 하나만 더 올라가면 10레벨이 되므로 보너스 스테이지의 목표를 완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럭키 박스가 레벨 10이 되기 위한 조건을 보는 순간 강지한은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럭키 박스 LV9-NEXT 설탕이 레벨 13]
조금 전 럭키 박스가 토해 놓은 아이템이 설탕이를 레벨 업 시켜주는 사탕이었다.
강지한이 감탄을 담아 설탕이를 바라봤다.
“너 정말……. 내가 어디까지 놀라야 만족하겠니?”
왕! 헥헥헥.
설탕이가 크게 짖고서 꼬리를 팽팽 돌렸다.
녀석이 물어온 럭키 박스 레벨 업 아이템 하나로 인해 남은 레벨 세 단계를 그냥 건너뛰게 되었다.
마치 탁구를 치는 것처럼 설탕이가 럭키 박스 레벨 업에 도움을 주고, 럭키 박스가 설탕이의 레벨 업에 도움을 주고, 그것이 다시 럭키 박스 레벨 업에 도움을 주며 핑퐁 작용을 했다.
강지한이 설탕이에게 붉은색 사탕을 먹였다.
설탕이의 레벨이 13이 되며 지능과 교감도가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레벨 업 현황을 살펴보니 지능은 +20, 교감도는 +35였다.
[럭키 박스의 레벨 업 조건, 설탕이 레벨 13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행운의 아이템이 무작위로 증정됩니다.]
박스에서 마지막 아이템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작은 과도였다.
강지한이 과도를 들었다.
“웬 과도가?”
그가 과도를 자세히 바라보자 상태창이 나타났다.
[평범한 과도-진화형]
LV1: 숙련도 0/100
-숙련도를 가득 채울 경우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과도.
말 그대로 과일을 깎는 칼이다.
그러므로 숙련도를 채우려면 과일을 깎아야 할 터.
강지한이 당장 사과 하나를 가져와 깎았다.
그러자 과도의 숙련도가 15나 올랐다.
“역시 초반에는 숙련도가 쑥쑥 오르네. 오늘 아침은 사과로 때워야겠다. 하는 김에 직원들 먹일 것도 좀 깎아가고.”
강지한이 집에 있는 사과를 몽땅 꺼냈다.
그중 두 개를 더 깎아 총 세 개를 자신이 먹었다.
사과가 씨알이 커서 배가 상당히 불렀다.
과도의 숙련도는 45.
이제 네 개만 더 깎으면 레벨 업이다.
한데 남은 사과는 세 개였다.
“다른 걸 뭘 더 깎아볼까.”
냉장고를 뒤적이는 강지한의 눈에 당근이 들어왔다.
강지한은 이왕 직원들 먹이려고 가져가는 거 생과일주스를 만들어서 주기로 했다.
강지한이 사과 세 알을 깎고, 당근 한 개를 썰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과도의 숙련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만족도 포인트를 투자할 경우 레벨 업 가능합니다.]
과도의 숙련도가 100이 되면 바로 레벨 업이 가능한 게 아니었다.
포인트를 따로 투자해야 했다.
[평범한 과도-진화형]
LV1: 숙련도 100/100
-만족도 포인트 100을 투자할 경우 레벨 업 가능.
강지한은 만족도 포인트 100을 과도에 투자했다.
그러자 과도에서 빛이 일며 그 형태가 변했다.
“변신했다.”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
조금 전까지 과도였던 칼은 여느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엌칼로 변해 있었다.
“이래서 진화형이라는 사족이 붙어 있던 거구나.”
강지한이 부엌칼의 상태창을 열었다.
[날이 무딘 부엌칼-진화형]
LV2: 숙련도 0/100
-날을 갈아도 날이 서지 않습니다.
-숙련도를 가득 채울 경우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이번에는 날이 무딘 부엌칼이란다.
레벨 업을 하면 아예 상위 형태의 칼이 되어버리는 진화형 아이템을 강지한은 얻었다.
‘그럼 이 칼의 궁극 형태는 뭘까.’
최후의 형태가 어찌 될는지 강지한은 궁금했다.
‘당분간 포인트는 많이 환전하지 말아야겠다.’
돈이 부족하다거나 당장 목돈이 들어갈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포인트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저축해 두기로 했다.
여기저기 사용 용도가 가장 많은 것이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폭죽이 터져야 할 때 아닌가?”
강지한이 혼잣말을 하며 믹서기에 사과와 당근을 넣고 갈았다.
위이이이잉-!
폭죽은 그때 터졌다.
펑! 퍼펑!
빰빠밤빰빠! 빰빠밤빰빠!
[축하합니다. Bonus Stage. 30평 매장의 목표를 완수했습니다.]
[보상 ‘단골 포인트20’이 지급되었습니다.]
“역시.”
이것으로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얻었다.
이제는 장사에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다.
그건 그렇고 얻은 단골 포인트는 바로 사용해 주는 게 좋을 터.
현재 단골 포인트로 살 수 있는 것은 물결무늬 천장과 고급 수저였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으니 천장에 갑자기 나타난 무늬에 대해서는 주말동안 업자를 불러 작업했다고 둘러대면 될 일이다.
강지한은 물결무늬 천장을 구입했다.
그러자 레벨 업 현황 인테리어 목록에 ‘물결무늬 천장 LV1 (NEXT 500)’이라는 항목이 추가됐다.
인테리어의 레벨 업은 하루에 한 번만 가능했으며 레벨 3이 최대치였다.
강지한은 바로 물결무늬 천장에 500포인트를 투자했다.
[물결무늬 천장의 레벨이 2가 되어 숲속 무늬 천장으로 바뀝니다. 고요하고 청량한 숲속에서 식사를 하는 듯한 분위기가 손님들의 여유도 하락을 늦춰줍니다.]
“됐다.”
이제 내일,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한 번 더 업그레이드를 하면 천장의 인테리어는 최고 레벨이 된다.
“흐아아암~!”
뒤늦게 기지개를 켠 강지한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주말이라 모처럼 늦잠을 잤다.
“슬슬 준비해야겠네.”
오늘은 설탕이의 잡지 모델 촬영이 있는 날이다.
강지한은 도그앤라이프의 서브 디렉터 로버트 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번 도그앤라이프의 표지 모델로 설탕이 이상의 어떠한 강아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열정으로 강지한을 설득했다.
그에 강지한이 설탕이의 의사를 눈빛으로 물었다.
녀석의 교감도는 이제 제법 높은 수준이었으므로 설탕이가 느끼는 기분이나 생각 같은 것을 강지한은 대강 알 수 있었다.
동글동글 맑은 눈으로 강지한을 바라보는 설탕이에게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설렘이 전해지는 듯했다.
방송 촬영 때도 그랬지만 설탕이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결국 강지한은 로버트 정이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로버트 정은 당장 가방에 준비해 온 계약서를 꺼내 도장을 받아갔다.
그리고 오늘.
설탕이의 잡지 모델 데뷔전이 이뤄지는 날이었다.
* * *
예소린의 애견 카페.
오늘은 휴일이었지만 예소린이 특별히 카페의 문을 열어주었다.
설탕이의 촬영을 위해서였다.
카페엔 그 많던 강아지들 대신 도그앤라이프 촬영팀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카페의 중앙엔 설탕이가 앉아 있었다.
이곳을 촬영장으로 정한 건 로버트 정의 선택이었다.
강아지들을 촬영할 때는 녀석들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좋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해서 서울의 인력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춘천으로 왔다.
좋은 모델이 있는 곳이라면 땅끝 마을도 가는 것이 촬영팀이다.
설탕이에게 렌즈를 고정한 촬영 감독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셔터가 눌리는 속도만큼이나 그의 입에서는 여러 번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아! 오케이! 어우, 죽인다. 좋아. 그렇지. 잘한다, 설탕이.”
촬영 감독은 설탕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렌즈에 담았다.
설탕이는 그 존재 자체로 예술이었다.
여태껏 그는 이토록 사람 혼을 빼놓는 강아지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아직 한 살도 안 된 강아지인 만큼 예쁘고 귀여운 건 당연했다.
설탕이는 그런 강아지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사람 애간장을 녹일 텐데, 더욱 중요한 포인트 하나.
설탕이는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설탕이 나이 때의 강아지들은 도통 교육이라는 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애기같이 귀여운 외모로 말하는 족족 알아듣고 영특하게 행동하니 촬영 감독의 마음이 살살 녹았다.
“이번엔 엎드려 보자, 설탕아~”
촬영 감독이 아기 어르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설탕이는 바로 엎드려서 고개만 살짝 들어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캬하.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 내가.”
비단 촬영 감독만 설탕이에게 빠져 버린 건 아니었다.
촬영장에 있는 모든 스텝들의 눈이 하트가 되어 설탕이에게 넋을 놓고 있었다.
한데 유독 로버트 정만 설탕이에게 혹해 있다가도 간혹 표정이 어두워지곤 했다.
사실 애견 카페에서도 그랬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어딘가 모를 어둠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로버트 정의 속사정을 궁금해하는 이는, 지금 이 촬영장엔 아무도 없었다.
설탕이가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케이! 이번엔 견주님과 함께 찍겠습니다.”
촬영 감독의 요청에 강지한이 카메라 앞으로 나섰다.
강지한은 이런 날 어떻게 입고 가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동창회를 나갈 때 이향숙이 맞춰주었던 옷을 그대로 빼 입고 왔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훈훈한 외모에 패션 센스가 받쳐 주니 모델이 따로 없었다.
반려견이 최고인데 견주의 비주얼까지 좋다.
촬영 감독은 연신 신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오케이, 컷! 아, 완벽한 피사체였습니다.”
모든 촬영을 마친 감독이 신나게 박수를 쳤다.
보통 촬영이라는 것이 오래 걸리면 네다섯 시간도 잡아먹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은 딱 한 시간 반으로 깔끔하게 끝났다.
거의 모든 컷이 A급이라 무리해서 찍을 것도 없었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강지한은 스탭들을 자신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먼 길 왔으니 밥 한 끼는 직접 대접해 주고 싶었다.
이미 로버트 정에게 강지한의 솜씨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들었던 사람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강지한은 오래간만에 분식으로만 메뉴를 구성했다.
떡볶이, 어묵, 김밥, 라볶이가 테이블에 쫙 깔렸다.
사람들은 뭔가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분식이 나오자 살짝 실망한 눈치였지만, 막상 그것을 먹고 나서는 하나같이 놀라고 말았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 맛이었다.
“뭘로 어떻게 만들면 떡볶이에서 이런 맛이 나는 거야?”
“인생 떡볶이 찾았다.”
“나 지금 설탕이 촬영하러 와서 분식에 더 반했어.”
“어묵 먹어봐. 졸맛탱.”
스탭들의 격정적인 반응에 강지한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 스탭들 사이에 한 자리 꿰차고 앉은 예소린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쉬는 날 공간을 빌려줬으니 대접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오늘만큼은 설탕이도 홀에 함께였다.
녀석은 스탭들을 지켜보는 강지한의 옆에 앉아서 쉼 없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설탕아. 오늘 고생 많았어.”
헥헥!
강지한이 설탕이를 다독여 주곤 다시 분식 먹는 스탭들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런데,
“…….”
떡볶이를 먹고 있던 로버트 정의 표정이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