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57화 (57/330)

# 57

Restaurant 56. 방송의 효과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사흘이 지났다.

오전 10시 반.

식당의 오픈 준비를 하던 용성우와 이리나는 문밖의 상황에 혀를 내둘렀다.

벌써부터 손님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픈하기도 전 이런 광경은 생전 처음이었다.

“방송이 진짜 대단하긴 한가 봐요.”

이리나는 벌써부터 바빠지는 기분이었다.

11시.

오픈을 하자마자 손님들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들어왔다.

근데 그 손님 속에 최지민도 섞여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 지민아. 너 왜 벌써 왔어?”

후다닥 홀로 들어와 앞치마를 걸치는 그에게 이리나가 물었다.

최지민의 출근 시간은 11시 반이다.

오늘은 30분이나 일찍 출근한 것이다.

“어제부터 이럴 것 같은 조짐이 보여서 미리 출근했죠. 훗.”

최지민이 이리나에게 브이(V) 자를 그려 보였다.

그런 최지민의 어깨를 이리나가 툭 쳤다.

“이런 센스쟁이!”

“칭찬 고마워요.”

말을 하며 최지민이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이리나에게 건네줬다.

이리나가 그것을 받고 히힛 웃었다.

순간 최지민은 뒤통수가 따가워 주방 쪽을 돌아봤다.

그러자 부러운 시선을 보내던 용성우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차.’

최지민이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가 강지한과 용성우에게도 사탕을 나눠주었다.

“당 충전하고 파이팅해요~”

“고마워, 지민아.”

용성우가 헤헤 웃으면서 사탕을 받아먹었다.

“성우 형.”

“응?”

최지민이 용성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속담 알죠?”

“알지.”

“거기에 답이 있어요.”

최지민은 윙크를 찡긋 하고서 바쁘게 손님들의 주문을 받았다.

반면 용성우는 얼굴이 빨개져서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최지민의 말을 듣고 난 강지한은 그제야 용성우의 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랬구나.’

애써 모른 척하며 강지한이 홀의 상황을 살폈다.

이리나와 최지민이 능숙하게 밀려드는 손님들을 소화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좀 버거워 보였다.

‘홀 알바를 한 명 더 받고 주방 알바도 뽑아야겠어.’

이제는 넷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수준까지 오고 말았다.

“김치찌개 둘이요!”

이리나가 첫 번째 주문을 받아왔다.

지한 분식의 김치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김치와 관련된 음식들의 판매가 연일 상승세였다.

김치라면, 김치수제비, 김치볶음밥은 지한 분식의 인기 메뉴가 됐다.

다른 메뉴들도 고루 잘 팔렸지만 김치가 들어가는 음식보다는 덜했다.

한창 서빙하던 최지민이 잠깐 짬이 나자 강지한에 말을 걸었다.

“근데 애견 카페도 장난 아니던데요?”

“뽀삐의 하루?”

“네, 오면서 봤는데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요. 다 설탕이 보러 왔나 봐요.”

마침 김치찌개 두 그릇이 완성됐다.

최지민은 그것을 들고 날랐다.

그러자 주방 한 편에서 김밥을 말던 용성우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설탕이 파워 대박이네요, 사장님! 헤헤.”

강지한은 기쁘다기보다는 너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설탕이가 스트레스나 받지 않을지 걱정됐다.

* * *

예소린의 애견 카페, ‘뽀삐의 하루’는 지한 분식 못지않게 인산인해를 이뤘다.

웨이팅은 없었지만 빈자리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바로 설탕이였다.

강지한의 걱정과 달리 설탕이는 사람들의 손길에도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원체 애정도를 받으며 성장하는 녀석이라 마냥 좋다고 헥헥거리며 재롱을 부리기 바빴다.

한 걸음 떨어져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설탕이를 보며 예소린이 생각했다.

‘저 정도면 스타견이네. 우리 설탕이 스타병 걸리는 거 아닌가 몰라.’

예소린이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깔끔한 세미 정장 차림의 이십 대 후반 남성이 들어섰다.

그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사람들 틈에 둘러싸인 설탕이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예소린이 그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쟤가 설탕이죠?”

남자는 인사에 대꾸도 없이 대뜸 그리 물었다.

“네?”

예소린이 당황하자 남자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꾸벅 고개 숙인 뒤 명함을 내밀었다.

“아, 실례했습니다. 반려견 잡지 도그앤라이프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브디렉터 로버트 정입니다.”

“저는 뽀삐의 하루 주인장 예소린이에요.”

예소린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아름다우시네요.”

예소린의 얼굴을 그제야 제대로 확인한 로버트 정이 느끼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러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실은 설탕이를 이번 우리 잡지 표지모델로 삼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저 서울에서 왔어요. 먼 걸음 했죠.”

“번지수가 잘못되셨어요.”

“알아요. 설탕이 아빠는 옆에 분식집 사장님이라는 거.”

“근데 왜 여기로…….”

“많이 바빠 보이더라고요. 신비한 동물의 세계 저도 봤어요. 영업 끝날 땐 항상 여기서 데려간다고 하던데요.”

“그때까지 기다리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죠?”

예소린이 설마 하며 묻자 로버트 정이 검지와 엄지를 세워 그녀를 가리키며 윙크를 날렸다.

“그걸 꼭 설탕이 아빠님께 어필해 주세요.”

로버트 정은 정말 밤 10시까지 강지한을 기다릴 참이었다.

“괜찮죠?”

넉살 좋게 허락을 구하는 로버트 정에게 예소린이 싱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일 인 일 음료수 부탁드립니다.”

* * *

지한 분식의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되려 할 때였다.

노영철이 한가해진 홀 안으로 들어서며 강지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강 사장님.”

노영철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방에 들어가 막 요리를 하려던 강지한이 용성우에게 말했다.

“성우야, 오늘 식사는 네가 책임져라. 나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하고 올게.”

“네, 사장님!”

강지한은 노영철과 함께 근처 한적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노영철의 앞에는 커피가, 강지한의 앞에는 음료수가 놓여 있었다.

“문전박대 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카페까지 데려와 주시고. 황송하네요.”

노영철이 능글맞게 말했다.

“그런다고 쉽게 가실 분 같아 보이지 않아서요.”

강지한이 농담으로 받으며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계속 불 앞에 서서 전쟁을 하다가 시원한 음료수가 넘어가니 살 것 같았다.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시네요. 제 별명이 거머립니다. 하하.”

“죄송한데 제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무슨 용건으로 오신 건지……?”

“아, 혹시 배틀 셰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TV보는 것을 좋아하는 강지한이 모를 리 없었다.

요즘 툭하면 광고를 때리는 요리 서바이벌 예능이 배틀 셰프였다.

“들어봤어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머리, 꼬리 다 자르고 본론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시종일관 능글맞던 노영철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강지한을 보며 물었다.

“배틀 셰프에 지원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어제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식당이 늘 바쁘게 돌아갑니다. 제가 없으면 마비가 되니 그럴 수가 없어요.”

“식당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휴일이 일요일이던데요. 우리 촬영도 일요일에 합니다.”

“……네? 톱 셰프처럼 전국에서 지원한 요리사들 몇 달 동안 가둬놓고 진행하는 게 아니에요?”

“지원자들 중에 생업이 있는 분들도 수두룩할 텐데 어떻게 그럽니까.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촬영을 진행합니다. 우선 2회 분량을 미리 뽑아놓고 갈 겁니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진짜를 가려내는 시간이죠.”

“실력이 부족하면 2주 만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하지만 강 사장님께서는 더 오래 촬영하실 생각으로 임하셔야죠. 절대 초반에 떨어질 실력이 아닌데.”

말을 하는 노영철의 머릿속으로 어제 먹었던 떡볶이와 수제비가 떠올랐다.

그 맛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사실 지방에 있는 요리사 한 명 섭외하겠다고 피디가 직접 올 필요는 없었다.

한데 대학 동기이자 INTV 촬영감독인 정민석이 그 집 음식은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을 해서 몸소 오게 된 것이었다.

그냥저냥 맛있는 수준이면 그는 정민석에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해줄 참이었다.

그러나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정민석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지한 분식의 음식은 그 정도였다.

“이렇게 실력 좋으신 분이 설마 분식점 하나로 만족할 건 아니잖아요? 유명세 타서 더 큰 물로 나가셔야죠.”

노영철이 열심히 혀를 놀렸다.

하나 강지한은 그런 말에 혹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분식점에서 그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그다.

유명세까지는 필요 없고 자신의 텔레비전 출연이 어느 정도 화제가 되어 앞으로 계획하는 전문점의 오픈에 도움된다면 그걸로 족했다.

‘전국엔 고수가 어마어마할 텐데. 내가 아무리 레벨 업 시스템을 등에 업고 도전한다 해도 오래 살아남지는 못하겠지.’

강지한은 아직 상대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견주어볼 요리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강지한의 대답에 노영철이 방긋 웃었다.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 *

오후 9시.

애견 카페도 슬슬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손님들이 카페에서 나갔건만 로버트 정은 꿋꿋하게 애견 카페를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설탕이에게 계속해서 놀라는 한편, 푹 빠져드는 중이었다.

이제는 강지한을 기다리기 위해 카페에 있는 건지, 설탕이가 좋아서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우쭈쭈~ 그래그래.”

로버트 정은 설탕이의 턱을 쓰다듬으며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설탕아, 노래해 봐.”

우우우~!

노래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설탕이가 목을 위로 젖히고서 크게 울었다.

그러자.

아우우우~!

우우우~!

아오오오오~!

애견 카페에 있던 모든 강아지들이 설탕이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카페 안에서 강아지들의 합창이 벌어졌다.

“그것 참 신기하네.”

이제 일 년도 채 안 된 조그만 녀석이 꼭 대장 같이 행동하니 보면 볼수록 놀라운 일이었다.

로버트 정은 설탕이 말고도 다른 강아지들과 열심히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꼬르륵.

카페에 변변찮은 끼니 꺼리가 없어 배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

뱃가죽 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바닥을 청소하던 예소린의 귀에도 확연히 들렸다.

“분식집 가서 한 끼 드시고 오시라니까요. 지금이라도 가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할 수 있을 거예요.”

예소린의 말에도 로버트 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드라마틱하지가 않아요.”

설탕이 아빠의 허락을 받기 위해 끼니도 거른 채 오로지 설탕이만 바라보며 기다렸다는 드라마틱함을 로버트 정은 원했다.

“배 많이 고파 보이시는데. 아니면 편의점 가서 뭐라도 드세요. 모르는 척해 드릴게요.”

“진정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법이죠. 아, 청소라도 도와드릴까요? 가만히 있으려니 아무래도 눈치가 좀…….”

“강아지들이랑 계속 놀아주시는 게 저 도와주는 거예요. 평소에는 청소하는 내내 쫓아다녀서 정신 하나도 없거든요. 근데 저도 배고프네요. 정말 밥 안 드실 거예요?”

“네.”

“그럼 저 혼자 먹어요?”

말을 하며 예소린이 카운터로 향했다.

거기엔 카페 알바가 퇴근하기 전 지한 분식에서 사온 어묵과 어묵 국물이 위생봉투에 담겨 있었다.

아직 따뜻해서 따로 데울 필요가 없었다.

예소린은 위생봉투에 있던 것을 냄비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어묵 하나를 집어 먹었다.

“음~ 맛있어.”

입안에서 깊고 맑은 국물을 가득 머금은 어묵이 특유의 풍미를 퍼뜨리며 쫄깃하게 씹혔다.

지한 분식의 어묵은 늘 그 익힘 정도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예소린이 어묵 하나를 더 입에 넣으려 하는데.

“어머나.”

로버트 정이 강아지들을 우르르 이끌고 카운터 앞에 다가와 어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어묵 냄새를 맡은 강아지들이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로버트 정은 더 많이 흘리고 있었다.

“하나…… 드려요?”

로버트 정은 대답 대신 입을 벌렸다.

예소린이 그의 입에 어묵을 던져 넣었다.

오물거리며 어묵을 씹는 로버트 정의 표정이 점차적으로 변하더니 나중에는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사장님.”

“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로버트 정이 바람처럼 카페를 나갔다.

* * *

먼저 퇴근한 최지민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이 함께 식당을 정리하는 시간.

딸랑-!

현관문이 과격하게 열리며 말끔한 인상의 남자가 다급히 들어섰다.

로버트 정이었다.

그가 홀이 마무리 되어가는 분위기를 느끼고서 냅다 물었다.

“사장님! 아, 아직 식사됩니까?”

대체 여기에 계약을 하러 온 건지, 식사를 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어지는 로버트 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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