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Restaurant 55. 지한 김치
정민석은 신이 났다.
그가 촬영한 아이템이 대박을 터뜨렸다.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예능국장에게 치하의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INTV 동물예능프로의 게시판이 폭주했던 건 개설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크흐흐. 설탕이 그게 복덩이였네.”
설탕이도 설탕이지만 강지한의 마스크 덕도 한몫했다.
귀여운 설탕이와 훈훈한 강지한의 케미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이 나간 다음 날인 오늘도 게시판에는 족족 어제의 영상에 대한 관련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 * *
노영철은 지상파 KBM의 예능프로 피디다.
그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 한 작품을 상당한 성적으로 종영했다.
이후 후속작으로 ‘배틀 셰프’란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국의 요리사들이 여러 가지 룰이 주어지는 요리 대결에서 우열을 다져 최후의 1인을 뽑는 경연대회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톱 셰프’를 벤치마킹한 프로그램이었다.
이전 프로그램의 성공에 힘입어 예능국에서는 노영철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제작단계에 들어가는 동안 광고를 짱짱하게 내주었다.
우승 상금 3억이라는 엄청난 액수도 제시했다.
사실 경연프로그램에서 3억이라는 상금은 이것저것 다 떼고 나면 남는 게 8천에서 1억 정도가 고작이다.
때문에 늘 우승상금 3억이 아니라 ‘총 3억’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말장난 없이 3억을 세금만 떼고 그대로 지급할 것이라고 떡하니 공고를 냈다.
그에 배틀 셰프 지원자 게시판은 전국의 수많은 요리사들의 지원으로 연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방송국이나 프로그램 관계자들 입장에선 아주 바람직하고 기분 좋은 현상이었다.
하지만 너무 지원자들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원을 한 사람들 중 1퍼센트 정도만 진짜배기고 나머지는 어중이떠중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방송이라는 건 무엇보다 화제성이 있어야 하는 법.
특히나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경우 화제성이 더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심사위원들 자리에는 몸값이 한창 오른 스타 셰프를 앉혀 놓았다.
아울러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지원자를 찾아 ‘참가 부탁’을 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었다.
주로 타깃이 되는 건 소문이 나기 시작하는 맛집의 주방장들이었다.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나버려 먹고살기 충분한 이들의 경우 출연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없기에 섭외가 힘들다.
노영철은 그런 기준에 적합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자료들을 수집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어제 머리 좀 식힐 겸 틀었던 INTV 신비한 동물의 세계에서 예상 못했던 인물을 보게 됐다.
“지한 분식 강 사장이라.”
이미 춘천에서는 나름 이름이 퍼진 신생 분식집이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었다.
“분식이 끽해 봤자 분식일 텐데…… 민석이가 괜히 오버해서 시나리오 때린 거 아니야?”
노영철은 정민석과 같은 대학 방송영상과 동기였다.
한 명은 지상파 피디가 되었고, 한 명은 시청률 낮은 케이블TV 촬영감독이 되었지만 연락은 꾸준히 하고 있었다.
노영철이 바로 정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민석아. 물어볼 게 있는데…….”
* * *
더 이상 지한분식에서는 김치 판매를 하지 않았다.
이리나는 김치 구입을 원하는 손님들에게 미리 준비해 두었던 조미옥의 명함을 안겨주었다.
명함의 앞면엔 ‘지한 김치’라는 상호명과 매장의 전화번호가, 뒷면에는 위치가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 * *
지한 김치의 오픈 날.
독고진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매장을 들락날락거리며 방정을 떨자 조미옥이 기어코 한마디를 했다.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설치지 말고 얌전히 좀 있어.”
“엄마, 나 담배 좀 피우고 올게.”
“영업 끝나고 피워! 그리고 이번 주 내로 끊어. 면전에서 손님 상대해야 하는데 담배 냄새 나면 얼마나 역한 줄 알아?”
“담배가 그리 쉽게 끊어지는 줄 알아?”
“그런 각오도 없이 매장에서 손님 맞으려고 했어? 너 그럴 거면 나가.”
“알았어. 알았어. 진짜 성질 하고는.”
독고진이 툴툴대던 그때, 첫 손님이 매장을 찾았다.
풍채가 넉넉한 주부였다.
“어서 오세요~ 지한 김치입니다.”
조미옥이 방긋 웃으며 주부 손님을 반겼다.
매장 안에는 배추김치 말고도 총각김치와 열무김치, 백김치, 깍두기, 파김치가 종류별로 마련되어 있었다.
배추김치의 비율이 70퍼센트였고 나머지 김치들이 30퍼센트를 골고루 나눠 먹었다.
주부 손님은 매장에 가득한 김치를 보며 행복한 얼굴이 됐다.
“매장 찾기가 조금 힘들긴 한데 양껏 살 수 있으니 좋네요! 호호.”
그녀의 손이 1킬로씩 포장된 김치를 바쁘게 잡았다.
배추김치만 7킬로에 총각김치, 파김치, 백김치를 각각 1킬로씩 총 10킬로를 가져온 손님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배달도 돼요?”
“5킬로 이상 사시면 무료로 해드려요. 근데 오후 7시쯤 일괄로 해드리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그럼 부탁 좀 할게요.”
“주소 적어주세요.”
주부 손님이 주소를 적고서는 김치값을 지불하고 떠났다.
“첫 손님부터 통 크게 사가네.”
“이따 7시에 배달 잘 다녀와. 어디에 물건 보내야 하는지 헷갈리지 말고.”
“엄마, 내가 배달만 몇 년인데 그런 걸 걱정해.”
두 모자가 잡담을 나눌 때 또 다른 손님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지한 김치예요.”
* * *
송유리의 블로그는 한 달이 넘도록 닫혀 있었다.
하늘 분식과 커넥션을 해 지한 분식을 악의적으로 깎아내린 사건이 들통 난 그녀는 블로그 이웃들에게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이후 그녀는 전공을 살려 작은 디자인 회사에 취업해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불개미라는 이름의 디자인 회사는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하곤 했다.
각자 집에서 간단하게 도시락을 싸와 함께 먹으며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송유리의 도시락은 늘 그녀의 엄마가 싸주었다.
나름 유명했던 맛집 블로거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요리엔 특별한 재능이 없는 그녀였다.
“밥 먹자!”
점심시간이 되자 정 실장이 마우스를 팽개쳤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다섯 명의 회사 식구들이 도시락을 꺼내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도시락을 열어 서로의 반찬을 확인했다.
그런데 오늘 송유리는 자신의 반찬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엄마가 바빴던 것인지, 아니면 귀찮았는지 김치에 소시지 볶음 두 가지뿐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그런 걸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 송유리 본인은 뺨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이거 너무 좀…….’
그때 정 실장이 송유리의 소시지를 날름 집어 먹었다.
“이야, 나 이거 겁나 좋아하는데. 냠. 음~ 맛있네. 오늘 반찬 죽이는데, 유리 씨!”
정 실장의 너스레에 송유리의 마음이 그나마 편해졌다.
“김치도 맛있어 보인다.”
정 실장은 송유리의 김치도 하나 가져가 씹었다.
송유리가 무안해하는 게 너무 드러나기에 소시지 볶음을 먹을 때처럼 분위기나 띄우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김치 한 조각이 입에 들어가 아삭하게 씹히는 순간 정 실장은 더 이상 송유리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와.”
짧은 감탄을 토한 정 실장이 다시 김치를 집어 먹었다.
그 광경을 다른 이들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평소 초딩 입맛이라 김치를 먹긴 해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그였다.
옳은 수순이라면 젓가락이 김치가 아닌 소시지 볶음에 한 번 더 가야 했다.
한데 정 실장의 젓가락이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김치로만 향했다.
“뭐야? 왜 이래?”
보다 못한 박 대표도 송유리의 김치를 맛보았다.
그리고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리 씨, 김치 대박 맛있는데?”
“네?”
송유리는 왜들 저렇게 오버하나 싶었다.
그녀의 엄마가 요리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김치를 특별히 잘 담그는 것 또한 아니었다.
게다가 김치는 담그는 것 자체가 일인지라 몇 년 전부터는 시제품을 사먹고 있었다.
박 대표의 말에 다른 직원들도 송유리의 김치를 먹었다.
그러고는 하나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쯤 되니 송유리도 김치 맛이 궁금해서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제야 그녀는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김치를 담그면 이렇게 되는 거야?’
그녀가 파워블로거 활동을 하며 숱한 맛집을 다녀봤었어도 이런 김치를 먹어본 건 처음이었다.
“이제 보니 유리 씨 반찬이 간단한 이유가 있었네.”
“그러게. 김치가 이렇게 맛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지.”
“유리 씨, 김치는 산 거야? 어머니가 담그신 거?”
“샀을…… 걸요?”
“어딘지 물어봐서 나도 좀 알려줘.”
“그럴게요.”
결국 그날 점심시간 최고 인기 반찬은 송유리의 김치였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송유리였다.
* * *
늦은 밤.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송유리는 다짜고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김치 어디서 산거야?”
막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던 그녀의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맛있지? 지한 김치라고 새로 오픈한 곳이 있는데 거기서 어제 사온거야. 5킬로 이상 사면 공짜 배달도 해주더라.”
“지한…… 김치?”
“너 혹시 지한 분식이라고 알아?”
“알긴 아는데…….”
송유리의 부모는 그녀가 블로그를 운영했었다는 걸 몰랐다.
때문에 그녀와 지한 분식 사이에 있었던 일 역시 알지 못했다.
“거기 사장님이 김치 매장을 따로 냈더라고.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송유리의 엄마는 며칠 전 지인을 따라 지한 분식을 처음 가봤다.
그리고 거기 음식이랑 김치 맛에 푹 빠져서 김치 매장도 찾은 것이다.
“앞으로 김치는 거기 것만 사먹으려고.”
송유리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후덕한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한 분식……. 하, 나 엄청 후지다.’
‘지한’이라는 이름 앞에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끼는 송유리였다.
* * *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매장을 정리하는 강지한에게 조미옥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네, 사장님.”
-강 사장님! 우리 대박 났어!
“네?”
-오늘도 가져온 김치 거의 다 팔렸어요!
잔뜩 격양된 조미옥의 목소리에 강지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이에요? 와아.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잘 팔아주셔서 감사드려요.”
-감사는 내가 해야지! 강 사장. 나 일하면서 이렇게 즐거운 거 정말 오래간만이야. 고마워. 내가 너무 고마워.
조미옥의 음성이 촉촉이 젖어들어 갔다.
옆에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하고 외치는 독고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제, 오늘 연일 김치가 거의 동이 날 정도로 팔려 나갔다.
지한 김치의 시작은 매우 희망적이었다.
“후우.”
조미옥과의 통화를 끝낸 강지한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김치가 맛있다고 해도 장사란 것이 생각대로만 흘러가 주는 게 아닌지라 은근히 걱정이 되던 터였다.
‘하지만 아직 마음 놓지 말자.’
장사란 수많은 변수가 생기는 법이라고 김숙자가 몇 번 주의를 주었다.
잘된다고 들뜨지 말고 안 된다고 좌절 말라는 말도 함께해 주었다.
김숙자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린 강지한이 식당 문을 닫고 애견 카페로 향하다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살폈다.
저녁에 어떤 손님에게서 받은 명함이었다.
그는 음식을 정말 잘 먹었다며 내일 한가할 때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겨두고 떠났다.
명함에는 ‘KBM 예능국 PD 노영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