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Restaurant 54. 지한 분식 방송 타다
김숙자는 오래간만에 집에서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가졌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게 뭔데?”
“뻔한 거 가져오면 실망할 거야.”
“나는 영숙이네랑 약속 잡은 것도 미루고 왔단 말이야.”
“숙자가 언제 시답잖은 걸로 호들갑 떠는 거 봤어?”
“빨리 내와봐.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겠어.”
김숙자의 집에 모인 친구들 다섯 명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아휴, 시끄러. 접시 깨지겠네.”
친구들의 성화에 부랴부랴 주방에서 나온 김숙자.
그녀의 손엔 커다란 냄비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친구들의 코가 벌름벌름거렸다.
“킁킁! 엥? 이거 많이 맡아보던 냄샌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김치찌개면 밥상 엎어버리는 수가 있어, 숙자 씨!”
친구들이 설마설마하는 눈빛을 김숙자에게 던졌다.
김숙자는 씩 웃더니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담긴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치찌개였다.
“뭐야~ 대단한 거라도 해오는 줄 알았더니 정말 김치찌개였어?”
“그 주둥이들 좀 닫고 맛부터 봐봐.”
“주둥이를 닫고 어떻게 맛을 봐? 열고 봐야지.”
“깔깔깔! 그 말이 맞네!”
가장 먼저 숟가락을 든 건 지한 분식 단골 고딩 유정미의 엄마 이영지였다.
“호록. 옴마?”
이영지의 입에서 ‘옴마?’라는 말이 나오자 다른 사람들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그녀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 저런 추임새를 뱉는다.
“그 정도야? 어디.”
옆에 있던 친구 박신혜의 숟가락이 급해졌다.
“호록. 음…… 얘들아, 속았다. 이거 맛없어.”
“거짓부렁하고 있네.”
“신혜가 맛없단다! 진짜 맛있는가 보다.”
“쟤는 맛있는 거 먹으면 꼭 혼자 먹으려고 저런다니까. 피노키오 된다, 너.”
아줌마들의 수다는 대단했다.
입이 도통 쉬지를 않았다.
그러면서도 숟가락은 일괄적으로 김치찌개 안에 담겼다.
동시에 찌개를 맛본 아줌마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니, 이거 어떻게 끓인 거야, 향숙 엄마?”
“레시피 좀 공유해 봐!”
“내가 태어나서 먹어봤던 김치찌개 탑 쓰리 안에 들겠어.”
“우리 엄마 찌개는 저리 가라네.”
친구들의 성화에 김숙자의 입이 귀에 걸렸다.
“호호호. 그거 내가 만든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끓이기는 내가 끓였는데 육수랑 양념장이랑 김치는 전부 받아온 거야.”
“어디서?”
“지한 분식 알지?”
“아~ 그 리어카 청년이 오픈한 분식집? 거기서 이제 찌개도 팔아?”
“우리 초반에 갔을 때는 그냥 라면, 김밥, 떡볶이 이런 것밖에 없었는데.”
“그만들 떠들고 김치도 먹어봐.”
김숙자는 사흘 전 강지한에게 김치도 받았었다.
친구들이 고분고분 김숙자의 말을 들었다.
“옴마.”
이영지가 또 옴마라고 했다.
김치를 먹은 다른 친구들은 한바탕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 김치 어디서 났어? 샀어?”
“지한 분식 가면 기본으로 나오는 찬이야. 살 수도 있고.”
“이런 김치 한 번 먹으면 다른 김치는 입에도 못 대겠네.”
“그치? 지금은 분식집에서 살 수 있는데, 곧 김치 매장을 열 거래. 오픈하면 홍보 열심히들 해줘. 분식집 홍보도 많이들 해주고.”
“숙자 너. 이제 보니까 그 총각 하는 일들 광고해 주려고 우리 불렀구나?”
“알면 어떻게 해야 돼?”
“열심히 광고할게요~”
“깔깔!”
김숙자의 친구들이 한바탕 크게 웃고서는 다시 먹는 데 집중했다.
수다스럽기로는 이 동네 제일가는 친구들인 만큼 강지한의 장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김숙자는 생각했다.
* * *
3월 27일.
보너스 스테이지의 만족도 시스템이 끝나는 날이다.
강지한은 레벨 업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데 15만 포인트를 썼었다.
그럼에도 보름의 기간 동안 다시 7만 5천 포인트가량을 벌어들였다.
기존에 있던 누적 포인트와 합하면 10만 포인트가량이 되며, 현금화 할 시 1억이라는 거금으로 변한다.
새로운 단골도 7명이 늘어 단골 포인트는 7이 누적되었다.
아울러 설탕이도 한 단계 더 레벨 업 했다.
설탕이의 레벨이 12가 되며 지능과 교감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잠겨 있던 능력은 더 이상 개방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교육으로도 충분히 여러 가지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수준에 달했기에 무의미해진 것이다.
명성 역시 50이 넘어갔다.
설탕이에 대한 소문이 춘천의 애견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 이제는 설탕이를 보려고 예소린의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 중 반 정도는 지한 분식의 손님으로 이어졌다.
설탕이가 레벨 업을 함으로써 럭키 박스 역시 필요조건을 충족했다.
럭키 박스가 내어준 행운의 아이템은 만족도 포인트 300이었다.
그리고 럭키 박스의 다음 레벨 업 조건은 ‘물어오기 1회 성공’으로 바뀌었다.
지한 분식의 메뉴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본 메뉴에 수제비와 김치 수제비가 추가됐다.
제육덮밥의 레벨은 4에서 5로 업그레이드됐다.
레벨 업 한 제육덮밥은 물로 새로 추가된 두 가지 메뉴의 판매량은 갈수록 늘어났다.
특히 수제비를 유독 좋아하는 일부 손님들은 지한 분식을 수제비 맛집으로 주변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만큼 강지한이 만든 수제비는 완성도가 높았다.
맑은 국물의 담백함은 잡고 수제비의 쫄깃함은 극대화시켰다.
그런 수제비에 김치까지 추가해서 끓인 김치 수제비는 얼큰하고 깊은 풍미의 또 다른 매력으로 손님들을 사로잡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찾아온 브레이크 타임.
직원들과 식사를 끝낸 강지한이 무심코 달력을 살폈다.
보너스 스테이지를 시작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라니.
요식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후 하루하루가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어? 오늘 27일이야?”
강지한의 말에 이리나가 대답했다.
“네, 오빠. 그리고 우리 설탕이가 방송에 나오는 역사적인 날이에요.”
“본방은 사수하기 힘들겠다.”
지한 분식의 실내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사실 있다고 한들 너무 바빠서 볼 시간이나 있겠냐마는.
아무튼 오늘은 화요일이고 신비한 동물의 세계는 오후 6시에 시작한다.
“아~ 이럴 땐 텔레비전 없는 게 아쉽네요.”
최지민의 말이었다.
최지민은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설탕이로 인해 처음으로 강아지가 예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설탕이 광팬이 되었다.
“오늘만 생각하면 아쉬운데 개인적으로는 텔레비전이 없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그건 용성우의 말이었다.
“왜요?”
최지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용성우에게 집중됐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는 건 그중 강지한밖에 없었다.
용성우가 강지한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괜찮아, 성우야. 말해봐.”
“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 텔레비전이 없으니 손님들의 주의가 다른 곳으로 분산되지 않고 음식에만 집중되는 것 같아서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강지한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을 놓을까 고민도 했었지만, 용성우가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들여놓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분식집에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난 오늘 다운로드해서 봐야지~! 우리 설탕이 얼마나 예쁘게 나올지 기대된다.”
이리나가 기지개를 쭉 펴며 말했다.
“우리도 나오지 않을까요? 식당에서 서빙하는 거 찍혔잖아요.”
최지민이 기대에 차서 눈을 빛냈다.
“봐야 알지. 자자~ 브레이크 타임 끝나가네요. 저녁 타임도 힘내자구요!”
이리나의 파이팅에 용성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용성우를 보며 최지민이 속으로 생각했다.
‘성우 형님은 감정이 겉으로 다 드러나서 귀엽단 말이야. 그나저나 리나는 성우 형님 마음을 진짜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사장님도 모르는 눈치고……. 나만 눈치챈 거야?’
하루의 6일을 함께 하며 지내다 보니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는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 * *
밤 10시.
모든 직원들이 퇴근하고 강지한도 주방을 마무리했다.
[영업을 마감하시겠습니까?]
“응.”
[오늘의 실적을 최종 평가해 인지도에 반영합니다.]
[목표: 럭키 박스를 레벨 10까지 업그레이드하세요. 6/10]
[보너스 스테이지를 시작한 지 30일이 됐습니다. 손님에게서 더 이상 만족도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만족도를 흡수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났다.
* * *
“으윽.”
강지한은 브라운관을 통해 비추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강지한의 품에 안긴 설탕이는 주인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반갑다는 듯 왕! 하고 낮게 짖었다.
그러다 자기 모습이 나올 땐 신이 나서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갔다.
“설탕아, 너 우리 둘이 저기 나오는 거 아는 거니?”
설탕이는 대답하지 않고 열심히 텔레비전 영상에만 집중했다.
영상은 정민석이 미리 말해주었던 시나리오대로 한 치의 틀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설탕이가 내용의 주였지만, 녀석이 나오면서 강지한과 함께 지한 분식 또한 방송을 타게 됐다.
피크 타임에 웨이팅이 걸리는 것은 물론 정신없는 주방의 광경, 음식을 먹으며 감탄하는 정민석의 리액션까지.
“설탕아, 넌 화면 빨도 어쩜 저리 잘 받니. 근데 내 얼굴은 영…… 어색해서 못 보겠다.”
강지한은 영상에 자신이 나올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설탕이는 본인의 모습이 나오면 눈이 커져서 헥헥 대며 꼬리를 마구 돌렸다.
30분이 조금 안 되는 영상이 끝나고 나서야 강지한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게…… 전국으로 전파를 타고 나가 버린 거지?”
이제 얼굴 다 팔렸구나 싶은 강지한이었다.
* * *
자정이 넘은 시각.
강지한이 잠들기 전 밖으로 나가 김치 숙성고를 살폈다.
숙성고 안에는 서로 다른 날짜에 담겨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들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전부 조미옥과 독고진, 그리고 진경혜의 고생으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진경혜는 조미옥이 김치 사업에 일꾼으로 들인 여인이었다.
한때 진경혜는 조미옥의 치킨 집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다.
그나마 치킨 집 장사가 잘됐을 때의 얘기였다.
사람이 성실하고 인성이 좋아 일을 그만둔 후에도 조미옥은 그녀와 계속 연을 맺고 지냈다.
요즘에 따로 하는 일이 없다기에 힘 좀 보태 달라 부탁을 했고, 진경혜는 바로 조미옥의 손을 잡았다.
아무튼 강지한은 양념만 만들어 주고 담그는 건 그 세 명이 전부 했다.
김치를 담그는 작업은 강지한의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강지한은 대문 복사키를 조미옥에게 줬고, 사용하지 않는 별채의 문을 늘 열어놓았다.
별채에도 화장실이 따로 있었으므로 사람들의 볼일을 해결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또한 마당에 수도가 있어 물을 사용할 때 편했다.
해서 조미옥은 사람들을 데리고 강지한의 집 마당에서 김치를 담가 숙성고에 잘 넣어놓곤 했다.
“이제 내일이네.”
내일은 드디어 지한 김치의 오픈 날이다.
새벽이면 독고진이 트럭을 몰아 김치를 실으러 올 것이다.
“잘되겠지.”
강지한은 내일 나갈 김치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비로소 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 * *
INTV 신비한 동물의 세계 시청자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설탕이 매력에 완전 빠졌어요~♥
-저 여기 알아요! 석사동에 있는 지한 분식이에요!
-사장님 진짜 잘생겼다.
-오늘 방송 설탕이 보다가 심쿵사 할 뻔.
-설탕이 일 년도 안 된 댕댕이 맞아요? 천재견의 범주를 넘어선 듯.
-설탕이 한 번 더 출연시켜 주세요!
-춘천을 가야 하나?
시끌벅적할 때보다 조용할 때가 더 많은 게시판이 오늘 하루 동안만 수십 건의 글들이 올라왔다.
그중 설탕이의 지분이 70퍼센트, 강지한의 지분이 30퍼센트였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설탕이뿐만 아니라 강지한과 지한 분식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