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Restaurant 53. 관찰의 눈
김밥이 담긴 도시락 뚜껑을 연 하진우는 왜 강지한이 이렇게 포장을 해줬는지 알 수 있었다.
뚜껑에는 작은 핫팩이 붙어 있었다.
천냥마트에서 개당 300원에 파는 미니 핫팩이었다.
사이즈가 작은 만큼 열기의 유지력은 길어야 세 시간이 고작이었다.
크기로 인해 발열의 강도가 다른 핫팩들에 비해서 약하기도 했다.
하나 그 핫팩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딱이었다.
하진우가 김밥을 사와 산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김밥의 온기가 유지될 수 있었으며, 핫팩이 너무 뜨거우면 열기로 인해 되레 김밥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열기와 밖에서 자꾸 침투하는 찬기가 어우러져 김밥은 상하지도 차갑게 식지도 않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게 됐다.
“진우야. 이거 어디서 사왔어? 사장님 배려가 어마어마하네.”
“핫팩 진짜 센스 있다.”
“막내 덕에 이 날씨에 따뜻한 김밥 먹겠네.”
선배 예술인들의 칭찬이 쏟아지자 하진우의 기분이 좋아졌다.
“제가 신경 좀 썼어요.”
막내의 넉살에 선배들이 가볍게 웃었다.
“그럼 먹자.”
구자승이 말을 하고서는 김밥 한 줄을 천명옥에게 넘겼다.
“드세요, 천 선생님.”
“잘 먹을게요, 작가님.”
두 사람은 김밥의 은박지를 벗기고 꼬다리부터 입안에 넣었다.
사실 김밥을 담아준 주인의 정성에는 감동했으나 맛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김밥 맛이야 어디서 사먹든 거의 비슷비슷했다.
한데, 김밥을 씹는 순간 혀로 전해지는 맛의 향연에 구자승의 눈이 커졌다.
“음?”
“오.”
구자승과 천명옥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는 다시 김밥을 집어 먹었다.
“맛있네요. 정말 맛있어요.”
구자승이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는 식도락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유흥이 먹는 것일 정도로.
천명옥과 긴밀한 사이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먹을 것을 좋아하다 보니 주변에 자연 요리와 관련된 직종에서 일을 하는 이들과의 교류가 많아졌다.
그러다 천명옥과도 연이 닿았고 마음이 통해 깊은 관계가 된 것이다.
“천 선생님은 어떠세요?”
구자승의 물음에 천명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확 뜨이는 맛이에요. 춘천에서 이렇게 김밥을 잘 마는 곳이 있는 줄 몰랐는데.”
“듣고 보니 그러네? 춘천의 맛집이라면 우리 천 선생님께서 꽉 잡고 있을 텐데.”
천명옥은 진심으로 김밥의 맛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김밥 한 알을 입에 넣고 그 맛을 곱씹었다.
순간 지한 분식에 염탐을 가며 맛봤던 김밥의 맛이 떠올랐다.
‘맛있었지, 그 김밥도.’
사실 놀랐었다.
아직 젊어 보이는 청년의 손에서 그렇게 수준 높은 김밥이 탄생했다는 것이.
한데 지금 이 김밥은 그 김밥보다 더 맛있었다.
‘맛이 비슷한데.’
지한 분식의 김밥과 비슷한 맛이긴 하나 전체적인 그레이드가 확 올라간 듯한 느낌이었다.
천명옥이 혹시나 싶어 하진우를 불렀다.
“진우 씨.”
“…….”
하지만 하진우는 대답이 없었다.
그 역시도 김밥에 푹 빠져 정신을 놓고 있었다.
지한 분식의 김밥은 먹을 때마다 감동이었다.
하진우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김밥 맛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진우 씨?”
천명옥이 다시 부르니 그제야 돌아보는 하진우.
“아, 네?”
“이 김밥 어디서 사왔어요? 참 맛있네요.”
“그쵸? 맛있죠? 그거 지한 분식이라는 곳에서 사왔어요.”
그 말에 천명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한 분식이요?”
“네. 석사동에 있는 건데 위치가…….”
“괜찮아요. 어딘지 알아요.”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지한 분식 김밥일 줄이야.
‘그 사이에 또 실력이 늘었다니.’
범상찮은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이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일 줄은 몰랐다.
천명옥은 머릿속에 박힌 강지한의 평가를 한 단계 높이 수정했다.
‘그건 그렇고…….’
천명옥이 김밥 하나를 더 입에 넣었다.
‘정말 맛있어.’
그것은 그녀가 근 몇 년 사이 먹어봤던 중 가장 맛있는 김밥이었다.
“지한 분식? 거기 꼭 가봐야겠군.”
구자승의 말이었다.
김밥 맛을 보니 요리 솜씨가 좋을 건 뻔했고, 핫팩을 넣어 김밥의 온기를 유지해 주는 것이 고객을 생각하는 마인드까지 좋다.
그는 지한 분식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기억했다.
* * *
[포장 손님께서 식사를 마쳤습니다. 포장을 해간 손님 외 18명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만족도는 보너스 점수를 합산해 각각 51, 53, 50, 52……]
‘왔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포장 음식을 먹은 모든 사람의 만족도가 50 이상이어야 한다.
과연 강지한의 핫팩 아이디어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했을 것인지 조마조마했다.
손님들의 만족도는 계속해서 표기됐다.
열 명이 넘을 때까지 만족도는 전부 50 이상이었다.
열다섯 명까지도 50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제발.’
강지한이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50, 51, 51]
‘마지막 한 명.’
요리를 하는 강지한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54로 총 989점입니다.]
포장 음식을 먹은 손님 19명의 만족도가 전부 50을 넘었다.
‘됐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관찰의 눈을 얻었습니다.]
[특수 능력에 관찰의 눈이 추가되었습니다.]
강지한의 레벨 업 현황에 관찰의 눈이 추가됐다.
그것은 다른 요리사의 동작을 관찰해야 발동하는 스킬로 지금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서 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 *
오늘도 바쁜 하루를 마친 강지한은 이향숙의 집에 들렀다.
맡겼던 설탕이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늦은 시간인데도 김숙자는 강지한을 무척 반겨주었다.
“지한 총각~ 요새 얼굴 보기 너무 힘들어서 서운하네.”
“죄송해요, 어머니. 별일 없으셨죠?”
“그럼~. 향숙아! 너 빨리 안 나와?”
김숙자가 고함을 지르자 이향숙이 마지못해 자기 방에서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그녀의 품에는 설탕이가 꼭 안겨서 꼬리를 치고 있었다.
“설탕이 내일 데려가도 뭐라고 안 할게.”
이향숙은 자신이 선심이라도 쓰는 양 말했다.
그런 이향숙의 등짝을 김숙자가 후렸다.
짝!
“으앗!”
깜짝 놀란 이향숙이 설탕이를 놓쳤다.
그 순간 설탕이가 짧은 발을 놀려 강지한에게 달려가 힘껏 점프해서 품에 안겼다.
“저거 봐. 저렇게 주인 좋아라하는 애를 강제로 데리고 있으려 해?”
“설탕이도 나 좋아해!”
“으이그.”
강지한이 난처하게 웃었다.
“다음번에는 설탕이랑 더 오래 있게 해줄게. 설탕이도 향숙이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정말? 정말?”
강지한은 의식 못했지만 이향숙은 언젠가부터 강지한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갈수록 강지한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강지한도 이향숙이 친동생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어머니, 이거 받으세요.”
강지한이 한 손에 들고 있던 묵직한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어머니 저번에 우리 식당 와서 김치찌개 드시고는 극찬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식당 김치랑 찌개 육수랑 양념장 가지고 왔어요.”
“어머어머, 정말?”
쇼핑백을 넘겨받아 안을 살펴보는 김숙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안에 보면 제가 메모장에다가 조리법 적어놨어요. 거기 레시피대로 정량 지키시고, 재료 넣는 시간 똑같이 해서 끓이면 우리 식당 김치찌개 맛이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날 거예요.”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었다.
용성우 정도 되면 몰라도, 일반인이 강지한의 김치, 육수, 양념으로 찌개를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아이구, 이 귀한 걸. 고마워서 어쩜 좋아, 지한 총각.”
“제가 어머니께 진 신세 생각하면 아직 새끼손톱만큼도 못 갚았는데요, 뭘.”
“우리 지한 총각은 어쩜 이리 말도 예쁘게 하는지 몰라.”
강지한을 바라보는 김숙자의 눈동자가 우수에 잠겼다.
먼저 떠나보낸 그녀의 큰아들도 말하는 것이며 성정이 딱 강지한과 같았었다.
“그럼 그만 가볼게요. 또 찾아뵐게요, 어머니.”
“그래요. 그래요. 조심해서 들어가고. 언제나 운전 조심하고.”
“네.”
“설탕아~ 잘 가아아아! 날 잊지 마!”
“이년이, 지한 총각 가는데 강아지한테만 인사해? 너 일루 와!”
김숙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이향숙이 자기 방으로 도망쳤다.
쾅! 하고 문이 닫히기 전 방문 틈새로 그녀의 음성이 새나왔다.
“자주 좀 와, 오빠! 얼굴 까먹겠네!”
겉으로는 천둥벌거숭이같이 행동하지만 속은 깊고 따뜻한 이향숙이었다.
* * *
강지한이 텔레비전으로 수제비 달인의 동영상을 시청했다.
브라운관 너머로 보이는 수제비 달인의 손동작은 역시나 대단했다.
식용유를 손에 조금 바르고서 끓는 육수에 수제비를 바람처럼 뜯어 넣는데, 모양과 두께가 일정했다.
반죽을 잡은 손은 엄지를 살짝살짝 움직이며 수제비를 앞으로 밀어냈다.
동시에 반대쪽 손으로 수제비를 잡고 쫙쫙 뜯어 국물에 넣는다.
별생각 없이 그냥 잡아 뜯는 것처럼 보여 일견 쉬울 것 같으나 막상 해보면 상당히 어려웠다.
한데 저 어려운 동작을 수제비 명인은 과장 좀 더해서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소화해냈다.
“저 동작을 익혀야 하는데.”
강지한의 중얼거림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관찰의 눈이 발동합니다. 방금 보신 동작을 기억하겠습니까?]
“응.”
강지한이 대답했다.
그러자 몇 초 후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억 완료. 관찰의 눈 사용법에 대한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수제비 반죽을 준비하세요.]
강지한이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수제비 반죽을 꺼내왔다.
어제 만들어 넣어두고 꼬박 하루가 지났으니 일식 요리 명인의 레시피대로 24시간을 숙성시킨 셈이다.
[육수를 불에 올리세요.]
육수는 식당에서 미리 가져온 비법 육수를 사용했다.
그것을 냄비에 담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불을 붙였다.
물의 온도가 적당히 올라가자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관찰의 눈이 기억했던 영상을 재현합니다.]
순간 강지한의 눈에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 홀로그램처럼 나타났다.
“어?”
홀로그램은 수제비 명인의 머리에 소형 카메라를 장착하고 찍은 것 같은 구도로 플레이됐다.
수제비 명인의 반투명한 손 한쪽에는 수제비 반죽이 들려 있었다.
그는 끓으려 하는 육수 속으로 계속해서 바쁘게 수제비를 뜯어 넣었다.
뜯긴 수제비는 육수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물론 홀로그램이니 진짜 수제비가 들어간 건 아니었다.
[영상을 따라 손을 움직이세요.]
‘그런 거구나!’
강지한은 영상을 처음부터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끓는 물속에 담긴 수제비가 사라졌고, 명인의 손에 들린 반죽도 원상태로 돌아왔다.
영상은 다시 플레이됐다.
강지한은 바쁘게 움직이는 명인의 손놀림을 따라했다.
그냥 텔레비전으로 보던 것과 달리 눈앞에서 영상이 입체적으로 진행되니 따라하기가 더 수월했다.
그러다 명인의 홀로그램과 강지한의 손동작이 일치할 때마다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술을 57% 익혔습니다.]
관찰의 눈은 강지한이 기술을 어느 수준까지 익히고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십수 일간 강지한이 꾸준히 연습한 노력의 결과가 57퍼센트였던 것이다.
수제비를 뜯는 연습은 새벽을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혹시 몰라 많이 반죽을 많이 준비한 덕이었다.
그렇게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 오는 시간.
[기술을 100% 익혔습니다.]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대박.’
십수 일을 연습해도 57%에 그쳤던 기술이 것이 관찰의 눈을 사용하니 하루 만에 부족한 43%를 채워 버렸다.
확실히 눈앞에서 잔상이 움직이고, 거기에 맞춰서 연습을 하는 방식은 보다 빠른 발전을 가져다 주는 이점이 있었다.
강지한이 100% 완벽히 익힌 기술로 수제비를 만들었다.
[강지한의 대단한 수제비]
요리 등급: LV5
-육수와 반죽이 일품이며, 수제비도 고루 익었다. 수제비가 맑은 국물을 많이 해치지 않도록 좋은 기술로 반죽했다. 하지만 이것이 맛의 끝은 아니다.
“됐다!”
드디어 수제비도 레벨 5의 경지에 다다랐다.
밤새 수제비를 뜯느라 녹초가 된 강지한은 완성된 수제비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육수는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고, 쫀득하게 씹히는 수제비도 최고였다.
이로써 강지한의 분식집에서 내놓을 메뉴가 하나 더 늘었다.
게 눈 감추듯 수제비 한 그릇을 먹어치운 강지한이 손을 씻고 자리에 누웠다.
한 시간이라도 자고 일어날 요량으로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맞추려 하는데 자정쯤 해서 김숙자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지한 총각! 나 도저히 못 참고 김치찌개 끓여서 야식 먹었지 뭐야~ 근데 진짜 깜짝 놀랐어. 지한 총각 레시피대로 만들었더니 분식집에서 먹었던 그 맛이 비슷하게 나는 거야. 나도 이런 기술 있으면 김치찌개 장사나 하고 살 텐데.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고마워!
그 문자를 읽어본 강지한의 잠이 확 달아났다.
“보통 사람이 끓여도…… 같은 맛이 난다?”
강지한은 얼마 전부터 분식집 메뉴 중 한 가지를 전문점 형태로 운영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김숙자가 강지한의 육수와 김치 양념장으로 김치찌개를 끓였더니 비슷한 맛이 난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그가 떠올렸던 가능성을 실험하게 된 것이다.
‘해볼 만해.’
강지한의 눈에 희망의 빛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