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Restaurant 51. 갓설탕이 물고 온 복
드디어 지한 분식을 찾은 어떤 손님의 머리 위에 55라는 만족도가 나타났다.
럭키 박스 LV5의 조건을 만족한 것이다.
펑!
늘 그렇듯이 뭉게구름과 함께 나타난 럭키 박스는 아이템을 내어주었다.
[설탕이의 레벨 업 사탕 한 개를 얻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강지한의 눈앞에 엄지손톱만 한 붉은 하트가 둥둥 떠다녔다.
한데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설탕이의 레벨 업 사탕? 이걸 먹으면 설탕이가 바로 레벨 업 하는 건가?’
강지한은 하트 사탕을 손으로 잡았다.
동시에 하트 사탕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24시간 안에 주지 않으면 소멸되는 거구나.’
그럼 오늘 설탕이를 만났을 때 먹이면 될 일이었다.
강지한이 하트 사탕을 주머니에 넣자 럭키 박스가 6레벨로 바뀌며 다음 레벨의 업그레이드 조건이 나타났다.
[럭키 박스 LV6-NEXT 설탕이 레벨 12]
* * *
식당 영업이 끝난 시각.
가게 문을 닫고 애견 카페로 향하려는 강지한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정민석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강지한은 그의 얼굴을 바로 알아봤다.
“낮에 식사하러 오셨던…….”
“하하. 네. 아, 저 이런 사람입니다.”
정민석이 명함을 건네주었다.
받아보니 거기엔 INTV 촬영감독 정민석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 방송국 관계자셨군요. 한데 저한테는 어떤 볼일로……?”
강지한은 설마 자신의 식당을 촬영하겠다는 건가 싶었다.
한데 정민석의 입에서 예상 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사장님께서 설탕이 견주 되시죠?”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낮에 여기서 밥 먹고 애견 카페 갔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제가 말을 돌려하는 타입이 아니라 바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설탕이와 견주 되시는 강 사장님을 좀 취재해도 될까요?”
“취재라 함은?”
“제가 지금 신비한 동물의 세계에서 VJ로 활동하는 중이에요.”
신비한 동물의 세계라는 말을 듣자 강지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건 강지한도 선호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특히 설탕이를 기르게 된 후에는 더더욱 자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세요? 저 그 프로 재밌게 보고 있어요.”
강지한의 반응을 본 정민석은 이야기가 쉽게 진행될 것 같아 안도했다.
“우리 프로 애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한데 거기서 우리 설탕이를 촬영하시겠다고요?”
“네.”
“설탕이가 아직 방송에 나가기엔 음……. 그럴 만한 거리가 없지 않나요?”
“충분합니다. 설탕이는 아직 한 살도 안 된 강아지예요. 그런데 애기답지 않게 똑똑하죠. 대한민국, 아니 세계를 통틀어 보더라도 설탕이 나이에 그만큼 똑똑한 강아지? 찾기 힘들 겁니다.”
설탕이의 폭풍칭찬에 강지한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 못했다.
“그래요?”
“그럼요. 보통 그 나이대 강아지들이라고 하면 훈련 자체가 요원해요. 한데 설탕이는 훈련도 잘되어 있을뿐더러 사람과 교감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저 사람이 자신에게 무얼 원하는지 파악하는 힘이 엄청나요.”
“그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하하.”
설탕이를 띄워줄수록 강지한의 기분이 좋아졌다.
정민석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지한은 자식 바보였다.
‘참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달라지네.’
그가 주방에서 우직하게 요리하던 모습을 정민석은 기억한다.
꾹 다문 입술과 요리에만 집중해 굳어 있는 얼굴, 날카로운 눈빛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할 때에만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감히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면서도 손님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상반된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스스로의 일에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손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광경이었다.
그랬던 그가 주방에서 나온 지금은 그저 순박한 청년처럼 비추어졌다.
정민석은 말이 잘 통하겠다 싶어 생각한 바를 전부 털어놓았다.
“그리고…… 찍는 김에 사장님 식당도 좀 촬영을 할까 싶어요.”
“설탕이를 찍는 데 제 분식집이 나올 필요가 있나요?”
“시청자들한텐 이렇게 훌륭한 강아지의 견주가 누구인지 설명을 해드려야 하니까요. 보통은 견주의 직업이 무언지도 보여주거든요. 그냥 견주라고만 소개하면 아무래도 그림이 심심하거든요.”
“아, 네. 그렇겠네요.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거기서 한 가지 더! 제가 좀 재미있는 연출을 생각해 봤어요. 천재견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갔는데, 계속 제보와는 달리 방송에 내보기엔 좀 허전한 면이 있는 거예요. 결국 지쳐 버린 제가 너무 허기져서 식사나 한 끼 하려고 사장님의 식당을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웨이팅이 어마어마한 겁니다. 맛집인가 보다! 춘천에 와서 아무런 소득도 없다면 맛집에서 밥이라도 먹고 가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일단 후퇴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제보자들을 만나고 9시쯤 다시 찾아오는 거예요.”
거기까지 듣고 난 강지한이 슬며시 다음 시나리오를 유추했다.
“그래서 식당이 문 닫기 전 마지막 손님으로 들어오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촬영이 용이하려면 그 편이 좋았다. 게다가 더 드라마틱했다.
정민석이 기꺼워하며 대답했다.
“바로 그겁니다. 배를 채우고 나가려는데 방송 장비 보고 사장님께서 물어보시는 겁니다. 무슨 촬영하시냐고. 그럼 제가 사정 설명을 죽 늘어놓는 거죠. 얘기를 듣고 난 사장님께서 갑자기 반려견 자랑에 들어갑니다. 그러고는 옆에 애견 카페에서 봐주고 있을 테니 가보라고 부추기면,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반신반의하며 카페로 향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드디어 특종을 잡는 거죠.”
정민석은 강지한을 만나기 전 짜놓은 시나리오를 신나서 떠들었다.
그러고는 강지한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그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근데…… 걸리는 게 좀 있어요.”
“네네. 말씀하세요. 어떤 부분이 걸리십니까?”
“그…… 제가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좀…….”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이는 강지한.
정민석이 하하 웃었다.
“다들 연기하시라고 하면 부담스러워 해요. 방송에 나오는 견주님들, 전부 대본 보고 연기하시는 겁니다.”
“그래요? 전혀 몰랐는데.”
“우리가 정극을 찍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일상적인 대사 몇 마디 던지는 거라 막상 해보면 크게 어렵지 않아요. 게다가 사장님 워낙 미남이셔서 방송 나가면 식당도 덩달아 광고 될 것 같은데요.”
“하하.”
정민석의 칭찬에 강지한은 멋쩍은 웃음만 흘렸다.
그때 애견 카페에서 예소린이 설탕이를 데리고 나왔다.
그녀는 지한 분식 쪽으로 걸어오다가 정민석과 대화를 나누는 강지한을 발견했다.
“설탕아, 아빠 저기 있네?”
말을 하며 예소린이 설탕이의 목줄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신나게 달려간 설탕이가 강지한의 지척에 훌쩍 뛰어 올랐다.
“엇!”
강지한이 놀라서 그런 설탕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한데 강지한보다 더 놀란 건 정민석이었다.
“헐. 무슨 강아지가 점프를 그리 높게 해요?”
“그러게요.”
강지한이 대답하며 설탕이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그에 강지한을 마구 핥아대던 설탕이가 머리를 위로 치켜들더니 눈을 사르르 감았다.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간 것이 꼭 웃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정민석은 설탕이가 보면 볼수록 탐났다.
아직 어린 강아지가 똑똑하고 교감이 뛰어난 데다 생긴 것까지 모델 감이었다.
장담하건대 그가 여태 만나본 강아지 중 사람 녹이는 미모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그럼 출연 결정하시는 거죠, 설탕이 아버님?”
정민석이 확실한 대답을 원하며 물었다.
강지한은 결정권을 설탕이에게 넘겨주었다.
“설탕아, 출연하고 싶니?”
자신을 말똥말똥 바라보는 설탕이에게 강지한은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내밀었다.
강지한의 손엔 럭키 박스에서 얻은 하트 사탕이 들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것을 설탕이가 입으로 낚아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설탕이의 레벨이 10에서 11로 변했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설탕이의 레벨이 11이 되었습니다.]
[잠겨 있던 능력 중 하나가 개방됩니다.]
[‘노래’를 얻었습니다.]
[지능이 상승합니다.]
[교감도가 높아집니다.]
[명성이 올라갑니다. 레벨 업 현황을 확인하세요.]
<레벨 업 현황>
[강지한]
.
.
.
[설탕이 LV11]
지능+10
교감도+20
핥기, 손, 앉아, 엎드려, 하이파이브, 빵, 굴러, 점프, 노래: 행복+10
특수 능력: 물어오기 LV2 (숙련도 60/100), 명성: 43
설탕이의 지능, 교감도가 올라간 상황에서 강지한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설탕아, 출연하고 싶어?”
그러자 설탕이는 하듯 ‘왕!’ 하고 짖으며 꼬리쳤다.
그 순간, 강지한의 마음에 다른 이질적이 감정이 밀려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설탕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설레고 있어?’
헥헥헥!
설탕이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방송이 뭔지 설탕이가 알 리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강지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일 따른 것뿐이다.
그때 예소린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예소린은 정민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네.”
“본격적으로 설탕이 섭외 들어가신 거예요?”
정민석은 본인의 직업에 대해 예소린에게 이미 털어놓은 후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초조한 시간이죠.”
정민석과 예소린의 시선이 동시에 강지한에게 향했다.
강지한은 두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네. 출연할게요. 설탕이 예쁘게 잘 찍어주세요.”
“맡겨두십시오. 그럼 곧 촬영 날짜 잡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정민석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 *
설탕이의 방송 출연을 확정하고 집에 돌아온 강지한은 바로 단골 포인트 상점에 접속했다.
그동안 꾸준히 쌓이던 단골 포인트가 오늘 20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골 포인트 20이면 새로운 상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강지한의 눈앞엔 종이접기로 만든 듯한 작은 상점에서 튀어나온 메뉴판이 둥실거리며 떠 있었다.
[단골 포인트 상점 메뉴]
<음식 LV2>
일본 요리 장인의 지식-20단골 포인트.
<인테리어 LV2>
고급 수저, 물결무늬 천장-각각 20단골 포인트.
<잠김-음식과 인테리어의 레벨을 3까지 올릴 경우 해금>
“일본 요리 장인의 지식을 사겠어.”
일본 요리 장인의 지식은 변화의 구슬로 레벨 업 시스템이 바뀐 이후부터 줄곧 구매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일본 요리 장인의 지식을 구입하셨습니다. 20단골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음식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 메뉴가 추가 되었습니다.]
[일본 요리 장인 고(故)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지식을 흡수합니다.]
[일부의 지식만 오픈됩니다.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 할 때마다 새로운 요리들과 조리법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강지한이 아이템을 구입하자 메시지가 나타나며 그의 머릿속으로 생경한 요리 지식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일식의 기본양념은 설탕, 소금, 식초, 간장, 미소(일본 된장)다. 그것으로 어지간한 양념의 맛을 전부 만들어 낼 수 있다.
-일본 가정식의 기본 육수는 ‘이치반다시’와 ‘니반다시’다. 이치반다시는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를 넣고 우려낸 첫 번째 국물이다. 여기에 가다랑어포를 조금 더 넣고 끓여 걸러낸 육수를 니반다시라고 한다. 이치반다시는 맛이 깔끔해서 맑은 장국이나 나베요리에 적합하다. 니반다시의 경우는 맛과 향이 더 강렬해서 조림에 주로 사용된다.
-쯔유(일본 간장)와 조미식초를 만드는 법은 어렵지 않다. 특히 쯔유는 여러 요리에 사용되는 만큼 만능 간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오뎅나베의 포인트는 좋은 오뎅을 쓰는 것이 당연히 첫 번째고, 육수의 맛을 잡는 게 그다음이다. 시중에는 오뎅나베의 육수를 편히 만들 수 있는 다시들이 많으니 그것을 사서 조리해도 무관하지만 조금 더 깔끔하고 맑은 맛을 내고 싶다면…….
-돈까스를 튀기는 기본 요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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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했던가.
모든 흐름은 하나로 통일된다더니 일식의 지식도 한식에 충분이 적용 가능한 것들이 제법 많았다.
그 지식들은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요리 지식 중 극히 일부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혀 모르던 것을 새로 알게 되니 그 활용 범위가 광활해졌다.
강지한은 새로운 지식들을 당장 활용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적당한 재료들이 없는 게 아쉬웠다.
“내일 이것저것 사와서 해봐야겠네.”
결국 입맛만 다신 강지한은 오늘도 수제비의 황금비율을 잡아내기 위해 반죽을 시작했다.
그런데 방금 얻은 일식 기초 지식 중에 ‘핫토’라는 일본식 수제비 요리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거기엔 수제비 면을 반죽하기 위한 밀가루와 물의 적정한 비율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 몇 대 몇이라는 수치가 아닌 귓불 정도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했다. 레몬즙을 조금 넣어주면 글루텐 생성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잘 치댄 반죽의 겉면을 불로 지져준 뒤 24시간 숙성을 하면 찰기 있고 촉촉한 반죽이 완성된다는 노하우도 존재했다.
이렇게 완성된 반죽은 수제비를 만들 때 맑은 육수의 맛을 해치지 않으며 더욱 쫀득하고 차지다고 한다.
‘이거다.’
강지한은 당장 그 방법대로 반죽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 설탕이가 허공으로 점프하더니 물어오기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의 레벨이 2로 업그레이드된 이후, 단 한 번도 선물상자를 물지 못했던 설탕이였다.
그런데,
턱!
이번에는 성공했다.
토다다다다!
설탕이가 신이 나서 강지한의 앞으로 달려와 선물상자를 내려놓았다.
수제비 반죽을 치대던 강지한이 선물상자를 보고서는 활짝 웃었다.
“설탕아! 물어오기 성공한 거야?”
왕! 헥헥헥.
“역시 우리 갓설탕!”
강지한의 칭찬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맛에 설탕이의 눈이 절로 감기며 프로펠러 꼬리가 가동했다.
“어디 이번엔 뭘 물어왔나 볼까?”
강지한이 상자를 톡 건드리자 안에서 메시지가 튀어나왔고.
“……어?”
그것을 본 강지한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이런 걸 물어왔어, 설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