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Restaurant 50. 설탕이와 지한 분식
“김밥 두 줄 주세요.”
“아, 한 줄은 참치김밥으로 주세요.”
“그냥 김밥을 먹어봐야한다니까. 이거 아까부터 암 것도 모르는 게 계속 쯧.”
“그럼 참치김밥 한 줄을 추가할게요. 그리고 김치찌개 하나요.”
“썩을 놈. 네 입만 입이냐? 찌개 하나 추가해줘요.”
이리나는 티격태격 대는 정씨 형제의 주문을 초지일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친절히 받아준 뒤 물러났다.
그러자 정민석이 이리나의 태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뭐해?”
“형. 쟤 진짜 예쁘지?”
“방송국 가면 저런 애 널렸다.”
정민석은 어쩐지 억울해졌다.
정유곤은 예능 피디라 방송국에 가면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민석은 동물프로그램 VJ로 거의 뼈를 묻다 시피 했다.
매번 얼굴 마주치고 회식을 같이 하는 연예인들도 대부분 중년의 예능프로 MC나 개그맨이 전부였다.
그렇다보니 여자 보는 눈이 정유곤보다 낮은 게 당연했다.
아니, 정유곤이 필요 이상으로 높은 게 맞았다.
“아,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정민석은 어쩌면 이리나를 처음 본 순간 반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도 가슴이 쿵덕거리며 뛸 리 없잖은가.
한편, 그런 정민석의 시선을 주방에서 열심히 보조 중인 용성우가 우연찮게 봤다.
이리나를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것이 살짝 떨떠름했으나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
모른 체하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한데 용성우와는 정반대의 성정을 지닌 사람도 매장에는 존재했다.
용성우의 인상이 씁쓸해지는 것을 포착한 최지민이 홀을 빠르게 스캔했다.
눈치 빠른 그였던지라 상황을 이해하자마자 정씨 형제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리고 정민석의 시야를 은근슬쩍 가로막으며 물었다.
“손님.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네? 아… 아니요. 아니에요.”
“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최지민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테이블로 향했다.
그에 정유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쳐다보더라니 그럴 줄 알았다. 에이 쪽팔려.”
“예뻐서 그만…….”
잠시 후, 형제의 테이블에 김치찌개 2인분과 김밥 두 줄, 참치김밥 한 줄이 놓여졌다.
서비스 어묵 국물과 단무지, 김치도 함께였다.
“김밥부터 먹어봐.”
정유곤이 굳이 김밥을 먼저 권했다.
“유난은.”
정민석은 아무리 이곳이 맛집이라고 해도 김밥은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형의 성화에 못 이겨 김밥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는 순간 달라졌다.
“……와.”
“맛있지?”
“이 집 미쳤네.”
“어디 찌개는 어떤가.”
정유곤은 동생이 추천 한 김치찌개를 한 술 떠먹었다.
그리고 폭발하는 감칠맛과 풍미에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어지간한 김치찌개 전문점 씹어 먹을 맛이다.”
“그렇다고 했잖아.”
대체 이 작은 도시에 어떻게 이런 상식을 벗어나는 맛집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이후로 말도 없이 식사를 하다가 우연찮게 동시에 김치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 정유곤은 또 한 번 놀랐다.
“김치가 심상찮다, 동생아.”
“말은 바로 해, 형. 김치까지 심상찮은 거지. 근데 다른 반찬은 그냥 보통이야.”
정민석은 일전에 찌개를 먹으며 김치 맛까지 봤던 터라 여유롭게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서비스로 나온 어묵국물까지는 맛보지 못했었다.
이번에도 두 사람은 우연처럼 동시에 어묵국물을 맛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어묵 추가요!”
“어묵 하나 주세요!”
**
“사장님. 저 분을 저러다 토하는 거 아니에요?”
방금 들어온 주문을 주방으로 전달하며 최지민이 물었다.
강지한의 시선이 정씨 형제의 테이블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는 빈 그릇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김밥 세 줄에 김치찌개 2인분, 어묵 네 개, 된장찌개 하나, 라면, 비빔밥까지 클리어한 상황이었다.
“알아서 드시겠지. 주문은 더 안 하시지?”
“네.”
“그럼 괜찮을 거야.”
정씨 형제는 음식이 목까지 차오를 지경이었는데도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테이블에 있는 메뉴 하나하나가 도저히 숟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배터지겠다.”
“나도.”
“여기 대체 뭐냐. 왜 이런 곳이 소문이 안 났어?”
“저번에 물어봤는데 생긴 지 얼마 안 됐대.”
“그래?”
정유곤이 그제야 주방을 슥 훑었다.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사장인 듯한데 대단히 젊어 보였다.
“아직 서른도 안 된 것 같은 양반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성깔도 보통이 아니더니.”
정유곤은 얼마 전 강지한에게 전화로 김밥 포장을 거절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짜증이 좀 났는데, 직접 와서 먹어보고 식당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니 이해가 됐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 집은 사전에 주문을 해놓지 않으면 그만큼 많은 김밥을 포장하는 게 어려울 터였다.
“내가 음식 다큐 쪽이었으면 당장 섭외했을 텐데.”
“나도 그 얘기했었어.”
말을 하며 정민석이 스마트폰을 만지작댔다.
“뭐해?”
정유곤이 물었다.
“춘천 온 김에 어디 유명한 동물 없나 싶어서.”
“쉬러 온 놈이. 하긴 개가 똥을 끊지. 그냥 접어. 일주일 전에 없던 게 갑자기 생기겠냐. 계산하고 나가자.”
정유곤의 재촉에 정민석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야, 나 배불러서 지금 차타면 올라올 거 같다. 좀 쉬었다 가자.”
“여기 어디서 쉬었다 가?”
툴툴대며 주변을 둘러보는 정민석의 눈에 ‘뽀삐의 하루’라는 간판이 들어왔다.
동물병원인가 싶어서 자세히 살폈는데 애견 카페였다.
동물예능프로를 담당하고 있는 정민석의 눈이 번쩍 뜨였다.
“형, 카페 갈래?”
“좋지. 녹차 마시면 소화 잘된다.”
허락이 떨어지자 장민석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천천히 가. 나 올라온다니까.”
정유곤이 불편하게 그런 동생의 뒤를 따라 애견 카페에 들어섰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서자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수많은 강아지들이었다.
소형 견부터, 중형견과 대형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강아지를 바라보는 정민석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정민석은 원체 동물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특히 좋아했다.
그렇다 보니 애견 카페가 그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어서 오세요.”
예소린이 손님들을 미소로 반겼다.
순간 정민석이 돌처럼 굳었다.
눈앞에 환한 빛을 내뿜는 여신이 서 있었다.
분식집 알바도 예뻤다고 생각했는데, 예소린에 비하면 존재감이 너무 작아졌다.
그녀의 미모에는 정유곤 역시도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정유곤의 시선이 빠르게 예소린의 전신을 스캔했다.
그야말로 청순함의 극치를 달리는 아름다운 얼굴 밑으로는 육감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몸매가 자리했다.
가벼운 티에 청바지를 입어서 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카페 내부를 둘러보니 커플 손님도 많았지만 남자끼리 온 손님들도 몇 됐다.
보통 남자끼리 애견 카페를 오지는 않는다.
모두 예소린을 보러오는 것이었다.
‘얼굴은 청순한데 몸매는 섹시하고. 연예계에서도 쉽게 보기 드문 케이스인데.’
다 좋은데 나이가 살짝 있어 보였다.
요즘 연예계에 데뷔하는 연령대를 생각하면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다.
정유곤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서 테이블에 앉았다.
예소린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테이블 위의 코팅된 주의사항을 가리켰다.
“여기 주의사항 적혀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고, 음료수는 저쪽에서 주문 받아드릴게요.”
“네.”
카운터로 걸어가는 예소린의 뒤태를 정민석이 멍하니 쳐다봤다.
“너 그만 좀 해라.”
“내가 뭘 했다고.”
정민석은 짐짓 딴청을 부리며 강아지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강아지들은 하나같이 활발하네.”
정유곤의 혼잣말에 정민석이 바로 반응했다.
“애들이 행복해서 그래. 얼굴에 구김이 없잖아. 털 상태도 하나같이 좋고. 주인 아가씨가 관리를 잘해주는 거야. 그건 그만큼 애정을 많이 쏟고 있다는 얘기기도 하고.”
“직업병 도지기 시작하는구나. 뭐 마실래?”
“녹차.”
형제 아니랄까 봐 입맛은 비슷한 두 사람이었다.
정유곤이 녹차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눈을 유독 사로잡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민석아, 저거 시바견인가 그거 아냐?”
“맞아.”
“아직 어린 것 같네.”
“한 3~4개월 됐으려나?”
“개 박사 다 됐구나.”
“동물박사가 된 거지.”
두 사람이 크게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눌 때였다.
손님 중 한 명이 바닥에 슬리퍼와 장난감 공, 스마트폰, 곽티슈, 작은 책 한 권을 늘어놓고 시바견에게 말했다.
“설탕아~ 공 가져와.”
공을 가져오라 주문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향숙이었다.
요즘 그녀는 인터넷 쇼핑몰 장사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강지한도 보고 설탕이랑도 놀 겸 잠깐 짬을 내 외출을 한 것이다.
분식집은 이미 오픈하자마자 들러서 끼니를 해결했고, 그 이후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여기서 버티는 중이었다.
설탕이는 이향숙의 말을 듣자마자 설탕이가 ‘왕!’ 하고 짖더니 토다다다 달려가 장난감 공을 덥석 물었다.
행동의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설탕이는 공을 이향숙에게 가져다줬다.
“오, 어린 녀석이 똑똑하네?”
“그러게. 근데 저 정도 하는 강아지들은 제법 있어.”
정유곤의 감탄에 정민석이 대수롭잖은 듯 말했다.
그걸 들은 이향숙의 마음속에 혼자만의 승부욕이 일었다.
“설탕아, 저 손님 슬리퍼 가져와.”
이향숙이 정민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민석은 설마설마하며 설탕이를 지켜봤다.
그런데 설탕이가 정말 정민석에게 달려오더니 슬리퍼를 입으로 앙 무는 게 아닌가?
그러고서는 가져가도 되냐 묻기라도 하는 것마냥 두 눈을 위로 새치름하게 올려 정민석을 바라봤다.
짧은 꼬리까지 살랑대니 정민석의 마음이 살살 녹았다.
정민석이 슬리퍼를 벗어주니 설탕이가 이향숙에게 물고 갔다.
“와아! 잘했어, 우리 설탕이.”
이향숙이 슬리퍼를 물고 있는 설탕이를 들었다.
순간 슬리퍼에서 심상찮은 냄새가 이향숙의 코를 강타했다.
“욱.”
이향숙이 화들짝 놀라 설탕이를 내려놓고 말했다.
“설탕아, 슬리퍼 제자리에 갖다놔.”
설탕이는 다시 정민석에게 와서 슬리퍼를 돌려주었다.
그 광경에 손님들은 왁자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민석은 자신의 발 냄새 때문에 벌어진 이 상황에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그럴 새가 없었다.
‘이놈 봐라?’
동물예능 VJ인 그의 모든 신경이 설탕이에게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설탕이의 방금 행동은 훈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과의 뛰어난 교감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가 마침 녹차를 내온 예소린에게 물었다.
“강아지가 상당히 똑똑하네요. 아직 한 살도 안 됐죠?”
“삼 개월 정도 됐어요.”
“견주께서 기분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똑똑한 아이 반려견으로 맞으셔서. 몇 가지 행동만 봐도 거의 천재견 수준인데요? 범상치가 않아요.”
“설탕이 제 아이 아니에요.”
“네? 그럼…….”
“이 건물 반대쪽 끝에 지한분식이라고 있는데, 거기 사장님 강아지예요.”
“허허.”
정민석의 입에서 저도 모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 아주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어쩌면 좋은 영상을 하나 뽑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