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46화 (46/330)

# 46

Restaurant 45. 공부하고 노력하다

하루 일과를 끝낸 강지한이 설탕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만족도를 5,000포인트 이상 벌어들였다.

음식을 팔아 얻은 매상은 160만 원 선으로 어제보다 조금 더 많았다.

강지한은 설탕이와 함께 샤워를 마치고서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하아~”

설탕이의 귀로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았던 강지한의 한숨이 닿았다.

설탕이가 강지한의 가슴 위로 올라와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 위에 얼굴을 얹었다.

그 자세로 강지한을 가만히 내려다보는데,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강지한은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설탕아. 그냥 걱정거리가 좀 생겨서 그래.”

강지한이 달랬지만 여전한 얼굴로 콧숨을 푹 내뿜는 설탕이.

평소에는 동글동글한 눈꼬리가 지금은 아래로 축 쳐져 있었다.

“이 녀석이 주인 말을 믿지 않네.”

강지한은 설탕이를 한참 더 만져주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어 TV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리고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넣어둔 게 없었다.

한데 서랍 안에서 원래는 동그란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깨진 구슬 조각 하나가 도르륵 굴러 나왔다.

강지한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은은한 초록빛을 풍기는 신비한 구슬의 조각 위로 글자가 떠 있었다.

[변화의 구슬 LV1]

“나머지 조각을 찾아 붙일 때마다 레벨 업 하는 시스템인가 보네.”

그건 그렇고 변화의 구슬 세 조각을 모두 찾아 붙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다.

머리가 복잡해진 강지한은 구슬을 도로 넣어놓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가 갖가지 요리 재료들을 꺼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음식을 만들어 나갔다.

강지한의 두 손은 경쾌하게 칼질을 했고, 프라이팬을 가볍게 돌리며 식재료를 볶아냈다.

어떤 식재료는 삶기도 했고, 어떤 건 생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그의 손에서 여러 가지 음식들이 빠르게 탄생했다.

조리도구들을 다루는 손기술이 좋으니 속도 하나는 발군이었다.

제육덮밥. 돈까스. 수제비. 뚝배기불고기.

전부 분식집에서 팔 만한 메뉴들이었다.

강지한은 완성된 음식들을 하나하나 먹어 보았다.

“꿀꺽.”

네 가지 음식을 전부 해치우지는 못하고 조금씩 맛만 보는 정도에서 그쳤다.

레벨 6의 그의 혀로 냉정하게 맛 평가를 해봤다.

‘보통……. 그보다 조금 못한 수준?’

이게 문제였다.

포인트를 투자해 레벨을 올린 음식들은 쉽게 쉽게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데, 스스로의 실력으로 만들면 보통이거나 그에 못 미치는 수준의 음식만 탄생했다.

‘이래서야 레벨 업 시스템이 사라지면 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잖아.’

레벨 업 시스템은 어느 날 갑자기 얻게 됐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더 이상 시스템에 의존하기만 해서는 안 돼.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해.’

반 이상 남은 요리들을 바라보는 강지한의 눈에 여태껏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안광이 일렁였다.

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탕이가 부지런히 주변을 살폈다.

그의 주변으로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선물 상자 몇 개가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강지한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설탕이는 오늘 한 번도 물어오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주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게 지금 설탕이의 심정이었다.

설탕이가 짧은 네 다리에 힘을 주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자신을 놀리듯 유유자적 허공에 떠다니는 상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상자들은 설탕이의 주변에 올 듯 말 듯하며 약을 올렸다.

그러자 상자 하나가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왕!

설탕이가 짧은 뒷다리로 땅을 밀어냈다.

폴짝!

아담한 몸뚱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설탕이가 물어오기 스킬을 사용했다.

작은 상자가 설탕이의 쩍 벌어진 이빨에 닿으려는 순간!

텁!

쌩- 하니 다른 곳으로 날아갔고 설탕이는 애꿎은 허공만 베어 물었다.

토닥.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설탕이의 발톱이 다시 땅에 닫으며 귀여운 효과음을 냈다.

하루에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물어오기 스킬이었다.

한데 상자를 잡아챌 수 있는 확률이 너무 낮아 실패하고 말았다.

끼잉. 끼잉…….

잔뜩 주눅이 들어 한숨을 푹 쉰 설탕이가 낑낑댔다.

주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앙증맞은 꼬리까지 아래로 축 쳐지고 말았다.

* * *

강지한은 밤새 요리에 대해 연구를 했다.

요리라는 것은 배움의 끝이 없는 분야였다.

이미 강지한은 레벨 6에 다다른 요리들을 접하면서 평소에 몰랐던 여러 가지 조리법과 레시피를 숙지한 상태다.

한데 새로운 음식들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면 계속해서 낯설고 재미있는 조리법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요리라는 것은 과학과 같았다.

레시피, 혹은 조리법에 약간의 차이로 완성된 음식의 맛이 크게 달라지곤 했다.

쉬운 예로 똑같은 재료, 똑같은 양념을 사용한 제육볶음이 있다고 하면, 미리 고기를 양념에 재운 것과, 재놓지 않고 생고기로 요리할 때 양념을 섞었을 경우 완성된 두 요리의 맛은 같아질 수가 없다.

아울러 제육볶음을 할 때 설탕을 미리 넣어주느냐, 나중에 넣어주느냐에 따라서 단맛의 강도가 확 달라진다.

별것 아닌데도 요리의 질과 맛, 퀄리티를 달리하는 방법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실전으로 연습하다 보니 요리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레시피를 찾아보고 따라 만들다가 겨우 한 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불의 효과로 육체적 피로가 싹 가셨다.

하지만 정신적 피로는 완전히 해소할 수 없었다.

평소와 달리 조금 수척한 몰골로 식당에 나간 강지한은 오픈 준비를 하면서도 밤새 연구하고 만들었던 음식들을 떠올렸다.

한데 음식의 맛이 노력의 결과에 준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러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비정상적인 접근입니다. 메뉴 슬롯에 등록되어 있는 메뉴의 파생 메뉴. 혹은 레벨 2 이하 수준의 메뉴까지는 인정할 수 있으나 전혀 새로운 메뉴의 레벨을 포인트 투자 없이 3레벨 이상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합니다.]

강지한의 노력으로 발전하려는 음식의 맛을 레벨 업 시스템이 막고 있었다.

여태 강지한에게 날개를 도와준 시스템이 이제는 발목을 잡게 된 격이다.

메뉴 슬롯 없이는 강지한이 혼자서 아무리 연구하고 노력해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모든 메뉴들의 수준이 레벨 2를 넘어설 수 없으니 말이다.

레벨 2라고 해서 맛없는 건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던 계란밥이나 열무국수, 그 외의 여러 음식들도 일반인이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굳이 집에서 먹는 맛이랑 차이 없는 맛을 돈 내고 즐기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강지한의 노력은 밤을 지샌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제 얻게 되었던 ‘변화의 구슬’과 시스템 의존도보다 자립심이 높아 ‘변화의 장이 시작되었다’는 메시지에 희망을 걸었다.

오늘도 일을 끝내자마자 공부부터 하리라 마음먹었다.

꾸준히 부딪히다 보면 필시 답이 나오리라.

굳은 신념으로 주방에서 손을 놀리는 강지한의 모습이 용성우에게는 평소와 다르게 다가왔다.

전에 없던 육중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눈빛도 그저 순하기만 하던 이전과 달리 강렬한 힘이 깃들어 형형하게 빛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요리를 할 때도 지금까지는 기계적인 놀림에 감탄을 자아냈다면 지금은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뭔지 모르게 주변을 압도하는 분위기에 용성우는 평소처럼 말도 붙이기가 힘들었다.

‘사장님…… 무슨 일 있었나? 많이 달라졌네.’

달라진 계기가 본인에게 있다는 건 눈곱만큼도 짐작 못하는 용성우였다.

오전 11시 반.

벌써부터 한창 바쁜 와중 이십 대 중반의 남자가 홀로 들어섰다.

그는 웨이팅을 무시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포장 손님이겠거니 하고 신경을 껐다.

이리나가 남자 손님에게 다가갔다.

“포장해 가시려고요?”

“네.”

“지금 미리 싸놓은 김밥만 포장 가능하시고 다른 메뉴는 기다리시려면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이리나의 친절한 설명에 지한 분식을 찾은 남자, ‘박동호’는 혀를 내둘렀다.

그나마 김밥은 포장 가능하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가 정유곤 피디에게 받은 지시는 김밥 30줄을 포장해 오라는 것이었으니까.

“김밥만 포장해 가면 돼요. 30줄 포장해 주세요.”

“네? 30줄이요? 잠시만요.”

당황한 이리나가 주방에 가서 강지한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에 강지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리나는 다시 박동호에게 다가와 양해를 구했다.

“저…… 죄송한데 포장 가능한 김밥은 지금 10줄이 전부예요. 30줄은 준비가 안 돼서 포장이 힘들어요. 지어놓은 밥도 부족하고요.”

“네? 안 되는데…… 포장 꼭 해가야 하는데.”

박동호는 촬영팀 막내다.

그래서 아무런 힘도 없고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지한 분식 김밥 30줄을 사오라 그랬는데 못 사오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했다.

일 분 일초가 바쁘게 돌아가는 촬영장에서 박동호의 사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저기 실은 제가 방송국 관계자인데요. 어제 출연자들 중 한 분이 여기서 사온 김밥을 피디님이 먹어보시고는 맛있다고 해서 꼭 사오라고 했거든요. 안사가면 제가 좀 곤란해지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이리나는 이 상황을 강지한에게까지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가뜩이나 바쁜 사람에게 짐 하나를 더 얹어주어서야 되겠는가.

“어쩌죠? 정말 죄송한데요, 사정이 딱하신 걸 알겠지만 저희도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 해드릴 수는 없어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서 그래요. 손님께서 조금만 이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

박동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왔다.

이 방송국 놈들은 이해라는 걸 모르는 인간들이었다.

특히 정유곤 피디는 더더욱!

박동호가 다급히 정유곤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뭐야?

“저기 피디님! 잠시만요!”

박동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리나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네?”

영문을 알 수 없던 이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죄송한데 피디님께 사정 설명 좀 해주세요. 제가 가서 얘기하면 죽을지도 몰라요.”

이리나는 난감했다.

한창 서빙이 바쁜 와중인데 이렇게 손님 한 명을 대응하며 계속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벌써 두 테이블에서 손님들의 손을 들어 음식 주문 의사를 표했고, 주방에서는 새로운 요리가 완성되어 나왔다.

박동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서는 남성의 거친 음성이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이리나가 난감해하던 그때였다.

“여보세요.”

뒤에서 다가온 강지한이 박동호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들었다.

-누구십니까?

정유곤 피디가 물었다.

강지한은 주방에서 이미 어찌 돌아가는 상황인지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난감해하는 이리나를 위해 진자부터 나서려 했으나 만들던 요리가 있어 그러지 못했다.

그는 요리를 완성해 내놓자마자 홀로 나온 것이다.

“지한 분식 사장입니다. 피디님 되십니까?”

-아, 맞습니다. 김밥 포장 잘 부탁드립니다.

“죄송하지만 그만한 여유분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없으면 지금 말아주면 되는 일 아니에요? 그거 마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사전에 미리 주문을 주셨다면 재료의 여유분을 충분히 만들어 두었을 텐데 지금은 넉넉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포장해 드린다 쳐도 지금 피크 타임이라 먼저 들어오신 손님들과 웨이팅하고 계시는 손님들의 주문을 처리하고 난 다음에나 가능합니다.”

-아니 저기 우리 지금 서면 펜션에서 예능 프로 촬영하고 있는데, 사장님 분식집 김밥 먹으려고 도시락도 주문 안 했어요. 그러니까 사정 좀 봐줘요.

“제가 되는 걸 안 된다고 하겠습니까.”

-아니 그깟 김밥 가지고 너무 유세 떠시네, 진짜. 방송국 관계자들이랑 척지고 좋을 거 하나 없어요. 그냥 해줘요, 좀!

“방송국 관계자가 아니라 대통령이 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다음부터는 미리 예약해 주시거나 피크 타임 피해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지한은 스마트폰을 박동호에게 돌려주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리나가 얼빠진 박동호에게 미안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른 손님들의 주문을 받으러 갔다.

멍하니 홀에 서서 나갈 줄 모르는 박동호를 최지민이 서빙하다 툭 건드렸다.

“어이쿠, 계신 줄 몰랐네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박동호가 황망히 식당을 나갔다.

* * *

강지한에게 전화상으로 한 소리를 듣고 난 정유곤 피디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쎄네, 주인장. 쩝……. 그 김밥은 괜히 먹어서는 입맛만 높아졌네.”

과연 이제부터 다른 김밥이 눈에나 찰까 싶은 정유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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