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44화 (44/330)

# 44

Restaurant 43. 이 김밥 어디서 샀어?

조미옥은 별안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김치 장사? 내 김치가 어디 팔 만한 수준은 아닌데…….”

도통 감을 못 잡는 조미옥과 달리 독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사장님 혹시 분식집 김치도 팔려고요?”

“이미 시작했어요. 오늘 재오픈하면서 김치를 킬로당 7천 원에 판매했어요.”

독고진의 머릿속에 지한 분식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음식 맛에도 감탄했지만 김치 맛에도 놀랐었다.

최근 먹어본 김치 중에서 그만한 김치는 없었다.

내심 김치만 따로 팔지는 않으려나 싶은 생각도 했었다.

“엄마, 저 사장님 김치 기가 막히게 담가.”

“그래? 근데…… 아무리 그래도 김치가 김치지. 그걸 팔아봤자 얼마나 팔리겠어요? 요즘엔 마트나 인터넷에서 싸게 팔 텐데, 다 그걸 사지.”

“엄마가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독고진은 은근히 강지한과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조미옥을 슬슬 부추겼다.

하나, 강지한의 음식은 물론이고 김치도 맛보지 못했던 조미옥은 고개를 내저었다.

“글쎄 난 모르겠다.”

“그럼 내가 내일 김치를 사올게. 먹어보고 판단해. 사장님 내일 식당으로 가면 살 수 있죠?”

“네. 근데 저녁 전에 오셔야 매진되지 않을 거예요. 오늘도 다섯 시쯤 다 팔려서…….”

“거봐, 엄마. 김치 매진이라잖아.”

“가만히 좀 있어, 인석아.”

조미옥이 독고진을 타박하고서는 강지한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사장님이 맘이 좋아서 우리 처지 신경 쓰시느라 냉정하게 계산이 안 되는 모양인 것 같네~ 지금 김치는 매장에서 조금씩 파는 거죠?”

“네. 오늘은 20킬로 팔았어요.”

“그렇게 파는 거랑 매장을 차려서 파는 거랑은 또 다를 거라고. 식당이야 밥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전부 김치도 팔 수 있는 주 고객이 되지만, 매장을 따로 두고 장사한다 치면 상황이 그렇게 되지는 않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강지한 역시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해서, 조미옥에게 김치 사업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무릇 사람을 쓸 땐 조심해서 써야 하는 법이거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진이가 어떤 놈인지 사장님은 잘 모르시잖아. 반대로 나는 사장님의 김치 맛을 모르고. 오늘 얘기는 조금 성급했던 것 같아요.”

* * *

강지한과 예소린이 치킨을 다 먹고 나간 후, 독고진은 조미옥에게 투덜댔다.

“엄마는 그냥 한다고 하지.”

“아서. 김치가 잘 만들어봤자 김치지.”

“아, 진짜 맛있다니까.”

“김치를 개인이 만들어서 팔려면 그만큼 맛이 경쟁력 있어야 돼.”

“경쟁력 있는 맛이 뭔데?”

“너 친할머니 김치 못 먹어봤지?”

“나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섰다며. 어떻게 먹어봐.”

“친할머니가 김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담그셨어. 엄마가 태어나서 먹어본 김치 중에 제일 맛있었지. 그 정도 수준이 된다면 또 몰라.”

“김치 장사하기 싫어서 하늘로 가신 사람까지 끌어들이네.”

“배달이나 가.”

조미옥이 치킨이 포장된 종이백을 내밀었다.

독고진이 그것을 들고 연신 투덜대며 가게를 나섰다.

주방에 홀로 남은 조미옥이 혀를 쯧쯧 찼다.

“매사에 투덜거리는 건 죽은 지 아빠랑 똑 닮아서는.”

* * *

치킨 집을 나와 으슥한 골목을 지나며 강지한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예소린이 조심스레 물었다.

“지한 씨 무슨 생각해요?”

“네? 아……. 치킨집 사장님이 했던 말 곱씹어 보고 있었어요.”

“기분 나빴어요?”

“아니요. 배웠죠. 저는 사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사장님은 제 김치 맛을 모르는데 성급히 얘기를 꺼낸 것 같더라고요. 마음이 급해서 그랬나 봐요. 어제까지만 해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들여야겠다 다짐했었는데. 장사라는 게 하면 할수록 여러모로 배우게 되는 것들이 많네요.”

“호호. 저도 애견카페 개업하고 나서 똑같은 생각할 때가 많은데.”

“그래요?”

예소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어쩐지 느낌이 나쁘지 않아요. 지한 씨랑 이모님 비슷한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게 무슨……?”

“저는 사람들을 제 느낌에 따라 색으로 분류해요. 쉽게 말해서 못된 사람은 검은색, 착한 사람은 하얀색, 마음이 여린 사람은 노란색, 열정적인 사람은 빨간색. 지한 씨랑 이모님은 기본적으로 하얀색이 보여요. 거기에 지한 씨는 빨간색이랑 갈색 추가.”

빨간색은 열정이라고 했는데 갈색에 대해서는 처음 언급한 것이었다.

“갈색은 뭔데요?”

“굳건한 의지요. 지한 씨에게선 그런 게 보여요.”

말미에 빙그레 웃는 예소린.

마침 두 사람은 가로등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은은한 불빛이 미소 머금은 예소린의 얼굴을 비추었다. 미소에서 빛이 난다. 천사처럼 아름답다. 강지한은 그렇게 느꼈다.

“지한 씨도 말해봐요.”

예소린의 미소에 푹 빠져 있던 와중 갑자기 들려온 말에 강지한은 움찔 놀랐다.

“네? 뭐를요?”

“저는 무슨 색으로 보여요?”

예소린이 두 손을 포개 가슴께를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꺾었다.

그녀는 기대하는 시선을 던지며 대답을 기다렸다.

한데 강지한의 대답은 거의 바로 들려왔다.

“빛이요.”

그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진솔하게 말해주었다.

“빛이요?”

“색이라기보다는 그냥…… 환한 빛 같아요, 소린 씨는.”

강지한의 말을 빠르게 몇 번 되뇐 예소린이 전보다 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지한 씨는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해줘요. 그래서 전 집주인 아주머니도 그 집 따님도 지한 씨한테 잘해줬을 거예요.”

강지한은 오늘 술자리에서 김숙자와 이향숙에 대한 이야기도 했던 터였다.

거기에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 대한 얘기까지도.

그의 입에서는 단 한 번도 누구에 대한 흉이 나오지 않았다.

전부 고맙고 좋은 사람들에 대한 칭찬뿐이었다.

그런 강지한의 모습이 예소린은 참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라, 주변에도 좋은 사람들만 가득한 게 아닐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은 금방 석사동 주민 센터 앞에 도착했다.

“벌써 두 시가 다 되어가네요.”

“그러게요.”

두 사람은 치킨 집에서 두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빨리 가는 줄 몰랐다.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없었다.

편하고 즐거웠다.

그 안에 설렘도 함께였다.

그때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아, 택시 왔네요. 지한 씨 먼저 타고 가시겠어요?”

“아뇨. 소린 씨 먼저 타요.”

“그럼 그럴게요.”

예소린이 택시를 세워 뒷좌석에 타려 할 때였다.

“소린 씨.”

강지한이 그녀를 불렀다.

“네?”

예소린이 돌아보자 강지한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서 물었다.

“다음에…… 저랑 영화 보실래요?”

마지막으로 극장을 가본 게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강지한이었다.

그런 그가 용기를 냈다.

예소린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택시에 올랐다.

탁.

문이 닫히고 택시가 출발했다.

멀어지는 유리창 너머로 해맑게 손을 흔드는 예소린의 모습이 보였다.

* * *

재오픈 둘째 날도 지한 분식의 점심은 만석이었다.

강지한은 주방에서 주문이 들어온 음식들을 바쁘게 소화해내며 틈틈이 손님들의 상태를 살폈다.

확실히 증축한 이후로는 여유도 그래프가 평균 네 칸을 유지했다.

웨이팅이나 좁고 정신없는 실내 분위기 때문에 여유도가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김치찌개와 라면이 많이 팔렸다.

식당을 증축하기 전보다 업그레이드된 김치 맛 덕분이었다.

라면은 김치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김치찌개에는 레벨 4의 김치가 주재료다.

그렇다 보니 어제 김치를 맛본 손님들이 재방문을 해 김치와 관련된 음식들을 많이 시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것.

아울러 김치 역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오늘은 어제보다 10㎏더 많은 30㎏을 가져왔는데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20㎏이 팔렸다.

피크 타임이 지난 오후 두 시 반.

다른 식당들은 홀이 텅 비거나 간헐적으로 손님이 드는 데 반해 지한 분식은 몇 테이블씩은 반드시 손님이 들었다.

주방에서 이를 지켜본 강지한은 아무래도 피크 타임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직원들이 편안하게 밥을 먹을 시간은 필요했다.

아울러 이리나 역시 알바가 아닌 직원으로 정식 채용을 하는 게 어떨까 싶었다.

‘오늘 장사 끝내고 얘기해 보자.’

* * *

춘천의 대로를 검은색 밴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안에는 2년 전까지 잘나갔던 걸 그룹 출신 연예인 윤선아가 타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 올해 스물일곱.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몸담고 있던 걸 그룹이 해체하여 일 년간 휴식기를 가졌다가 슬슬 다시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중이었다.

윤선아는 걸 그룹 시절 여러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 하고 있었다.

한데 잠깐 쉬는 동안 그녀가 설자리가 많이 사라져 버렸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새로운 걸 그룹은 물론, 빛을 보지 못했던 다른 걸 그룹들이 마구 포텐을 터뜨리며 수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해서 일단은 많이 내려간 인지도부터 다시 올리자는 생각에 예능 프로들에 패널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나름 입담이 좋았던 윤선아는 예능 PD들의 눈에 충분히 좋은 인상을 심어줬고 이번에 새로 런칭하는 예능 프로에 고정으로 섭외되었다.

밴의 좌석에 몸을 깊이 파묻은 윤선아의 손에는 기획서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기획서의 맨 앞장엔 ‘요리연애 서바이벌, <요섹남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기획서를 천천히 읽어보던 윤선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출연자들 중에 내가 제일 나이 많잖아.”

스물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윤선아는 동안이었다.

희고 고운 피부에 얼굴도 작고 앙증맞았으며 또렷한 이목구비는 꼭 인형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160의 키에 볼륨이 좋아 완벽한 8등신을 자랑하는 그녀였는데도 나이가 연신 마음에 걸렸다.

아울러 걸리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나 요리도 못하는데.”

요섹남녀는 출연자들끼리 요리 서바이벌과 연애 서바이벌을 믹스한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해서, 맘에 드는 이성과의 데이트 권을 얻으려면 요리 평가에서 1등을 해야 한다던가 하는 규칙이 제법 많았다.

윤선아의 한숨에 운전을 하던 매니저 선동수가 그녀를 달랬다.

“선아 씨 거기 연애하러 나가? 인지도 올리러 나가는 거잖아.”

“나도 알아.”

윤선아는 애초부터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로 캐스팅됐다.

멋있고 가슴 설레는 장면들은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 뽑아낼 것이다.

윤선아는 요리를 잘 못하는 초보적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끌어내는 포지션이었다.

어쨌든 인지도를 올리기엔 그게 가장 나았다.

이를 알면서도 윤선아의 가슴 한편에 존재하는 ‘여자’가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꼬르륵.

윤선아의 배꼽시계가 밥을 달라 아우성쳤다.

어제 첫 예능 프로 고정 멤버가 되었다는 사실에 긴장되어 잠을 설쳤던 그녀였다.

덕분에 늦잠을 자 밥도 못 먹고 부랴부랴 나온 터였다.

촬영지가 춘천이라 밥 챙기겠다고 지체하다가는 도로상황이 어찌 될지 몰랐기 때문.

그에 선둥수가 검은 비닐봉지를 뒤로 건네줬다.

“이거 먹어.”

“뭐야?”

“아까 분식집에서 김밥 사왔잖아.”

“그랬어?”

윤선아는 기획서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런 줄도 몰랐다.

“맛집인가 보더라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게 난리도 아니더라.”

“그런 집에서 김밥을 사와? 제육덮밥 같은 거라도 포장해 오지.”

“메뉴에 없었어. 그리고 가장 빨리 되는 게 김밥이야. 다른 건 밀린 주문 때문에 포장하려면 20분 걸린대. 첫날부터 지각하면 우리 선아 씨 이미지 어떻게 되겠어.”

“아휴, 알았어. 그냥 감사히 먹을게.”

툴툴대는 윤선아의 모습에 선둥수가 피식 웃었다.

같이 일을 한 지가 10년이 넘는 그들이었다.

이제는 곁에 두고 오래 지낸 친구와도 같았다.

“냠.”

윤선아가 별 생각 없이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속에 특이한 것이 들어가지 않은 일반 김밥이었다.

그런데.

“……동수 씨.”

김밥 하나를 삼킨 윤선아가 멍한 얼굴로 선동수를 불렀다.

“응?”

“이 김밥 어느 분식집에서 샀다고?”

놀란 선동수가 룸미러로 윤선아를 살피며 다급히 물었다.

“왜 그래, 선아 씨? 김밥 상했어? 맛이 이상해?”

“아니……. 너무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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