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Restaurant 42. 치킨집 모자의 사정
강지한은 설탕이를 집에 데려다 놓고 다시 나와 예소린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예소린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석사동 주민센터 앞으로 나온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까지 가는 강지한은 마냥 기분이 좋았다.
오늘 재오픈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그가 벌어들인 총매출은 1,463,500원.
거기에 만족도가 5,318이었다.
만족도까지 환전한다 치면 67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중 530만 원은 환전해서 얻는 돈이므로 재료값과 이것저것을 제해도 순수익이 600은 족히 됐다.
‘하루에 600씩 한 달이면…….’
26일로 계산해도 1억 5천이 넘었다.
현재 강지한의 수중에는 오늘 벌어들인 것을 합해 43,690 누적 포인트와 450만 원가량의 현금이 있었다.
거의 5천 가까이 되는 돈이었다.
갈수록 강지한의 현실은 나아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행복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마당의 한 편에는 작은 호수를 만들고 식당 건물은 2층으로 크게 만드는 거야. 별채도 하나 지어서 손님들이 대기할 때 편히 쉴 수 있도록 카페 같은 분위기로 꾸미고. 설탕이는 마당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려나?’
상상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는 그게 그저 상상으로 끝나 버릴 부질없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손에 잡을 수 있는 청사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해 강지한을 내려주었다.
석사동 주민센터 앞엔 예소린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소린 씨.”
강지한이 얼른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제가 늦었네요.”
“아녜요. 저도 방금 나왔어요.”
“네. 하하. 근데 이 시간에 나와도 괜찮아요? 그것도 절 만나러…….”
강지한은 예경천의 성격을 잘 안다.
딸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말이다.
예소린은 대수롭잖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우리 아빠 10시 넘으면 졸려서 정신 못 차리다가 기절해요. 이제 내일 아침까지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거예요.”
“그렇군요.”
강지한은 예소린을 보며 담이 참 크다는 생각을 했다.
“지한 씨, 혹시 생각해 둔 치킨 집 있어요?”
“아뇨. 저는 이 동네 잘 몰라요.”
“그럼 제가 안내할게요. 잘 가는 치킨집 있어요.”
“좋아요.”
예소린은 강지한을 석사동 주민센터 뒷골목으로 이끌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놓인 골목은 갈수록 으슥해졌다.
성인 남성이 혼자 걸어가기에도 으스스한 거리를 예소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앞장서서 걸었다.
강지한이 얼른 그런 예소린의 옆에 섰다.
“소린 씨, 거리가 좀 오싹한데 안 무서워요?”
“네. 안 무서워요.”
“그래도 혼자서 이런 곳 갈 때는 조심하세요. 어지간하면 누구랑 같이 가고요.”
“그래서 옆으로 오신 거예요? 저 걱정돼서?”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단…… 네.”
강지한이 둘러대려다 실패하고서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은근히 귀엽게 다가온 예소린이 저도 모르게 웃었다.
“풋. 지한 씨 그거 알아요?”
“네? 뭐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지한 씨 은근히 강아지 닮은 거. 아니, 이제 보니 설탕이를 닮은 것 같아요. 아니다. 설탕이 아버지니까 설탕이가 지한 씨를 닮은 건가?”
이건 백퍼센트 칭찬이었다.
좋은 말을 들었으니 강지한도 예소린에게 보답의 한마디를 건네고 싶었다.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강지한은 그냥 받은 만큼 돌려주기로 했다.
“소린 씨도 얼굴이 개 닮았어요. 하하.”
“……네?”
“죄송합니다. 저도 말해놓고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아……. 쿡쿡!”
진심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강지한을 보며 예소린이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어댔다.
너무 격하게 웃던 예소린은 결국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강지한이 놀라서 그런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고마워요, 지한 씨. 호호.”
예소린에게 찾아온 웃음의 여운이 제법 오래갔다.
두 사람이 목적했던 치킨집 앞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예소린은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강지한은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져 화제를 돌렸다.
“와, 엄청 오래된 건물이네요.”
강지한의 눈앞에 나타난 건 상당히 낡은 치킨집이었다.
군데군데 녹이 슨 오래된 간판에는 ‘맛나 치킨’이라는 상호가 박혀 있었다.
“네. 건물은 지어진 지 15년이 넘었대요. 주인아주머니께서 치킨집 하신 지는 10년 정도 되어 가고요. 들어가요.”
끼익-
예소린이 문을 열자 귀 아픈 쇳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치킨집 안으로 들어섰다.
12평 남짓한 건물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만큼이나 허름했다.
넓지 않은 홀에는 4인용 테이블이 딱 네 개만 놓여 있었는데 너무 낡아 고릿적 것을 가져다 놓았나 싶을 정도였다.
홀의 중앙에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던 큰 난로가 놓여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강지한이 홀을 살피고 있을 때 주방에서 어쩐지 정겨운 음성이 들려왔다.
풍채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쉬고 있던 주방에서 나오며 두 사람을 반겼다.
“아주머니, 저 왔어요.”
“소린이 왔구나. 어쩜 갈수록 예뻐지네?”
치킨 집 주인, 조미옥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농을 쳤다.
“얼굴 못 본 지 보름도 안 됐는데 무슨요.”
“역시 소린이한테는 입바른 말 안 먹혀. 옆엔 남자 친구? 그냥 남자 사람 친구?”
“맞춰 보세요.”
예소린이 장난스레 말하자 돌아온 조미옥의 대답이 재치 있었다.
“남자 친구면 오늘 역사를 이룰 것이고, 남자 사람 친구면 남자 친구가 되겠네. 왜? 우리 집 치킨이 너무 맛있어서 술을 막 부르거든. 호호호.”
“입담 여전하셔요.”
강지한은 벙 쪘는데 예소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며 테이블 한 곳에 앉았다.
강지한이 맞은편에 앉으니 조미옥이 물과 메뉴판을 내어주며 물었다.
“메뉴판 볼 거야?”
“지한 씨, 양념이랑 프라이드 반반 어때요?”
“좋아요.”
강지한의 대답을 듣고 나서 조미옥은 다시 물었다.
“소주, 맥주?”
“오백 괜찮죠?”
“네.”
조미옥이 메뉴판을 한 편에 치워두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여기 어떤 것 같아요?”
“정겹네요. 닭도 맛있을 것 같아요.”
“되게 맛있는 건 아니고 보통은 돼요.”
그러자 닭을 튀기기 위해 주방에서 분주하던 조미옥이 버럭 소리쳤다.
“다 들려!”
“사실인걸요, 뭐.”
“그건 그래.”
조미옥은 사람 좋게 웃어버리고서 튀김반죽에 버무린 닭을 기름에 넣었다.
치이이이이이-!
닭 튀겨지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홀을 금세 가득 채웠다.
그때 낡은 철문이 열리며 조미옥의 아들 독고진이 들어왔다.
그는 배달을 나갔다 왔는지 바이크 모자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갔다 왔어요. 소린 누나, 안녕.”
“응~ 오늘은 배달 많이 나갔니?”
“고만고만해요. 겨우 마이너스만 안 나는 정도라서…… 어?”
예소린과 말을 주고받던 독고진이 강지한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깜짝 놀랐다.
“지한 분식 사장님?”
독고진이 강지한을 아는 체했다.
강지한의 눈에도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아, 네 맞아요. 강지한입니다.”
“반가워요! 독고집입니다. 저 거기 공사하기 전에 두 번 갔었어요.”
“어쩐지. 얼굴이 익더라고요.”
“소린 누나가 우리 가게 올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대기에 처음엔 어떤가 보자는 마음으로 갔었거든요. 근데 솜씨 장난 아니시더라고요.”
“감사합니다.”
강지한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아울러 예소린에게 또 한 번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는 강지한이 없는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지한 분식을 홍보해 주고 있었다.
“식당은 증축하시는 거죠? 공사 끝났어요?”
“네.”
“그럼 이번엔 어머니 모시고 한 번 갈게요. 우리 가게랑 쉬는 날이 안 겹쳐서 다행입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찾아오시면 제가 뭐라도 서비스 드릴게요. 하하.”
“엄마, 들었지? 나도 음료수 서비스 드릴게.”
독고진은 조미옥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사이다와 콜라 한 병씩을 가져다주었다.
그가 병따개로 뚜껑을 따며 강지한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식당이 장사가 아주 잘되던데. 분점 같은 거는 낼 생각 없어요?”
“아직은요. 증축으로도 회전 잘돼서 충분하더라고요.”
대답을 들은 독고진의 얼굴에 살짝 아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강지한은 그걸 포착했지만 모른 척 넘어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닭을 튀기는 조미옥 대신 독고진이 전화를 받았다.
“네~ 맛나 통닭입니다. 네. 주소 떠요. 네~ 알겠습니다. 30분 정도 걸려요. 엄마! 양념 하나, 프라이드 하나!”
“알았다.”
독고진은 더 이상 손님 테이블에 얼쩡대지 않고 한쪽으로 빠져서 스마트폰을 만지작댔다.
“여기 참 가족 같은 분위기네요.”
“우리 아빠 말이 예전에는 어딜 가나 다 이랬대요. 맞다. 지한 씨. 김치도 팔기 시작했다면서요?”
지한 분식의 손님들 중 반은 애견 카페 손님과 겹쳤다.
그렇다 보니 오늘 지한 분식을 들렀다가 애견 카페를 찾은 손님들 중 한 분에게서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네. 김치 필요해요?”
“집에 김치 담글 사람이 없어서 늘 사먹거든요. 마침 김치가 떨어져서 사야 했는데 이왕이면 아는 사람 걸 팔아주는 게 좋잖아요.”
예소린은 엄마가 없이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녀의 엄마는 예소린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예경천과 이혼을 했다.
해서 예소린은 철이 들 시점부터 이것저것 만들어 아빠를 먹여 살리겠다고 노력했지만 손맛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때문에 김치도 주로 사먹곤 했다.
강지한은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라도 예소린이 편부 밑에서 자라났다는 건 짐작한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김 없이 참 잘 자란 여인이었다.
예소린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지한이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요? 소린 씨랑 이야기를 나눌수록 겨우 치킨 한 마리로 저녁 대접을 하는 게 미안해져요. 더 비싼 걸 사드렸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조미옥이 완성된 치킨을 테이블에 탁! 놓으며 강지한을 째려보았다.
“겨우 치킨 한 마리라니요. 내가 서비스로 반 마리 더 드렸구만.”
“어? 아, 아니. 아주머니. 그런 뜻이 아니고요.”
허둥대는 강지한의 모습을 보며 픽 웃은 조미옥이 손사래 쳤다.
“이 친구, 순진해서 장난도 못 치겠네. 몇 살이우?”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엥? 훨씬 어려 보이는데. 엄청 동안이네. 누구랑은 달라.”
조미옥이 독고진을 슬쩍 쳐다보자 그가 툴툴댔다.
“왜 날 봐?”
다른 사람들이 잡담을 나누는 동안 예소린의 눈은 바삭한 튀김옷을 입고 뜨거운 김을 풀풀 풍기는 프라이드 통닭과 매콤달콤한 양념이 버무려진 양념치킨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날개 하나를 가져가며 조미옥에게 물었다.
“근데 아주머니. 갑자기 서비스는 왜 주신 거예요?”
음료수 서비스는 가끔 받아봤어도 닭고기 자체를 많이 받아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미옥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이달 말까지만 장사하고 건물 내놓으려고.”
“장사 접으신다고요?”
“응. 우리 진이 말마따나 적자 나지 않을 정도로만 벌리고 있으니 끌고 갈 마음이 점점 줄어들어. 그래도 한때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브랜드 치킨 아니면 잘 찾지를 않네, 사람들이.”
“그러셨구나. 그럼…… 앞으로 계획은 따로 있으시고요?”
조미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건물값 챙기면 시골로 들어갈까 싶어. 뭔가 제대로 덤빌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진이랑 함께 해볼 텐데 그런 일이 어디 있겠어? 그리고 이 건물 팔아봤자 5천밖에 안 들어와. 그걸로 뭘 하겠냐고.”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강지한이 갑작스레 조미옥을 불렀다.
“사장님!”
“에고, 깜짝이야! 조용조용하던 양반이 갑자기 왜 그래?”
조미옥을 바라보는 강지한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제가 괜찮은 사업 제안 해드리면 함께해 보시겠어요?”
강지한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소극적인 모습과는 달리 너무도 적극적으로 물어왔다.
느닷없는 반전이었지만 그게 거북하기보단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조미옥이었다.
“사업? 무슨 사업?”
조미옥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고, 강지한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김치 장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