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Restaurant 41. 럭키 박스 레벨 업!
식당 내부엔 어제 없었던 물건들이 보였다.
홀의 양쪽 벽에는 그림 액자가 걸려 있었다.
카운터엔 노란 조화 한 송이가 꽃병에 꽂혀 놓여 있었다.
둘 다 단골 포인트 상점에서 구입했던 것들이다.
그림 액자와 꽃병은 붉은 빛을 발했다.
레벨 업이 가능하다는 뜻.
강지한이 두 개의 물건에 각각 500포인트씩 투자했다.
[조화의 레벨이 2가 되어 삼색(三色) 조화로 업그레이드됩니다. 풍기는 향이 더욱 좋아져 손님들의 기분이 평안함을 넘어서 여유도의 하락을 느리게 만듭니다.]
[그림 액자의 레벨이 2가 되어 명화(名?) 액자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액자에 담긴 초보 작가의 그림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작가의 그림으로 바뀝니다. 액자의 효과로 손님들의 마음이 느긋해져 음식이 평소보다 늦게 나와도 여유도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자 노란 조화는 빨강, 노랑, 주황의 삼색 조화로 바뀌었다.
그 덕분에 식당에 은은히 퍼지던 향기가 한층 더 좋아졌다.
한데 이 향이라는 것이 참 신기했다.
보통 식당에 인위적인 다른 향이 퍼지면 음식의 맛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향은 인위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물론 음식의 맛과 고유의 향 역시 해치지 않을 것 같았다.
‘레벨 업 시스템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냐마는…… 신기하네.’
벽에 걸려 있던 액자 속 그림들도 한 단계 더 수준 높은 명화로 바뀌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는 게 느껴졌다.
강지한이 만족하며 어제 레벨 2까지 올렸던 김치볶음밥의 레벨을 3으로 올렸다.
레벨 업을 모두 끝낸 뒤, 오픈을 위해 본격적으로 주방을 정리했다.
오늘 하루 판매에 필요한 떡볶이 특제 소스는 집에서 숙성시켰던 것을 가져왔다.
라면에 들어갈 특제 양념도 어제 미리 만들어둔 걸 가져왔으니 육수를 내고 밥을 짓고 반찬 두 가지 정도만 준비해 두면 될 터.
요리에 들어갈 재료 준비는 이제 강지한의 몫이 아니었다.
딸랑-
8시 50분.
9시가 되기도 전 용성우가 씩씩하게 인사하며 출근했다.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응, 성우~ 좋은 아침.”
“바로 작업 전선에 합류하겠습니다!”
용성우는 외투를 벗고 앞치마를 두른 주방용 장화로 갈아신었다.
마지막으로 모자까지 눌러쓴 후에 손을 씻고 식재료들을 다듬었다.
범인은 천재를 이기지 못하고, 천재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용성우는 이 일을 즐기고 있었다.
식당의 일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한 번 인상을 찌푸리는 일 없이 미소를 달고 살았다.
언제나 씩씩한 에너자이저이자 활력의 대명사가 바로 그였다.
그래서 식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요리를 만들어내는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재료를 다듬는 용성우.
그 모습에 강지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딸랑-
“리나 왔어요~”
10시 20분.
어김없이 칼 같은 시간에 이리나가 출근했다.
그런데 그녀의 뒤를 이어 바로 한 사람이 더 들어섰다.
이리나가 ‘응?’ 하며 돌아섰다.
홀의 입구엔 그녀도 얼굴을 익히 아는 청년이 서 있었다.
지한 분식의 단골 최지민이었다.
“맞다! 우리 왕단골 손님 오늘부터 같이 일하기로 된 거였죠? 사장님한테 얘기 들었어요.”
이리나의 알은체에 최지민이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지민입니다. 스물세 살이고 제가 막내라 들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최지민의 입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생긴 것만큼 목소리도 좋았다.
“용성우야! 내가 형이니까 편하게 말 놓을게. 괜찮지?”
“하하, 네. 저도 편하게 해주시는 게 좋아요.”
“지민이도 형이라고 불러.”
“그럴게요.”
역시 활기찬 데다 친화력이 만렙인 용성우다웠다.
“지민 씨,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강지한이 최지민에게 말했다.
“네, 사장님. 뭐부터 하면 될까요?”
“지금은 리나 도와서 홀 정리만 해주시면 돼요. 아, 지민 씨 앞치마도 준비해 뒀으니 착용하시고요.”
“네.”
앞치마를 착용하는 최지민에게 이리나가 다가와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오늘부터 잘해 봐요.”
“제가 서빙 알바는 처음이라 좀 떨리네요. 모르는 거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볼게요.”
“물어볼 일 없을 걸요?”
“왜요?”
“그 전에 제가 먼저 시킬 테니까요. 경험 이상의 스승은 없는 거 아시죠? 제가 바닥 쓸고 닦을 테니, 테이블 위에 냅킨통 채워주시고 수저 부족한 곳 있나 봐주시고, 의자 가지런히 넣어 주세요.”
“네.”
최지민은 이리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오픈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리고 11시.
대망의 재오픈 시간이 다가왔다.
한데 이미 그때부터 문 밖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본 강지한이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을 받은 이리나가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오세요~! 지한 분식 재오픈했습니다!”
열린 문으로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전보다 배 이상 넓어진 홀을 보며 신기한 듯 웅성댔다.
“와, 엄청 넓어졌네.”
“훨씬 쾌적하다.”
“오빠, 벽에 걸린 그림 봐봐. 멋지다, 그치?”
“식당에서 되게 좋은 냄새 난다.”
“난 잘 모르겠는데.”
“은은해서 그래. 잘 맡아봐.”
“어, 알겠다. 이거 무슨 향이야? 비누향 같기도 하고 꽃향기 같기도 하고. 좋다.”
이리나는 손님들의 반응을 보며 흡족해했다.
오픈을 하자마자 열두 개의 테이블 중 반이 찼다.
사실 홀의 공간을 넓혀서 테이블을 몇 개 더 들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주방을 넓히며 식재료 저장고를 따로 만들었다.
그곳에 식료품과 김치를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홀의 공간이 조금 줄어들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비빔밥이랑 김치찌개 하나요.”
“여기요!”
이리나가 주문을 받는 사이 다른 테이블 손님이 소리쳤다.
그에 최지민이 민첩하게 다가가 물었다.
“네, 주문하세요.”
이를 본 이리나가 방긋 웃었다.
홀에서 같이 뛰어줄 동료가 한 명 늘어나니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주문 들어왔어요!”
이리나와 최지민이 받아온 주문을 주방으로 넘겼다.
비빔밥 하나, 김치찌개 하나, 떡볶이 2인분, 치즈김밥 하나였다.
“성우야, 비빔밥이랑 치즈김밥 부탁해.”
둘 다 강지한이 미리 준비해 놓은 밑재료만 있으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메뉴였다.
“네, 사장님!”
용성우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강지한은 화구 앞에서 떡볶이와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그 사이에 또다시 주문이 들어왔고, 종소리가 울리며 새로운 손님들이 계속 홀을 채웠다.
지한 분식의 재오픈 날, 시작이 좋았다.
* * *
점심 피크 타임.
웨이팅 줄이 길지 않았고, 대기 시간도 짧아졌다.
손님이 줄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홀이 넓어지고 직원이 늘어나며 회전률이 빨라진 것이다.
게다가 벽에 걸린 명화 액자와 삼색 조화가 손님들의 마음을 여유롭고 평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 보니 강지한의 눈에만 보이는 손님들의 여유도가 네 칸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울러 손님들의 평균 만족도는 대부분 45를 상회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잠깐 동안 강지한이 벌어들인 만족도는 2,645.
벌어들인 매출은 60만 원 가까이 됐다.
특히 만족도는 1포인트당 1,000원으로 환전이 가능하니 총 320만 원이 넘는 거금을 벌어들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열두 테이블을 꽉꽉 채워서 두 번 반이나 회전시킨 결과였다.
피크 시간이 끝난 다음에도 손님들은 심심치 않게 들어오는가 싶더니 저녁이 되어서는 다시 웨이팅이 이어졌다.
‘이 기세면 우리 사장님 금방 부자 되겠다.’
용성우가 자기일인 양 신이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셈이 빨랐다.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 매출을 잡아 휴무일 빼고 한 달 26일 평균으로 계산한 뒤, 직원 급여에 재료비, 월세, 공과금을 제했다. 그 결과 순수익으로 2000만 원은 족히 남는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하지만 용성우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만족도 포인트 환전이었다.
그것까지 합하면 한 달간 강지한은 억이 넘는 돈을 너끈히 벌어들이는 게 가능했다.
아울러 중간중간 팔려 나가고 있는 김치 역시 정신이 없어서 계산에 넣지 못했다.
강지한은 재오픈을 하며 김치를 바로 판매 개시했다.
메뉴판을 아직 정식으로 준비 못했기에 홀의 잘 보이는 곳에다가 A4 용지를 붙인 뒤, 매직으로 크게 김장 김치의 판매를 알렸다.
이미 지한분식의 김치 맛을 알고 있는 손님들은 너도나도 지갑을 열었다.
강지한은 오늘 하루 일단 20㎏ 정도의 양만 준비해 왔던 터.
한데 그것이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전부 팔렸다.
1㎏당 7천 원이니 전부 14만 원을 번 것이다.
‘다른 김치들도 팔아봐야겠다. 그러려면 일손이 좀 필요한데…….’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건 기본적으로 절임의 방법과 시간, 양념의 맛, 숙성기간과 온도다.
양념이야 강지한이 직접 만들면 되고, 숙성시간이나 온도 역시 조절하면 되는 일.
때문에 많은 양의 김치를 가르쳐 준 시간과 방법대로 절여주고 양념을 버무려 줄 일손이 필요했다.
일을 잘해야 하고 무엇보다 믿음직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쉽게 구해질까 의문이었다.
저녁 손님들이 전부 빠지고 이제 마무리 손님들만 드나드는 시각.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가는 여러 손님들 중 한 명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비빔밥 하나 드셨죠? 5,000원입니다.”
식당이 한가할 때의 계산은 최지민이 맡고 있었다.
그가 손님에게 5,000원을 받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히 가세요.”
“고생하세요.”
미소 지으며 화답하는 손님을 강지한이 무심코 쳐다봤다.
그의 머리 위에는 47이라는 만족도와 9/10이라는 단골지수가 떠 있었다.
만족도는 강지한에게 흡수되었고, 단골지수는 10/10으로 바뀌며 단골이라는 글자로 변했다.
재오픈 이후 처음으로 단골 포인트를 채워준 손님이었다.
그때였다.
펑! 하는 효과음과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일더니 손바닥만 한 상자가 나타났다.
럭키 박스였다.
박스의 위에는 여전히 [럭키 박스 LV1-NEXT 새로운 단골 1명] 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조건을 만족했으니 바로 레벨 업이겠지?’
[럭키 박스의 레벨 업 조건, 새로운 단골 1명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행운의 아이템이 무작위로 증정됩니다.]
‘역시.’
강지한이 감탄하는 사이 럭키박스의 뚜껑이 열리며 그 안에서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200만족도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200만족도 포인트면 20만 원이었다.
나쁘지 않은 수입에 강지한의 입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럭키 박스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강지한의 시선이 럭키 박스로 향했다.
그러자 럭키 박스의 뚜껑이 턱! 하고 닫히고는 부피가 조금 더 커졌다.
럭키 박스의 위에 다음 레벨 업 조건이 나타났다.
[럭키 박스 LV2-NEXT 새로운 단골 2명]
이번에는 새로운 단골을 두 명 얻어야 럭키 박스의 레벨 업이 가능했다.
즉 강지한은 럭키 박스의 레벨 업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장사만 열심히 하면 단골이 알아서 늘어날 테고 저절로 럭키 박스는 레벨 업 할 테니 말이다.
* * *
오후 9시 12분.
마지막 손님까지 나가고 하루 장사가 마무리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용성우가 기지개를 켜며 기분 좋게 외쳤다.
“고생했어요,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리나와 최지민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강지한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했어. 지민 씨도 고생했고요. 힘들었죠?”
“재미있었어요. 하하.”
“그럼 마무리합시다.”
지한 분식 식구들은 각자의 맡은 구역을 마무리한 뒤, 퇴근했다.
주방에 홀로 남은 강지한이 가스 밸브를 잠그고 간판 불을 끈 뒤 식당을 나와 애견 카페로 향했다.
오늘 밤은 처음으로 예소린과 둘이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