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Restaurant 35. 이사
드디어 강지한은 이사를 결심했다.
돈은 이미 충분할 만큼 모인 데다가 옥탑방에서 지내기에는 설탕이가 영 신경 쓰였다.
우선은 마당이 딸린 저렴한 집으로 이사를 갈 참이었다.
자신의 집을 사는 것은 돈이 조금 더 모인 다음에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었다.
당장은 집도 집이지만 식당의 증축에 대해서도 고민할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2호점을 고민했지만 그보다는 넓은 자리로 옮겨서 내실을 더 다지는 게 어떨까 싶었다.
한데 거기서 가장 걸리는 것이 매장의 계약기간이었다.
아직 계약기간인 일 년을 다 채우지 못한 상황.
그 문제는 예경천과 한 번 상의해 보기로 했다.
그에게 고민을 토로하면 자신이 생각 못했던 방법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나 싶었다.
일요일.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강지한은 김숙자를 찾아갔다.
전날 미리 강지한에게 연락을 받았던 김숙자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려놓고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머니, 뭘 이렇게…….”
“요즘 지한 총각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잖아. 집에 오면 매일 녹초가 되어서는 잠만 자는 것 같던데. 영 안쓰러워야지. 몸보신 좀 하라고 차려봤어요.”
상에는 갖가지 나물 반찬과 소갈비 찜, 콩나물 국, 김치, 계란프라이에 시원한 보리차까지 놓여 있었다.
밥은 영양 가득 담긴 잡곡밥이었다.
“일전에 지한 총각 우리 집 왔을 때 잘 먹던 게 정말 보기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실력 발휘 좀 해봤지, 호호.”
“감사해요, 어머니.”
강지한의 마음 한 편이 뭉클했다.
자신을 신경 써주는 김숙자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향숙이는요?”
김숙자가 이향숙의 방문을 눈짓했다.
“밤새고 자는 중이야.”
“밤새 뭘 했대요?”
“본격적으로 인터넷 쇼핑몰 열겠대. 홈페이지인가 뭔가 만든다더라고.”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아요?”
“나도 그게 신기해. 공부는 더럽게 못했는데 의외로 잡기에 능하단 말이야.”
이향숙은 공부 머리는 없었다.
하지만 음악, 미술, 체육, 게임, 등등 예체능 분야에서 의외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손재주도 좋았다.
오래된 옷들은 몇 벌씩 서로 모아 자르고 붙이고 해서 리폼 해 입었다.
못쓰게 된 가전제품이나 물건들은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 장식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강지한이 혀를 내둘렀다.
“홈페이지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네요, 향숙이.”
“하여튼 저년은 배꼽시계 울려야 눈 뜰 테니까 신경 쓰고 어서 먹어요. 식겠네.”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
강지한이 비로소 수저를 들었다.
“근데 지한 총각. 며칠 못 본 새 더 잘생겨진 것 같네?”
“그래요?”
“비결이 뭐야? 좀 알려줘 봐. 나도 예뻐지게.”
“어머니한테 예쁨 받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강진한의 농에 김숙자가 깔깔대며 웃었다.
“어쩜~ 우리 지한 총각, 갈수록 능글맞아지네? 그런데 싫진 않다.”
오히려 둘 사이에 벽이 얇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 김숙자는 정말 좋았다.
강지한은 갈비며 주변 반찬, 국까지 맛있게 먹었다.
저번에도 느꼈던 거지만 김숙자가 차려주는 밥에는 따스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이것저것 복스럽게 먹는 강지한을 보는 것만으로도 김숙자는 배가 부르는 것 같았다.
* * *
식사를 마치자마자 김숙자는 강지한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어디 가시게요, 어머니?”
“전에 내가 말했던 부동산 업자 보러 가야지.”
“제가 이사 얘기 할 거 알고 계셨네요.”
“내가 눈치가 9단이에요.”
“어? 근데 오늘 주말인데 문을 열어요?”
“그 사장님 전화만 하면 나오거든.”
김숙자가 스마트폰으로 부동산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저예요. 혹시 지금 시간 되시면 집 좀 보러 갈까 하는데. 네네. 제가 볼 건 아니고, 아들 같은 총각이 한 명 있거든요. 마당 있는 집으로 싸게 나온 거요. 네~ 그래요.”
통화를 마찬 김숙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거봐요. 나온다잖아.”
* * *
“어……? 사장님.”
김숙자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부동산 사장은 다름 아닌 예경천이었다.
그는 강지한이 들어온 상가 건물 사장이자 예소린의 아버지였다.
“응? 강 사장이 숙자 씨…… 아니, 저 사모님이랑 어쩐 일이야?”
놀란 예경천에게 김숙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한 총각이 제 건물 옥탑에서 생활하고 있잖아요. 한데 이번에 지한 총각 들어간 건물이 예 사장님 상가라서 이것도 무슨 인연인가 보다 싶더라고요.”
김숙자는 예경천과 나름 친분이 깊었다.
둘 다 춘천 토박이인 데다가 건물주 모임의 회원으로 3년 넘게 알고 지내는 중이었다.
“그럼 아들 같은 총각이라던 사람이…… 강 사장?”
“맞아요.”
“역시!”
예경천이 두 손을 딱! 마주쳤다.
“내가 눈 하나는 정확하지. 우리 강 사장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아주 훌륭하고 나이스하다는 걸 진작 알았다니까. 근데 강 사장.”
“네?”
“요즘 우리 소린이 카페에 출입이 잦던데 혹시…… 내 딸한테 다른 맘이 있는 건 아니시지?”
“설탕이 데리러 가는 겁니다, 하하.”
“그렇지요! 와하하하하하!”
“예 사장님. 우리 일 얘기 하실까요?”
예경천이 얼마나 딸에게 팔불출인지 잘 아는 김숙자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래야지요. 제가 미리 찍어둔 곳이 세 군데 정도 있으니까. 차로 움직입시다!”
* * *
강지한은 예경천의 차를 타고 세 군대의 집을 모두 봤다.
하나 같이 마당이 있는 옛날식 집이었다.
그중 두 군데는 사농동에 있었고, 하나는 옥천동에 자리했다.
사농동은 지리적으로 춘천에서 조금 외진 곳에 속했다.
번화가라기보다는 조용한 동네였다.
오래전부터 랜드마크 역할을 해오던 놀이공원 육림랜드와 인형극장이 있기는 했으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땅값도, 집값도 저렴했다.
워낙 집값 싸기로 유명한 춘천인데 거기에서도 더 외지다 보니 가격이 하락하는 건 당연지사.
옥천동은 춘천예술관과 시청, 상시 공연이 열리는 소극장을 품은 동네였다.
사농동보다는 번화한 동네지만 놀거리가 많은 편은 아닌 데다 골목골목이 옛 정취를 가득 품은 곳이었다.
해서 역시 집값이 쌌다.
강지한은 세 군대의 집 중 한 곳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집이 가장 맘에 들어요.”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던 중, 강지한이 답을 내놓았다.
“사농동 거기?”
“네.”
도로변에 지어진 집이었는데 200평 되는 마당에 낡은 집이 두 채가 세워져 있고 뒤로는 큰 텃밭인 곳이었다.
계약 조건은 1,000에 월 20만 원.
번화가와 멀리 떨어져서 교통이 불편하고 편의시설이 부족하며 집도 낡아서 요즘 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않는데, 나이든 사람들이야 이사를 다닐 일이 없으니 그 가격에도 두 달 동안 나가지가 않고 있다는 것이 예경천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에게는 거기가 딱이었다.
집이 낡아서 불편한 부분들은 옥탑방에서 이사 나갈 때 회수한 포인트를 그대로 투자하면 살만해진다.
무엇보다 강지한은 지금 집보다 식당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때문에 설탕이가 뛰어놀 마당이 있으면서 가격이 싼 곳이 좋았다.
아울러 그는 마당에 김장 김치도 묻을 작정이었다.
세 집 중 마지막 집이 적격이었다.
“그럼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바로 계약하시죠, 강 사장.”
“좋아요.”
예경천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당장 계약을 마칠 수가 있었다.
계약 기간은 일 년으로 했다.
예경천은 강지한과 김숙자를 원룸으로 태워다 주며 헤어지기 전 넌지시 이런 말을 던졌다.
“강 사장! 돈 많이 벌면 그냥 그 땅을 사는 것도 생각해 봐요. 거기 2억에 내놓은 땅인데 도로가 뚫려서 건물 재건축하는 것도 가능하거든! 싸게 땅 사서 자기 집 짓고 살면 좋잖아.”
예경천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이사는 언제 갈 생각이래?”
김숙자가 잠깐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강지한의 옥탑방에 따라 들어와 물었다.
강지한은 자신을 반겨주는 설탕이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며 대답했다.
“짐도 별로 없으니 이번 주 중으로는 나갈 생각이에요.”
“그래요. 갈 때 가더라도 향숙이 얼굴은 한 번 보고 가. 안 그러면 두고두고 고생할 일 생길 테니까. 향숙이 성격 알죠?”
“누구보다 잘 알죠.”
강지한과 김숙자가 동시에 웃었다.
“그럼 내려가 볼게요. 푹 쉬어~ 지한 총각.”
김숙자가 가고 나서 옥탑방엔 강지한과 설탕이, 둘만 남았다.
“진짜 이사 가는구나, 설탕아. 새로운 곳에서도 지금처럼 잘 해나갈 수 있겠지?”
왕! 헥헥헥.
설탕이가 강지한의 뺨을 마구 핥았다.
“하하하.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나저나 벌써 저녁때네. 뭣 좀 먹자.”
강지한이 설탕이의 밥을 챙겨주고 후다닥 라면 하나를 끓였다.
저녁 메뉴로 라면을 택한 건 숙련도가 99였기에 빨리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보글보글.
맛있게 라면을 끓여 냄비째로 상에 들고 온 그때였다.
[라면의 숙련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라면의 레벨이 6이 되었습니다. 라면에 들어가는 특제소스의 레시피가 업그레이드됩니다.]
[라면의 다음 레벨이 잠겨 더 이상 레벨 업이 불가능합니다. 잠긴 7레벨은 스테이지 3에서 풀립니다.]
“올랐다.”
강지한의 머릿속으로 지금껏 만들었던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의 특제소스 레시피가 나타났다.
강지한은 그 레시피를 몇 번씩 곱씹으며 라면을 먹었다.
그런데 좋은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혀의 숙련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혀의 레벨이 6이 되었습니다. 미각이 한 단계 발달합니다. 맛보는 음식에 들어간 재료를 80% 이상 파악 가능해집니다. 단, 먹어봤거나 알고 있는 재료에 한합니다. 미각이 1 올라갑니다.]
[혀의 다음 레벨이 잠겨…….]
* * *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가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토요일이 되어 있었다.
이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주중에 짐을 조금씩 옮겼으니 이제 향숙이에게 인사만 하고 나오면 된다.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는 분식집 안에서 용성우와 이리나는 본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특히 용성우는 주방의 믿음직한 보조로 성장해 있었다.
원체 요리를 좋아하고 기본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던지라 하나를 가르쳐 주면 둘을 깨우쳤다.
이제는 김밥과 떡볶이, 라볶이, 밥볶이, 비빔밥 정도는 용성우도 만들 수가 있었다.
어차피 그 메뉴들에 들어가는 비법 소스는 강지한이 다 만들어 놓는다.
김밥 같은 경우 비법 소스가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밥을 특수한 육수로 지은 뒤 특별 비법으로 만든 천연조미료로 간을 하는데, 이 과정을 강지한이 하고 있었다.
아울러 비빔밥에 들어가는 고추장 역시도 꿀을 섞던 것에서 더 발전되어 이제는 비빔밥 전용 특제 고추장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
때문에 강지한이 가르쳐 준 대로만 시간을 지켜 조리하면 비슷한 맛의 음식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한편, 강지한의 목소리도 6레벨로 상승했다.
가뜩이나 감미로운 목소리가 한층 더 깊어졌다.
이제 감수성이 조금 예민한 사람은 강지한이 아무 말이나 해도 그게 좋은 음악처럼 들릴 정도였다.
더불어 메뉴 슬롯에 등록된 음식 중, 비빔밥과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제외한 모든 메뉴들이 레벨 6으로 업그레이드됐다.
해서 모든 메뉴의 조리에 추가되는 재료가 늘어난 데다가 주방 직원까지 들인 만큼 음식의 값은 약간의 조정이 불가피했다.
강지한은 6레벨의 음식들을 전부 500원씩 가격을 올렸다.
그렇다고 해도 지한 분식을 찾는 이들에게 부담되는 가격은 전혀 아니었다.
음식맛이 좋아질수록 손님들은 늘어났고, 웨이팅은 길어졌다.
그렇다 보니 매장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의 머리 위의 여유도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지금은 강지한이 손님들이 필요한 것이 무언지를 볼 수 있기에 내려갔던 여유도를 다시 올려줌으로써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였다.
집 문제는 해결했으니 식당을 증축시켜야 할 때였다.
‘예 사장님을 다시 찾아가 봐야겠다.’
* * *
일요일.
지한 분식이 쉬는 날이다.
그리고 강지한이 새로운 집으로 완전히 나가는 날이기도 했다.
오늘부터는 이 집에서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이향숙은 어제 얼굴을 보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생각보다 그녀는 쿨하게 강지한을 보내주었다.
“이제 정말 끝이네.”
강지한이 마지막으로 옥탑의 정취를 감상하고서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예경천의 부동산으로 향했다.
어제 미리 연락을 받은 예경천은 부동산에 나와 강지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2호점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고, 넓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게 나랑 계약기간은 남았고. 참 고민되겠구만. 그치, 강 사장?”
“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더 넓은 곳으로 본 매장을 옮기고, 기존 지한 분식 자리는 다른 용도로 활용을 해볼까 싶어요.”
“어떤 용도로?”
“생각을 좀 해보려고요.”
어차피 김치를 팔기로 했으니 김치전용 창고 겸, 판매 매장으로 이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나은 듯했다.
고민하는 강지한의 얼굴을 바라보던 예경천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씩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삽시간에 사라져다.
“일단 매장부터 보러 가지.”
“그럴까요?”
예경천이 차를 몰아 괜찮은 매물이 나온 곳으로 강지한을 안내해 주었다.
“여기가 얼마 전에 비었는데, 어때?”
“네? 여기는…….”
예경천이 가리키는 건물을 본 강지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