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Restaurant 33. 이게 분식집 김치라고?
하루 장사가 또다시 끝났다.
강지한은 바로 눈에 만족도 포인트 20을 투자했다.
[눈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손님들이 바라는 걸 알 수 있게 됩니다.]
[영업이 종료된 시간입니다. 손님이 들지 않습니다. 튜토리얼은 내일 활성화됩니다.]
[눈의 다음 레벨이 잠겨 더 이상 레벨 업이 불가능합니다. 잠긴 4레벨은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풀립니다.]
‘이건 거의 독심술 수준인데.’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강지한이었다.
하도 꿈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니 놀라기보다는 즐기는 경지에 다다랐다.
당장 레벨 업 된 능력을 사용해 보고 싶은데 지금은 손님이 없으니 그것이 불가능했다.
천상 내일 장사를 하며 시험해 볼 수밖에.
‘그나저나 보너스 스테이지는 또 뭘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때가 되면 알려주겠거니 생각하고 넘겼다.
내일은 일요일.
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조금도 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지금 쉬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마음까지 여유로워지는 주말.
강지한의 원룸 건물 옥상에서는 이른 저녁부터 보쌈 파티가 열렸다.
강지한이 새벽부터 일어나 김장 김치를 마흔 포기나 담아 돼지고기까지 삶아서 세입자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배추는 일전에 그랬던 것처럼 새벽 도깨비 시장에서 절임 배추를 구매해 배달시켰다.
파티 자리엔 김숙자도 물론 함께였다.
그녀는 점심나절부터 강지한을 도와 함께 김장을 한 터였다.
이향숙은 친구들과 노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와, 김치 맛있다.”
“그치? 엄마가 해준 것 같아.”
101호에 사는 커플이 김치를 집어 먹으며 감탄했다.
겨우 레벨 2의 김치라 그렇게까지 대단한 맛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맛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그런 김치를 담갔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강지한의 김치 레벨은 마흔 포기의 배추를 다 담가가는 시점에 3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그와 동시에 기존에 습득한 세 가지 김치의 레시피가 더욱 고급스러워졌다.
아울러 총각김치와 백김치의 레시피를 익힐 수 있었다.
“지한 총각, 정말 맛있네. 김치 담그는 건 언제 배웠대?”
“틈틈이 연습했습니다, 하하.”
김치는 포인트 투자를 해서 레벨 업이 가능한 게 아니라 숙련도를 채워야 레벨 업이 된다.
따라서 강지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김숙자가 옥탑에 가지런히 놓인 거대한 항아리 다섯 개를 훑었다.
어제까지는 비어 있는 항아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안에 김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제 이렇게 준비를 했대? 그것도 혼자. 만만치 않을 텐데.”
그 말대로였다.
강지한은 새벽부터 시장에 나가 배추를 사왔다.
그리고 마흔 포기를 김장한 뒤 그대로 졸도하듯 쓰러졌다.
한데 레벨 3까지 업그레이드된 이불을 덮고 한 시간 정도 자고 났더니 거짓말처럼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
해서 보쌈 고기까지 두둑이 삶고 굴까지 사와서 이렇게 파티를 벌인 것이다.
그 많은 김치를 혼자 다 먹을 수 없었으니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저기, 지한 씨~”
보쌈 한 점을 김치에 싸먹고 눈이 휘둥그레진 102호 서른 중반의 여성이 강지한을 은근히 불렀다.
“네.”
“이 김치 나 좀 싸가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보시다시피 많이 있으니까 김치 가져가고 싶으신 분은 마음껏 가져가세요.”
강지한의 발언에 사람들이 땡이라도 잡은 듯 좋아했다.
“근데 이런 자리에 뭔가 좀 빠진 것 같지 않습니까?”
조용히 김치를 먹고 있던 203호 청년이 조심스레 물었다.
말의 의미를 바로 캐치한 건 김숙자였다.
“술이 없네.”
청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안주가 너무 나이스한데. 집에 있는 소주 좀 꺼내올까요?”
“아! 나도 맥주 두 병 있는데.”
“난 밑에 슈퍼에서 술이랑 음료수 좀 사올게요.”
그렇게 김치 파티는 술자리로 바뀌었다.
날씨가 워낙 추웠던지라 다들 옷을 두껍게 껴입은 채 술을 홀짝였다.
각자 좋아하는 종목을 알아서 따라 마시며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그때 우다다다다! 하는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이향숙이 등장했다.
김숙자의 연락을 받고 친구들과 급하게 헤어진 것이다.
“나도 껴줘! 치사해!”
그녀는 휘황찬란한 옷에 반짝거리는 액세서리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었는데, 범인이 이해하기엔 좀 난해한 패션이었다.
이향숙의 참가로 술자리가 더 시끌벅적해졌다.
* * *
지한 분식의 새로운 메뉴판이 완성됐다.
<분식 메뉴>
라면 2,500원
치즈라면 3,000원
김치라면 3,000원
치즈김밥 2,500원
참치김밥 2,500원
멸치고추김밥 2,500원
김밥 2,000원
떡볶이 2,000원
라볶이 2,000원
밥볶이 2,000원
어묵 500원
<식사 메뉴>
비빔밥 5,000원
김치찌개 5,000원
된장찌개 5,000원
기존의 메뉴에서 치즈라면과 김치라면이 추가되고 따로 식사 메뉴까지 추가된 것.
11시가 되자마자 손님들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손님들의 머리 위엔 여유도 그래프가 떠 있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여유도가 보통 네 칸 이상 차 있었다.
“어서 오세요!”
몰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강지한보다 먼저 바빠진 건 이리나였다.
“사장님! 두 테이블 주문 들어왔어요.”
이리나가 쪽지를 주방에 붙이고 갔다.
동시에 강지한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딸랑.
그때 또 커플 한 팀이 들어왔다.
요리를 하던 강지한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홀로 향했다.
그런데, 커플 중 여자의 머리 위에 그림 같은 것이 떠 있었다.
강지한은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머리위에 여유도 옆으로 사과만 한 그림이 확실히 보였다.
그림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 컵이었다.
[눈 레벨 3의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여유도 그래프 옆에 뜨는 그림은 손님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뜨거운 물?’
여자의 여유도는 다섯 칸 중 네 칸이 차올라 있었다.
그때 이리나가 새로운 팀에게서 주문을 받아왔다.
강지한이 그런 이리나에게 말했다.
“리나야.”
“네?”
“3번 테이블 여성분한테 따뜻한 물 한 컵 갖다 줄래?”
“네? 아……. 네.”
갑자기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사장이 시키는 일이기에 이리나는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여자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어?”
여자는 처음에 당황했다가 컵을 만져보더니 화색이 돌았다.
“와, 따뜻한 물이네요. 안 그래도 손이 너무 얼어서 따라 마시려 했었는데 어떻게 아시고?”
여자는 신기한 눈으로 이리나를 바라봤다.
놀라긴 이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걸 진짜 어떻게 알았지?’
하지만 손님 앞에서 당황해서는 안 된다.
이리나는 예의 그 밝은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 사장님이 눈썰미가 좋거든요. 갖다 드리라고 하셨어요.”
“와, 센스 짱.”
“곧 음식 나올 거예요. 바로 갖다 드릴게요.”
“감사해요.”
여자는 뜨거운 물이 담긴 물 컵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네 칸이었던 여유도가 다섯 칸으로 차올랐다.
[손님이 바라는 것을 늦지 않게 충족시켜 주었으므로 여유도가 올라갑니다.]
이를 본 강지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거구나.’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마치 스마트폰으로 타이쿤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강지한은 완성된 라면과 라볶이, 밥볶이를 내어놓았다.
그걸 가지러 오며 새로운 테이블의 주문지를 넘겨준 이리나가 물었다.
“사장님, 어떻게 알았어요? 뜨거운 물!”
“손을 계속 비비시길래 필요할 거 같아서.”
“눈썰미도 좋고 센스도 죽이네요. 오빠 같은 사람이랑 연애하면 싸울 일 없겠다.”
“……뭐?”
강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손님이 이리나를 불렀다.
“여기요!”
“네, 가요~”
이리나가 바람처럼 움직여 강지한의 앞에서 떨어졌다.
강지한은 그런 이리나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다가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 * *
점심 장사가 지나가는 동안 강지한은 여유도 그래프를 보는 데에 익숙해졌다.
아울러 손님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틈틈이 살피며 이리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업그레이드된 바닥의 버프를 받아 평소보다 가벼운 몸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리나는 지치지도 않고 실수 없이 지시를 잘 따랐다.
신 메뉴는 점심보다 저녁에 더 많이 팔렸다.
저녁 손님들은 너도나도 새로운 메뉴에 도전을 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그 맛에 열광했다.
“이 비빔밥…… 뭐야? 뭐가 들어갔지?”
“아, 장난 아니다.”
“된장찌개 예술이야.”
“난 김치찌개가 더 좋다.”
강지한은 손님들의 반응에 만족했다.
모든 음식들의 레벨을 5까지 올려서 내놓은 보람이 있었다.
호평을 받는 건 신 메뉴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김치였다.
“이 집 김치 맛이 갑자기 좋아졌네?”
“다른 반찬에 손이 안 간다.”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 먹겠는데.”
서빙을 하며 손님들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된 이리나는 자기 일 인양 기분이 좋아졌다.
“사장님, 다들 맛있대요. 김치도 반응 장난 아니에요. 저기 저 손님은 음식 다 드셨는데 밥 한 공기만 따로 추가해서 김치에 비우셨어요.”
“다행이다, 진짜.”
“사장님이 맛있게 만드는데 이게 당연한 거죠. 오늘 내놓은 겉절이는 내가 먹어봐도 끝내주던데요.”
오늘 강지한이 내놓은 건 김장배추김치가 아닌 겉절이였다.
김장용 배추김치는 따로 만들어서 숙성을 시키는 중이었다.
손님들의 식탁에서 겉절이가 몇 번씩 리필됐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엔 오전에 만들어 둔 겉절이가 모두 떨어져서 강지한이 허겁지겁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피크 타임이 지나가고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이리나가 강지한에게 물었다.
“사장님, 이렇게 반응 좋은데 김치 장사도 하는 거 어때요?”
“김치를?”
“네, 단순히 제 생각을 말한 게 아니고 손님들이 물어보더라구요. 김치는 따로 안 파냐고.”
“그 정도로 맛있나?”
“장난해요? 어지간한 공장 김치보다 훨씬 맛있는데.”
“흠, 그래?”
“네!”
김치는 다른 음식들에 비해 레벨 업을 할 경우 맛의 격차가 전 단계와 비교해 크게 벌어지는 것 같았다.
강지한 역시 이를 느꼈으나 손님들이 이토록 열광할 줄은 몰랐었다.
슬슬 분식집 문을 닫을 시간이 됐다.
이리나가 홀을 정리했고, 강지한도 주방을 마무리하려는데.
딸랑-
손님 한 명이 파김치가 된 얼굴을 하고 터덜터덜 들어섰다.
정장을 입은 이십 대 중반의 사내는 ‘용성우’였다.
그가 무심코 발을 들이다 정리가 되는 분위기를 보고 다시 나가려 했다.
“아, 죄송합니다. 영업하는 줄 알고…….”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그래요?”
용성우는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아무 곳에나 앉았다.
“주문하시겠어요~?”
이리나의 물음에 그가 메뉴판을 흘끔 살피고 말했다.
“라면 주세요.”
“넵!”
“휴.”
사실 먹고 싶었던 건 비빔밥이나 찌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가 사라지고 백수로 돌아선 지 석 달이 지나가는 상황에서는 라면도 감지덕지였다.
사실 점심도 집에서 봉지라면으로 때웠다.
아침은 걸렀다.
용성우가 스마트폰으로 취업 어플을 켰다.
그리고 춘천 지역의 구직 정보들을 살펴 내려갔다.
‘오늘 면접도 분위기가 썩 좋진 않았으니까.’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군대에 다녀왔다.
그리고 바로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처음 두어 달은 잘 적응하나 싶었지만, 그다음부터는 매일이 지옥 같았다.
회사에 마음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이 하고 싶었던 건 사실 식당이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실제로 손맛도 제법 괜찮았고 어떤 요리든 척척 해내는 실력까지 겸비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요식업에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더불어 부모님 역시 그가 식당일을 하기보다는 회사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연유로 용성우는 마음과 달리 직장인이 되었다.
한데 그마저도 얼마 안 가 그만두게 되었다.
코딱지만 한 회사가 부도나 사라진 것이다.
졸지에 실직자가 된 이후로 석 달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쉽게 그를 받아들여 주는 곳은 없었다.
‘하아, 이참에 그냥 작은 식당이라도 차릴까.’
용성우가 홀을 두루 살폈다.
이 정도의 사이즈라면 혼자서 어떻게든 끌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이리나가 테이블에 물 한 잔과 반찬들을 내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버릇처럼 인사를 건네고서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 먹었다.
대체적으로 평범하니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그러다 김치를 한 젓가락 집어 먹었다.
순간, 피로에 절어 동태처럼 흐리멍덩한 눈이 번쩍 뜨였다.
“……?”
김치가 너무 맛있었다.
‘이게 분식집 김치라고?’
김치는 겉절이였는데 동네의 작은 분식집에서 내놓았다고 하기에는 믿기지가 않을 만큼 맛이 좋았다.
한 번 김치를 집은 용성우의 젓가락이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결국 그는 라면이 나오기 전에 김치 한 접시를 다 비웠다.
“저기요! 김치 좀 더 주세요.”
“네!”
마침 라면이 나왔다.
이리나는 라면과 김치 한 접시를 쟁반에 담아 서빙해 주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용성우가 다시 김치를 집어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라면의 구수한 냄새가 콧속으로 훅 하고 밀려 들어왔다.
“……?”
용성우는 무언가에 라도 홀린 듯 라면을 한 젓갈 들어 맛보았다.
“후루룩!”
그리고,
“…….”
그의 젓가락질이 우뚝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