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0화 (30/330)

# 30

Restaurant 29. 돌아오다

뭔가 이상했다.

‘이거 또 왜 이래?’

강석호의 분식집에 손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점심때면 테이블이 만석이었다.

그런데 사흘 전부터 이가 하나씩 빠지더니 지금은 빈 테이블이 더 많았다.

하늘 분식은 지한 분식보다 규모가 두 배는 컸다.

그만큼 손님이 들지 않으면 손해가 심했다.

건물은 매입을 한 터라 피 같은 월세가 나갈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이대로라면 직원 급여에 재료비에 나날이 적자만 이어지니 식당문을 닫아야 한다.

‘연말이랑 신년 분위기는 다 지나갔는데.’

고민하던 강석호는 혹시나 싶어 식당을 나섰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지한 분식으로 향했다.

그런데 지한 분식 역시 손님이 그리 많은 건 아니었다.

피크 타임인데도 테이블 다섯 개 중 두 개가 비어 있었다.

그나마 세 개의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떠드는 걸 보니 단체 손님인 모양이었다.

‘저건 의미가 없지.’

여러 팀이 꾸준히 들어와야지 어쩌다 대규모 한 팀이 들어오는 건 좋은 성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것 참 이상하네.”

강석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걸음을 돌렸다.

* * *

지한 분식엔 유정미가 친구들을 끌고 와서 점심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여고생 열 명이 테이블 세 개를 차지하고 앉아 식사를 하며 쉴 새 없이 조잘댔다.

강지한과 이리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좋겠다. 나도 너희들처럼 낙엽만 굴러가도 웃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유정미 일행과 제법 친해진 이리나가 그리 말했다.

그러자 유정미가 이리나를 보며 물었다.

“언니 요새 웃을 일 별로 없어요?”

“그런 건 아니구. 예전보다는 줄었지. 아, 요새는 좀 웃을 일이 없기도 했다.”

“그 블로거 글 때문에?”

“그뿐이면 다행이게. 누가 우리 분식집을 음해하고 다니는 것 같아.”

“정말요?”

“여기서 식사하고 속이 틀어졌다느니, 조미료 맛만 가득하다느니 이상한 소문들이 퍼지니까 그런 의심이 들어.”

“헐.”

동네 장사만큼 소문에 민감한 것이 없다.

이리나의 얘기를 듣고 난 여고생들이 저마다 추리에 들어갔다.

“누가 헛소문을 퍼뜨리는 걸까?”

“여기 망하면 가장 이득 보는 사람이겠지.”

“거기가 어딘데?”

“몰라. 아, 그리고 퍼뜨리든 말든 뭔 상관이야. 이렇게 맛있으면 장사 잘되겠지. 그리고 난 울 반에 퍼진 내 소문이나 공중분해시켰음 좋겠다.”

“무슨 소문?”

“중딩 때 100킬로 넘었다는 거.”

“그거 실화잖아, 이년아.”

“98킬로였거든!”

“아 시끄러, 좀. 부끄러워 죽겠네. 그리고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 여기 분식점 원래 더 잘됐는데 지금 이렇게 된 거거든?”

“뭐? 그럼…… 문제네.”

“아! 그거다. 근처에 하늘 분식이라고 있는데 거기서 음해한 거 아냐? 같은 업종이잖아.”

“근데 음해를 했으면 여기보다 거기가 더 장사 잘되어야 하는 거 아냐? 어제 아빠랑 갔는데 파리 날렸어.”

“진짜? ……근데 왜 지한 오빠네 안 오고 글루 갔어?”

“아빠가 끌고 갔어. 공기밥 무한 리필이니까 싸게 많이 먹자고.”

여고생들의 대화를 듣던 강지한과 이리나가 의아한 시선을 교환했다.

“장사가 안 된대요, 사장님.”

“그러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 *

고중만은 춘천 토박이다.

춘천에서 초중고를 다 나왔고 대학까지 마쳤다.

그래서 괜찮은 인맥은 없었어도 마당발이었다.

깊은 인연을 맺기보단 얕게 많은 이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고중만은 열흘 전, 술자리에서 이상한 말을 들었다.

지한 분식의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는데, 아무래도 전날 사용한 음식을 재탕하는 것 같다는 등의 악담이었다.

그렇게 떠벌린 이는 고중만의 동네 후배 김태영이었다.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직장 하나 잡을 생각 않고서 단기 잡일을 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질이 좋지 못해서 누가 돈으로 사주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스스럼없이 저지르곤 했다.

해서 고중만은 김태영과 깊은 친분을 다진 건 아니었다.

그저 학교 후배라는 명목으로 여러 사람을 같은 테두리에서 알고 지내다 보니 이렇게 술자리에서 마주할 때가 제법 있었다.

김태영의 말을 들은 고중만은 이상함을 느꼈다.

‘강지한이가 그럴 리 없는데.’

팔고 남은 음식을 재탕하지 않는 걸 신념처럼 생각하던 사람이다.

장사가 되지 않아 음식이 산처럼 남았어도 자기가 더 먹으면 먹었지, 다시 손님에게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전날 재탕한 음식을 먹고서 탈이 났다?

“네가 한 말 책임질 수 있냐?”

고중만이 날카롭게 물으니 김태영은 찔끔했다.

강석호에게 돈을 받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이었으니.

게다가 김태영은 강단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나쁜 짓을 하다가 뒤가 밟히면 바로 꼬리 말고 용서부터 비는 소인배였다.

고중만의 성격이 어떤지 김태영은 잘 알고 있었다.

4년 전, 술자리에서 고중만에게 까불다 얻어맞았던 뒤통수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너 돌이키지 못할 실수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봐. 내가 아는 강지한이 그럴 놈이 아닌데, 그게 정말이야?”

“지, 지한 분식 사장이랑 안면이 있어요?”

고중만은 이런 술자리에서 한 번도 강지한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에겐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강지한을 만날 때마다 몹쓸 말로 괴롭혔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는 술자리에서 안주처럼 내놓고 씹지는 않았다.

고중만이 강지한과 안면 있는 사이라고 하니 김태영은 안절부절했다.

그에 고중만이 솥뚜껑 같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려치자 있는 사실을 그대로 늘어놓았다.

“하늘 분식 강 사장……. 영태야, 너 앞으로 그 인간 한 번만 더 보면 모가지 부러진다.”

“안 볼게요.”

“헛소문 퍼뜨리고 다니면 평생 잇몸으로 밥 씹을 줄 알아라.”

“안 퍼뜨릴게요.”

“너랑 같이 다니는 동생들도 단도리 쳐.”

“단단히 칠게요.”

그날부로 김태영은 강석호에게 돈을 받았던 지동천과 김중기에게 이제 더 이상 작업 치지 말라 당부를 했다.

어차피 받은 만큼은 해줬으니 그만해도 상관없을 시기였다.

그럼에도 계속 떠들고 다녔던 건 강석호에게 생색 한 번 내서 콩고물이라도 더 얻어먹기 위함이었다.

다음 날로 고중만은 친구와 후배들을 데리고 지한 분식에 찾아갔다.

매상을 올려주고 강지한에게 사과를 했다.

이후에는 그의 인맥을 되는 대로 동원해서 하늘 분식에 대해 안 좋은 소문들을 퍼뜨렸다.

강석호가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 지한 분식을 음해하고 다녔다는 이야기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한 분식을 칭찬하는 것보다 하늘 분식을 안 좋게 말하는 것이 더 빠르게 퍼져 나갈 듯했다.

사람이란 원래 좋은 소식 보다 나쁜 소식에 더 귀를 세우게 마련이니까.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하늘 분식에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가기 시작한 것.

그렇다고 지한 분식의 손님이 다시 많아진 건 아니었다.

지금은 소강상태였다.

사람들은 두 분식집의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니 살짝 질린 것이다.

이제부터는 실력 싸움이었다.

소문이라는 건 빨리 도는 만큼 빨리 잊혀지게 마련이다.

결국 맛있는 집으로 손님들은 다시 발걸음을 하게 된다.

* * *

열심히 장사를 하다 보니 어느덧 1월도 중순을 지나가고 있었다.

설탕이는 그 사이 한 번 더 레벨 업을 해 6레벨이 되었다.

새로 열린 기술은 하이파이브.

사람이 손을 갖다 대면 앞발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한다.

재주가 늘어날수록 애견 카페의 손님들은 점점 더 설탕이에게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전처럼 많은 손님들이 설탕이로 인해 유입되지는 않았다.

그놈의 음해하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래도 점심, 저녁 피크 시간에는 다시 만석을 유지하게 됐다.

고중만의 보이지 않는 도움도 도움이지만, 유정미가 툭하면 분식집에 와서 방송을 한 덕이 컸다.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 분식엔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

고중만의 입에서 시작된 소문이 지인을 타고 퍼져 나가 순식간에 동네를 휘감았다.

그러면서 지한 분식에 동정론이 일었다.

잠시 발길을 끊었던 손님들과 하늘 분식으로 걸음을 돌렸던 손님들이 다시 찾아왔다.

일을 하는 강지한과 이리나의 얼굴에도 다시 전과 같은 밝은 미소가 맺혔다.

열심히 요리를 거듭한 결과 강지한의 숙련도는 이제 제법 많이 올라 있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으나 가장 낮은 수치가 60이었다.

가장 높은 것은 손의 숙련도였다.

92로 100이 코앞이었다.

다른 능력과 달리 요리는 쉼 없이 해야 하니 계속해서 손의 숙련도가 오르는 건 당연했다.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

아침 일찍 식당으로 나온 강지한은 바쁘게 재료 준비부터 해나갔다.

이제 그는 반찬을 사지 않고 직접 만들고 있었다.

외부에서 사오는 건 몇 개 안 됐다.

손기술이 오르고 요리에 대한 지식이 쌓이는 데다가 미각까지 발전했다.

그러니 저절로 기본적인 요리 실력이 높아졌다.

자고로 음식이란 간만 잘 맞춰도 반 이상 가는 법.

강지한은 음식의 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간 정도는 맞출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상태였다.

하지만 레벨을 올린 음식들과 반찬맛을 비교하면, 역시나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반찬 맛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때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단골 포인트 20을 들여 단골 포인트 상점을 오픈할 수 있습니다.]

[단골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단골 포인트 상점?’

강지한이 반찬 맛의 상향을 위해 고민할 때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다는 건, 그 해답이 단골 포인트 상점이라는 곳에 있다는 뜻이었다.

단골 포인트란 단골 수치가 10/10이 되어 단골로 인정된 손님이 생길 때마다 1씩 주어지는 포인트를 말한다.

현재 강지한이 얻은 단골 포인트는 18.

20까지는 2가 부족했다.

두 명의 단골을 더 확보하면 단골 포인트 상점을 오픈할 수 있었다.

실마리를 얻었으니 강지한은 일단 반찬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반찬도 기본 정도는 했으니.

오늘 그는 콩자반과 소시지부침, 어묵볶음, 멸치볶음을 반찬으로 만들었다.

무생채와 김치, 단무지는 외부 업체에서 사온 것으로 나간다.

반찬 준비를 하면서 어묵 국물을 내고 떡볶이 조리에 필요한 육수도 우렸다.

떡볶이 양념은 라볶이와 밥볶이에도 들어가니 육수의 양을 넉넉하게 만들어야 했다.

김밥에 들어갈 재료들도 길게 썰어 볶을 건 볶고 데칠 건 데쳤다.

두 개의 큰 밥통에다가 밥을 지었다.

그중 하나를 열어 참기름을 붓고 소금간을 했다.

이건 김밥용 밥이었다.

그것으로 밑 준비를 다 끝내놓고 김밥을 하나둘 말기 시작했을 때, 이리나가 출근했다.

강지한은 속으로 ‘10시 20분이구나’ 생각했다.

이리나는 항상 그 시간에 출근했기 때문이다.

“사장님~ 좋은 아침!”

“응, 좋은 아침.”

홀로 들어서자마자 앞치마를 둘러맨 이리나가 얼른 홀을 정리했다.

시간은 또 금방 흘러 11시 오픈 시간이 됐다.

그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며 바로 두 팀이 식당 안에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이리나가 인사를 하면서 보니, 안 좋은 소문이 돈 뒤로 오지 않던 손님들이었다.

강지한도 손님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눈인사를 건넸다.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다.

늦게라도 다시 돌아와 준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이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문 받겠습니다!”

이리나가 씩씩하게 다가가 주문을 받아 강지한에게 넘겨주었다.

영업의 첫 시작이 좋았다.

강지한이 정성으로 요리를 만들어 나갔다.

그때.

딸랑-

딸랑-

약간의 간격을 두고 한 팀과 두 탐이 들어왔다.

그것으로 다섯 테이블이 만석이 되었다.

이리나가 새로 들어온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 기민하게 넘겨주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려다 주춤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깜짝 놀란 이리나가 얼른 문 앞으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그리고 두 눈에 들어온 광경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먹였다.

“사, 사장님!”

이리나가 감격에 찬 음성으로 강지한을 불렀다.

요리를 하던 강지한이 잠시 손을 멈추고 이리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문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엔 놀랍게도 웨이팅이 걸린 손님 두 팀이 리어카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상한 소문이 돌아도 묵묵히 해야 할 일만 해나갔던 강지한이었다.

그런 그를 끝까지 믿어준 좋은 사람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강지한이 시큰거리는 코끝을 애써 모른 체하며 밝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입을 열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속으로만 되뇌는 강지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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