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Restaurant 24. 이게 웨이팅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강지한은 어여쁜 여인과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여인은 혀놀림이 예술이었다.
강지한의 입안을 마구 휘젓고 희롱하는 것이 사람의 혀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 이상 입을 맞대고 있다가는 이상해지겠다 싶었을 때.
강지한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 경악했다.
“헉.”
이불 위에 누워 있는 그의 입을 설탕이가 미친 듯이 핥고 있었다.
강지한이 벌떡 일어나 입을 닦았다.
어쩐지 꿈속 여인의 혀가 너무 요란하게 움직이더라니.
이거야말로 개꿈이 아닌가.
“설탕아, 넌 애기가 잠도 없니.”
헥헥헥!
강지한이 뭐라고 하든 말든 주인이 일어난 게 반가운 설탕이는 배를 까뒤집으며 애교를 피웠다.
이를 본 강지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에이그.”
그때였다.
설탕이의 머리 위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설탕이가 배변 활동을 시작하려 합니다. 화장실을 지정해 주세요.]
메시지가 사라지고 난 뒤, 강지한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그가 시선을 두는 곳마다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물들어 버린 곳을 계속 주시하니 물음이 나타났다.
[여기를 화장실로 지정하겠습니까?]
‘이런 거구나.’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배변패드를 바라보았다.
배변패드가 파랗게 물들더니 같은 물음이 나타났다.
[여기를 화장실로 지정하겠습니까?]
“응.”
[지정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가 사라지자마자 설탕이가 배변 패드로 달려가 소변과 대변을 봤다.
그러고는 한결 개운해진 얼굴로 강지한에게 다가와 다시 드러누웠다.
강지한은 그런 설탕이의 배를 만져주며 피식 웃었다.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알아서 교육이 되니 상당히 편했다.
강지한이 창밖을 바라봤다.
파란 하늘은 동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오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다시 누워 봤자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설탕이와 산책을 했다.
이 시간에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목줄을 한 설탕이와 함께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의외로 이 시간에 운동 삼아 나온 이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일찍부터 어딘가로 출근을 하는 듯한 회사원들의 모습이 종종 보였다.
자기 말고도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강지한이었다.
동네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고 돌아오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강지한은 설탕이에게 아침밥을 챙겨주고 본인도 어묵국물에 밥을 말아 김치 반찬 한 가지만 놓고 한 그릇을 든든히 먹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설탕이와 한참을 놀아주었다.
산책에 이어 밥을 챙겨주고 놀아주기까지 하니 설탕이의 애정도가 많이 차올랐지만 어제만큼은 아니었다.
레벨 1과 레벨 2의 차이였다.
오전 8시.
이제는 출근을 해야 했다.
강지한이 말끔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집 안을 한 번 정리하고 설탕이를 힐끔 바라봤다.
“얘를 두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식당에 두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예소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예소린은 카페를 9시부터 오픈한다.
아울러 애견 카페에 있는 것이 설탕이에게도 더 좋을 것 같았다.
그곳에는 설탕이를 반겨주는 친구가 많으니까.
“가자, 설탕아.”
강지한이 설탕이에게 목줄을 채워 걸었다.
상가 건물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
마침 저쪽에서 예소린이 애견 카페의 잠긴 문을 열고 있는 게 보였다.
강지한이 설탕이와 함께 다가가자 예소린이 활짝 미소 지으며 반겼다.
“강 사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네, 좋은 아침이네요.”
“설탕이도 안녕?”
왕!
반갑게 짖으며 꼬리를 흔드는 설탕이를 예소린이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어쩌면 좋아. 너 정말 귀엽게 생겼다. 보고 있으면 마냥 행복해지는 기분이야.”
예소린의 얼굴에 홍조가 올랐다.
강지한의 존재도 잊은 듯 한참 설탕이만 만지고 있던 예소린이 아차 하며 일어섰다.
“앗, 죄송해요. 제가 강아지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서. 호호.”
그녀는 민망해하며 웃는 모습까지 아름다웠다.
“괜찮아요.”
“저…… 강 사장님, 혹시 설탕이 식당에 두기가 좀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지만 손님들 중에서는 위생상 좋지 않게 받아들이실 분들도 계실 테고.”
“아무래도 그렇죠.”
“그렇다고 식당 앞에 묶어두는 건 설탕이가 너무 안됐고요. 집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나오신 거죠?”
“네.”
“그럼 제 애견 카페에서 제가 좀 돌봐줘도 될까요?”
그건 강지한이 먼저 하려던 부탁이었다.
오히려 예소린 쪽에서 그리 제안해 주니 강지한으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말로 감사하죠. 안 그래도 그 부탁 하려고 찾아왔던 거거든요.”
“어머, 그래요?”
“네. 물론 그냥 맡아 달라는 건 아니고 제가 뭐라도 사례를…….”
“어머, 됐어요. 이런 애가 우리 카페에 있으면 오히려 매상에 도움이 될 텐데요. 그냥 맡겨주세요.”
“아……. 고마워요, 소린 씨.”
“그래도!”
갑자기 예소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모습에 강지한이 찔끔했다.
“네?”
“마땅히 돌봐줄 여력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강아지를 분양받는 건 좋지 않아요.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 있으면 안 돼요. 아셨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지한이 기합 바짝 들어 대답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던 예소린이 쿡쿡 웃었다.
“알았어요. 약속해요.”
예소린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강지한은 그걸 보고 머뭇거리다가 마주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걸었다.
짜르르.
손과 손이 닿는 순간 몸속으로 전기가 흐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예소린과의 첫 스킨십이었다.
* * *
설탕이를 애견 카페에 맡기고 온 이후, 비로소 식당의 일을 마음 놓고 볼 수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로 머리카락을 감춘 강지한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시작하자.”
그가 빠르게 손을 놀려 밑재료 준비를 모두 끝내고 반찬까지 준비해 놓았을 때, 반가운 얼굴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리나였다.
주방에 선 강지한을 본 이리나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오빠! 이게 무슨 일이에요? 완전 멋지잖아요.”
“그래?”
“네. 왜 여태 말 안 했어요?”
“식당 오픈으로 정신없이 바빴거든. 신경 쓸 것도 많았고.”
“어쩜 편의점도 한 번 안 들르고. 난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요. 조금 서운했어요.”
“하하, 미안.”
“무소식의 희소식이었으니 됐어요. 근데 진짜 신기하다. 저번에 오빠가 주고 간 떡볶이 갑자기 맛있어지긴 했던데, 설마 매장으로 들어갈 만큼 장사가 잘됐을 줄은 몰랐어요.”
“지금은 더 맛있어졌는데.”
“진짜요? 그럼…… 우리 일단 먹고 시작하면 안 될까요?”
“그러자.”
* * *
“……해서, 내일부터는 10시까지 나오면 돼. 점심시간 바짝 도와주고 3시 퇴근하는 걸로 해서 달에 100만 원 생각하고 있는데. 계약서는 뽑아온 거 있으니까 바로 사인하자. 어때?”
강지한은 앞으로 함께 일을 하며 조정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죽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리나에겐 그런 강지한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떡볶이와 김밥의 신세계 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이었다.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먹는 데만 집중하는 이리나의 어깨를 강지한이 살짝 건드렸다.
“리나야?”
“네…… 네? 아, 네!”
“내 말 들었어?”
“아…… 대충은요. 오빠가 그냥 알아서 챙겨주세요.”
“응, 그래. 다 먹었으면 슬슬 업무 알려줄게, 일어나자.”
“네?”
이리나가 정신을 차리고서 테이블을 쳐다봤다.
거기엔 텅 비어버린 접시 두 개만 놓여 있었다.
‘내가 이걸 언제 다 먹었지?’
너무 맛있어서 다 먹었는지도 몰랐다.
강지한이 손을 댈 새도 없었다.
평소 식탐이 그리 많지 않던 그녀였기에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놀라웠다.
이리나가 빈 접시들을 챙겨 강지한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런 이리나를 보며 강지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네?”
“아니 주방에는 왜?”
“뭐 시키실 거 없어요?”
“주방은 아직 나 혼자서도 괜찮아. 그리고 넌 홀 서빙하러 온 거잖아. 주방 일을 시키려면 돈을 더 줘야지. 만약 더 바빠져서 손이 부족하면 주방 직원을 따로 들일 거야.”
“아…… 네, 알았어요.”
주방에서 나온 이리나는 홀을 슥 둘러봤다.
그러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닥을 쓸고 닦았다.
줄이 비뚤어진 테이블을 바로 잡고 의자도 가지런히 넣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수저통도 각을 잡아 나열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청소를 할 때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손으로 슥 훑더니 먼지를 확인하고는 걸레로 박박 닦았다.
그녀의 일하는 모양새를 본 강지한이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일은 잘해.’
사람 하나는 잘 뽑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전 10시 50분.
드디어 식당을 오픈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알바 첫날인 만큼 기합이 빡 들어간 이리나가 매의 눈으로 매장의 입구를 지켜봤다.
그런데,
“어?”
아직 오픈 시간 전인데 스물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손님 두 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혹시 지금 영업하시나요?”
“아, 네. 괜찮습니다.”
조금 일렀지만 강지한은 손님들을 받았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와, 기대된다.”
“나도. 얼마나 맛있길래 과 단톡방에 난리가 났냐.”
“그러게. 가격도 착하네.”
이리나가 물컵과 물통을 들고 가서 놓아주며 물었다.
“메뉴 정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상냥하게 말하며 방긋 웃는 이리나를 본 두 대학생의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이리나가 테이블에서 멀어지자 그들은 바로 속닥였다.
“저렇게 쩌는 알바생이 있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진짜 예쁘다. 내 타입이야.”
대학생들은 이리나를 힐끔 거리며 메뉴를 정하고 주문했다.
이리나가 친절하게 주문을 받아 주방에 전달했다.
“사장님~! 김밥 두 줄이랑 라면 두 개, 떡볶이 하나요!”
“오케이.”
강지한이 바로 조리에 들어갔다.
이리나는 강지한이 요리하는 모습을 홀에서 지켜봤다.
강지한의 손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요리를 하는 데 필요한 동작만 착착 해나갔다.
게다가 칼질은 또 어찌나 날래고 정확한지 묘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단 10분 만에 주문 받은 메뉴가 만들어졌다.
이리나는 혀를 내두르며 그것을 테이블에 서빙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손님들이 식당에 들어왔다.
이를 시작으로 손님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결국 12시가 되기도 전에 모든 테이블이 가득 차고 말았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이렇게 일찍 만석을 맞아보는 건 강지한도 분식집을 오픈하고 처음이었다.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열심히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던 이리나가 잠시 식당 문 밖을 힐끔 쳐다보더니 후다닥 주방으로 다가와서 난감한 듯 물었다.
“저기 사장님.”
“응?”
“어떻게 해요?”
“무슨 일인데?”
다음에 이어진 이리나의 말에 강지한은 짜르르 전율이 돋는 걸 느꼈다.
“밖에 손님들 웨이팅 걸렸어요.”
“……어? 웨이팅? 몇 팀이나?”
“세 팀이요.”
그 말에 주방 안에서만 맴돌던 강지한의 시선이 매장 밖으로 향했다.
정말로 세 팀의 손님이 줄을 서서 매장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일순 강지한의 행동이 멎었다.
‘웨이팅이라니…….’
매장을 오픈한 지 보름째.
드디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