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Restaurant 23. 작당모의
천명옥은 춘천 요식업계에서 나름 알아주는 큰손이었다.
반년 전 그녀의 지인 한 명이 석사동에서 분식집을 오픈했다.
분식집 사장의 이름은 강석호.
그가 운영하는 ‘하늘 분식’은 주변에 딱히 경쟁할 만한 곳이 없어서 그럭저럭 손님이 드는 편이었다.
애초에 상권을 보고서 같은 업종이 없는 곳을 택해 들어간 터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점점 손님들의 걸음이 뜸해지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오픈한 지한 분식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저주받은 매장에 대한 소문은 그도 익히 들어왔던 터였다.
반 년 전, 그곳에서 버티던 분식집이 쫄딱 망해 나간 전적까지 체크한 그였다.
사실 그 분식집이 잘됐으면 강석호는 다른 업종의 요식업 매장을 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주받은 매장은 그 누구의 성공도 허락지 않았다.
강석호는 분식집이 빠지자마자 목 좋은 곳에 자신의 분식집을 오픈했다.
요리에 견문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매장을 세 개 정도 가지고 있는 사업가였다.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돈을 벌어줄 것 같은 아이템을 보는 눈이 좋았다.
그래서 석사동 목 좋은 건물에 분식집을 열었고 이후로도 적자가 나지 않았다.
일주일 전까지는 그랬다.
망해 나갈 것이 분명할 거라 예상했던 지한 분식에 갑자기 손님이 몰리기 시작하며, 상대적으로 하늘 분식 손님이 줄어들었다.
강석호는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이미 사태를 예상했다.
사업가의 감이었다.
해서 그는 열흘 전, 나름 인연이 있는 천명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자문을 구했다.
천명옥은 강석호와 깊은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런데 강석호의 지인 중 천명옥을 잘 아는 사람이 있었다.
‘구자승’이라는 사람으로 춘천에서 제법 방귀 좀 뀐다는 중견 예술가였다.
결국 천명옥은 구자승의 부탁을 모른 체할 수 없어서 일주일 전부터 지한 분식에 드나들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시간이 날 때는 점심 저녁 모두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자주 올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 음식을 먹어보는 순간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지한 분식의 음식들 수준이 상당했던 것이다.
음식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어떻게 조리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꼬박 열 번을 다녀갔다.
음식을 먹는 틈틈이 주방의 모습도 염탐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눈에 담았다.
인테리어는 별게 없었고 결국 지한 분식의 힘은 오로지 음식의 맛과 주인장의 친절이었다.
강석호가 강지한을 이기려면 첫째, 음식의 질을 높여야 했고, 둘째, 친절을 생활화해야 했다.
강지한이 새 식구 설탕이를 얻은 날 밤.
천명옥은 강석호를 찾아갔다.
간판불이 꺼진 하늘 분식 홀의 한 테이블에 두 남녀가 마주하고 앉았다.
천명옥의 옷은 지한 분식을 찾아갔을 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수수했던 일상복은 사라지고 왜소한 몸 전체를 명품으로 빼 두르고 있었다.
순해 보이던 얼굴은 짙은 화장으로 날카로워졌다.
보석이 박힌 금반지와 금목걸이가 빛을 반사시킬 때마다 강석호의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러니까 그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해요. 맛과 친절.”
배가 불뚝 나오고 소갈머리가 훤히 까진 강석호는 착잡한 표정이었다.
그가 검지로 테이블을 탁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친절이야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해도, 음식 맛이야 어디 그게 됩니까? 요리는 주방 아주머니가 하는 건데.”
주방 아주머니는 강석호에게 돈을 받고서 평생 해왔던 음식을 그대로 만들어 줄 뿐이었다.
“그럼 주방 아주머니를 갈아치우셔야죠.”
천명옥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그녀는 하늘 분식의 음식도 먹어봤다.
사실 지금 들여놓은 아주머니로 실력으로는 직접 알아낸 지한 분식의 레시피를 준다고 해도 그 맛을 흉내내기조차 어려울 터였다.
“갈아치운다고 더 손맛 좋은 사람이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잖소.”
“어떻게든 구해야지.”
“말처럼 쉬웠으면 이미 내가 그리했습니다.”
그 정도까지 대화를 나누고 나니 천명옥은 강석호가 어떤 인간이지 파악되었다.
그는 노력하기보다는 쉽게쉽게 가기를 원하는 한량이었다.
‘이런 인간을 도와준다고 내가…….’
갑자기 시간이 아까웠다.
구자승의 부탁만 아니었어도 상종할 일이 없을 인간이었다.
천명옥은 말없이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강석호가 그것을 넘겨받았다.
“이게 뭡니까?”
“파워블로거라고 아시죠?”
파워블로거라는 말에 강석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방법이라면 이미 오픈발 끝날 때 쯤 써먹었습니다. 목돈 좀 쥐어주고 우리 식당 얘기 좋게 써 달라 부탁해서 나름 재미 좀 봤어요. 한데 지금은 이런 거 씨알도 안 먹힙니다. 이미 저쪽 분식집이 맛있다고 소문이 도는데 파워블로거가 우리 분식 한 번 언급해 준다고 큰 파급력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반대로 하셔야죠.”
“네?”
“파워블로거를 지한 분식으로 보내서 그곳 음식을 혹평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 말에 강석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강 사장님께서는 믿을 만한 주변 사람들에게 지한 분식에 대한 악담을 퍼뜨리도록 부탁하시고요. 파워블로거가 작정하고 저격하면 타격받지 않을 식당이 없어요. 음식 맛부터 불량한 위생 상태와 불친절한 태도 등등. 근거도 없는 글들을 오로지 ‘주관적인 잣대’로 평가해 써놓으면 그를 맹신하는 네티즌들은 순진하게 믿어버리죠.”
“아……!”
“어차피 저주받은 매장이라는 소문도 돌던 곳이라면서요. 지한 분식이 휘청하는 타이밍을 봐서 그 소문까지 함께 돌려 버리세요. 그러는 동안 주방엔 더 손맛 좋은 아주머니를 들이세요. 지금은 음식의 질이 너무 떨어져요. 지한 분식이 주저앉으려 할 때 하늘 분식의 음식 맛이 좋아지면 손님들의 발걸음을 다시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음식 잘하는 지한 분식으로 다시 가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까지 천명옥을 편히 대하던 강석호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그가 공손해진 자세로 물었다.
천명옥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생각보다 소문에 민감한 게 ‘손님’이에요. 좋은 말을 듣고 가면 싱거운 맛이 건강한 맛으로 느껴지고, 안 좋은 말을 듣고 가면 감칠맛도 조미료 맛으로 둔갑하는 법이죠.”
강석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천 선생님 말씀대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후의 일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세요.”
“그럼요, 그럼요. 밥을 떠먹여 주셨는데 삼키지 못하면 죽어야지요.”
“전 이만.”
천명옥이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갔다.
문 너머로 사라지는 뒤태에서 기품이 철철 넘쳐흘렀다.
적어도 강석호의 눈에는 그리 비췄다.
* * *
자신을 잡으려고 작당모의가 벌어진 지도 모른 채, 강지한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지이이이잉-
강지한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지이이이잉-
헥헥헥! 할짝! 할짝!
진동 소리에 눈을 뜬 설탕이가 강지한의 뺨을 마구 핥아댔다.
“으음…….”
그에 정신을 차린 강지한이 전화가 오는 것을 확인했다.
액정에는 ‘편의점 리나’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리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흐아암.”
강지한이 하품을 쩍 하며 전화를 받았다.
“응……. 리나야.”
그러자 폰 너머에서 시름 가득한 이리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빠, 잤어요?
“으응.”
-아, 죄송해요. 내일 다시 전화 드릴게요.
“아냐, 괜찮아. 무슨 일인데?”
이리나는 경우가 바른 아이라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는 일은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사건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예감이 강지한의 잠을 쫓았다.
-저…… 오늘 알바 잘렸어요.
“뭐? 왜?”
-고딩한테 담배 팔았거든요.
“엥? 증 확인 안 했어?”
-했어요. 했는데 그게 지네 형 신분증이었나 봐요. 어쩜 그리 똑같이 생겼는지……. 형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 동생한테 담배 팔았냐고 난리를 치더니 신고를 하지 뭐예요. 사장님 달밤에 불려 나오셔서 노발대발 하시고……. 편의점은 당분간 담배 판매 정지 먹고 저도 잘리고. 그렇게 됐네요.
“어휴, 어쩌냐.”
이리나는 강지한보다 낫지만 그렇다고 가정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리어카를 끌기 전의 강지한과 똑같은 입장이었다.
-다른 알바 구해봐야죠, 뭐. 그냥…… 기분 꿀꿀해서 혼술하다가 오빠 생각나서 연락 한번 해봤어요. 어디 하소연할 데가 있어야죠.
그 순간 강지한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리나야, 너 편의점 알바 하기 전에 식당 서빙 알바도 해봤었다 그랬지?”
-네? 네.
“분식집에서 알바 해보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