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Restaurant 20. 첫 번째 단골
“그냥 듣고 잊어요. 술 한잔 들어갔겠다, 적적한 마음에 떠올라서 툭 던져 놓는 얘기니.”
“네, 그럴게요.”
김숙자가 술로 입을 적시고 갑작스레 말을 던졌다.
“아들이 하나 있었어요.”
“……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강지한은 지금껏 이향숙이 외동딸로 커온 줄로만 알았다.
김숙자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살아 있었으면 지금 딱 지한 총각 나이야. 뭐가 그리 급했는지 남편이랑 같이 갔어. 둘이 그렇게 낚시를 좋아했지. 그만 두고 다른 취미 찾으랄 때 내 말 좀 듣지. 밤낚시 가던 차를 버스기사가 들이받고 그대로 우리 곁을 떠났어.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지.”
“…….”
강지한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린 김숙자는 또다시 술을 한 모금 넘겼다.
“내가 늘 말했었지? 지한 총각 아들 같다고.”
“……네.”
“빈말이 아니야. 정말 닮았어요. 먼저 가버린 우리 아들하고. 처음 지한 총각이 방 보러 왔을 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우리 아들이 돌아온 줄 알고.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그러셨군요.”
“향숙이도 지한 총각 본 날 밤에 제 방에서 엉엉 울었어요. 처음에는 애가 지한 총각한테 많이 쌀쌀맞게 대했었죠?”
“그랬죠.”
“얼굴 보면 자꾸 먼저 가버린 오빠 생각이 나서 그랬던 거야. 지금이야 누구보다 지한 총각을 좋아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지만.”
그제야 강지한은 지금의 상황들이 이해됐다.
김숙자가 왜 그리도 자신에게 잘해주었는지.
이향숙이 술에 취한 날 밤, 왜 자신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는지.
“많이 힘드셨겠어요, 어머니.”
“호호호. 난 지한 총각이 해주는 그 어머니 소리가 참 좋더라. 진짜로 아들이 돌아온 것 같아서.”
“좋으시면 얼마든지 불러드릴게요.”
“벌써부터 기분이 날아갈 것 같네. 에휴, 주책이야. 눈물은 또 왜 흘리고. 호호.”
김숙자가 눈가를 훔치며 애써 웃음 지었다.
“지한 총각, 내가 이런 말 했다고 마음 무거워하지 말아요. 이제 장사도 잘되고 돈 많이 벌면 옥탑방 떠나서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야지. 괜히 나 생각한다고 거기 눌러앉을 생각 말아요. 그러면 내 마음이 편치가 않으니까.”
“…….”
“들어올 때야 워낙 갈 데가 없으니 받아줬다지만, 나갈 수 있으면 나가서 더 좋은 곳에 살아야지. 안 그래요?”
“그리되더라도 어머니랑 맺은 연 계속 이어갈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러면 나 엄청 서운할 거 같아.”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은혜를 저버리지는 않는 놈입니다, 어머니.”
“호호호, 알죠. 지한 총각은 분명 그럴 사람이라는 거. 에휴, 늦었다. 이제 그만 정리하고 들어가요. 더 청승 떨다가는 화장 다 번지겠네. 향숙아, 일어나!”
찰싹!
“으아아……. 엄마, 등 좀!”
김숙자가 자는 이향숙을 등짝 스매싱으로 깨웠다.
* * *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의 가슴이 먹먹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김숙자 모녀와 부모를 잃은 자신의 모습이 꼭 닮아 있었다.
“빨리 더 잘되자.”
그래서 오갈 데 없는 자신을 따스히 받아주었던 아주머니에게 꼭 은혜를 갚아야지.
다짐하며 강지한이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갔다.
신장개업을 한 지도 열흘째가 되었다.
그동안 강지한은 계산을 할 때마다 손님들의 머리 위에 뜨는 수치를 유심히 살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처음 온 손님들은 만족도와 함께 나타나는 수치가 1/10이었다.
두 번째 방문한 손님들은 2/10였으며 다섯 번 방문한 손님은 5/10였다.
한 번 왔던 손님들은 대부분 5일 이내 분식집을 다시 찾았다.
그중 몇몇은 아는 사람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매일같이 빼먹지 않고 꾸준히 혼자 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예소린이었다.
그녀의 수치는 어제까지 9/10이었다.
오늘은 그녀가 열흘째 오게 된 날.
즉 식당의 첫 번째 단골로 인정될 수 있는 날이었다.
예소린은 이미 식당의 모든 메뉴들을 전부 섭렵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건 떡볶이였다.
지금은 떡볶이에 김밥 한 줄을 시켜서 같이 먹는 중이었다.
김밥을 시키면 어묵국이 서비스로 나온다.
예소린은 그게 좋았다.
이 식당의 어묵국은 다른 곳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그런 흔해 빠진 어묵국이 아니었다.
이 국물 하나로도 충분히 요리라 할 수 있을 만큼 맛이 깊고 깔끔하면서도 풍미가 강했다.
강지한은 온전히 식사에만 집중하는 예소린과 다른 두 테이블을 채운 손님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때 김밥 하나를 입에 넣던 여자 손님이 강지한과 눈이 마주쳤다.
강지한은 당황하지 않고 더 짙은 미소를 머금으며 살짝 눈인사를 건넸다.
이를 본 여인의 뺨에 홍조가 어렸다.
그녀는 배시시 웃고서 얼른 시선을 돌렸다.
‘잘되고 있어.’
느리긴 하지만 입소문이 조금씩 퍼지며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수도 하루하루 늘고 있었다.
강지한이 바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대박이 터지는 게 아니었다.
오늘, 어제보다 손님 한 분만 더 온다면 그걸로 좋았다.
그가 식사하는 손님들을 보며 레벨 업 현황을 살폈다.
대부분의 숙련도가 10에서 15 정도씩 늘어나 있었다.
열흘간 올라간 매장의 인지도는 39였다.
하루 장사를 마칠 때마다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는데 여전히 크게 재미는 못 보는 상황이었다.
‘느긋하게 기다리자, 느긋하게.’
강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식사를 마친 예소린이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해 주세요~”
“네!”
강지한이 바람처럼 달려가 카운터에 섰다.
매장의 바닥이 레벨 업 된 뒤로 홀에만 나오면 평소보다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안정적으로 자신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운 또한 느껴졌다.
이런 홀이라면 굼뜨게 서빙을 한다거나 실수로 자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떡볶이 하나, 김밥 한 줄 해서 4,500원입니다.”
예소린이 오천 원을 건넸다.
강지한이 500원을 거슬러 주었다.
“매번 정말 잘 먹고 가요.”
“매번 와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미소를 짓는 예소린의 머리 위에 50이라는 만족도가 나타났다.
강지한에 대한 호감도가 꾸준히 상승하며 음식에서 느끼는 만족도 역시 올라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만족도 위의 수치가 드디어 10/10으로 변했다.
순간 만족도가 흡수되며 10/10이라는 숫자는 사라졌다.
대신 ‘단골’이라는 글자로 변했다.
강지한이 흠칫 놀랄 때 메시지가 떴다.
[첫 번째 단골을 확보했습니다.]
[단골이 된 손님은 일반 손님보다 높은 만족도를 제공하며 식당의 홍보에 더욱 적극적이 됩니다.]
[단골 포인트를 1 얻었습니다. 누적 단골 포인트는 레벨 업 현황에 표시됩니다.]
[단골 포인트로 이용할 수 있는 컨텐츠가 아직 없습니다.]
[퀘스트-단골을 세 명 이상 만드세요. 1/3]
[퀘스트 보상: 식당에 도움이 될 아이템.]
빠르게 나타나는 메시지를 읽는 강지한에게 예소린이 말했다.
“강 사장님, 그거 알아요?”
“뭐를요?”
“여기 정말 제 인생 분식집이라는 거.”
“영광이네요.”
“다음번엔 제 지인이라도 데려올게요. 이 맛은 역시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깝네요. 아! 그리고 내일 제 애견 카페 오픈하는 거 알죠?”
“알아요. 놀러갈게요.”
“네, 그럼 고생하세요.”
예소린이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섰다.
* * *
그날 밤.
어제와 비슷하게 손님을 받은 강지한이 장사를 마쳤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오늘의 실적을 최종 평가해 인지도에 반영합니다.]
[손님을 조금밖에 못 받았습니다.]
[하나같이 음식 맛에 감탄해 입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단골이 생겼습니다. 단골로 인해 입소문이 빠르게 확산됩니다.]
[인지도가 11 올랐습니다.]
[인지도가 50 이상입니다. 손님들의 방문이 늘어납니다.]
[목표: 매장의 인지도를 80 이상 올려주세요. 5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