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0화 (20/330)

# 20

Restaurant 19. 하루 늦은 고사

신장개업을 한 날 밤.

강지한은 오늘의 성적을 정리해 봤다.

점심 손님 여덟 명에 이어 저녁 손님 열 명을 더 받았다.

최종 만족도 스코어는 647.

손님이 들지 않으니 분식집에서 팔던 것보다 누적 포인트가 적게 쌓였다.

하지만 강지한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는 손님들마다 음식을 먹는 면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것은 곧 강지한의 미래를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빨리 가지 않아도 돼.”

천천히 가더라도 정직하고 올바르게 가고 싶었다.

조바심을 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법이다.

무엇보다 지금 그에게는 만족도 시스템이 있었다.

리어카를 몰 때보다 손님이 없다고 해도 만족도 포인트를 환전할 경우 제법 큰돈이 된다.

강지한이 레벨 업 현황판을 열었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얼굴  LV5 만족도+4 (NEXT 숙련도 13/100)

혀   LV5 미각+4  (NEXT 숙련도 6/100)

목소리 LV5     (NEXT 숙련도 7/100)

손   LV5     (NEXT 숙련도 16/100)

잠겨 있는 능력    (하나의 숙련도가 100이 되면 열립니다)

[음식]

떡볶이 LV5     (NEXT 숙련도 14/100)

오뎅  LV5     (NEXT 숙련도 11/100)

떡볶이 볶음밥 LV5  (NEXT 숙련도 1/100)

라면  LV5     (NEXT 숙련도 3/100)

김밥  LV5     (NEXT 숙련도 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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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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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숙련도가 조금씩 올라가 있었다.

손님을 많이 받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슬슬 돌아갈까.”

강지한이 식당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와~ 생각했던 것보다 좁네.”

“지한 총각, 우리 왔어요~!”

깜짝 손님들은 김숙자와 이향숙이었다.

“어머님, 향숙아. 어쩐 일로……. 아, 식사하러 오셨어요?”

“영업 다 끝난 시간에 무슨.”

“아니에요. 해드릴게요.”

강지한이 벗었던 앞치마를 두르려 하자, 김숙자가 말렸다.

“우리 밥 먹고 왔어요.”

“다른 이유 때문에 들렀어.”

그리 말하며 이향숙에 품에 안고 있던 보따리를 내밀었다.

강지한은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테이블 위에서 펴보았다가 기겁을 했다.

“으헉.”

보따리에 담겨 있는 건 잘 삶은 돼지머리였다.

놀라 자빠질 뻔한 강지한을 보며 이향숙이 깔깔거리며 웃다가 김숙자에게 등짝을 맞았다.

짝!

“아야! 왜 때려!”

“사람 놀리는 게 좋냐? 좋아?”

“맨날 나한테만 그래.”

“그럼 지나가는 모르는 애 잡고 그럴까?”

“흥.”

“어머니, 갑자기 이건 왜……?”

“오늘 신장개업이잖아. 고사는 지냈어요?”

“네? 아니요.”

“그럴 줄 알았지. 젊은 사람이라 그런 부분에서 무심할 거라고 생각해서 가져왔어요. 이것도.”

김숙자가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건넸다.

봉지에서 나온 건 청주와 세 가지 과일이었다.

그리고 이향숙이 메고 있던 가방에서 초를 꺼냈다.

김숙자는 그것들을 테이블 하나에다 정성스레 놓아두고서 초에 불을 붙인 후 강지한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나 따라하면 돼요. 향숙이도.”

“네.”

“응.”

김숙자가 합장을 하더니 고사상에서 동서남북 방향으로 일 회씩 머리를 숙인 뒤, 고사상을 바라보며 세 번 절했다.

그것을 두 사람이 따라했다.

“자, 지한 총각이 상에 놓인 잔에다 술 채워요.”

강지한이 시키는 대로 했다.

술이 채워지자 김숙자는 미리 준비해 온 축원문을 꺼내 읊었다.

“유세차. 단기 4350년 정유년 음력…… 은 글씨가 잘 안 보이네. 그냥 양력으로 12월 9일.”

“엄마, 10월 22일.”

“맞다, 맞아. 음력 10월 22일. 건실하고 멋진 청년 강지한이 춘천시 석사동에 개업을 하여, 몸을 정갈히 하고 이 자리에서 재복을 맡은 터줏대감님, 재물을 주시는 업대감님께 정성스레 내놓은 과일, 좋은 술을 드리니 감응하시기 바랍니다.”

강지한은 난생처음 보는 김숙자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멋졌다.

“지한 총각, 따라둔 술 퇴주에 버려요.”

“아, 네.”

강지한이 술을 퇴주에 버렸다.

그러자 김숙자는 다시 청주 한 잔을 따라 직접 퇴주에 버린 뒤, 돼지 입에 오만 원짜리 두 장을 물리고서 세 번 절하고 뒤로 빠졌다.

이향숙도 김숙자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돼지 입에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물렸다.

“이제 퇴주에 담긴 술을 문 밖에다 세 번에 나눠 뿌려요.”

“네.”

강지한이 고분고분 김숙자의 말을 따랐다.

그러는 사이 김숙자는 축원문을 태웠다.

이로써 고사가 다 끝났다.

술을 뿌린 강지한이 안으로 들어오자 김숙자가 타고 난 재를 치우며 말했다.

“이렇게 고사를 지내야 들어올 액운도 쫓아버릴 수가 있는 법이에요. 들어보니 여기 매장 저주받았다니 어쨌다니 말들도 많던데, 걱정이 안 돼야 말이지.”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보답은 무슨. 아들 같아서 그러는 거라니까.”

강지한이 이것으로 오늘 하루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영업을 마감하시겠습니까?]

‘응.’

강지한이 속으로 대답했다.

[오늘의 실적을 최종 평가해 인지도에 반영합니다.]

[손님들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같이 음식 맛에 감탄해 입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인지도가 3 올랐습니다.]

[목표: 매장의 인지도를 80 이상 올려주세요. 3/100]

‘점수 엄청 짜게 주네.’

툴툴대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지한이었다.

실제로 손님이 거의 들지 않았으니까.

“자, 남은 술은 우리끼리 나눠 먹고 들어갈까요?”

“콜!”

이향숙이 엄지 두 개를 치켜 올렸다.

강지한이 벌떡 일어서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제가 라면이라도 끓여 올게요!”

“괜찮겠어요? 하루 종일 서서 일했을 텐데 안 피곤해?”

“오늘은 생각보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많이 쉬었어요. 라면 끓이는 거 일도 아니니까 금방 만들어 올게요.”

“괜히 미안하네.”

김숙자는 그리 말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리지 않았다.

강지한의 요리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강지한은 라면 두 그릇을 금세 만들어 내왔다.

본인은 점심을 늦게 먹어 생각이 별로 없었다.

“잘 먹을게, 지한 총각.”

“냉정한 평가 내려주겠어.”

김숙자와 이향숙이 동시에 면을 흡입했다.

그리고 돌아온 반응은 오늘 하루 종일 강지한이 봤던 다른 손님들의 반응과 똑같았다.

둘 다 눈이 하트가 되어 라면 맛을 극찬했다.

“지한 총각, 일전에 떡볶이 먹고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였어? 내가 지한 총각을 몰라도 한참 몰랐네.”

“저 오빠 이상해.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똥손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 그리고 얼굴도 좀…… 알게 모르게 많이 변했어.”

“웃을 일이 많아서 매일 싱글벙글 웃으니까 인상도 좋아지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게 잘생겨졌잖아.”

“뭘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구만.”

“에효, 엄마는 말이 지한 오빠한테 너무 관대해. 술이나 마셔요.”

이향숙이 식당 컵 세 개를 꺼내와 술을 나눠 따랐다.

“근데 라면이 정성들인 요리처럼 맛있어서 술안주로 삼기 좀 미안하네. 호호.”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김숙자는 술을 마다 않았다.

세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가장 술이 약한 주제에 제일 빠르게 달린 이향숙은 눈이 반쯤 풀려서 강지한을 쳐다봤다.

“……오빠?”

“응?”

이향숙은 한참 동안 강지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술을 못 이기고서 강지한의 무릎을 베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에 김숙자가 혀를 끌끌 찼다.

“쟤는 다 큰 처녀가 술만 마시면 아무 데서나 드러눕고 아주.”

“괜찮아요. 놔둬요. 제가 편해서 그러는가 보죠.”

사람 좋게 웃는 강지한을 김숙자가 지그시 쳐다봤다.

그 시선을 느낀 강지한이 이향숙에게 두었던 얼굴을 그녀에게 돌렸을 때.

“지한 총각.”

기다렸다는 듯 김숙자의 입이 열렸다.

“내가 얘기 하나 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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