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Restaurant 18. 계란밥
‘단골을 세 명 이상 만들라니. 단골의 기준이 뭘까.’
설거지를 하며 강지한은 생각했다.
만족도 시스템은 게임과 비슷한 면이 있다.
때문에 분명 어떠한 기준점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다.
강지한은 일단 지금 이 매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강지한이 체험하고 있는 이 레벨 업 시스템은 각 스테이지마다 큰 목표와 작은 퀘스트가 존재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두 가지의 숙제를 받았고, 강지한은 이를 풀어나가야 했다.
‘목표는 인지도를 80 이상 만들어라. 보상은 빈 메뉴 슬롯 세 개.’
빈 메뉴 슬롯은 개당 2,000포인트에 살 수 있다.
때문에 세 개를 얻으면 6,000포인트. 즉, 600만 원을 벌게 되는 것이다.
‘퀘스트는 단골을 세 명 이상 만들어라. 보상은 식당에 도움이 될 아이템.’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강지한이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식사를 끝낸 예소린이 강지한을 불렀다.
“강 사장님, 잘 먹었어요. 계산해 주세요.”
“아, 다 드셨어요?”
강지한은 젖은 손을 얼른 앞치마에 닦고 카운터로 가서 섰다.
“어땠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다음에 오면 꼭 밥볶이랑 라볶이도 먹어볼게요.”
“떡볶이랑 어묵도 전보다 훨씬 맛있어졌어요.”
“그래요? 기대할게요. 저번에 떡볶이도 그랬지만, 라면이랑 김밥을 먹어보니까 더 확신이 생겼어요. 강 사장님이라면 이 매장을 분명히 살릴 수 있을 거예요.”
“저도 꼭 그렇게 됐으면 합니다.”
예소린은 이번에야말로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마음 한편으로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왔다.
보통 식당이라는 것이 개업을 하면 오픈발이라는 게 먹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맛이 어떤지 궁금해서 들러보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은 호기심에 찾아오는 손님들로 바글바글하게 마련이다.
오픈발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까지도 간다.
그 이후로는 순전히 식당의 맛에 달렸다.
맛이 있다면 계속해서 손님이 들 것이고, 없다면 발길이 뚝 끊겨 버린다.
한마디로 오픈발은 손님이라는 심사의원들에게 맛을 검증받는 기간이다.
그때 반짝 잘된다고 기고만장하면 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손님이 너무 없다.’
어떻게 된 매장이 오픈발도 먹히지를 않고 있었다.
사실 강지한이 계약한 매장은 상가 전체 매장 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게다가 저주받은 매장이라는 소문이 동네 전체로 퍼져 버렸다.
사람들이 께름칙해하는 건 당연했다.
분식집처럼 작은 식당은 거의 동네 장사다.
어느 동네가 분식집 하나쯤은 있기에, 가까운 곳에서 먹으려 하지 굳이 남의 동네로 넘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정말 소문만 맛집이 아니고서야.
떡볶이 단골들 역시 강지한의 분식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가 떡볶이를 팔던 주택 단지와 이곳은 거리가 제법 있었다.
강지한의 떡볶이는 찾아와서 먹어볼 만한 맛이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그럴 수는 없었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 또 몰라도 멀리 있는 이상 생각날 때 한 번이라는 태도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아무튼 이것저것 여러 요인이 강지한에게는 악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예소린은 자신이 등 떠밀어 계약을 한 것 같아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자라났다.
“김밥이 2,500원에, 라면 2,500원. 5,000원입니다.”
예소린이 계산을 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겨우 5,0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게 참 기분 좋으면서도 죄송하네요. 김밥은 특히 좋은 재료들로만 만든 것 같던데…… 마진이 남으세요?”
“손님들에게 제 마음이 전해져서 한 번 더 들러주시면 그게 마진 남는 겁니다. 하하하.”
강지한이 밝게 웃었다.
참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청년이었다.
예소린은 그의 미소가 멋있게 빛난다고 생각했다.
“강 사장님, 힘내세요!”
“네?”
“제가 열심히 소문낼게요. 알았죠?”
“아……. 네. 감사해요.”
“내일도 또 올게요! 파이팅해요!”
“네~ 들어가세요.”
예소린의 머리 위에 40이라는 만족도가 떴다.
그리고 전의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1/10이라는 수치도 함께 나타났다.
딸랑-
예소린이 나간 후, 강지한은 바로 테이블을 청소하고 설거지까지 끝냈다.
이후로 손님이 한동안 뜸했다.
강지한은 홀로 테이블에 앉아 고민했다.
“손님이 너무 없네. 광고라도 내야 하나?”
그건 그렇고 자꾸 손님들한테서 보이는 1/10이라는 수치는 또 뭘까?
고민하던 강지한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 스쳐 지나갔다.
“혹시…… 퀘스트랑 관련 있는 거 아니야?”
퀘스트의 내용은 단골을 세 명 이상 만들라는 것이다.
즉, 1/10이라는 건 매장에 한 번 찾아왔다는 것이고, 열 번을 채우면 단골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예소린은 내일도 온다고 했으니 강지한은 그때 확인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점심 동안에는 총 여덟 명의 손님을 받았다.
한창 바쁠 시간이었는데 열 명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손님을 하도 조금 받아서인지 레벨 5의 능력치 숙련도들도 거의 늘지를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음식을 맛본 손님마다 하나같이 만족스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계산을 하는 모두의 머리 위에 일괄적으로 1/10이라는 수치가 나타났다.
오후 3시 반.
손님이 들지 않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강지한은 늦은 점심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뭘 해먹을까~”
고민하며 냉장고를 열자마자 계란부터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는 순간 어릴 적 향수에 젖은 음식이 떠올랐다.
강지한이 아직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엄마가 자주 해줬던, 그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
계란밥.
들어가는 재료도 별게 없건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강지한이 계란 두 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계란을 깨뜨렸다.
치이익!
계란은 프라이팬에 닿자마자 하얗게 익어갔다.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소금을 한 꼬집 뿌렸다.
그 사이 아침에 지어두었던 밥을 큰 대접에 양껏 퍼 담았다.
거기에 밥 양에 맞춰서 간장 한 스푼 반, 참기름 한 숟갈을 떨어뜨렸다.
보통은 버터를 넣는다고 하는데, 강지한의 엄마는 버터 대신 참기름을 넣곤 했다.
그즈음 반숙으로 잘 익은 계란을 밥 위에 얹어 깨를 뿌렸다.
“됐다.”
강지한이 숟가락을 꺼내 밥을 슥슥 비볐다.
하얀 쌀밥에 계란 노른자와 짭쪼름한 간장, 고소한 참기름이 코팅되며 맛있게 섞였다.
반찬은 김치 하나면 족했다.
“이게 얼마만이냐.”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강지한은 일부러 계란밥을 만들어 먹지 않았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엄마를 떠올리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애써 잊으려고 해도 불쑥불쑥 떠올라 눈물이 맺히는 존재를 굳이 찾으려 들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자신의 매장에서 첫 영업을 하게 된 날.
그는 몇 년 만에 엄마의 계란밥을 만들었다.
어쩌면 자기가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한 번 보러 와달라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강지한이 계란밥 한 숟갈을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따뜻했다.
짭조름하고 고소했다.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그 계란밥도 이랬다.
강지한은 아무 말도 없이 몇 번이나 더 밥을 입에 퍼 담았다.
양볼이 터지도록 밥을 들여 밀고 꾹꾹 씹었다.
근데 이상했다.
맛도 만드는 방법도 엄마가 해준 것과 똑같았는데.
그런데…….
엄마가 만든 계란밥과 달랐다.
그때의 행복이 느껴지지 않았다.
동네 친구들과 해가 떨어질 때까지 놀다 뒤늦게 돌아가면 가족들은 밥을 다 먹고서도 상을 치우지 않았다.
엄마는 땟구정물 가득한 얼굴로 들어온 아들을 미소로 반기며 늘 계란밥을 만들어 주었다.
오늘은 안 먹는다고 떼를 쓰면 직접 떠서 입에 넣어주기까지 했다.
강지한이 계란밥을 한 수저 더 입에 퍼 넣었다.
“읍…… 으읍…….”
참았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또 한 숟갈 밥을 떴다.
“흐윽……. 끅…… 끄으윽…….”
억지로 억지로 밥을 목구멍까지 밀어 넣었는데, 결국 눈물을 막지 못했다.
풍선처럼 부푼 양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강지한은 입안에 있는 밥을 돌처럼 씹어 삼켰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일찍 떠나셨는지 처음에는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얼마 안 가 사라졌다.
그저 두 분이 매일처럼 그리울 뿐이었다.
강지한의 입으로 계란밥 한 수저가 더 들어갔다.
그가 그것을 천천히 씹다 기어코 오열했다.
“흐으으윽! 엄마…… 아빠…… 나, 나 잘 살고 있어요……. 정말…… 보고 싶어요.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데…… 근데 왜…… 왜 안 계세요.”
강지한이 계란밥이 담긴 대접을 품에 안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손님이 들지 않는 애매한 시간 오후 3시 반.
주방에서 우는 강지한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