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8화 (18/330)

# 18

Restaurant 17. 정을 담은 음식

“와아~ 이게 얼마 만이야!”

한순간 굳어버린 강지한과 달리 양수정은 폴짝거리며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녀의 두 눈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안에 언뜻언뜻 미안함도 스치고 있었다.

“잘 지냈어?”

강지한이 쑥스러운 듯 안부를 물었다.

“응응. 너는?”

“나야 뭐…… 보시다시피. 하하.”

“우리 몇 년 만이지?”

강지한과 양수정이 연인에서 남이 되어 소식이 끊긴 게 스물두 살 겨울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꼬박 6년이 지난 것이다.

강지한은 부모님을 여위고 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를 친척집에 얹혀살았다.

그리고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춘천에 올라와 독립을 했다.

친척네서 눈칫밥을 먹는 것이 불편했으며 춘천이 부모님의 고향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스물두 살의 겨울, 첫사랑과의 이별은 그에게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좋게 끝난 게 아니라 처절하리만큼 아프게 끝이 났다.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서 강지한은 이런저런 이유를 담아 서울을 떠나온 것이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강지한이 애써 웃음 짓고 말했다.

“6년…… 만인 것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어?”

“응, 근데 춘천에는 어쩐 일이야?”

“신랑따라 왔지. 이제 일 년 됐어.”

“그래? 아…… 저분이.”

강지한이 홀로 테이블에 앉아 이쪽을 지켜보는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이 인상도 좋고 무척 건강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수정이 남편 정호명이라고 합니다.”

“아, 네. 강지한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짧은 인사가 오가고 난 뒤, 정호명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하하,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알 수가 없네요. 이런 곳에서 수정이 옛 친구분을 다 만나고.”

“그러게요.”

친구라는 단어에 뜨끔한 강지한이었지만 티내지 않고 잘 받아넘겼다.

“편하게 얘기 나누세요. 주문은 천천히 해도 되니까.”

정호명은 매너 있게 오래간만에 재회한 두 사람에게 시간을 주었다.

“진짜 반갑다, 수정아. 이 동네 살아?”

강지한의 물음에 양수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신혼집 후평동에 있어. 여기는 병원 갔다 오는 길에 들른 거야.”

“병원? 어디 아파?”

걱정스런 강지한의 물음에 양수정이 자신의 배를 살짝 눌러 보였다.

그러자 펑퍼짐한 원피스의 배 부분이 들어가지 않고 뽈록 튀어나왔다.

“임신했구나?”

“응. 5개월이야. 이 동네에 있는 산부인과가 가장 잘해준다는 소문 듣고 한 달 전부터 여기로 다니고 있어. 근데 오늘 진료받고 나오자마자 라면이랑 김밥이 너무 땡기는 거야.”

라면과 김밥은 강지한이 그녀와 연애하던 시절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이었다.

강지한은 쓴웃음을 짓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양수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 가지고 아무 데나 눈에 보이는데 들어가서 먹자고 남편 졸랐어.”

양수정이 다니는 산부인과는 강지한의 매장이 있는 상가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랬구나. 근데 진짜 신기하다. 나 이 식당 오늘 첫 오픈 한 거거든.”

“그러게. 보름 전에 왔을 때는 못 봤었는데. 호호.”

양수정이 신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강지한은 기뻤다. 안심이 되었다.

자신과 사귀던 시절, 연애의 끝자락에 그녀는 웃음을 잃어버렸었다.

사실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 커플이었다.

주변에서 질투를 할 만큼 잘 맞아서 싸움 한 번 없이 꼬박 일 년을 만났다.

그런데 스물두 살의 봄, 양수정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이후로 양수정은 웃음을 잃었고, 강지한은 그녀에게 생각만큼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강지한 역시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그런데 그런 불행한 자신과 사랑을 나눈 여인도 똑같은 입장이 되어 버렸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는 수순을 밟았다.

강지한은 이 상황이 야기된 게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이상한 죄책감에 힘들어 했고, 양수정은 더 이상 미소 짓지 않았다.

같이하기에는 너무나 아픈 추억을 공유하게 됐다.

그 한 번의 이별을 끝으로 강지한은 기회가 와도 연애를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오면 나 같은 놈 주제에……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접어버렸다.

왠지 자신의 곁에 있으면 그 사람까지 불행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가웠다.

다시 보게 된 양수정이, 그녀의 티 없이 맑은 미소가.

“아, 배고파. 이제 밥 먹어야겠다.”

양수정은 남편의 맞은편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라면 두 개랑 김밥 두 줄! 자기 괜찮지?”

“무조건 좋지.”

두 사람이 서로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이를 보고 있자니 강지한의 마음까지 훈훈해졌다.

“라면 두 개, 김밥 두 줄 주문 받았습니다!”

씩씩하게 외친 강지한이 바로 조리에 들어갔다.

한편 홀에서 라면과 김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예소린은 조금 전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에게서 묘한 기류를 느꼈다.

여자의 직감이 둘은 결코 평범한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는 걸 포착해냈다.

하지만 모른 척 계속 라면에만 집중했다.

“호록.”

라면은 줄어드는 게 아까울 만큼 맛있었다.

김밥 역시 마찬가지였다.

곧, 이 맛을 새로 들어온 두 손님이 맛보게 된다는 것에 은근한 기대감도 생겼다.

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라면과 김밥 나왔습니다.”

“와~ 잘 먹을게, 지한아.”

“잘 먹을게요, 사장님.”

“맛있게 드세요.”

강지한이 주방으로 돌아가 두 사람을 슬쩍 지켜봤다.

“흐음~ 국물 냄새가 끝내주는데?”

“그러네?”

강지한은 두 사람이, 특히 양수정이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랐다.

예소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에게 음식을 만들어줄 때보다 더더욱 진심 어린 마음과 정을 가득 담았다.

양수정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과 여러 가지 감정이 그녀에게 무엇보다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해 주고 싶게 만들었다.

양수정과 정호명이 동시에 라면 국물부터 맛봤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서로를 바라봤다.

“우와.”

“캬, 이거 장난 아니다.”

“나 이런 라면 국물 처음 먹어봐.”

양수정이 감탄하는 사이 정호명은 면을 한가득 집고서 우악스레 입에 집어넣었다.

“쩝쩝쩝! 꿀꺽! 화아. 자기야, 면 먹어봐. 진짜 탱탱하고 쫀득거려.”

“쩝쩝. 어머 정말? 이거 일반 라면 맞아, 지한아?”

양수정이 도저히 못 참고 그리 물었다.

“응, 봉지라면 끓인 거야.”

“근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

“정성이 담겼으니까.”

양수정이 강지한과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 김밥을 집어 먹은 정호명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허.”

“응? 왜?”

“김밥…….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는 건 상대가 안 된다, 자기야.”

“진짜?”

이미 라면에서 신세계를 맛본 양수정의 젓가락질이 급해졌다.

그녀가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씹었다.

입안에서 김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안에 있던 재료들이 사방으로 번지더니 밥과 어우러졌다.

김밥 안에 담긴 모든 재료의 풍미가 양수정의 비강을 자극했다.

저마다의 재료가 개성을 확실히 뽐내면서도 하나인 듯 어울리는 것이 기가 막혔다.

한참 동안 김밥을 씹다가 삼킨 양수정이 나직이 말했다.

“……맛있어.”

“그치? 당신 진짜 솜씨 좋은 분을 친구로 뒀다.”

그 말에 양수정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김밥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오물오물.

김밥을 씹는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눈물 한 방울이 아래로 툭 하고 떨어졌다.

“자기 울어?”

정호명은 늘상 보아왔던 광경인 듯 당황하지 않고 양수정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놀란 건 되레 강지한이었다.

그가 정을 담아 진심으로 음식을 만든 건 맞지만 눈물까지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한데 그다음에 흘러나온 양수정의 말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무 맛있어……. 엄마가 해준 요리 먹는 것 같아…….”

“우리 마누라, 또 음식에서 정 느꼈네.”

그랬다.

양수정은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맛과 정을 강지한의 음식에서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단순히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은 먹는 이의 허기만 채워준다.

그러나 진심과 정을 담아 내놓는 음식은 마음까지 채워주는 법이다.

양수정은 이후로 말없이 식사를 했다.

훌쩍거리면서도 국물 한 방울 남기지를 않고 싹 비웠다.

“후아, 크응!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야 붉게 상기된 뺨으로 해맑게 웃는 그녀.

강지한의 마음이 덩달아 뭉클해졌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만족도가 나타났다.

양수정이 57. 정호명이 36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만족도 위로 1/10이란 수치가 표기되어 있었다.

‘저건 또 뭐야?’

강지한이 의문을 품는 사이 만족도가 흡수되었다.

“맛있게 먹었어, 지한아.”

“저도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이 집 오늘 오픈했다고 하셨죠? 제가 소문 많이 내드릴게요.”

“그래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죠.”

“오빠, 가자. 들어가서 좀 쉴래.”

양수정이 귀가를 재촉했다.

“그럴까? 계산할게요.”

정호명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며 말을 건넸다.

“다음번에도 근처 오면 들를게요. 좋지, 수정아?”

“응.”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그녀였지만 강지한은 느꼈다.

그녀가 이 식당에 들를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는 걸.

양수정은 오늘 너무 많은 추억을 이 식당에서 마주했다.

그 안에는 행복한 추억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잘 가 수정아. 안녕히 가세요.”

딸랑-

두 사람을 보낸 강지한이 비로소 한숨 크게 돌렸다.

예소린의 시선이 그런 강지한에게 향했다.

테이블을 치우는 강지한의 뒷모습이 자못 쓸쓸해 보였다.

한데 그때였다.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퀘스트-단골을 세 명 이상 만드세요.]

[퀘스트 보상: 식당에 도움이 될 아이템.]

각 스테이지마다 한 번씩 주어지는 퀘스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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