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Restaurant 14. 거두리 미소남
집에 도착한 강지한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거울을 봤다.
“후우. 후우.”
그는 스스로를 달랠 때 항상 거울로 향했다.
그렇게 하면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거울 속에 비추어지는 그의 얼굴은 엄마, 아빠를 딱 반반씩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나 오늘 잘한 거 맞지?”
강지한은 애써 웃어 보였다.
거울 속에 비친 그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맺혔다.
억지로 지은 미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맑고 포근했다.
“헉.”
자기 얼굴을 보고 놀란 강지한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누가 들으면 비웃겠지만 처음으로 거울 속 본인을 보며 괜찮게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심쿵했다.
완전히 나르시즘 초기 증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미소가 돈 들지 않는 성형이라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조금 더 잘생겨져도 괜찮겠지.”
현재 그의 누적 포인트는 3,124였다.
포장해간 손님들의 만족도가 흡수되어 집까지 오는 사이 몇백이 또 늘어난 것이다.
강지한이 얼굴에 200포인트를 투자해 레벨 업 시켰다.
[얼굴의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이목구비의 위치와 얼굴의 윤곽이 미세하게 조정됩니다.]
메시지가 나타나자마자 강지한은 얼굴 가죽이 꾸물거렸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바뀌고 있었다.
마치 컴퓨터 그래픽이나 마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조정이 끝났습니다.]
“와.”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강지한의 지금 변한 얼굴을 설명해 보자면 맨얼굴의 여인이 연하게 화장을 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화장기가 거의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더 예뻐진 그런 상태 말이다.
[조정된 얼굴로 짓는 미소는 포근하고 따스하며 이성 손님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 미소에 매료된 여성 손님들은 음식이 조금 늦어져도 이해하는 배려를 갖게 됩니다. 미소를 보는 손님들의 만족도가 4 올라갑니다.]
[얼굴의 다음 레벨이 잠겨 더 이상 레벨 업이 불가능합니다. 잠긴 6레벨은 스테이지 2에서 풀립니다.]
“이런 것도 있었네. 각 스테이지마다 레벨 업 한계가 존재하는구나.”
시스템을 이해한 강지한이 변한 자신의 얼굴을 계속 감상했다.
“정말 좋다.”
세상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투자한 김에 목소리에도 200포인트를 투자했다.
[목소리의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묵직하면서도 낭랑한 음성이 듣는 이에게 묘한 황홀감을 안겨줍니다. 손님들에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더욱 힘이 실려 당신의 말을 신뢰하게 됩니다.]
[목소리의 다음 레벨이 잠겨 더 이상 레벨 업이 불가능합니다. 잠긴 6레벨은 스테이지 2에서 풀립니다.]
얼굴과 목소리 모두 레벨 업의 기본 효과는 음식을 사는 손님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굳이 손님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바뀐 외모와 목소리가 제대로 어필된다는 걸 강지한은 생활하면서 느꼈다.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의 인상이 좋아졌고 목소리도 더 매력 있어졌다고 하지 않는가.
누적 포인트는 아직도 2,724나 남아 있었다.
강지한은 혀와 손에도 200포인트씩 투자했다.
이제 매장을 끌어가려면 지금보다 레벨 업 된 미각과 요리 솜씨는 필수였기 때문이다.
[혀의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미각이 한 단계 발달합니다. 절대미각을 얻었습니다. 맛보는 음식에 들어간 모든 재료를 파악 가능해집니다. 단, 먹어봤거나 알고 있는 재료에 한합니다. 미각이 1 올라갑니다.]
[혀의 다음 레벨이 잠겨…….]
[손의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요리를 더 능숙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리도구 마스터리를 얻었습니다. 모든 조리도구를 기초 수준 이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리를 하는 손놀림이 더 예리하고 정확하고 빨라집니다.]
[손의 다음 레벨이 잠겨…….]
“쭉쭉 나아가는구나.”
이 정도면 되었다.
강지한은 옥탑방엔 포인트를 더 투자하지 않았다.
지금 정도면 불편함 없이 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돈을 모으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야 집도, 매장도 더 큰 곳으로 바꿀 수 있을 테니까.
“나머지 누적 포인트는 환전할게.”
[2,324포인트 받았습니다. 환전 금액을 보내드립니다.]
강지한의 손에 돈뭉치가 나타났다.
총 234만 4천 원이었다.
보증금을 내고 남아 있던 돈 600만 원을 더하면 총 830만 원 정도를 수중에 쥐고 있는 셈이다.
하루에 몇만 원 벌이가 힘들어서 눈물로 밤을 채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삼백이 하루만에도 쑥쑥 벌린다.
“내일도 열심히 벌자. 그러려면 양념 소스를 미리 만들어둬야지.”
오늘 하나를 썼으니 다시 일주일 숙성시킬 양념 소스를 만들어야 했다.
강지한은 보름 전 사두었던 믹서기를 꺼내 소스에 필요한 재료들을 다듬어 갈아내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좁은 옥탑방에 믹서기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사이사이 강지한의 콧노래가 섞여 있었다.
* * *
다음 날도 강지한은 리어카에 나와 장사를 시작했다.
자신의 음식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는 한결같은 미소와 친절함으로 응대했다.
아울러 곧 문을 열 매장의 홍보 역시 잊지 않았다.
애견 카페 오픈 건으로 정신이 없던 예소린도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그런 그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장사가 곧잘 되는 걸 보니 매장에 들어와도 무리 없이 잘 이끌어 나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언니도 저 도떼기시장 같은 곳에 비집고 들어갈 자신 없어서 이러고 있어요?”
예소린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어디 패션쇼에나 나갈 법한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갖가지 장신구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이향숙이었다.
이향숙은 독특한 선글라스를 벗더니 강지한의 리어카를 지그시 바라봤다.
“한 번 사먹어 보려고 나왔더니 도저히 저기에 못 끼겠네요. 누가 실수로 내 옷에 뭐라도 묻히면…… 상상하기도 싫어.”
이향숙이 몸을 파르르 떨자 예소린이 쿡쿡 웃었다.
“좋아 보이는 옷인데 그러면 안 되죠.”
“패션을 좀 아시나 봐요?”
“강아지나 고양이 옷엔 조금 관심이 있어요.”
“……제가 강아지 같다는 거예요?”
“강아지보다는 고양이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흠……. 특이한 언니네. 이 동네 살아요? 못 본 것 같은데. 제가 이래 봬도 사람 얼굴 하나는 잘 기억하거든요. 동네에서 스쳐 지나가도 안 잊어요.”
“눈썰미 좋네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동네 사람이네. 앞으로 인사하고 지내요, 예쁜 언니. 전 이향숙이에요. 스물한 살이구요.”
“예소린이라고 해요. 스물여섯 살이에요.”
“아무래도 떡볶이 먹기는 그른 것 같네요. 가볼게요. 다음에 또 우연히 봐요.”
“들어가세요.”
이향숙이 그 자리를 떠나려 할 때였다.
리어카를 향해 여고생 세 명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유정미 패거리였다.
여고생들은 북적거리는 인파를 파고들며 신이 나서 외쳤다.
“오빠! 떡볶이 주세요!”
“난 오뎅부터 먹을래!”
“오빠오빠! 요새 우리 학원 애들 사이에서 오빠 뭐라고 불리는지 알아요?”
“거두리 미소남! 꺄하하하!”
“누가 오빠 사진 몰래 도촬해서 SNS에다가 거두리 미소남이라고 올렸어요! 오빠 지금 우리 학원에서는 인기 스타 됐어요!”
여고생들 목청이 어찌나 큰지 제법 떨어져 있던 이향숙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자꾸 누구더러 지네 오빠래.”
이향숙은 낮게 중얼거리고서는 다시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떠났다.
예소린은 여고생들의 발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강지한을 그저 멀리서 지켜보며 쿡쿡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