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Restaurant 10. 기회의 연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김숙자가 콩나물 해장국을 만들어 옥탑방을 찾았다.
“어제 우리 향숙이 때문에 고생 많았죠?”
“아니에요. 즐거웠어요. 그렇게 먹여서 제가 죄송하죠.”
“먹이긴 누가 먹여. 지가 마셨겠지. 내가 걔를 몰라?”
어젯밤.
향숙이는 강지한의 얼굴을 코앞에서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러다가 별안간 ‘우리 오빠 아니야!’ 하고 성질을 내더니 옥탑방을 나가 버렸다.
“등에 내 손바닥 자국 크게 찍혀 있을 거야.”
“많이 혼났어요?”
“다 큰 계집애가 그러고 다니면 큰일 나. 지한 총각이랑 마셨으니 망정이지, 다른 남자 집에서 술에 떡이 됐어봐. 무슨 일 당할지 어찌 알아요?”
“하하, 향숙이도 저랑 있었으니까 맘 놓고 마신 걸 거예요.”
그리 말하는 강지한을 보며 김숙자가 저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어쩜 이리 닮았을까.”
“네? 닮다뇨? 누굴…….”
“아, 아니에요. 지한 총각도 속 아플 텐데 이것 먹고 확 풀어요. 북어 넣고 푹 끓인 콩나물 해장국이야.”
김숙자가 가져온 냄비를 내밀어 뚜껑을 열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며 구수한 냄새가 확 풍겼다.
안 그래도 속이 살짝 불편하던 강지한의 입에 대번에 군침이 돌았다.
“와, 정말 맛있겠어요.”
“밥도 한 공기 가져왔으니까 말아서 싹 비워요.”
“네. 감사해요, 어머니.”
“뭐 별거라고요. 빈 그릇은 이따 향숙이 편으로 보내줘요.”
“네! 그럴게요.”
김수자가 내려간 뒤, 강지한은 국과 밥을 상으로 가져와 텔레비전을 틀었다.
“먹어보자.”
예능 프로를 보면서 콩나물 국 한술을 떠먹어 보았다.
“후르륵. 크으. 해장된다.”
강지한이 밥 한 공기를 통째로 국에 말아서 푹푹 떠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국에 들어간 재료와 조리법을 파악하기 바빴다.
‘말린 북어. 콩나물. 후추. 소금. 다진 마늘. 파. 참기름인가? ……아니다, 들기름. 먼저 들기름에 북어를 볶았어.’
내가 이런 걸 알아내다니.
스스로가 놀랍고 대견한 강지한이었다.
레벨 업 된 혀는 상당한 미각을 자랑했다.
해서 먹는 음식에 들어간 재료들을 대부분 알 수 있었다.
“크흐. 잘 먹었다.”
해장국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운 강지한이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러고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천만 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 * *
예소린은 오전에 집을 나와 예경천의 상가로 향했다.
총 열 개의 매장이 들어올 수 있는 2층 상가였다.
저주 받았다는 소문이 퍼진 문제의 매장은 1층 왼쪽 끝에 있었다.
예소린은 휑하게 비어버린 상가를 감상하다가 건물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른쪽 끝 매장 앞에는 인부들 셋이 열심히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중이었다.
매장 위엔 ‘뽀삐의 하루’라는 새 간판이 달려 있었다.
인부들은 예소린을 보더니 알은체를 했다.
“오셨어요?”
“네, 고생 많으셔요. 이것 좀 마시고 하세요.”
예소린이 집에서 들고 나온 음료수를 돌렸다.
그러고는 작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빨리 나와주었다.
한창 공사 중인 그 매장은 곧 예소린이 오픈할 애견 카페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동물들을 많이 좋아했고 그러한 성향이 애견 카페를 열게끔 만들었다.
오늘을 위해 2년 동안 바리스타 일도 열심히 배웠다.
바리스타라는 것이 자격증을 따면 끝나는 게 아니다.
자격증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딸 수 있었다.
손님에게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퀄리티의 커피와 음료를 만들려면 손을 놀리지 말고 계속 연습을 해야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예소린은 비로소 자신감이 붙었고 카페를 내기로 한 것이다.
예소린이 자신의 뜻을 정하자 예경천은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해서 비어버린 상가 매장 하나를 넘겨준 것이다.
원래 예소린은 저주받은 매장에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했었다.
하나 그건 예경천이 절대 안 된다며 엄포를 놓았다.
매장 밖에서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디자인된 간판을 바라보던 예소린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들어선 곳은 같은 건물에 있는 예경천의 부동산이었다.
“오~ 우리 딸 어쩐 일이야?”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예경천이 예소린을 반겼다.
“매장 공사 잘되고 있나 보고 왔어요.”
“그랬어? 내가 인부분들한테 잘 부탁드린다고 연신 부탁드렸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네. 그보다 그 매장 아직 안 나갔죠?”
“하아, 광고를 아무리 때려도 들어온다는 사람이 없다.”
“보증금 500에 월세 30이랬죠?”
“응.”
“아빠 저 누구 좀 만나고 올게요.”
“응? 데이트하러 가니?”
“데이트는 혼자 하나요? 할 일이 좀 있어요. 이따 집에서 봐요.”
“그래그래. 늦지 않게 들어와.”
“네.”
* * *
예소린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강지한의 리어카였다.
지금 시간이 점심나절이니 아마 장사를 하고 있을 터였다.
‘500에 30 정도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정도 손맛이면 매장을 운영해도 얼마든지 살려낼 테고.’
날이 갈수록 예경천의 한숨은 깊어만 갔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예소린은 결국 본인이 나서기로 했다.
매장이 싸게 나왔으니 강지한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귀신이 들렸다느니, 저주받았다느니 하는 건 다 헛소문이었다.
매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연이 겹쳐 그 매장에 들어선 이들이 하나같이 쪽박을 차고 나갔을 뿐이다.
10분 정도를 걸어 예소린은 강지한의 리어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없네?”
리어카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사람들 몇몇이 모여 있었다.
예소린이 다가가 그들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저…… 혹시 여기서 리어카 장사하시던 분 어디 가셨나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 민원 들어가서 다른 곳으로 옮겼나? 어제 늦게 와서 어묵이도 떡볶이고 다 팔리는 바람에 오늘은 일찍 나왔더니 아예 보이지를 않네. 에이.”
“그럼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 그 리어카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고 있는 건 맞는데 이러다가 영영 안 나오면 하루 종일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들어가 봐야겠어요. 벌써 30분이나 서 있었어.”
“그래요, 갑시다. 오늘 하루 쉬나 보지.”
“아……. 나 이 오빠 떡볶이 먹어야 되는데. 오늘 많이 먹으려고 어제 저녁부터 굶었는데, 히잉.”
모여 있던 사람들은 툴툴대며 흩어졌다.
그에 예소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집 떡볶이…… 맛있긴 했는데 이 정도였나?”
* * *
강지한은 농협에 들러 천만 원을 통장에 입금했다.
통장에 찍힌 잔액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본 강지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0이 몇 개냐.”
강지한이 통장을 가방에 집어넣고 농협을 나왔다.
“이제부터 뭘 할까.”
일만 할 때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막상 쉬려고 하니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영화를 봐? 맛있는 걸 먹으러 갈까? 놀이공원? 여유롭게 산책을 하기엔…… 너무 춥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 그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리어카 장사를 하던 사거리로 향했다.
그는 골똘히 고민을 거듭하다 자신이 장사를 하던 곳에 왔음을 뒤늦게 알고 멋쩍게 웃었다.
“하하. 제 버릇 남 못준다더니…….”
그때였다.
“저기…… 여기서 분식 장사 하시던 분 맞으시죠?”
뒤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여인의 음성에 강지한이 돌아섰다.
그녀였다.
자신의 떡볶이를 처음으로 맛있다고 해준, 너무나 아름다웠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강지한이 눈을 크게 떴다.
“아……. 혹시 떡볶이 드시러 오셨나요? 죄송한데 오늘은 제가 일 년 만에 쉬는 날이라서……. 드실 수가 없을 것 같지만 꼭 드시고 싶으시다면 우리 집에 가서라도 만들어 드릴, 아니, 그게 아니고.”
횡설수설하는 강지한을 보며 예소린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강지한은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에게 예소린이 몇 걸음 다가왔다.
어쩜 그저 걷는 것뿐인데도 그 장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넋을 놓고 있는 강지한에게 그녀의 달콤한 음성이 와 닿았다.
“오늘은 떡볶이 먹으려고 온 게 아니고, 여쭤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아, 네. 근데 저한테 뭐가 궁금하셔서……?”
“우선 이름부터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예소린이라고 해요. 성이 참 특이하죠? 나이는 스물여섯이에요.”
“아니요. 예쁘기만 한데요. 저는 강지한이라고 합니다. 스물여덟 살입니다.”
“저보다 오빠네요.”
‘오, 오빠.’
살아오면서 숫하게 들었던 단어인데 예소린의 입에서 나오니 느낌이 참 달랐다.
“우선은 강 사장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편한 대로 하세요.”
“강 사장님, 혹시 리어카 말고 매장에서 분식 장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매장… 이요?”
“네, 엄청 싸게 나온 매장이 있거든요. 아, 여기서 얘기하는 건 좀 그렇고 어디 카페라도 들어갈까요?”
강지한이 매장이라는 단어에 확 꽂혀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을 때 메시자가 나타났다.
[스테이지 1의 목표 성공 보상. 작은 매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연이 닿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