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Restaurant 9. 떡볶이와 맥주와 향숙이
“1,536포인트. 전부 환전해줘.”
[1,536포인트 받았습니다. 환전 금액을 보내드립니다.]
강지한의 손에 156만 6천 원이 쥐어졌다.
강지한은 서랍 속에 감춰두었던 돈뭉치를 꺼냈다.
오늘 번 액수를 합해 총 1087만 2천 원이 됐다.
그것은 단지 포인트를 환전한 금액이었다.
분식을 팔아 번 돈도 100만 원 가까이 됐다.
“천만 원 넘었다.”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한 듯 허공에서 폭죽이 터졌다.
펑! 퍼펑!
빰빠밤빰빠! 빰빠밤빰빠!
“뭐, 뭐야?”
집 안에서 난데없이 팡파레가 울렸다.
폭죽에 팡파레에, 강지한은 누가 올라와서 항의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 소리는 본인에게만 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란한 축하가 끝나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Stage 1. 리어카의 목표를 완수했습니다.]
[보상 ‘작은 매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지급되었습니다.]
보상이 주어졌다고는 하는데 뭐가 어떻게 주어진 건지 강지한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변화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껏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천만 원이라……. 이걸로 뭘 하지?”
강지한은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밀린 월세는 이미 해결했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진 빚은 없었다.
때문에 천만 원은 오로지 강지한 본인의 것이었다.
목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보금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옥탑방을 내어준 김숙자는 좋은 사람이었다.
월세도 싸게 해준 데다 보증금까지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로 자신을 챙겨주었다.
하지만 여름엔 찌는 듯 덥고 겨울엔 뼛속까지 시린 집에서 계속 살기는 힘들었다.
“지금은 상관없지.”
레벨 업을 통해 충분히 지낼 만한 곳으로 바뀌었으니 당장 이사를 갈 이유는 없었다.
그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건 작아도 좋으니 자신의 매장을 갖는 것이었다.
문제는 늘 돈이다.
천만 원으로는 턱도 없었다.
보증금에 리모델링을 포함한 초기 투자 비용에 광고비에 손님에게 입소문이 날 때까지 버텨야 될 기간을 생각하면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성공 보상이 작은 매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니 빠른 시일 안에 무언가 일이 풀려도 풀리지 않을까 싶었다.
“이것도 일단 건너뛰고. 그다음으로 해보고 싶었던 건…… 휴식.”
강지한에겐 한숨 돌릴 여유가 필요했다.
그동안 잘되지도 않는 리어카로 매일같이 출근했다.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쉬자.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여유롭게 거리도 걸어보자. 아, 은행에도 들러야지. 목표 완수했으니까 저축해도 되겠지.”
스스로에게 다짐한 강지한이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그때였다.
탕탕!
“오빠, 자요?”
“향숙이?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나 들어가요.”
이향숙이 허락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여전히 추리닝 차림이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뭐야, 그건?”
이불에서 나온 강지한 앞에 이향숙이 봉지의 내용물을 우르르 쏟아놓았다.
떡, 오뎅, 고추장, 물엿, 파…….
“떡볶이 재료 가져왔어요. 저도 떡볶이 좀 해줘요.”
엄청난 막무가내였다.
이향숙은 이상하리만치 강지한을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오빠 동생처럼 허물없이 대했다.
처음에 강지한은 그런 이향숙이 부담스러웠으나, 지금은 적응된 이후였다.
“응? 갑자기?”
“요새 갑자기 오빠 떡볶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난 구경도 못했잖아요.”
“팔 때 나와서 사먹지.”
“요즘 좀 바빴어요.”
“어제 어머님이 사가셨는데?”
“그때 나 다른 곳에 있었어요. 나 먹을 거 남겨두라 그랬더니 다 먹었더라고.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나.”
“하하, 어머님도 은근 귀여우셔.”
강지한이 미소 지었다.
그에 이향숙이 강지한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오빠. 어디서 관리 받아요?”
“아니?”
“근데 일주일 전부터 얼굴이 왜 이렇게 달라 보일까. 본판이 크게 변한 건 아닌데 전에 없던 훈훈함 스멜이 마구 풍기네.”
“그래?”
“목소리도 훨씬 편안해졌고. 전에는 좀 가볍고 붕 뜬 것 같아서 무게감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무거운데도 부드러워요. 매력 있어요.”
이향숙은 독설을 거침없이 날리지만 칭찬도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 그래?”
“응. 솔직히 얘기해서 살짝 심쿵했어요. 요새 분식집에 여자 손님이 더 많죠?”
강지한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 손님이 많았다.
“응.”
“장사 잘되는 원인이 떡볶이 말고 다른 데에 있는 거 아니에요? 진짜 내가 먹어봐야겠어. 빨리 해줘요.”
“알았다, 알았어.”
강지한이 일어나 냉장고에서 일주일 숙성된 소스통을 꺼냈다.
냉장고엔 그런 소스통이 여섯 개나 더 있었다.
반찬은 하나도 없고 온통 소스통으로 가득했다.
전부 하루 단위로 차이를 두고서 만든 것들이다.
레벨 5의 떡볶이 소스는 숙성에 일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이렇게 해놓은 것이었다.
오늘까지 판 건 레벨 4의 떡볶이였다.
일주일 전에 만든 소스의 숙성이 딱 오늘 끝나기에 레벨 5 떡볶이는 하루 쉬고 모레부터 판매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 이향숙이 먼저 맛을 보게 되었다.
‘잘됐다. 시식 겸해서 한 번 만들어보자.’
강지한이 싱크대 앞에 서서 이향숙이 사온 재료들을 씻고 다듬었다.
그런 그의 손놀림이 상당히 빨랐다.
칼질 또한 능숙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향숙이 내심 놀랐다.
“오빠, 언제부터 그렇게 손이 빨랐어요? 칼질도 예술이다.”
“음……. 한 열흘 전부터?”
“뭐야, 아재 개그.”
“하하.”
강지한은 진실을 말했지만 이향숙은 조금도 믿지 않았다.
“먹자.”
빠르게 완성된 떡볶이와 수저를 들고 식탁 앞에 앉은 강지한.
그런 그의 눈앞으로 맥주 한 캔이 슥 다가왔다.
“웬 맥주야?”
“떡볶이에 맥주 한 잔은 진리 아니에요?”
“맞지. 고마워.”
치익!
두 사람은 동시에 맥주 캔을 따서 크게 한 모금을 마셨다.
“크으, 좋다.”
“잘 먹을게요, 오빠.”
이향숙이 급하게 떡볶이 하나를 집어 먹었다.
“쩝쩝. 꿀꺽!”
떡을 몇 번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킨 이향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떡볶이 하나를 더 찍어서 입에 넣었다.
“쩝쩝쩝쩝. 꿀꺽! 화아.”
이향숙의 양볼이 발그레해졌다.
“어때?”
은근히 기대하며 강지한이 물었다.
“오빠.”
“응.”
“……이거 진짜 미쳤어요. 어떻게 떡볶이에서 이런 맛이 나요? 나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 처음 먹어봐요. 와, 진짜 핵맛. 졸맛. 이러니까 잘 팔리지.”
“그 정도야?”
“응응.”
이향숙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근데 오빠 떡볶이 원래 맛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는 거예요? 막 갖은 방법을 다 써보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맛집 레시피 따라해 봐도 똥맛이었잖아요.”
“또, 똥맛은 좀…….”
“어디서 목돈 주고 레시피라도 사왔어요?”
“내가 그럴 돈이 어딨냐.”
“하긴 그렇네. 그럼 혼자 개발했다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더라.”
“인간 승리다 진짜. 사람이 단기간에 이렇게 바뀌어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밀리던 월세도 다 해결하고.”
“나도 요즘 하루하루가 꿈같아.”
“이거 꿈 아니에요. 레알이야. 건배!”
“건배!”
강지한도 이향숙도 잔뜩 신이 난 밤이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떡볶이를 안주 삼아 맥주를 홀짝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빈 캔이 열 네 개로 늘어났다.
이향숙은 반쯤 눈이 풀려 남은 떡볶이 양념을 접시째로 핥아먹었다.
“향숙아, 이제 내려가. 많이 취했다.”
그리 말하는 강지한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향숙이 돌연 그를 와락 껴안았다.
“오빠!”
“햐, 향숙아?”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포옹을 당하는 바람에 강지한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 위로 이향숙의 몸이 포개졌다.
추리닝을 입고 있을 땐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몸을 맞대고 있자니 대단한 볼륨이 느껴졌다.
‘안 돼.’
강지한은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강지한의 품에 안긴 이향숙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였다.
“향숙아, 너…… 울어?”
“오빠……. 보고 싶어. 왜 먼저 갔어…….”
강지한은 이향숙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랐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우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려 줄 뿐이었다.
그때 강지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향숙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향숙아, 괜찮아?”
향숙이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강지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점점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