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Restaurant 8. 매진. 매진. 매진.
오후 7시.
일찍이 밤이 내린 리어카 안에서 강지한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텅 비어버린 철판과 통에 머물러 있었다.
“다 팔았다.”
처음으로 음식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 팔았다.
매진이었다.
그것도 그가 퇴근하던 9시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분식을 맛보는 손님들마다 맛있다고 했다.
평소에 못 보던 손님들도, 한 번 왔다가 다시는 오지 않았던 손님들도 있었다.
다들 입이라도 맞춘 듯, 한결같이 맛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꼭 오겠다고 약속했던 아줌마들도 떡볶이를 먹고 포장까지 해갔다.
김숙자는 다른 일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
강지한은 그게 조금 아쉬웠다.
떡볶이가 남으면 싸가서 드리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은 아줌마들이 온다고 해서 평소보다 양을 더 준비했다.
한데 그래 놓고서도 다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내가 오버했나?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기우였다.
어묵도, 떡볶이도 완판이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옛 속담은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입소문이라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장사를 마치고 난 뒤 그에게 누적된 포인트는 1,327이었다.
50명 정도의 손님이 다녀갔으니 한 명당 만족도가 26점 정도 된다는 얘기였다.
“이 포인트를 환전하면…… 132만 7천 원!”
오늘 분식을 팔아서 번 돈이 고작 15만 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포인트로는 하루 만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강지한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고민했다.
포인트로 레벨 업을 할 것인가, 돈으로 바꿔 저축을 할 것인가?
하지만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다.
장사가 이렇게 잘될 수 있었던 원인은 레벨 업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에 혹하지 말자.’
강지한은 바로 포인트를 분배했다.
떡볶이와 어묵에 200포인트씩을 투자해 5레벨로 올렸다.
주걱, 국자, 종이컵, 얼굴과 혀, 목소리에는 50포인트씩을 투자해 각각 4레벨이 됐다.
마지막으로 손에도 70포인트를 투자해서 두 레벨 업그레이드시켜 레벨 4로 만들었다.
강지한은 레벨 업 현황을 열었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얼굴 LV4 만족도+3 (NEXT 200P)
혀 LV4 미각+3 (NEXT 200P)
목소리 LV4 (NEXT 200P)
손 LV4 (NEXT 200P)
.
.
.
[리어카]
떡볶이 LV5 (NEXT LOCK)
어묵 LV5 (NEXT LOCK)
주걱 LV4 만족도+3 (NEXT 200P)
국자 LV4 만족도+3 (NEXT 200P)
종이컵 LV4 만족도+3 (NEXT 200P)
누적 포인트: 557
“떡볶이랑 어묵은 다음 레벨이 잠겨 있다는 건가.”
최대 레벨이 아니라 락이 걸렸다는 걸 보니 뭔가 푸는 조건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나 어떤 조건이 필요하든 강지한은 그것을 이루어 낼 생각이었다.
5레벨을 찍으며 알게 된 떡볶이와 어묵의 레시피는 레벨 4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음 레벨의 음식이 탐나는 건 당연했다.
“그나저나 레벨 5 떡볶이는 당장 파는 게 힘들겠다.”
레벨 4의 떡볶이는 소스 숙성을 이틀만 하면 됐지만, 레벨 5의 떡볶이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뿐만 아니라 육수까지 따로 내서 만들어야 했다.
“육수 내는데 파뿌리랑 통후추에 건새우까지 넣네.”
강지한은 여태 떡볶이를 만들 때 맹물에 소스를 풀어왔기에 이런 방식은 또 처음이었다.
어묵 역시 육수의 비법이 전의 레시피보다 더욱 복잡하고 고급스러워졌다.
떡볶이와 달리 어묵 국물은 숙성해야 하는 과정이 없어서, 내일이라도 당장 선보일 수 있을 듯했다.
한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레벨 5의 어묵은 기존에 사용하던 저렴한 어묵과 달리 좀 더 고급스런 어묵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꼬치당 5백 원씩 받고 팔 수가 없었다.
“적어도 7백 원은 받아야 괜찮게 마진이 날 텐데.”
천지에 5백 원짜리 어묵이 널렸는데 과연 200원 더 비싼 어묵을 사먹으려 할지 의문이었다.
고민하던 강지한은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묵으로 마진을 적게 남겨도 만족도 포인트로 얼마든지 벌 수 있잖은가?
“그래. 욕심내지 말자. 장사 잘하려면 욕심 버리고 정을 담아야지.”
강지한은 남은 포인트를 더 이상 투자하지 않고 리어카를 정리했다.
* * *
오늘은 소주를 사는 것도 깜빡하고 집에 돌아왔다.
얼른 집을 레벨 업 시키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급해졌던 것이다.
“빠르게 레벨 업 해보자. 벽, 바닥, 이불, 텔레비전에 전부 20포인트씩 투자할게.”
[벽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외풍이 거의 차단됩니다.]
[바닥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바깥의 온도에 반응하여 따뜻해지거나 시원해집니다. 상당한 효과가 적용됩니다.]
[이불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숙면을 취하게 해주며 피로가 상당히 해소됩니다.]
[TV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시청할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대폭 해소됩니다.]
곳곳의 레벨이 2에서 3으로 올라가며 전보다 큰 효과를 보게 됐다.
강지한이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방바닥이 따뜻했다.
외풍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는 옷을 껴입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이지.”
처음으로 이 옥탑방이 포근하다고 느껴졌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477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앞으로는 일단 모으자.”
강지한은 이제 포인트 투자를 멈추고 그것을 다 돈으로 환전해서 모으기로 했다.
사실 그는 리어카 장사를 하면서도 늘 맘이 편치 않았다.
합법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자기 매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1000만 원을 모으면 작은 매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고 그랬지?”
그것이 스테이지1, 리어카에서의 목표였다.
“어떻게든 돈을 모으자. 남은 포인트 전부 환전할게.”
[477포인트 받았습니다. 환전 금액을 보내드립니다.]
메시지와 함께 허공에서 지폐 한 뭉치가 턱 나타났다.
“하하.”
강지한이 그 돈뭉치를 들어 빠르게 세어봤다.
정확하게 47만 7천 원이었다.
“내일은 밀린 방세를 다 내자.”
사흘 전까지만 해도 무일푼이었던 그였다.
한데 지금은 수중에 7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이 있었다.
돈이 있으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강지한이 아침에 두고 나온 도시락을 저녁으로 먹은 뒤 씻고 이불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켰다.
“천국이 따로 없다.”
강지한은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를 시청하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이제는 술이 없어도 춥지 않았다.
그날 밤.
강지한은 꿈속에서 몇 년 전 하늘로 가버린 부모님을 만났다.
그는 부모님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부모님은 그의 등을 쓸어내려 주며, 장하다고 하셨다.
“죄송해요, 보고 싶어요.”
꿈속에서 강지한은 목 놓아 울며 몇 번이고 그 말만 되뇌었다.
* * *
“거참, 이상하네.”
고중만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근 일주일 동안 그는 장사에 영 재미를 보지 못했다.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손님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매상이 바닥이니 쪽팔려서 강지한에게 충고질 하러 가지도 못했다.
오늘은 좀 다를까 했지만 여전히 파리만 날렸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데 준비한 음식은 반 이상 남아버렸다.
원인이 뭔지 고민하던 중에 단골손님 한 명이 리어카 앞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학생!”
하루에 한 번은 자신의 리어카에서 떡볶이를 사먹었던 열여덟 살 남학생이었다.
“네?”
남학생이 어딘가로 급히 가려다 말고 고중만을 쳐다봤다.
“요즘엔 왜 떡볶이 먹으러 안 와? 우리 집 떡볶이 좋아했잖아. 용돈이 좀 부족해? 기분이다! 오늘은 서비스 줄게, 먹고 가.”
고중만은 남학생을 잡아놓고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어볼 참이었다.
하지만 남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돈 있어요.”
“있어도 안 받아. 그냥 먹고 가.”
능글맞게 말하는 고중만이 얼른 떡볶이 한 접시를 퍼서 내밀었다.
그러나 남학생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게 아니라……. 쩝, 그냥 말해드릴게요. 저 단골 리어카 바꿨어요.”
“뭐? 어디로?”
“농협 근처 사거리에 있는 리어카 알아요?”
모를 리가 있겠는가.
강지한의 리어카였다.
“아니, 이제부터 거기 단골 한다고?”
“며칠 됐어요.”
“아니, 왜? 거기 떡볶이 더럽게 맛없을 텐데?”
“그랬었죠.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죄송한데 그만 가볼게요. 늦게 가면 못 먹어요.”
“왜?”
“다 팔리니까요!”
남학생이 살짝 짜증스레 소리치고서는 걸음을 빨리했다.
“설마…… 그 햇병아리가 무슨 떡볶이를 맛있게 한다고.”
남학생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고중만이 리어카를 놔두고 염탐을 하러 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함했다.
“컥!”
강지한의 리어카 주변으로 사람들이 우글거리며 몰려 있었다.
그들은 혹여라도 자기 차례 전에 떡볶이와 어묵이 동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남은 양을 계속 확인했다.
“총각! 떡볶이 5인분이랑 오뎅 여덟 개 포장!”
“오빠! 우리도 떡볶이 3인분 포장이요!”
“지한 씨! 2인분 포장되지?”
“형, 우리 2인분 먹고 갈게요.”
“어어, 아줌마! 새치기하지 말아요. 우리가 먼저 왔어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광경에 고중만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그럼…… 내 손님들을 저 녀석한테 다 빼앗겼다는 거야? 아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성질이 나고 속에서 열불이 터졌지만 고중만은 그냥 돌아갔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강지한을 보면 혈압만 더 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매진됐어요! 감사합니다!”
“아아, 나 못 먹었는데.”
“내일은 일찍 와야겠다.”
간발의 차이로 커트 당한 손님들은 아쉬워하며 걸음을 돌렸다.
“휴우, 정신없었다.”
일주일 동안 강지한은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었다.
떡볶이고 어묵이고 남겨서 가지고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장사가 너무 잘돼서 어제부터는 20인분을 더 늘렸는데도 금방 동이 났다.
갈수록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손님이 많아지는 만큼 포인트도 무섭게 모였다.
오늘 벌어들인 포인트만 1,536이었다.
이제 리어카를 찾는 손님들의 평균 만족도는 전부 30을 넘고 있었다.
“오늘 번 것까지 환전하면 천만 원이 넘어.”
드디어 스테이지1의 목표를 완수할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강지한이 콧노래를 부르며 리어카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