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Restaurant 5. 저주받은 매장
집으로 돌아온 예소린을 그녀의 아빠 예경천이 반겨주었다.
“내 딸, 왔구나!”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드는 예경천을 예소린이 마주 안아주며 말했다.
“아빠, 누가 보면 몇 달 만에 상봉하는 줄 알겠어.”
“매일 봐도 매일 좋은 걸 어쩌냐. 그래, 데이트 하고 오니?”
“님을 봐야 뽕을 따죠. 데이트는 혼자 해요?”
“하하하! 그렇지, 그렇지. 괜히 해본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으나 예경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의 슬하에는 1남 2녀가 있었는데 예소린이 막내였다.
예소린의 위로 난 두 명은 연년생인데 반해 예소린은 첫째보다 다섯 살, 둘째보다는 네 살이 어렸다.
그래서 더더욱 막둥이에게 애정이 큰 예경천이었다.
“아빠 속내를 내가 몰라요? 이러다 연애도 못하고 늙어 죽겠어.”
“아니~ 난 그런 게 아니고. 아직 남자를 만나기엔 우리 딸이 너무 어리다는 거지.”
“저 벌써 스물여섯 살이에요. 이 나이까지 연애 한 번 못해봤다는 게 말이 돼요?”
“연애는 결혼할 남자랑 딱 한 번만 하면 안 될까? 허헛.”
예경천의 넉살에 예소린이 피식 웃었다.
“점심은?”
“먹었어요.”
“들어와서 아빠랑 같이 먹지.”
“아빠야말로 이 시간에 왜 집에 있어? 부동산 안 나가요?”
“하아, 머리가 하도 아파서 실장한테 맡기고 들어왔어.”
예경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파에 앉았다.
예소린이 그의 옆에 살포시 앉으며 물었다.
“왜? 그 매장 때문에요?”
“응, 이제 소문이 날 대로 나서 무슨 수를 써도 나가지를 않아. 아니, 다른 사람 매물들은 잘만 팔아주는데 왜 내 매물은 못 팔고 있는 거냐고.”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잖아요.”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전부 그놈의 소문 때문이야.”
예경천은 부동산 업자다.
그가 가진 건물은 100평짜리 땅 위에 지어진 2층 저택 하나와 상가 건물 하나였다.
부동산 사무실은 상가 건물의 매장 하나에다 차렸다.
직업도 괜찮고 자기 건물도 있고, 자식들도 장성한 데다 넉넉하게 사는 그인 만큼 이렇다 할 고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왔었다.
그런데 반년 전부터 그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문제가 생겼다.
상가 건물 매장 하나가 도통 나가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건물주의 입장에서 매장이라는 건 놀리면 놀리는 대로 손해였다.
다달이 들어오는 월세가 얼마인가.
그런데 반년을 내리 놀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주받았다는 소문이요?”
“그래, 그거. 아니 저주는 뭔 놈의 저주! 점주들이 장사를 못해서 늘 망하는 거지.”
이상하게도 그 매장에 들어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쫄딱 망해서 나갔다.
예경천이 상가를 매입한 이후 10년을 내리 그랬다.
그러다 근 반 년은 아예 비어버린 것이다.
“귀신 봤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라면서요.”
“그게 다 장사 안 된 탓을 매장에 돌리려는 거 아니겠니?”
“그럼 임대료를 낮춰 봐요.”
“안 해봤겠니? 지금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낮췄다.”
“얼만데요?”
예경천이 한숨을 푹 쉬며 세 손가락을 폈다.
“월 30이요?”
“응. 이거 들어오면 완전히 거저다, 거저.”
다른 매장들은 월 70을 받는다.
월 30이면 반을 더 깎아준 금액이었다.
“보증금도 낮췄어요?”
“오백. 이건 뭐 상가가 아니라 그냥 원룸 수준이야.”
“오백에 삼십이면 그러네요.”
“근데 이래도 안 들어온다. 내리고 내려서 최하 마지노선까지 가버린 게 세 달 전인데도 아무도 안 들어와. 그 매장은 살려고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죽으러 들어오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버렸다고.”
“흠. 거기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나가신 분이 분식 장사 하셨었죠?”
“그랬지. 딱 반년 버티고 나갔지.”
“그분 음식은 저도 먹어봤었는데 영 별로였어요. 매장 문제가 아니라 망할 만했던 거예요. 다른 분들도 비슷했을 걸요? 식당 오픈한 분들은 음식 맛이 별로였을 거고, 다른 서비스 업종이나 판매업을 하던 분들은 또 그들만의 문제가 있었을 거고.”
“그럼! 그게 맞지.”
“그런데 한 장소에서만 유독 망해서 나가니 그런 소문이 퍼질 만도 해요.”
“하아아.”
예경천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때 예소린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맛보았던 떡볶이가 떠올랐다.
자신이 맛있다고 무심코 던진 말에 감격해서 울 것처럼 기뻐하던 사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빠. 정말 장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다시 살아날 거라고 생각해요.”
“누가 들어오려 하겠냐고.”
“제가 알아볼까요?”
“소린이 네가?”
“네.”
“됐다, 됐어. 이런 건 이 바닥에서 일하는 업자끼리 알아서 해야지. 소천이한테 맡길 테니 넌 신경 쓰지 말고 애견카페 오픈이나 잘해.”
예소천은 예강천의 아들이자 예씨 가문 장남이었다.
그는 2년 전부터 부동산 일을 배우고 싶다며 사무실에 들어갔다.
예경천은 풀 죽은 얼굴로 무심히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한편, 예소린의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강지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첫 손님을 받고 난 후로 뜨문뜨문 손님들이 들기 시작했다.
강지한이 허공에 떠 있는 숫자를 살폈다.
‘12’.
“열두 명 남았다.”
현재 시간 저녁 7시.
퀘스트 종료 까지 두 시간밖에 남지를 않았다.
강지한은 초조해하며 누적 포인트를 살폈다.
“279.”
기존에 있던 7포인트에서 17명의 손님들에게 만족도 총합 272포인트를 받아 그만큼이나 누적되었다.
퀘스트를 깨야 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하다 보니 레벨 업 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한가할 때 얼른 포인트 투자하자.’
강지한이 어디에 투자를 할지 고민했다.
일단 내일은 더 맛있는 떡볶이와 어묵을 만들어야 하니 두 개 모두 각 50포인트씩 투자해 1레벨을 올렸다.
[떡볶이의 레벨이 4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맛있어 하는 레시피를 익혔습니다.]
[어묵의 레벨이 4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맛있어 하는 레시피를 익혔습니다.]
‘오!’
이전과는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3레벨 때까지만 해도 맛이 한 단계 높아졌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맛있어 하는 레시피를 익혔다고 했다.
강지한이 머릿속에 새로 나타난 레시피를 살폈다.
“헐.”
이건 도저히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소스의 숙성 과정이 이틀이나 걸렸다.
게다가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다양했다.
“표고버섯 가루가 들어가는구나. 설탕 대신 매실청이랑 물엿이 들어가고……. 화학조미료를 최소화했는데 맛이 있을까?”
음식 맛은 자고로 조미료 맛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강지한이었다.
“아니야. 이래서 안 되는 거야, 내가. 우선 이 초딩 입맛부터 레벨 업 시켜야겠다.”
강지한은 혀를 레벨 업 시켰다.
하는 김에 얼굴과 목소리도 레벨 업 했다.
[혀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미각이 한 단계 발달합니다. 음식 맛을 보면 들어가는 재료를 반 이상 알 수 있습니다. 단, 먹어본 재료에 한해서입니다.]
[얼굴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경직된 안면 근육이 부드럽게 풀어집니다. 미소를 보는 손님들의 만족도가 2 올라갑니다.]
[목소리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목소리의 톤이 일정해지고 부드러워 듣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줍니다. 목소리 때문에라도 한 번 더 오고 싶어집니다.]
“좋아. 남은 포인트는 119.”
강지한이 주걱과 국자, 종이컵에 각각 20포인트를 투자했다.
레벨 업 된 세 가지 항목은 고객의 만족도를 2씩 올려주게 되었다.
투자할 만큼 했는데도 59포인트나 남았다.
강지한은 그것까지 투자하려다가 아껴두기로 했다.
집에 들어가서 옥탑방을 레벨 업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 벽에 투자를 해서 외풍이 좀 줄어들었다.
빠르게 집을 포근한 공간으로 만들면 일상이 더 풍족해질 것 같았다.
강지한이 레벨 업 현황을 살폈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얼굴 LV3 만족도+2 (NEXT 50P)
혀 LV3 미각+2 (NEXT 50P)
목소리 LV3 (NEXT 50P)
손 LV2 (NEXT 20P)
[옥탑방]
벽 LV2 (NEXT 20P)
바닥 LV1 (NEXT 5P)
이불 LV1 (NEXT 5P)
TV LV1 (NEXT 5P)
[리어카]
떡볶이 LV4 (NEXT 200P)
어묵 LV4 (NEXT 200P)
주걱 LV3 만족도+2 (NEXT 50P)
국자 LV3 만족도+2 (NEXT 50P)
종이컵 LV3 만족도+2 (NEXT 50P)
누적 포인트: 59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때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 세 명이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강지한이 자신 있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그에 아무 생각 없이 배가 고파 다가왔던 여학생 세 명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그중 가장 붙임성 좋은 여학생이 대뜸 말을 걸었다.
“와~ 아저씨! 목소리랑 미소가 완전 오져요!”
“응? 내, 내가?”
“네! 성우인 줄! 그치?”
“어? 으응.”
“어머나. 얘 부끄러워하는 거 봐라. 꿈 깨! 삼촌뻘이야.”
“내가 뭐랬는데, 지 혼자 난리치고 지랄.”
여학생들은 제들끼리 투닥거리며 까르르 웃었다.
강지한의 미소와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한데 여학생들 못지않게 강지한도 스스로의 목소리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게 내 목소리라니. 감동이다.’
강지한은 속으로 감격하며 종이컵에 어묵국을 퍼 담아 여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자자, 춥지? 어묵국부터 받아요.”
“감사합니다! 호록. 우와. 어묵국 먹어봐. 완전 지린다.”
“호로록. 아~ 맛있어.”
“그치? 그치?”
여학생들이 어묵국에 감탄하더니 어묵을 한 꼬치씩 집어 들었다.
“떡볶이도 먹을 거지? 아저씨! 우리 이 인분만 주세요!”
“삼 인분 같은 이 인분으로 줄까?”
“완전 콜이죠!”
“콜.”
강지한이 기분 좋게 떡볶이를 가득 퍼 담아서 내주었다.
그 양에 여학생들은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고서 떡볶이를 먹었다.
그러더니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킥킥 대고 웃었다.
“와아, 진짜 맛있다.”
“길거리 떡볶이가 이렇게 맛있는 거 첨이에요!”
“나도 나도.”
여학생들은 정신없이 떡볶이를 흡입했다.
그러다 붙임성 좋은 여학생이 강지한에게 미안한 듯 말했다.
“사실 여기 분식 맛없다고 전부터 소문나서 안 먹었었거든요. 근데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이해를 못하겠네요.”
“그랬어? 근데 오늘은 왜 먹으러 왔어?”
“친구 중에 지민이라고 있는데 걔가 어제 먹어봤대요. 할머니가 사와서 먹었는데 제법 맛있길래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라고 알려줬대요.”
“아.”
어제 포장을 해 간 그 할머니인 모양이었다.
“근데 이상하네. 이 맛을 어떻게 제법 맛있다고 표현하지? 완전 맛있는데.”
“걔 혀가 원래 싸구려잖아.”
여학생들은 계속해서 떠들었다.
떡볶이를 쉬지 않고 먹으면서 어떻게 말도 끊이지 않고 하는 건지 강지한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배를 채운 여학생들이 돈을 지불했다.
“아저씨! 우리가 여기 맛있다고 소문 많이 내줄게요!”
“그래, 고맙다! 다음에 올 때는 어묵 하나씩 서비스 줄게!”
“와! 약속이에요!”
좋아하는 여학생들의 머리 위에 만족도가 떠올랐다.
‘21, 26, 24.’
그렇게 극찬을 하면서 먹었는데도 수치가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 다녀간 손님들의 평균치보다는 높았다.
여학생들이 떠나가자 만족도가 강지한에게 흡수되었고 허공에 뜬 카운트는 9로 감소했다.
퀘스트가 끝나기 전까지 1시간 40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