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5화 (5/330)

# 5

Restaurant 4. 퀘스트가 있는 월요일

기분 좋게 리어카를 연 강지한이 레벨 3 떡볶이와 레벨 2 어묵을 만들었다.

장사 준비가 끝나자 어제처럼 메시지가 나타났다.

[Stage 1. 리어카]

[목표: 1000만 원을 모으세요.]

[성공 보상: 작은 매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 제공]

‘꼭 게임하는 것 같네. 그나저나 어묵이랑 떡도 슬슬 사야겠다.’

강지한은 어묵과 떡을 할인마트에서 사곤 했다.

장사가 잘되면 도매업체에서 대량으로 살 텐데 강지한의 입장에서 그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였다.

“오늘은 어제보다 많이 왔으면 좋겠다.”

강지한이 장사를 시작할 때마다 주문처럼 내뱉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사람들은 강지한의 리어카를 본 체 만 체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괜찮아. 첫 끗발이 개 끗발이야.”

강지한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초심자의 배려가 적용됩니다. 장사 중에도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퀘스트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퀘스트는 새로운 스테이지마다 하나씩 주어집니다.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튜토리얼 보정으로 퀘스트의 난이도가 약간 하락합니다.]

“갑자기 무슨 퀘스트?”

[퀘스트-오후 9시까지 30명의 손님을 받으세요.]

강지한은 갑자기 나타난 퀘스트를 보며 눈만 끔뻑거렸다.

“서른 명이나?”

다른 요식업 사장님들에겐 어떨지 모르나 강지한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껏 장사를 하며 가장 많은 손님을 받았던 게 40명 정도였다.

오픈발을 받았을 때 겨우 그 정도였다.

맛없다고 소문이 난 후로는 하루에 20명 받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30명이라니.

“이게 하락한 난이도라고?”

눈앞에 떠 있던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허공에 3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으흠. 서른 명이라.”

몇 년 전 어느 블로거가 기재했던 글을 우연히 봤던 게 떠올랐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의 인터뷰였다.

할머니는 하루 몇만 원 벌이가 힘들다고 했었다.

그마저도 가스값에 재료값에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금 자신의 꼴이 딱 그 짝이었다.

“근데 퀘스트를 완료하면 뭐가 좋은 거야?”

강지한의 혼잣말에 30이라는 숫자 아래에 메시지 한 줄이 더 달렸다.

[퀘스트 보상: 포인트 환전]

“포인트 환전?”

글만 봐서는 어떤 보상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부딪혀 보는 수밖에.

“그나저나 지금 내가 레벨 업 할 수 있는 것들이 몇 포인트씩 투자해야 하더라.”

강지한이 궁금해하자 깔끔하게 정리된 차트가 나타났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얼굴  LV2 만족도+1 (NEXT 20P)

혀   LV2 미각+1  (NEXT 20P)

목소리 LV1     (NEXT 5P)

손   LV1     (NEXT 5P)

[옥탑방]

벽   LV2     (NEXT 20P)

바닥  LV1     (NEXT 5P)

이불  LV1     (NEXT 5P)

TV  LV1     (NEXT 5P)

[리어카]

떡볶이 LV3     (NEXT 50P)

어묵  LV2     (NEXT 20P)

주걱  LV2 만족도+1 (NEXT 20P)

국자  LV2 만족도+1 (NEXT 20P)

종이컵 LV2 만족도+1 (NEXT 20P)

누적 포인트: 0

“오. 이렇게 정리되니까 좋은데. 내가 궁금해하면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거구나. 3레벨부터는 50포인트가 들어가네. 비싸다.”

강지한은 계속해서 이 레벨 업 시스템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점점 더 재미가 붙었다.

“그런데…… 목소리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거였어?”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어제 스마트폰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볼 때 목은 살피지 않았었다.

리스트를 보고서 셀카모드로 목을 비추니 붉은색이었다.

“목소리는 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분명 필요하니까 있는 것이겠지.

강지한이 목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첫 손님이 리어카로 다가왔다.

이십 대 초반의 여자였다.

“어서 오세요~!”

강지한이 활기찬 음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깜짝이야!”

여자가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 죄송해요. 놀라서.”

“아닙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하하.”

강지한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그의 미소를 본 여인이 머리 위에 만족도 1이 나타났다.

그녀는 조심스레 말했다.

“웃는 얼굴이랑 목소리가 딴판이네요.”

“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셔서 크게 소리치니 고막이 따가웠어요.”

“그런가요?”

“아닌가? 말투 때문인가? 헤헤, 잘 모르겠다. 떡볶이 일 인분만 주세요.”

“네!”

떡볶이를 주걱으로 퍼주면서 강지한은 생각했다.

‘괜히 목소리가 레벨 업 목록에 있던 게 아니구나. 이 부분도 관리해야겠다.’

떡볶이를 받은 여인이 이쑤시개로 떡 한 개를 콕 집어 먹었다.

“음~ 맛있다.”

‘마, 맛있대!’

여인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감탄사에 강지한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기가 만든 떡볶이를 손님이 맛있다는 말까지 해가면서 먹는 건 장사 시작하고 처음이었다.

“정말…… 맛있어요?”

주책없이 강지한이 물었다.

“네? 아, 네. 진짜 맛있어요.”

여인은 조금 당황했으나 곧 미소로 말을 받아주었다.

“하아, 감사합니다. 저 장사하면서 맛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요? 충분히 맛있게 하시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입맛이 다른가?”

“이사 오셨나 봐요?”

“네. 온의동 살다가 얼마 전에 거두리로 왔어요.”

“그러시구나.”

온의동과 거두리는 춘천 안에 있는 동네였다.

춘천은 강지한의 고향이었다.

십 대 후반부터 스무 살 초반까지 그는 서울의 친척네서 얹혀살며 눈칫밥을 먹었다.

그러다 스물세 살이 되는 해에, 부모님의 고향인 이곳 춘천으로 독립을 한 것이다.

다행히 춘천은 집값이 쌌다.

눈치 보이는 친척 집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하기에는 좋은 무대였다.

지금 강지한이 몸담고 있는 옥탑방도 보증금 없이 들어왔다.

다른 방들은 전부 보증금을 받았는데, 옥탑방만 특혜를 준 것이다.

외풍이 심해 살기가 워낙 열악해서 사정 봐준 거라는 게 집주인 김숙자의 말이었다.

“근데 진짜 맛있다는 얘기 첨 들어봐요?”

“네.”

“고추장 양념만 풀어서 대충 하는 노점이랑은 많이 다른데.”

“떡볶이에 대해 좀 아시나 봐요?”

“그냥 떡볶이를 많이 좋아해요. 어제는 여기 말고 저쪽에 있는 리어카에서도 먹어봤어요.”

“어떤 게 더 맛있었어요?”

강지한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여기서 자기 말고 리어카에 분식을 파는 사람은 고중만밖에 없었다.

과연 지금의 떡볶이와 고중만이 만든 떡볶이 중 뭐가 더 맛있을지 궁금했다.

여인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여기 거요. 소문만 잘 퍼지면 손님 다 뺏어오겠는데요?”

“이야, 감사합니다! 자, 여기.”

강지한이 컵에다 어묵 국물을 국자로 퍼 담고 어묵 하나를 꽂아서 내줬다.

“서비스입니다!”

“어머, 잘 먹을게요. 제가 또 이런 건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

여인이 배시시 웃었다.

이제 보니까 그 모습이 상당히 예뻤다.

처음에는 긴장하는 바람에 여인의 외모를 제대로 관찰할 겨를이 없었다.

한데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주인집 딸내미 향숙이도 예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어묵을 한입 베어 물더니 국물까지 마시고서는 말했다.

“음. 어묵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네요.”

“그, 그렇죠?”

내심 어묵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했는데 김이 살짝 빠졌다.

‘향숙이도 어묵은 별로라고 했지.’

아무래도 가장 먼저 어묵을 레벨 업 시켜야 할 것 같았다.

하나만 잘하는 것보다 둘 다 잘하는 게 더 좋으니까.

여인은 금세 떡볶이 한 접시와 어묵까지 비웠다.

“얼마예요?”

“전부 서비스 드릴게요!”

“아녜요. 먹었으면 돈을 지불해야죠. 맛없는 걸 먹은 것도 아닌데. 떡볶이 일 인분에…… 2천 원 맞죠?”

“네.”

여인이 지갑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건넸다.

“서비스도 잘 먹었어요. 또 올게요.”

“들어가세요!”

미소 지으며 리어카를 떠나는 여인의 최종 만족도는 무려 37이었다.

‘우와.’

레벨 업 시스템을 이용하고 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높은 점수였다.

강지한은 당장 어묵에 20포인트를 투자했다.

[어묵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맛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레시피를 익혔습니다.]

강지한의 머릿속에 새로운 어묵 국물 레시피가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리어카를 잠시 접어놓고 근처 마트에 가서 필요한 재료를 사왔다.

그리고 당장 기존의 어묵 국물을 버린 뒤, 새로 육수를 만들려다가 남은 17포인트 중 5포인트를 손에 투자했다.

[손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요리를 더 능숙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역시 이거였어.’

투자를 한 김에 지적 받았던 목소리에도 5포인트를 투자했다.

[목소리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편안한 음성은 듣는 이의 기분을 상하는 일이 없게 해줍니다.]

“좋다, 좋아.”

신이 나서 혼잣말을 한 강지한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아. 아. 도레미파솔.”

그의 목소리가 전보다 한결 편해져 있는 게 아닌가?

음성이 달라지거나 목소리가 딴판이 된 건 아니었다.

본인의 목소리가 분명 맞는데, 전과 다른 편안함이 담겨 있었다.

“화아. 장사 음식이랑 집도 과분한데 나라는 인간까지 레벨 업 시켜 주다니. 진짜 대박이다, 대박.”

신난 강지한이 콧노래를 부르며 새로운 어묵 국물 조리에 들어갔다.

그가 무와 파를 썰기 위해 칼을 잡았다.

그런데 그의 손이 평소와 달리 칼을 쥐고 있었다.

“이것 봐라.”

전보다 훨씬 칼을 쥔 느낌이 좋았다.

칼이 손에 착 달라붙는 것 같았다.

강지한은 몰랐지만 지금 그는 정석대로 칼을 쥔 것이었다.

탁탁탁!

칼질도 더욱 섬세하고 경쾌해졌다.

이후의 과정도 전보다 수월했으며 조리시간이 많이 단축됐다.

“됐다.”

완성 된 어묵 육수에 건져두었던 어묵을 다시 담갔다.

허공에 떠 있던 30이라는 숫자는 손님 한 명이 다녀간 뒤 29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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