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4화 (4/330)

# 4

Restaurant 3. 주인집 딸 향숙이

기이한 능력을 얻고 난 다음 날.

강지한은 평소보다 단잠을 잤다.

외풍이 조금 줄어드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욱신거리며 쑤시던 것이 덜했다.

“으다다다다다!”

힘차게 기지개를 켜고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

아무리 도시가스 비용을 절약하려 한다지만 겨울에 찬물로 씻는 것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다.

해서 강지한은 씻을 때만 보일러를 잠깐 돌렸다.

따듯한 물로 씻고 나니 허기가 느껴졌다.

강지한이 어제 남아서 가져온 떡볶이와 어묵을 꺼냈다.

밤에 먹었어야 하는 것들인데 레벨 업 된 떡볶이를 먹느라 남고 말았다.

강지한은 프라이팬에 남은 떡볶이를 붓고 밥통에 남은 밥을 넣어 볶았다.

거기에 참기름을 조금 떨어뜨려 볶음밥을 완성했다.

마지막에 김과 참깨까지 뿌려주면 둘도 없는 별미였다.

“여기에 어묵국까지 곁들이면 최고지.”

강지한이 완성된 볶음밥을 들고 상으로 가려는데 메시지가 나타났다.

[떡볶이 볶음밥을 완성했습니다. 새로운 메뉴로 등록하시겠습니까?]

“엉? 아… 이런 식으로 새로운 메뉴가 등록되는 거구나. 아니. 이건 그냥 내가 먹을 거야. 분식 리어카에서 이런 메뉴를 팔기는 힘들지.”

강지한의 말에 메시지가 사라졌다.

“이거 알면 알수록 새롭네.”

몰랐던 기능을 발견한 강지한이 콧노래를 부르며 뜨끈하게 데운 어묵국과 떡볶이 볶음밥, 그리고 김치를 상에 세팅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가 밥을 한술 뜨려는 그때.

쾅쾅!

“오빠!”

누군가 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강지한은 얼른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 너머에는 예쁘장한 여인이 양 허리에 팔을 얹고 서 있었다.

“오빠, 세 달 치 월세 밀린 거 언제 낼 거예요?”

강지한이 미안한 기색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최대한 빨리 낼게, 향숙아.”

이향숙.

올해 스물한 살인 그녀는 강지한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옥탑방 건물주의 딸이었다.

그녀의 어머님은 건물이 세 개다.

강지한이 사는 3층짜리 연립주택과 작은 상가 건물 하나, 그리고 원룸 건물까지.

나름 은수저 정도는 물고 태어난지라 어려운 것 없이 컸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컸는데 유일하게 공부만 하지 않았다.

대학도 나 몰라라였다.

이향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온라인 쇼핑몰을 차릴 거라며 설레발을 떨었다.

지금은 창업을 위해서 이 옷 저 옷 많이 입어봐야 한다는 핑계로 열심히 쇼핑을 즐기는 중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흙수저를 들고 태어난 강지한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삶을 사는 그녀였다.

“오빠, 우리 엄마가 사람 좋게 봐준다고 너무 마음 놓지 말아요. 세상에 돈 끼어 있는데 백 년 천년 좋은 사람 없어요. 그러다 갑자기 쫓겨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알아, 나도. 어머니께서 힘든 결정 하지 않도록 열심히 벌어서 꼭 밀린 거 전부 낼 거야.”

“일단 한 달 치라도 어떻게든 낼 생각해요. 성의라도 보이는 거랑, 배 째라고 하는 거랑은 천지차이니까.”

“알았다. 하여튼 돈 문제로 얘기하다 보면 네가 나보다 누나 같다니까.”

“다 오빠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이 추운 날 내쫓기면 어디로 갈 거예요? 얼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너야말로 안 춥냐? 이런 날씨에 추리닝 하나만 달랑 입고.”

이향숙은 밖에 나갈 땐 옷부터 장식 하나까지 엄청나게 꾸민다.

그런데 집에 있을 땐 거의 추리닝 차림이었다.

“별로. 장사는 좀 어때요?”

“별로.”

“진짜 이상해. 그렇게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왜 요리 실력이 안 늘지? 오빠 진지하게 다른 길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 년 동안 꼴아 박았으면 할 만큼 했다.

강지한도 그렇게 생각했고, 슬슬 다른 걸 알아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레벨 업! 시스템을 만나 입장이 달라졌다.

“이제는 잘될 거야.”

“아닌데. 오빠 떡볶이 진짜 맛없…… 킁킁! 뭐 먹어요? 맛있는 냄새 나는데?”

“개코네, 개코.”

“나 아침 안 먹었는데, 같이 먹어도 되죠?”

“엄마가 안 차려줬어?”

“어제 친구들이랑 여행 갔어요. 들어갈게요.”

이향숙은 먹을 거 앞에서는 이성을 놓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불도저처럼 달려들었다.

이향숙은 강지한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강지한은 그런 이향숙이 여동생처럼 귀여워서 그냥 두었다.

그러더니 상 앞에 앉아 강지한이 쓰려던 숟가락을 들었다.

“냠~! 오물오물. 음, 이건 괜찮네.”

“맛있어?”

“그냥 먹을 만해요. 떡볶이에 밥 볶은 거예요?”

“응, 어제 장사하다가 남아서.”

“엥? 그 맛없는 떡볶이에 밥 볶았다고 이렇게 맛있어질 리가 없는데.”

“레시피를 좀 바꿨어.”

“올~ 드디어 발전했네요? 어묵도 달라졌나?”

이향숙이 어묵국을 떠먹고는 어묵도 한입 베어 먹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강지한이 숟가락 한 개를 챙겨 이향숙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나쁘지 않다고? 맛있는 게 아니라?”

“맛있다고는 못하겠어요. 그나마 볶음밥에서는 참기름 향도 나고 김가루가 들어가서 짭쪼롬한 게 괜찮은데 어묵국은 그냥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흔한 수준이에요.”

역시 맛에서만큼은 언제나 엄격한 이향숙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입맛은 대중적으로 정확했다.

“흠……. 나는 맛있던데.”

레벨 2가 된 강지한의 입맛에는 제법 괜찮았다.

여전히 그의 미각은 아직 낮아도 한참 낮은 수준이었다.

“뭐, 발전은 있네요. 오물오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볶음밥의 반 이상이 사라져 있었다.

“야야, 이거 내 아침이야.”

“내가 얼마나 먹었다고 그래요. 아, 잘 먹었다. 그럼 나 가볼게요.”

이향숙이 벌떡 일어났다.

가뜩이나 절약에 절약을 해야 하는 판에 아침을 반 이상 빼앗겨 버리니 강지한의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가 나라 잃은 심정으로 숟가락을 드는데 이향숙이 나가려다 말고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내 현관 앞에 놓았다.

“맞다. 이거 우리 엄마가 주래요.”

“응?”

“분식집 쿠폰 20장이에요. 떡볶이 대 자 세트 하나랑 바꿔 먹을 수 있으니까 배고플 때 드세요.”

“우와.”

강지한의 눈이 반짝 빛났다.

볶음밥을 선물했더니 떡볶이 대짜 세트가 들어왔다.

“향숙아, 고마워! 어머니한테도 감사하다고 꼭 전해드려!”

“잘 챙겨 먹고 건강해야 돈 열심히 벌어서 방세 내죠. 갈게요.”

이향숙이 문을 탕! 닫았다.

강지한은 얼른 쿠폰을 챙기고서 남은 볶음밥과 어묵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그래도 안 먹은 것보다는 낫네.”

배를 탁탁 두드린 강지한이 책상 위에 올려둔 쿠폰을 보다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이향숙의 어머니 김숙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여행 가셨다면서요? 알차고 재미있게 보내다 오세요! 그리고 쿠폰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이향숙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직접 얘기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띠링-!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돌아왔다.

-지한 총각~ 나 여행 간 거 향숙이한테 들었구나? 잘 놀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그런데 무슨 쿠폰?

“어라?”

김숙자는 쿠폰에 대해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말인즉.

“향숙이가? 왜?”

잠시 고민하던 강지한이 다시 답장을 보냈다.

-아무튼 늘 감사드립니다! 월세는 곧 전부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요즘 점점 장사가 잘되고 있어요!

-지한 총각. 나는 총각한테 월세 받아서 부자 되려고 방 준거 아니야. 더 밀려도 되니까 형편 될 때 천천히 내요.

-진짜 늘 죄송하고 감사해요.

-됐어 됐어. 아들 같아서 그래요, 내가. 돌아가면 봐요~

강지한이 김숙자의 문자를 보고서 피식 웃었다.

“슬하에 향숙이밖에 없으시면서.”

김숙자는 강지한만 보면 입버릇처럼 자기 아들 같다고 말하곤 했다.

“자! 그럼 출근해 보자!”

오늘은 장사를 하러 나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손님들의 만족도를 얻으면 레벨 업! 하는 리어카가 생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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