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Restaurant 2. 집에서도 레벨 업!
‘조금 더 모아서 떡볶이에 투자하자!’
음식 장사의 기본은 무조건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지한은 레벨 업 된 혀로 자신의 기존 떡볶이를 먹어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맛이 이 모양이니 손님들이 오지 않을 만도 했다.
해서 오늘은 만들어둔 떡볶이를 최대한 팔고 내일부터는 한 단계 더 레벨 업 된 떡볶이를 팔 셈이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팔면 본인의 능력은 물론이고 음식의 맛까지 레벨 업 될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음식은 물론 자신의 미소와 주걱, 국자, 종이컵까지 레벨 업 되는 덕에 드문드문 오는 손님들만으로도 25포인트 정도는 채울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접자.’
어차피 해도 졌으니 더 올 손님은 없을 터였다.
강지한은 20포인트를 떡볶이에 투자했다.
[떡볶이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맛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레시피를 익혔습니다.]
‘됐다.’
강지한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더 맛있는 떡볶이를 팔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가 장사를 접고 남은 음식들을 싸는데 누군가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 지한이.”
담배 하나를 꼬나물고 능글맞게 웃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
이 지역에서 강지한처럼 리어카 장사를 하고 있는 고중만이었다.
올해 마흔세 살로 상술과 말발이 좋았다.
그 덕분에 리어카에서 파는 분식들의 맛은 평타 정도였음에도 장사가 잘됐다.
그는 언제나 강지한보다 퇴근이 빨랐다.
그날 가져온 분식을 빠르게 팔기 때문이다.
“중만 아저씨. 장사 잘됐어요?”
“나야 나. 고중만이. 내가 혀 한 번 털면 안 넘어오는 손님이 없다는 거 알잖냐.”
“하하, 알죠.”
“오늘도 매진이야.”
고중만의 시선이 리어카 위에 한가득 포장된 떡볶이와 어묵으로 향했다.
“하아, 참. 깝깝하네. 그거 오늘도 가져가서 먹으려고?”
“아깝잖아요. 어차피 일하는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까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야죠.”
“지겹지도 않아?”
“제 처지에 그런 걸 따지겠어요.”
“봐봐. 어묵은 다음 날 한 번 더 담가서 팔아도 돼. 아무도 몰라. 집에 가져가서 그대로 말렸다가 내일 팔아. 떡볶이는…… 그거 반만 먹고 남은 건 냉장고에 뒀다가 내일 떡볶이 만들 때 섞어.”
“에이, 어떻게 그래요.”
강지한이 도리질을 했다.
아무리 장사가 안 되더라도 남은 음식을 재활용하는 법은 없는 그였다.
음식 장사는 맛도 중요하지만 청결과 신용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강지한의 지론이었다.
물론 이 생활도 일 년이나 지속되다 보니 마음 속 한편에서 악마의 유혹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무엇보다 요즘은 음식을 조금만 만들기 때문에 많이 남는 것도 아니었다.
강지한이 뚝심 있게 음식을 챙기자 고중만이 혀를 찼다.
“쯧쯧, 젊은 사람이 선배가 연륜으로 충고해 주면 들을 줄도 알아야지. 딱딱하면 부러져, 이 사람아.”
강지한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역시 텔레비전에 나오는 맛집 떡볶이의 비법을 따라해 보고, 여기저기 찾아다녀가며 맛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떡볶이 맛은 나아질 줄을 몰랐다.
강지한의 미각 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조금씩 나아질 겁니다!”
“그 소리 일 년 전부터 꾸준히 들었어.”
사실 고중만은 강지한이 처음 리어카를 끌고 나왔을 때 적잖이 경계했다.
줄곧 혼자서 이 지역 상권을 차지하고 있던 고중만이었으니 탐탁지 않은 게 당연했다.
혹여라도 나보다 장사를 잘하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하나 그 걱정은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이건 뭐 생판 장사 초보에다 음식 맛도 엉망이었던 것이다.
안심이 되니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강지한에게 와 선배랍시고 이런저런 충고를 해대곤 했다.
강지한은 그런 고중만이 좀 버거웠지만 그냥 잠자코 들어주었다.
장사를 끝내고 나면 그와 싸울 힘도 없을 만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이다.
“장사치가 능글맞지 못하면 음식 맛이라도 좋아야지. 이건 뭐 내가 맛없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줘도. 아니 진짜 노력하는 거 맞아? 어떻게 매번 새롭게 만들었다는 떡볶이가 일괄적으로 맛이 없어?”
고중만이 연신 귀 아픈 소리를 하며 강지한이 싸고 있던 떡볶이 하나를 집어 먹었다.
당연히 맛이 엉망이겠지.
하지만 그게 고중만에게는 꿀맛이었다.
상대가 음식을 맛없게 하면 손님들은 계속 자신에게만 몰릴 테니까.
“에이그. 맛이 영…….”
떡볶이를 씹던 고중만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어라?’
강지한이 그런 고중만에게 물었다.
“맛이 왜요?”
“어? 아니 맛이 영 아니라고. 글렀다, 글렀어. 그냥 이 참에 다른 일 알아보는 게 어때?”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죠.”
“그러다 자기 손가락만 썰리는 수가 있어.”
“그럴 일 없게 할 거예요.”
“쯧쯧. 안타깝다. 안타까워.”
고중만은 도리질을 하며 뒤돌아서 떠났다.
“휘유, 받아주기도 점점 힘들어지네.”
강지한은 리어카 정리를 마저 하고서 귀가했다.
* *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장을 봐온 강지한이 싱크대 앞에 도마를 놓고 섰다.
“후우, 그럼 레벨 3의 떡볶이 맛은 어떤지 한 번 볼까?”
강지한이 머릿속 떡볶이 레시피를 떠올린 뒤 조리에 들어가고자 하는데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환경이 매장에서 저택으로 바뀌었습니다. 저택에 맞는 레벨 업 시스템을 적용합니다.]
“어? 이 옥탑방도 레벨 업이 가능해?”
[적용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투자 가능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포인트를 어디에 투자하시겠습니까?]
[투자 가능한 곳은 파란색으로 표시됩니다.]
강지한이 집 안의 곳곳을 살폈다.
우선 벽 전부가 통으로 파란색이었다.
“벽을 파란색 벽지로 발라놓은 것 같네. 어디 보자 또…….”
바닥에 언제나 깔려 있는 이불과 구식 텔레비전, 방바닥, 그리고 강지한의 손까지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포인트엔 5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레벨 업 비용이 5라는 것이겠지. 하하, 설마 집까지 업그레이드가 될 줄이야. 근데 손은 리어카에서 붉게 빛나더니 여기서는 파랗게 빛나네? 하긴 내 몸이니까 어디서든 레벨 업이 가능한 거겠지. 혀도?”
강지한이 혀를 쑥 내밀어 거울에 비춰봤다.
예상대로 혀까지 파란색이었다.
“후후.”
강지한은 신이 났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던 이 작은 공간이 포근한 보금자리로 변신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감 덕분이었다.
“그럼 처음으로 레벨 업 시킬 건…… 벽.”
강지한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벽을 선택했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벽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외풍을 조금 더 막아줍니다.]
“역시!”
강지한이 겨울 동안 가장 버티기 힘든 것이 바로 외풍이었다.
난방을 강하게 틀면 되지만 그랬다간 거지꼴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늘 옷을 몇 개씩 껴입고도 덜덜 떨면서 잠들어야 했다.
그런데 벽의 레벨이 올라가며 외관상으로는 바뀐 게 없었으나 소름끼치게 흘러 들어오던 외풍이 제법 약해졌다.
“오, 이 정도면 떨지는 않겠다.”
여전히 추웠지만 평소처럼 껴입고 자면 더욱 쾌적한 수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투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남아 있지 않게 되자 파란색이 전부 사라졌다.
“내일은 더 벌어서 여기저기 투자해야겠다.”
강지한은 만족해하며 다시 싱크대로 시선을 돌렸다.
싱크대 위에는 레벨 업 된 떡볶이 조리법에 필요한 재료들이 쌓여 있었다.
강지한이 양파와 배를 들고서 중얼거렸다.
“설마 떡볶이 양념장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건 줄은 몰랐네. 게다가 양파랑 배가 들어간다니.”
여태 그는 그냥 고추장만 때려 부으면 끝나는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떡볶이 맛으로 소문난 맛 집들은 그들만의 비밀 소스가 존재했다.
[레벨 3 떡볶이를 만드시겠습니까?]
“응.”
강지한이 수락하자 그의 손이 또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강지한이 행동을 멈추려 하자, 남에게 빼앗긴 것 같았던 몸이 강지한의 뜻대로 동작을 멈췄다.
“내 맘대로 멈출 수 있구나.”
강지한은 다시 조리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그러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남이 자신의 몸을 조종해서 요리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손끝에 닿는 느낌들은 강지한에게 생생히 전해졌다.
탁탁탁탁탁탁!
그는 20분째 양파와 배를 다지고 있었다.
떡볶이 레시피를 보면 소스를 만들기 위해 다진 양파와 다진 배가 들어가야 했다.
거의 즙을 내듯이 다져서 넣어야 했는데, 믹서기를 사오지 않아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겨우 양파와 배를 다지고 이번엔 떡볶이에 들어갈 어묵과 파를 썰었다.
한데 레시피는 발전하는 데 반해 칼질은 엉망이었다.
그냥 집에서 대충 칼을 잡고 써는 모양새로 기본도 되어 있지 않았다.
“혹시… 요리 스킬이 늘려면 손을 레벨 업해야 하는 건가?”
아무래도 손이 파랗게 빛났던 이유가 그게 아닐까 싶었다.
칼질은 물론 요리 스킬 자체가 형편없으니 요리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일은 들어오면서 믹서기 좀 사야지. 지출 크겠네.”
어찌 되었든 떡볶이는 완성이 됐다.
강지한이 완성된 떡볶이를 맛봤다.
“쩝쩝. 오!”
낮에 팔았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전에는 없던 깊은 맛이 느껴졌다.
“이거 먹히겠다.”
분명히 손님들이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바로 소문이었다.
강지한의 분식은 맛없다는 소문이 동네 전체로 퍼져 버린 상황이었다.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해보자.”
오늘처럼 드문드문 오는 손님들 몇 명이 먹어보고 맛있으면 좋은 소문이 퍼질 테니.
“힘내자!”
강지한이 스스로를 다독이고서 떡볶이에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