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롤로그
매년 겨울은 점점 더 추워져만 갔다.
아니, 강지한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후우. 후우.”
오늘도 아파트 근처 모퉁이 도로변에 나온 강지한은 부지런히 장사 준비를 했다.
얼은 손을 녹여가며 고정시켜 놓은 리어카를 열었다.
그러자 속이 깊은 통과 넓은 철판이 나타났다.
강지한은 속이 깊은 통에 식수를 붓고 불을 올려 어묵다시를 풀었다.
사실 맛은 어묵다시가 다 내지만 장식으로 보는 맛이라도 있게끔 미리 가져온 큼직한 무 한 덩이를 투하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미리 꽂아온 어묵을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옆에 철판에서 물에 고추장과 미원, 설탕, 파, 어묵을 넣고 끓이다가 밀떡을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졸여 떡볶이를 만들었다.
떡볶이와 어묵.
이것이 그가 리어카에서 파는 메뉴였다.
올해 스물여덟인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열심히 면접을 보고 다니는 취준생이었다.
취업 전선을 뛰는 동안 편의점 야간 타임을 뛰며 달에 120 정도의 돈을 벌었다.
그것으로 자취방 월세를 내고 핸드폰 비를 지불하고 생활비를 하고 술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여자도 만나면서 살아왔다.
언젠가는 취업이 되겠지.
저축은 그때부터 해도 늦지 않지.
그런 생각으로 살다 보니 어느새 서른을 3년 남겨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나이만 먹었지, 이렇다 할 스펙이 전무한 강지한을 받아주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강지한은 취업에 의존하기보단 스스로 일어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투자금이 가장 적게 드는 리어카 장사였다.
몇 달 동안 안 쓰고 안 먹고 최대한 모아 분식을 팔 수 있게 세팅된 리어카를 장만했다.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월세도 아끼기 위해서 달에 36만 원 하는 원룸에서 나와 15만 원 하는 옥탑방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알바를 때려치우고 당장 리어카 장사에 매진했다.
계절이 겨울인 만큼 우선은 어묵과 떡볶이를 팔아보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자취 생활을 하면서 분식 만드는 실력은 제법 늘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가 길거리에서 분식을 사먹어 봐도 크게 특별한 것이 없는 맛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의 손에서 탄생한 건 떡볶이가 전부였다.
어묵 국물 맛은 어묵다시가 다 했다.
호기롭게 장사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나가 겨울이 다시 돌아왔다.
예상과 달리 매출은 매일매일 바닥을 기고 있었다.
게다가 민원이 들어가는 바람에 자주 자리를 옮겨 다녀야 했다.
“하아.”
오늘도 공쳤다.
손님에게 판 것보다 강지한이 주워 먹은 게 더 많았다.
강지한은 남은 음식을 싸서 소주 두 병을 사들고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겨울엔 외풍이 심해 옷을 겹겹이 입고 자야 했지만 그래도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 있단 게 다행이었다.
다 식어버린 어묵과 떡볶이를 데우지도 않고 그냥 먹었다.
어차피 데워 봤자 외풍으로 금세 식는다.
“꿀꺽! 캬. 오늘 잘 들어가네.”
안주는 반 이상이 남았는데 소주 두 병을 전부 비웠다.
그래도 취기가 확 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추위 때문인 것 같았다.
이놈의 옥탑방은 난방 효율이 극악이라 한 번 돌리려면 큰 돈 쓸 가공을 해야 했다.
“그냥 소주를 더 마시자.”
3천 원만 투자해서 소주 두 병을 더 사오면 취기 때문에 추운 줄도 모르고서 잠들 수 있을 터였다.
강지한이 터덜터덜 밖으로 나가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얼마까지만 해도 그가 일하던 곳이었다.
“오빠 왔어요?”
강지한 대신 야간 타임을 하게 된 이리나가 알은체를 했다.
“일할 만하니?”
“똑같죠. 취객 때문에 힘들어요.”
“야간은 주간 보다 험해. 여자 혼자 하기에는 위험하다. 어지간하면 다시 주간으로 바꿔 달라 그래.”
“그만큼 더 벌 수 있잖아요.”
“으이그.”
강지한이 소주 두 병을 꺼내 계산을 했다.
“술 적당히 마셔요, 오빠.”
이리나의 걱정에 강지한은 손만 흔들어 보이고서 편의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취기가 갑자기 몰려왔다.
술을 워낙 빨리 마신 데다 따뜻한 편의점에 들어갔더니 알콜이 확 퍼져 버린 모양이었다.
어질어질한 시야를 겨우 바로잡아 가며 귀가하는데 저 앞 고물이 쌓여 있는 곳에 누가 버린 건지 모를 식칼 하나가 보였다.
강지한이 그것을 들어 날을 살폈다.
취기 때문에 시야가 흔들려 무딘지 날카로운지 판단이 어려웠다.
슬쩍 손으로 날을 쓸었는데, 울퉁불퉁했다.
“못쓰겠네.”
괜찮으면 가져가려 했다.
강지한에겐 지금 무엇이든 아쉬웠으니까.
입맛을 쩝 다시며 날에서 손을 떼는데, 손가락 끝이 따끔했다.
“아야!”
잘 벼려지지도 않은 식칼에 손을 벤 것이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강지한이 식칼을 던져 버리고서 잰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고물 위에 널브러진 식칼의 날에 강지한의 피가 묻어 흘렀다.
그러자 날에서 은은한 푸른빛과 붉은빛이 일었다.
이윽고 식칼은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