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그 끝에. (2) >
내가 다가서자 어머니는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목이 메어서, 가슴이 벅차서,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께서 나에 대해 얼마만큼 아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나뭇잎을 울렸다.
어머니의 길고 고운 머릿결이 바람의 결을 따라 흘렀다.
"저기······?“
결국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차마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무릎이 후들거려 다리의 난간을 붙잡아야만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셨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
어머니가 물으신다.
그러니 대답해야 한다.
목이 메었지만, 성대를 한계까지 쥐어짜냈다.
"······아름다우시네요.“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더 길게, 조금 더 자세히, 나의 진심을 담아서.
그러나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음절 음절을 이을때마다 목구멍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어찌 말을 이을 수 있겠는가.
그런 내 말을 조금 이상하게 오해한 듯, 어머니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셨다.
"아하하······ 고마운 말씀이시지만, 저, 결혼했어요.“
"······아쉽네.“
한 마디를 겨우 쥐어짜내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신음을 토해내며 눈가를 닦았다.
어머니는 그제서야 조금 걱정 어린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저, 그렇게 슬퍼하지 않으셔도······.“
이러고 있어선 안 된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잊혀지지 않게, 당신의 구석구석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자애로운 음성, 고운 얼굴, 흐드러지는 머리카락······ 모두 내 머릿속에, 심장 속에 깊게 담아두어야 한단 말이다······
"슬픈게 아니라······ 기뻐서요."
순간 어디선가의 수풀이 부스스- 바스락거렸다. 어머니는 그쪽으로 시선을 힐끗 돌렸다. 나는 그 일련의 단서들이 무슨 의미인지, 절실할 정도로 알고 있었다.
"아 그럼······ 우리 조금만 같이 있을까요?“
그저 조금이라도 생을 연장하기 위해, 곧 도래할 살수들에게서 시간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하셨다.
다만 그 웃음 속에는 걱정과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을 따름이다.
"······왜요."
짐짓 퉁명스레 대답했다. 웃으면 눈물이 흘를것 같아서.
어머니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답해주었다.
"제 남편을 닮으셔서요.“
그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뇨. 죽었어요. 임무하다가."
가능하다면 아버지의 얼굴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그를, 이제와서 본다 한들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기어코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을 보자, 나는 관성처럼 말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와.. 진짜네."
"그렇죠? 정말 닮았죠?"
눈물을 참느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충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러게요······ 못된 남자죠. 저랑 아들만 남겨두고.“
아들, 아들, 아들.
단 두 글자가, 내 귓전에는 그 어떤 새의 지저귐보다도 아름답게 메아리쳤다.
"못 생기다니욧! 얼마나 예쁜데요. 영특하고, 잘생기고, 애교많고······ 남편을 꼭닮았어요.“
정말, 정말로 그렇네요.
어머니는 웃었다.
"그렇죠?"
그러나 어머니의 웃음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따라서, 이별을 해야만 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이만,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떠나기 싫었다.
내가 가면 당신은 죽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역시 그 사실조차도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장 뛰어가서, 저 수풀에 숨어 살기를 뿜어내는 놈을 찢어죽여야 할까.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남았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말하면 눈물이 흐르겠지.
그렇다면, 그냥 쏟아내버리자.
"초면에 죄송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 * *
그날 이후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
잠이 오질 않았다.
하도 많이 잤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 속에 고이 담은 당신의 얼굴과 음성을 자는 사이에 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 때문일까.
어찌되었든 고약한 불면증에 걸려버려, 깊은 심해 속의 밑바닥을 향해 침잠하며 시간을 보냈다. 레비아탄은 깊은 바다에 있을수록 성장속도가 빨라지기에, 고독하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시 10년이 흘러 1999년이 되었다.
퀭한 눈의 나는 해야할 일이 있어 릴리아를 찾아갔다.
50년 동안 지도자 노릇을 해온 릴리아는 역시 온화하고 여유로웠으며 또 침착하게 변화하여 있었다.
"······책임질 사람이 많아지니, 세진 님 말대로 이렇게 되었네요.“
릴리아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니 일정 부분의 여유는 되찾을 수 있구나.
"헌데 이곳은 어인 일로 찾아오신건가요?“
말 없이, 미리 찢어두었던 레비아탄의 비늘 두 장을 건네주었다. 릴리아는 그걸 받아들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아?"
"그래. 일기장에 아마 다 적혀있었을 게다. 하나는 네가 갖고 있다가 다시 나에게주고, 다른 하나는 10년 뒤 엘 라스에게 전해주거라.“
엘 라스는 이 비늘을 매개로 성체 레비아탄을 한강변에 소환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세진은 레비아탄으로 변하는 능력을 얻게 되겠지.
"근데, 같은 인물이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공존할 수 있는 건가요?“
"······아마 안 될 게다."
세계의 억지력은 무시할 종류가 아니다.
'같은 존재'가 '모종의 이유'로 '같은 세계'에 존재할 수는, '있다'. 오류는 발견되기전까지 오류가 아닌 법이니까.
하지만 같은 존재가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면, 오직 강한 존재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상관 없어. 그 당시의 나는 아직 레비아탄이 아닐 테니.“
그러나 현재의 김세진은 레비아탄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세계조차 그 틈, 오류를 눈치채지 못할 터.
"근데, 처음부터 이 비늘을 많이 뜯어서 주면 안 되는 건가요? 쑥쑥 성장하실텐데."
"두 개가 한계다. 그것도 적정한 텀을 두고서 두 번. 그 이상 흡수하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동화되어버려 둘 다 없어지게 되겠지."
"아······ 그렇군요. 세진 씨 말대로 할 게요.“
"그래.“
나는 흡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
유세정이 최연소 기사서임을 받았다는 뉴스가 전파를 타고 흘렀다. 뒤이어 고블린의 도움으로 죽다 살아난 김유린이 칠흑기사단 내부 알력다툼을 고발하였으며, 고위기사로 정식 승격되었다. 또한 김세진은 알아서 척척척 움직여 '고블린의 선의'라는 포션을 세간에 선보였다.
심해에서, 오직 눈과 귀라는 감각 만을 극도로 발달시켜 모든 소식을 보고 들었다. 레비아탄은 본인의 노화조차 막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늙는다는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곧 도래할 '그 날'을 기다리며 뜬 눈으로 기다린지 20년째.
많은 고민과 번뇌가 똬리를 틀었다.
과연 나라는 사람이 놈들을 막아낼 수 있을는지.
그리고 만약 막아냈다 하더라도, 내 소중한 사람들과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는지.
세월을 흘려보내며 육체적인 나이로 따지면 바토리도 우습고, 정신적인 나이로 따지더라도 세정이는 아이에 불과하다. 그녀가 아무리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한 아낙네라 한들, 내가 다시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심해 속을 침잠하며, 그런 생각들을 꽤 오랜 세월동안 했다.
그러다 결국 바다가 나인지 내가 바다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을 즈음, 도저히 견디기 버거워 뭍으로 뛰쳐나왔다.
소박하고 자그마한 도시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감각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일까, 그들의 모든 생각과 희로애락이 '읽혀졌다'.
악수를 잘못하여 사람 손을 으스러트리기도 하였다. 너무 오래 바다에만 머물러 힘조절이 낯설어진 탓이다.
만약 기사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마나 혹은 특성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힘을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이건 육체 자체, 인간이 아닌 존재의 힘이기에······
그래서 차마 그들 틈바구니 속에 끼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심해에 빠져들어, 단지 귀와 눈 만으로 세계를 관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환의 주문이 내 의식을 파고들었다.
소환에 응하여 눈을 뜨니 한강변이었다.
저 멀리 김세진과 유세정과 김유린이 함께 있을 레스토랑이 보였다.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래서는 안 되지.
크어어어-
즉시 포효를 내질렀다.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이 울려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유린이 레스토랑의 창문을 깨부수며 뛰쳐나왔다.
그녀는 내 예상대로 가타부타 정수리에 검부터 박아넣었다.
그녀의 특성, '목적성'이 느껴졌다.
전혀 안 아팠다.
역시 과거 김유린이 개성으로 레비아탄을 잠재울 수 있었던 이유는, '소환된 레비아탄은 일신의 위력이 경감한다'는 허술한 인과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공격에 기절하고 싶다는 레비아탄의 '자의'로 인하여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 뿐.
정수리를 얻어맞은 나는 기쁘게 기절하였고, 아주 오랜만에, 몹시 짧은 단잠을 취하게 되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 눈을 뜨니, 어둠이라 불러도 무방할 짙은 남색이 나를 맞이하였다.
이곳은 심해, 평생토록 답답하게 있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이 지독한 외로움도, 사무친 그리움도.
이제는 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기다림이 끝난 뒤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 * *
균열이 크게 일렁이는 소리.
전신이 환희로 전율했다.
이질적인 무엇인가들이 바다를 침범한다.
눈을 뜨고서 광소를 토해냈다.
이제 드디어 영겁의 시간에서 해방되어 내 시간을 찾아야 할 때.
심장의 떨림이 척추를 열광시키는 순간.
눈꺼풀 위로 어떠한 장면이 영사되듯 떠올랐다.
-다녀올게.
오래전, 시간 축을 떠나는 내 모습이었다.
너는 그렇게 떠나며, 이토록 기나긴 세월 동안 지독한 외로움에 사무쳐야 했는지 알았느냐.
허나 나는 그 무엇도 모른 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훌쩍 떠나버렸다.
이후 바토리는 약속대로 인간과 함께 놈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통로에서부터 솟구친 검은 점액들은 결국 지반을 뚫고 위로 또 위로 솟아올랐다. 마침내 지상에 피어오른 그 고고한 존재를 감히 무어라 형용할 수 있을까. 역겨운 개새끼들? 아니, 그보다는 더욱 저열한 표현이 필요하다.
한데 참 다행이게도, 존재는 아직 피막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 하루를 지새웠다.
다음 날, 점액이 증발하며 존재의 한쪽 팔이 드러났다.
흑색 피부, 그 속에 비치는 청색의 혈.
육체의 자유로움에 고취된 존재가 손을 휘두른다. 거창할 것 없이, 놈과 대치하고있던 기사와 군대의 절반이상이 궤멸되었다.
그러나 존재는 그 이상의 일은 벌이지는 않았다.
존재는 기껏 마련된 음식을 제 손으로 내팽개치고, 바닥에 나뒹구는 파편을 먹는 저능이 아니기에.
그건 확실한 '오만'이었다.
하루가 더 흘렀다. 이번에는 오른쪽 팔을 가리던 점액이 개였다.
그러나 놈은 이번에도 아무런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점액 속에 가려진 낯짝은, 아마 간교한 미소를 짓고 있겠지.
허나, 이번에는 나 또한 그런 놈을 올려다보며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놈은 자신의 오만과 교만과 자만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마침내, 다음 날.
놈의 두 다리가 자유를 얻은 그 때.
고대하고 고대하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
[레비아탄이 성장을 완료했습니다.]
[조건 완료- '억겁의 세월을 인내하여, 이무기가 용이 되듯.']
[창해의 용, 바하무트(Baham?t)로 진화합니다.]
[조건 완료 -'가이아의 부탁']
[스킬 [???]가 해금되어 고유권능 '신격'으로 격상됩니다.]
===
이제, 그 억겁의 세월을 지나 드디어.
출정(出征)의 때가 다가온 것이다.
< 50. 그 끝에. (2) > 끝
ⓒ 지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