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62화 (162/174)

< 47. 마인 (3) >

"오, 맛있네요. 되게 신기합니다.“

로스한델은 에너지 바를 우걱우걱 씹으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불과 5분전에먹기 싫다며 땡강부리던 뱀파이어는 아마 다른 차원의 사람인 듯했다.

"수혈팩보다 맛있어?“

이혜린이 동그래진 눈으로 로스한델을 바라보았다.

"일단 훨씬 쌉니다."

여태 그는 수혈팩을 직접 구매하여 ?물론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식량으로 일용해왔다. 헌데 그 가격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루 5팩씩, 한 달 식비가 무려 1000만원에 근접할 정도였으니······.

"근데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맛이라 되게 신선하고 맛있지만, 이거만 먹다 보면 질릴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게 그 삼겹살이란 겁니까?“

"응. 내가 먹어보니 비슷하더라. 근데 너, 아예 평범한 음식은 못 먹는거야?“

"예. 먹으면 소화를 못해서 죽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고 목구멍에 그대로 남아있어, 쌓이고 쌓이다 질식사를 하게 된다.

이혜린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죽기까지 해?“

"그럼요.“

"······어우.“

혜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먹는 것이야 말로 평생 지속가능한 인생의 즐거움이라 여기는 그녀에겐 실로 유감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때. 그 둘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살짝 불편하게 바라보던 주지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이 에너지 바, 군이나 기사단 쪽에 상용화하면 엄청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세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 예. 그런 의견도 있었는데, 생각 중입니다.“

TM의 최고급 아티펙트와 빛나는 인력을 총동원하여 발명한 이 에너지 바의 가격은 '뱀파이어 한정' 개당 6000원 수준이다. 헌데 하루 세끼는 비싸지 않게 챙겨먹게하기 위해 일부러 낮게 책정한 것이라, 투자한 금액에 비하면 이윤이 제로에 가깝다.

"근데 만약 민간에 팔게 되더라도 뱀파이어를 대상으로 한 것 보다는 훨씬 비쌀겁니다."

마탑의 마법사들을 풀가동 하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역시 마법사인지라 인건비가 값비싼 건 어쩔 수 없다.

공장근무 100시간을 충족하면 방배동 마기서 No.1~No10 중 한 권을 대기 없이빌려주는 식으로 자발적인 혹사를 이끌어내고는 있지만, 최하 연봉선이 1억을 가벼이 넘기는 럭셔리 직업군이 마법사이기에.

주지혁이 에너지바를 탐스럽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얼마 정도면 이문이 남을까요? 저희 새벽에서는 얼마가 됐든 살 것 같습니다. 장기 레이드에는 공복도 큰 적이니까요.“

"······흠. 그건 한성 씨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아마 개당 5만원? 그 이상 가지 않을까요.“

"오. 그렇다면 저는 사겠습니다. 부하들 몫까지요.“

부하. 아닌 게 아니라 주지혁은 새벽의 수석기사로 승격하면서 '팀장'이 되었다. 자연스레 부하도 열댓명 이상 생겼고, 그러니만큼 자부심과 책임감도 전례없이 출중해졌다.

김세진은 그런 그를 보며 환히 웃었다.

"주지혁 씨 부하는 상사 잘 만나서 좋겠네요."

주지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이혜린은 슬며시 얼굴을 붉힌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썸만 죽어라 타는 두 사람의 그 모습에, 김세진의 속은 조금 많이 답답해졌다.

*

에너지바의 한 달 평균 생산량은 60만개에 달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뱀파이어가 20만 남짓하다는 걸 생각하면, 하루 세끼는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에너지 바를 거부하는 강경한 뱀파이어들은 있기 마련이었고, 김세진은 국내외 뱀파이어들에게 모두 공급하고서 남은 에너지 바를 처분하기 위해 기사단에게의사를 물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새벽기사단과 칠흑기사단이 소속 기사들의 복지를 위해 각각 2만개씩 발주했다. 또한 그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기사단들도 앞 다투어 TM의 창구를 찾아왔다.

에너지바의 가격은 개당 7만원.

이윤이 남지 않을 것 같던 장사는, 그렇게 어느정도의 수익은 내게 되었다.

한편, 이 에너지바의 발명으로 인해 뱀파이어 사회에 균열이 생겼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 사회를 배척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 해결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가장 중요한 뱀파이어, 바토리에게서는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바토리 쪽에서 연락은 없죠?“

더 몬스터의 모든 사안이 결정되는 지하의 회의실.

김세진이 김선호에게 물었다.

"예. 그저 로스한델을 시켜 엘 라스의 지하기지 좌표가 적힌 지도를 하나 건네주었을 뿐입니다.“

"흐음······. 근데 바토리의 인원이 정확히 몇 정도 되죠?‘

"한국에 거주하는 건 2천, 세계에 흩어져있는 방계까지 합치면 일만은 넘습니다."

"예상 외로 많네요?“

김세진은 살짝 놀랐다. 활동하는 인원이 얼마 없어서 적을 줄 알았는데.

"나머지는요?"

"엘 라스는 3만이고······.“

"저희는 5만이에요. 2만은 외국에 있지만, 도시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에 속속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대답은 소파 한 켠에 앉아있던 릴리아가 대신했다. 과연 노스페라투. 어쩐지 지하도시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더라.

김선호가 그런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예. 맞습니다. 나머지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뱀파이어들, 그리고 수감자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렇군요. ······아 맞다 릴리아 씨, 노스페라투 성명 언제 낸다고 하셨죠?“

세진이 묻자 릴리아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일주일 뒤예요. 참석, 해주실 거죠?“

노스페라투는 민주적인 회의를 통해 이 에너지바를 주식으로 삼고, 사회와 더불어 살겠다는 성명을 낼 각오를 다졌다.

또한 자신들만 보기에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지하도시를 민간에 개방하고-물론 고블린의 거주지는 다른곳으로 옮기고-, 그로 인한 관광수입을 통해 자생적인 뱀파이어 사회를 만들 계획이라고.

"예. 당연하죠."

김세진은 듬직하게 대답했다. 때마침 업무를 마친 김유린과 이혜린, 주지혁을 비롯한 기사들이 길드 사옥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 그럼 이제 슬슬 회의 시작합시다. 마인을 어떻게 솎아낼 지.“

*

새까만 베일에 가리운 듯 컴컴한 방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광원이 있었다. 한동안 바토리의 심심풀이를 도와준 고마운 상자, 'TV'였다.

그리고 오늘. 그리고 어제도. 또 이틀 전에도.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에서는, 'TM사가 뱀파이어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발명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토리는 그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에너지바가 만들어지는 공정과 어떻게 뱀파이어들이 섭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원리. 심지어 현재 수감중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까지 . 하나같이 인간과 뱀파이어의 화해가 머지 않았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이 식량은 세계로 뻗어져나갈 것입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서.

그 멘트를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났다. 그럼에도 바토리는 한참동안 멍하니 TV를 바라보았다.

5분, 10분······

어둠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지루하고도 또렷하다.

한창 고민하던 바토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애들아.“

대상은 그녀의 근처에서 언제나 그녀를 호위하고 있을 사도들이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장로는, 모두 없어졌다. 바토리가 직접 죽였다. 장로들은 가문의 영주가 아닌 '로드'를 선택하였기에.

"예.“

가장 늙은 사도가 대답했다.

"어떻게 생각하니.“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아직까지는 진심이지만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이었다.

"..그렇구나.“

바토리는 씁쓸하게 읊조리며 TV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고운 손가락에서 세어나온 한 줄기 붉은 빛이 TV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부터 불길이 일었다.

방금까지 불편한 소식을 내뱉어대던 TV는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가 되어 스러졌다.

*

집으로 돌아온 김세진은 침대에 걸터앉아 세정이를 기다렸다. 이번 마인 소탕을 두고, 세정이에게 며칠간 출장을 가야 할 것 같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7시, 8시, 9시, 10시, 11시······

시간이 흐를수록 정수리에 열기가 오르고, 주먹은 절로 꽉 쥐어진다.

그러다 마침내. 시침이 '12'의 부근을 넘어가기 직전, 또 김세진의 화가 폭팔해 핸드폰을 움켜쥐기 직전.

끼익─

현관문이 살짜쿵 열렸다.

그리고 먼지가 내려앉듯 조심스런 걸음걸이가 의식을 스친다.

세진은 일부러 안방에서 숨을 죽인 채 대기했다.

그녀의 발소리가 거실과 화장실과 부엌을 맴돈다. 뒤이어 아무런 기척도 없음을 확인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요 근래 바쁘다고 말했으니, 아직 집에 안 들어온 걸로 착각한 거겠지.

-아 피곤행.

안방 문 앞에서 흐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퍼 마신건지······ 김세진은 눈을 날카롭게 찢고서 문을 노려봤다. 그야말로 야수의 동공이었다.

끼이익-

"하암······."

문이 열린다.

여유롭게 하품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오던 유세정은 이내,

"꺄악!“

악귀처럼 앉아있는 김세진을 발견하곤 바닥에 나자빠졌다.

"오, 오빠. 와, 왔었네?!“

한 손으론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정돈하고, 다른 한 손으론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더듬더듬 말한다. 허나 김세진은 말 없이 그녀를 째려볼 뿐이었다.

"······.“

"아 그게. 그게 말이야. 오, 오랜만에 동창애들을 만나가지고······ 너무 반가워서신나게 놀다보니 조금 늦어버렸네~?“

"······.“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나, 나도 놀수도 있는거지 뭐. 그리고 밤 샌것도 아니잖아. 아직 11시 59분인데.1분 남았다구 1분! 자기는 맨날 외박하면서."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김세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

"······"

"뭐 말좀 해봐. 내가 그렇게 많이 잘못했어?"

"······"

"······미안.“

"풋."

빠른 사과에 김세진은 피식 웃었다. 그에 유세정도 안도한 듯 슬그머니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아~“

애교를 부리며 김세진의 품 안에 포옥 안긴다. 그는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동창회? 재미는 있었어?“

"응. 오랜만에 만나니까 예전 추억도 새록새록 생각나더라.“

"그래? 친구 없는 줄 알았는데.“

"······있거든. 한 4명 정도.“

재벌가의 외동 손녀께서 친구가 4명이면 아주 많지. 암, 그렇고 말고. 유세정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아, 근데. 요즘 마탑 미팅은 없어?‘

"있지. 근데 왜?“

"그냥 걱정돼서. 나 이번주에 출장 가야되거든. 그때 네가 술이나 마시고 놀지 않을까······"

"······안 그러니까 걱정 마."

아주 찰나,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던 건 착각이겠지?

"근데 요즘 사람들 많이 만나네?"

"응.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기네. 길드 모임도 있고, 마탑주 회담도 있고······ 다 오빠 덕분이야."

김세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나 없어도 인생 재밌겠네?“

"······뭐야.“

그냥 농담삼아 한 말이었다. 그러나 세정이는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장난기 쫙 뺀 정색이었다.

"당연히 오빠 없으면 안되지. 오빠가 있으니까 인생이 즐거운거야. 몬스터를 잡으면서도, 재밌게 놀면서도, 집에 들어가면 오빠가 있겠지 라는 기대감. 그리고 오빠가 집에 없어도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 라는 기다림. 난 이제 그거 없으면 안 돼.“

"······그래?“

"그래. 그러니까 평생 내 곁에 있어. 그런 재수 없는 말은 하지도 말고.“

세정이는 몹시 결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알겠어."

김세진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허나 그건 잠시 뿐. 별안간 눈동자를 날카롭게 좁히며 말한다.

"······근데 어제 유린 언니 SNS에 사진 올라왔더라. 회 먹었던데.“

"······아하하. 하하······.“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어?"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 추궁하려는 그녀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침대에 눕힌다.

"괜히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으읍.“

귀찮은 싸움은 하기 싫다.

그저 입을 맞추고, 서로의 사랑을 증명할 뿐.

김세진은 나날이 지날수록 아름다워지는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며 밤을 지새웠다.

< 47. 마인 (3) > 끝

ⓒ 지갑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