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43화 (143/174)

< 42. 구출 (1) >

"아으······ 이 개새끼 진짜······.“

바토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당연히 치명상은 아니다. 엄살이겠지.

"너는 내가 진심으로 죽여줄 테니, 기대해도 좋아. 뼈랑 근육이랑 내장이랑 다 분해해서······."

바토리의 지독한 저주는 무시하고, 김세진은 재빨리 스킬창을 확인해보았다. 여타 스킬과는 달리 숙련도 창 없이 오로지 설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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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센스]

라이칸슬로프 중에서도 특히 탁월한 개체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 감각.

이 감각을 깨우친 라이칸 슬로프는 우선 늑대 화(化)했을 시에 오감과 육감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는 '초월감각'이라 불리며─ 조건이 갖춰지면 흐릿한 미래예지도 가능하다.

또한 특정대상의 피를 섭취함으로써 상대의 일정부분을 이해하고 그 강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라이칸슬로프의 본능이 '초월감각'과 결부된 것으로,피를 섭취하면 할수록 더욱 짙은 이해가 가능하다.

-현재 대상: 바토리

[진행률:0.35%]

[현재 습득(이해) 가능한 항목] ─ 근육조직의 특이함, 압도적인 골밀도 ─ [진척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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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률과 진척도라는 서로 비슷한 의미가 다른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진행률은 바토리의 모든 힘을 흡수하기 까지 남은 퍼센트를 일컫는 것이고, 진척도는 그 힘의 특정 부분─근력과 지구력이 나뉘 듯이─을 뜻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런 진행률과 진척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즉 강해지기 위해선 바토리의 피를 섭취해야 한다.

"······얘야. 너는 네가 여기서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고민하는 와중에 바토리가 가소롭다는 듯 물어왔다.

"당연히.“

기백있게 대답했지만, 방금 벌어진 특이한 상황으로 인해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지금 당장은 사라졌다. 바로 옆에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경험치가 있으니까.

"참, 가엾은 바보구나.“

바토리는 조소를 지었다. 김세진은 그런 그녀를 노려보다가, 문득 물었다. 시비를 걸어 피를 섭취할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래? 그럼 너는 진짜 너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바토리가 눈썹을 찡그렸다. 허나 뒤이어 들려온 대답은, 혹시 모를 불확실함을 부정하려는 듯 지극히 단호하고 여유로웠다.

"···당연하지.“

"너도 참 불쌍한 바보구나.“

취익! 순간 바토리의 마나가 송곳의 형태로 날아와 어깨에 처박혔다. 그 격통 속에서, 과거인지 미래인지 모를 기묘한 경관이 뇌리를 스쳤다.

"말······ 크읏. 말 조심해.“

동시에 그와 똑같은 정도의 고통이 바토리에게도 전해졌고,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서늘한 경고를 보냈다. 김세진은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래. 돌아갈 수는 있겠다.“

눈꺼풀의 뒤켠에서 희미하게 부유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 * *

김유린은 이를 까득 깨문 채 하젤린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지금 하젤린은 그녀의 시선을 받아낼 여력이 없어, 얼굴을 비스듬이 내렸다.

침묵한 두 사람 사이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류가 흐른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단원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왜, 왜 그래요 대장님?“

이혜린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듯 차갑게 굳은 김유린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 없이 하젤린만을 응시하며 분노어린 열기를 토해냈다.

"······어이.“

그 살기 충만한 음성에 모두가 몸을 떨었다.

"날 봐.“

하젤린이 고개를 가냘프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면상이 드러난 순간, 유린은 화를 참지 못했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과거 자신의 마나흐름을 파괴하여 기사생명을 끝장낼 뻔 했던 원수가 목전에 있는데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그때. 분명 팔 한 짝을 베어가면서 경고했다.

다시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네가 나에게 하려했던 것처럼, 네 '마나'를 끊어버리겠다고.

"내가 분명 말했을텐데.“

"알아 아는데······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야. 네가 도와줘야 세진 씨를······"

하젤린의 힘없는 대답도, 지금의 유린에게는 단지 빌어먹을 변명일 뿐이었다.

"싸울 때가 아니긴 개뿔이······!“

김유린은 노성을 토해내며 허리춤을 더듬었다. 허나 눈치빠른 이혜린은 이미 궁그닐을 들고 멀리 도망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맨손으로 하젤린에게 뛰어들었다.

"오, 오지마! 우리 이럴 때 아니······ 으아악!“

다짜고짜 명치부터 가격한 뒤, 쓰러진 하젤린 위로 올라탄다. 그리곤 구타를 개시한다. 뺨, 코, 목젖, 쇄골, 가슴, 명치, 복부······ 전신이 꾸겨지는 듯한 격통에 괴로워하던 하젤린은 그녀를 막기 위해 일단 머리채라도 움켜쥐었다.

"으! 이거 안놔?!“

"이, 이럴 때 아니야! 지금 세진 씨가······.“

하젤린은 그녀의 눈을 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허나 유린은 보다 더한 분노가 울컥 치솟았다. 김세진을 걱정하는 하젤린의 눈망울은······ 과거, '그 남자'를 바라보던 그것과 똑같았으니까.

"이, 이, 이 미친년이 또!“

결국 평정을 잃은 김유린은 난생 두 번째의 욕설을 뇌까리며 그녀의 머리털을 움켜쥐었다. 뒤이어 안쓰러운 줄다리기가 펼쳐졌다.

"아아아악!“

"꺄아아악!“

누가 대머리가 되어도 모를 만큼 격렬한 줄다리기였다······.

"멈추세요!“

"둘 다 왜, 왜 이래요! 뭐해! 말려!"

모든 단원들이 두 사람에게 퍼뜩 달려들었다. 그러나 분노에 잠식된 김유린은 모든 기사들을 밀쳐내고 하젤린의 머리털을 바락바락 움켜쥐었다.

"머리, 머리 빠져! 머리 빠져! 유린아, 언니 머리 빠져!“

"유린아? 이 미친년이 어디서 그딴 망발······!“

툭.

별안간 무엇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김유린과 하젤린이 가까스로 떨어졌다.

"···"

"···"

일순 짙은 적막이 흐른다.

겨우겨우 유린에게서 빠져나온 하젤린은 앓는 소리를 내며 제 정수리를 한번 쓰다듬어보았다.

뭔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져서 고개를 살짝 돌리니······

뒤로 나자빠진 김유린의 양손에 금발 머리카락이 두 웅큼 쥐어져있었다.

1초. 2초. 3초······ 멍하니 바라보던 하젤린의 눈동자에 가느다란 눈물이 또르륵흘러내린다.

"내, 내 머리, 머리······ 빠진다고, 빠진다고 했잖아아······ 흐아아아앙······!“

* * * *

길드 'THE MONSTER'는 요즈음 방산, 몬스터, 아티펙트, 연금연단 산업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보였다. 자회사인 'TM'은 내년이면 재계순위 10위 안팎으로 진입할 것으로 여겨지고, 길드와 회사부지가 있는 강원도 인근은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서 매년 수천억에 달하는 관광수입을 창출한다.

게다가 요 근래에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마법계'에 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일구었다. 더 몬스터에 특히 호의적인 방배동 마법사 덕분이었다. 방배동 마법사의 전권이 보관되어있는 '더 몬스터 길드원 전용 도서관'은 마법사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서고 1위로 선정되었을 정도이니.

어쨌든, 트릴로지는 이미 오래전에 추월했다는 그런 대단한 길드가 선상파티를 연다고 한다.

몬스터 엔터테이먼트 소속 탑스타들과 유명기사는 물론 더 몬스터의 길드원까지 참석한다는 그 파티의 초대장은, 이미 상류층의 명성과 권위를 구분하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초대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쉬움에 분통을 터트렸고, 받은 사람은 자랑스러워하며 파티복장을 준비했다.

"그러니까 그 파티에 은근슬쩍 참석한 뱀파이어 장로를 납치한다는 이야기지?“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회의실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네. 그래요······.“

이혜린은 눈치를 힐끗힐끗 살피며 대답했다.

저 구석탱이에 처박혀, 훌쩍훌쩍 울면서 포션을 만들고 있는 하젤린이 자꾸 신경쓰인다. 아마 땜빵을 복구하는 포션이겠지. 이름하야 발모포션······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 적어도 10조는 벌지 않을까.

"그러면 김세진 씨가 어딨는지 알아낼 수 있고?“

"확신은 없지만, 최대한 시도는 해보려구요······.“

일순 김유린이 벌떡 일어났다. 검집에 메인 자그마한 오크인형이 딸랑 흔들린다.

"왜, 왜요 또 뭐하시려고!"

이혜린과 다른 단원들이 우루루 일어났다. 혹시라도 하젤린을 덮칠까봐. 그러나 그녀는 하젤린의 등을 날카롭게 째려보기만 할 뿐, 우려하던 짓은 벌이지 않았다.

"······이제 안 해. 일단 기사단에 복귀 신고는 해야할 거 아니니. 수술후유증 때문에 휴가허락 받은건데, 파티에 참석하면 딱 징계받기 좋잖아.“

"아하. 그럼 저도 같이가요."

"근데 하젤린, 레젠 팔 재생하는 포션은 가져왔어? 얘 언제까지 팔 없는 채로 지내야 돼?“

그때, 눈치 없는 유백송이 송송 비어있는 하젤린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아뇨, 백호 님. 저는 나중이어도 괜찮······.“

유백송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있던, 수인 레젠이 상반신을 일으키며 유백송의 눈치를 챙겨주려 했다.

"어허. 괜찮으니 계속 누워있거라."

하지만 동족을 챙기고 싶어하는 유백송의 마음은 참으로 대견하였고······

"······내 파우치 속.“

하젤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 * *

선상파티는 오후 8시에 시작되지만, 단원들은 여러 준비를 위해 세 시간 더 일찍 크루즈에 도착했다. 그들은 크루즈의 지하에 마련된 고문실(?)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근데, 세정이 한테는 뭐라고 설명했니?“

"대충 출장 나갔다고······.“

이혜린의 대답에 김유린이 미간을 좁혔다.

"너네 진짜.. 후, 오늘 세정이 오면 사실대로 말해.“

"예? 그럼 걱정을···“

"걱정해야지 그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면 그게 애인이니?“

"······.“

이혜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애써 참았다.

"지는 모태솔로면서."

이 한 마디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데, 다물자. 다물어야 한다.

"그리고···“

김유린이 하젤린을 힐끗 바라보았다. 저 구석탱이에 박힌 그녀는 아직도 발모(發毛)포션을 만드는 중이었다. 통통통통- 절구 찧는 소리가 괜시리 서글프다······.

유린이 혜린에게 시선을 던졌다. 눈치 빠른 혜린은 유린 대신 말했다.

"하젤린 씨, 혹시 정신마법은 사용 가능하세요?“

"······조금은."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정신마법의 효용은 상대의 정신력에 따라 좌우된다. 그 정신력은 김유린의 특성이 담긴 주먹 한 방이면 바로 해결되고.

"됐네 그럼.“

"세정 씨가 왔습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김선호가 소리쳤다. 일순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내가 갈까?“

김유린이 말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저도 가겠습니다.“

주지혁과 이혜린이 동시에 대답한다. 김유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통통통통- 절구의 처연한 소리를 배경삼아, 세 사람은 고문실을 나섰다.

선상에 올라선 유세정은 김유린과 이혜린, 주지혁을 보자마자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처음에는 파티 정말 잘 꾸몄네요─ 라는 말로 서두를 뗀 그녀는 본격적으로 김세진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김유린은 심각한 얼굴로, 충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가 입술을 움직일 때 마다 유세정의 안색은 파리해져갔다.

중간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몰래카메라냐며 현실도피를 하던 그녀는, 결국 김유린이 "김세진은 납치당했다"는 사실까지 털어놓았을 때.

털썩.

바람이 빠진 종이인형처럼 정신을 잃고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 42. 구출 (1) > 끝

ⓒ 지갑송

혁명이라 부르는, 오직 김세진만의 트레이드 마크 '마나 문신'이다.

"이걸로 감각이 아주 예민해졌습니다. 장로가 아무리 기운을 숨겼어도 감지해 낼수 있습니다."

"······그래."

뱀파이어를 동료로 둔다는 게 그다지 탐탁지는 않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다.

김유린은 로스한델을 선상 위로 돌려보내고서 유세정에게 다가갔다. 침대 머리맡에 앉자, 옆자리에 있던 하젤린이 몸을 크게 떨고는 파바밧- 뒤로 물러난다. 한숨을내쉰 유린은 그녀를 지긋이 노려보며 적의를 내뱉었다.

"걱정하는거 맞냐?“

"······무, 무슨 소리니?“

"진짜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김유린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젤린도 잠시 동안은 그녀의 시선을 맞받아쳤으나, 이내 꼬리를 내리고서 힘없이 대답한다.

"걱정, 하는거 맞아.."

그리고는 다시금 절구와 절구통을 집어든다.

통통통통-

두 웅큼, 정수리가 훤히 까질 정도로 뽑힌 머리털의 발모를 위한 처연한 노력이었다.

이혜린은 그런 하젤린을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김유린은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런 침묵 속에서 1시간이 더 흘렀다.

여전히 세정이는 깨어나지 않았고, 선상은 점점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저희도 올라가야 해요. 근데 혼자 두고 가기에는······.“

이혜린이 걱정하며 말했다.

"그럼 하젤린 네가 호위 해. 어차피 머리털 빠져서 못 나가잖아.“

유백송의 천진한 목소리, 그러나 김유린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그건 고양이에 생선을 맡기는 일입니다.“

"···고양이가 뭐가 어때서?“

유백송은 종이상자 안에 누운 카이저 2세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평온히 하품을 하는 걸로 보아, 다행히 빈정이 상한 것 같지는 않다.

김유린은 살짝 황망한 기색으로 유백송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제 그런 짓 안해.“

그러자 하젤린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그러나 딱딱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잘라내듯 말했다.

"나도 많이 후회하고 있어."

"뭐?"

"······미안해, 그때는 언니가 너무 잘못했어."

갑작스런 사과였지만 그만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김유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문 채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 하는 사이, 탕탕탕탕!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터져오른다.

김유린은 그걸 핑계 삼아, 유백송과 함께 부랴부랴 선상 위로 올라갔다.

* * *

성대한 파티에는 화려한 인물만이 모였다. 한중일을 넘나드는 한류스타, 권력의 중심부에 발을 디딘 성골의원, 해외 유수의 기사단장과 부단장, 심지어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마탑의 탑주들까지.

아직 이 파티의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저마다 정갈하고 값비싼 연회복을 입은 채 인맥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파티 속으로 가장 먼저 주지혁이 뛰어들었다. 그의 가슴에 메인 '더 몬스터'의 휘장이 관심을 단번에 휘어잡은 듯, 사람들은 슬금슬금 주지혁에게로 다가갔다.

"어허허 이거, 새벽기사단의 대표기사님 아니십니까.“

고작 50세의 나이로 중진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중년의 엘리트 '윤영호'가 먼저 주지혁에게 말을 건넸다.

보통 기사따위야 단장이나 부단장 수준이 아니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 윤영호였지만, 주지혁의 가슴팍에 붙은 휘장은 황금뱃지로도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의원 뱃지와 저 휘장을 바꿀 수만 있다면 백번 절을 해서라도 바꾸고 싶은 마음이다.

"아, 의원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하하. 저야 기사님 길드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요.“

"···예?“

주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더 몬스터가 요즘 정계에도 진출을 했던가?

"허허, 'TM'의 포션 해외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한게 접니다. 그 덕분에 한국 포션시장도 더 살아나고, 해외에서도 여러 공치사가 쏟아졌지요. 덕분에 저도 가볍게 재선에 성공······.“

더 들어보니 흔한 자기자랑이었다. 주지혁은 그의 얘기를 한 귀로 흘리며 파티에 참석한 인원의 면면을 살폈다.

"헌데, 내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 더 몬스터는 신입을 기사나 마법사 계열에서만 뽑는 건가요?“

"아······ 아마 아닐 겁니다. 당장 이유진 사범님도 몬스터의 소속으로 크게 성장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오호, 그렇지요? 하하하 까먹고 있었습니다. 진세한의 도장은 미국에도 벌써 10개소가 지어졌다고 들었었는데··· 이것 참. 하하하······.“

윤영호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가능성을 찾은 탐욕이 반들거리는 눈이었다.

어쟀든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주지혁의 주위는 어느새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졌다.

"아, 김세진 길드장은 참석하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예? 아, 예. 오늘은 피곤하셔서 참석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대신 파티를 편히 즐기실 수 있도록······“

그때, 선상파티의 입구에서 경호원의 음성이 자그맣게 들려왔다.

"대현생명 김종혁님과 그 지인 분, 확인했습니다.“

주지혁이 황급히 시선을 옮겼다. 다행히 김유린과 로스한델이 이미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 * * *

김세진은 여러 환경의 변화로 인해 시간이 별로 안 남았음을 직감할 수 밖에 없었다.

첫째로, 당장 이틀 전에 비해 확연히 넓어진 결계. 처음에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흑색 공간이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의 방 하나 크기 정도로 넓어진 이 곳은 이제, 호텔 플로어의 절반만한 크기가 되었다.

둘째로, 전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마법의 빈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속박마법, 쉴드마법, 공간유리마법 등. 모두 늑대의 손톱으로 깨부술 수는 있었지만, 점차 고도화되어 가는 마법활용은 불안하기에 짝이 없다.

"흐응~ 흐응 흐응~“

침대에 누운 바토리의 콧노래가 들려왔다. 순간 짜증이 밀려와 손을 휘저었다. 바토리는 재빨리 쉴드를 사용했으나, 쇄도하는 손톱은 쉴드를 철저하게 박살내고 바토리의 복부를 꿰뚫는다.

"악! 아파!“

그러나 바토리는 짤막한 비명을 내지를 뿐이었다. 감정을 잘 추스른 듯 반격도 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것이야 말로 몸이 어느정도 회복이 되었다는 가장 치명적인 방증이었다.

"얘야. 근데 네 공격은 어떻게 마법까지 베어내는거니? 신기하네.“

심지어 질문까지 던진다. 김세진은 태연자약한 척 손톱을 빼들고서 대답했다.

"내 손톱은 특별하거든.“

A등급에 다다른 라이칸슬로프의 손톱은 형체와 성질의 구애를 받지 않고, 세상의거의 모든 것을 베어낼 수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바토리만 없다면 아마 이 결계도 깨트릴 수 있겠지.

"흐응······.“

바토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좋은 능력이네······ 그런데 말이야. 이제 그만 포기하는게 어떠니? 지금 포기하면 목숨은 살려주고, 평생 노예로 삼는 걸로 퉁쳐줄수도 있단다.“

어느새 눈 바로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바토리가 호기롭게 물었다. 잡 티 하나 없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급작스런 클로즈업에도 전혀 굴욕이 없었다.

"난 너한테 흥미가 있거든. 예전에 우리 천적이라 불렸던 종족을 개처럼 끌고 다니는 것도 꽤나 재밌을 것 같고······ 게다가 너도 동의했잖니? 우리 계획이 성공할 거란 걸.“

바토리의 힘은 점차 회복되는 중이고, 구원투수가 없다면 아마 몇 회 지나지 않아게임은 끝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를 몇 번이고 베어넘겼던 늑대를 죽이지는않겠다는 그녀의 제안은 퍽 자애롭다고 할만 하다.

그러나 늑대의 본능은 구속보다는 자유, 자유보다는 방종을 원할 뿐이다.

"그래. 나는 네 계획이 성공할 것 같아. 뭔가 막연한 느낌이 전해졌거든. ······근데 그게 더 문제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니?“

바토리가 미간을 찡그렸다. 김세진은 피식 미소 짓고는 말을 이었다.

"너네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비틀어 '과거'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고 있어. 맞지?“

"······그래.“

"근데 만약, 둘 중 하나만 성공한다면? 더 구체적으로는, 시간축의 변화는 없이 공간만을 이동하게 된다면?“

"······."

일순 바토리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러나 면상이 쓸데없이 아름다워서, 저렇게 일그러져봤자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

"너네 고향은, 그 곳에 사는 모두가 전혀 다른 세계로 이주했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좋았던 것 맞지?“

적의로 가득찬 적색마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그녀의 이마에 핏줄이 꿈틀거린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는 건 실패하고, 현재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곳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너는 알겠지.“

아마 이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보다도 몇 곱절은 위험한 존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공멸이라고. 균열이 완전히 열려버린 지구도 멸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너네도 다 뒈져, 이 병신아."

뇌리를 스친 광경에 김세진이 미소를 지은 찰나, 목에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 전해졌다. 눈동자를 힐끗 내리니 바토리의 양 손이 자신의 목을 강하게 옥죄고 있었다.

"후훗, 재수없는 소리하지 마렴. 마지막 배려까지 거두고 싶어지잖니······ 이 똥개새끼야.“

바토리가 웃으며 말했다. 김세진도 따라서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두 사람의 송곳니가 번뜩인다.

김세진은 그녀의 뒷목을 우악스레 움켜쥐고서, 희고 고운 목을 게걸스레 물어뜯었다.

바토리는 그의 옆구리에 손을 집어넣어 직접 뼈를 분질렀다.

그렇게, 선혈이 사방으로 튀기며 두 사람의 몸이 침대 위로 포개어진다

[바토리의 피를 섭취합니다! 진행도와 진척도가 상승합니다]

[바토리의 피를 섭취합니다! 진행도와 진척도가 상승합니다]

[바토리의 피를 섭취합니다! 진행도와 진척도가 상승합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도발이 성공해 그녀의 회복을 며칠정도 늦추었고 알림도 만족할 만큼 다수 떠오른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피를 빤다─ 는 행위에 가장 민감할 족속이 바로 뱀파이어들일 테니. 조심조심, 천천하고 신중하게 경험치를 갈아마시자······.

< 42. 구출 (2)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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