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39화 (139/174)

< 40. 겨울나기 (4) >

전신이 강제로 늘어나는 감각이었다. 온 사방에서 자신의 수족과 머리를 붙잡고 끌어당기는 고통. 과거 죄인의 사지와 머리를 말에 묶고 달리게 하여 사지를 찢어 죽였던 거열(車裂)형의 격통이 이러할까. 신음을 내지를 성대조차 막힌 기분이어서, 그저 가만히 눈을 꽉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레비아탄의 육체에 신묘한 변화가 생겨났다.

인간으로 치자면 유아가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꼬리는 더욱 미려하게 뻗어지고, 몸체는 길고 크게 불어났으며, 정수리에서 솟아난 뿔은 마치 보석처럼 청청한 아름다움을 빛냈다.

얼굴은 여전히 앳된 티가 났으나, 모난 곳 없이 깔끔하고 반듯하다. 어류와 파충류와 포유류, 그러니까 상어와 도마뱀과 늑대를 섞어 놓은 듯한 형상. 신화속 용(龍)의 모습을 어느정도 닮은 모습이었다.

"······."

그러나 그런 일대사(一大事)적인 변화를, 정작 레비아탄 본인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전신을 내달리는 고통의 급류에 휩쓸려 바다 위에 축 늘어졌을 뿐.

몸체만 장장 7M에 달하는 드래곤을 닮은 괴수가 사체처럼 축 널브러져 있는 것은꽤나, 아마 잇속이 밝은 사냥꾼이 본다면 로또라고 생각했을 법한 신묘한 광경이었다.

허나 다행히 어두운 남색하늘 아래 목격자는 존재치 않았고, 레비아탄은 성장통을 씻어낼 온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새벽의 푸르스름이 바다를 적시는 이른 새벽, 격통에 혼절한 김세진은 꼬박 6시간 만에 눈을 떴다.

"부아..푸으으..“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게다가 통증도 더 이상 없다. 안도한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허나 그 한숨은 하늘을 뒤덮는 흉악한 해일이 되어 동해의 반대편으로 굽이쳤다.

"아.“

단지 한숨이 일으켰다기에는 너무 흉험한, 20m는 가벼이 넘을 법한 해일이었다.그는 낭패어린 얼굴로 '저걸 어떻게 막지' 생각했다.

그런데.

단지 생각만 했을 뿐임에도, 힘차게 내달리던 해일에 거품이 부글부글 끓더니 귀여운 물방울로 해체되어 수면으로 가라앉았다.

"···?“

아무 짓도 안했는데?

김세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알림창이 대신 알려주었다.

['해신'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해신] [숙련도: 35%]

-단지 '의념'만으로 바다를 조종할 수 있다. 물론 마나소모를 동반하지만, 바다 위 레비아탄에게 마나의 한계란 존재할까.

'..오.'

세진은 그 이후로 여러 물장구를 한번 쳐봤다. 그가 몸을 움직일 때 마다 해일, 폭풍우를 비롯한 여러 바다재해가 일었다.

그렇게 난데없는 패악을 부리던 세진은 이내 인간형으로 조용히 변해 동해의 뭍으로 나왔다. 동시에 핸드폰이 띠링- 울렸다.

[경보! 오전 4시 53분, 지진해일이 감지되었습니다.]

"···자제 해야겠네.“

그는 피식 웃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 이후로 김세진은 급성장한 레비아탄의 힘에 적응하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고, 단원들은 각자 무력을 갈고 닦으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하루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크라켄 출동이요?“

"예. 이번에는 영국입니다.“

계획 시행 15일 전, 모두가 한창 예민해져있을 때.

조한성이 직접 김세진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영국 외교부에서 직접 크라켄 출동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는 또 왜요?“

"페나인 산맥 쪽에서 보스 등급 몬스터 망사사(亡邪蛇)가 똬리를 틀었다고 합니다. 지리조건이 전투하기에 영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두는 건 더욱 불안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찰나에 이탈리아의 사례를 떠올린 듯합니다.“

"······흠.“

평소와 같았다면 응낙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고민된다. 크라켄은 바토리와의 결전에서도 사용해야하니까.

"얼마랍니까?“

"그때와 똑같이 가장 핵심적인 전리품을 지불하겠답니다."

가장 핵심적인 전리품이라 하면, 아마 마나석과 핵심적인 사체(뱀이라면 아마 이빨)을 말하는 것이리라.

"흠······ 한성 씨 의견은 어떠세요.“

"저는 별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그들이 제안하는 보수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길드장님의 향응과 관련된 것이니까요.“

"···.“

김세진이 눈을 모로 좁히고서 그를 노려보았다. 언젠가부터 갑자기 회사가 최우선이 됐단 말이야······.

그 불만스런 눈빛을 눈치챈 조한성이 급히 말을 이었다.

"크흠. 그러나, 저라면 하겠습니다. 크라켄이 닳는 것도 아닌데,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놓치는 건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게다가 외무차관께서 직접 저희 길드를 방문하셨을 정도이니, 꽤나 절박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요? 근데··· 며칠 정도면 된답니까?“

보내는 건 상관이 없다. 그러나 바토리와의 결전에서 사용해야 하니, 적어도 25일 전에는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왕복은 하루면 가능하니, 나흘이면 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음······. 네 좋아요. 관련 날짜 알아서 저한테 말해주세요.“

그렇게 말한 김세진은 조한성에게 응낙 서류를 넘기려고 했다.

"아, 저기 그게 사실···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

"들어와주세요!“

조한성이 소리치자 정갈한 정장을 입은 색목인들이 우루루 쏟아져 들어왔다. 무려 15명, 넓은 사무실의 반절 이상을 메운다.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소 서투른 한국어로 외치고선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뒤이어 그의 부하들도 따라 숙인다.

김세진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자리에 앉혔다.

"예, 예. 앉으세요··· 갑자기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무례를 불구하고 본론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보스 몬스터 망사사의 모든 정보입니다.“

그들은 가져온 슈트케이스에서 여러 서류들을 차례대로 꺼냈다. 15명이 꺼내니 너른 회의탁자가 순식간에 종이무덤으로 변했다. 그 탓에 김세진만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이 서류에는 저희가 보스 몬스터를 처단했을시 제공할 보상이 적혀있습니다. 또한 저희 정부에서는 단지 출동비로만 1000만 파운드를 제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망사사를 처단하지 못하여도······.“

차관의 말이 바쁘게 이어졌다. 김세진은 눈을 굴려 조한성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사무실 밖으로 나간 후였고, 결국 그는 혼자서 모든 관련 내용과 브리핑을 약 30여분동안 들어야만 했다.

"···이와 같습니다. 김세진 길드장 님, 부디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모든 브리핑이 끝나고, 모든 외교관들이 간절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15명이나 되는 외교관이 단체로 이러니 뭔가 기분이 미묘하다. 부끄러운데 므흣하고, 부담스러운데 으쓱하다고나 할까.

"근데 영국은 인재가 많지 않나요? 그런데 왜······."

"저희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에는 현재 망사사와 '프레벤'이라는 보스 몬스터가 두 개체 있습니다. 저희는 일단 도심부, 옥스포드 근처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프레벤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망사사가 그 틈을 노려 둥지를 벗어나 아래로 남하하기라도 한다면······.“

차관의 똘망똘망한 벽안은 부담스럽게 빛났다.

김세진은 짐짓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 10여분간 관자놀이를 짓누르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영국 런던에 위치한 보스몬스터 사태 특별관리팀.

전방의 거대한 화면은 보스 몬스터의 동태를 비추고, 부채꼴로 늘어선 기다란 책상에는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서류가 쌓여있다.

이 관리팀에 모인 수 많은 관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한국으로 날아간 외교관들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협상이 끝났습니다.

차관의 목소리에 순간 일대 소란이 일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영국의 외교부 장관 '레이든'이 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불안했다. 혹시 차관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가야 했던 것이 아닐까, 괜한 국격을 따지다가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닐까······

-하아······

기나긴 탄식이 먼저 들려왔다. 실패의 징조인 것 같기에, 모든 관료들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건 차관의 짓궂은 장난일 뿐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상기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성공했습니다! Sir 김세진 께서는 지금 당장 크라켄을 출발시키겠노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잠시 동안의 적막이 흘렀다. 그들은 아직 차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지, 진짠가?“

가장 먼저, 정신차린 레이든 장관이 안경을 고쳐쓰며 되물었다.

-물론입니다!

그 즉시 환호성이 울려퍼지며 여러 서류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같았고, 관료들은 그제서야 재난영화의 클리셰처럼 자리잡은 장면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이해했다.

* * * *

─김세진의 '크라켄'이 다시 한번 큰 활약을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영국이었는데요. 크라켄은 아스모데우스와 싸웠을 때 보다 훨씬 강력한 위엄을 보였습니다. 김영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김세진은 간과한 사실이었지만, 레비아탄도 성장한 만큼 크라켄도 성장을 했다. 그래서 크라켄은 망사사와 거의 1:1로─런던 기사단의 로멜로 기사가 마지막 일격을 도운 것만 빼곤 완전히 1:1─ 싸워서 이겼다고.

"쟤도 우리 계획에 포함되는 거 맞죠?“

이혜린이 크라켄의 압도적인 무위를 감상하며 물었다.

"근데 웬··· 오징어가 번개를 쏘는거야? 되게 신기하네.“

물론 김세진이 '라이트닝 체인 클로'를 빨판에 문신으로 새겨주었기 때문이다.

"네. 크라켄도 참가합니다."

"사랑이, 사랑이도 참가하죠.“

하젤린이 정정했다.

"네. 사랑이.“

"···이름이 사랑이냐?“

유백송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때 TV에서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이 믿음직한 크라켄의 한국 이름은 '사랑이'로, 더 몬스터의 길드장 김세진의 애완동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 출동으로 한 시름을 덜은 영국 정부에서는 김세진에게 직접 감사인사를 보내는 한편, 원활한 협상을 도운 한국 정부에게도······.

"봤죠? 이름이 사랑입니다. 근데 일단 TV는 끕시다.“

김세진이 TV를 껐다. 이게 마지막 TV시청이었기에 모두 아쉬워하는 기색이었으나, 어쩔 수 없다.

오늘은 12월 22일, 계획을 사흘 앞둔 지금은 초침의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할 일은 끝나셨나요?

릴리아의 수정구였다.

"예.“

-그럼 우선 김세진 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은 결계실로 모여주세요. 특수한 장치가 되어있으니,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오실 수 있을겁니다.

"···세진 씨는요?“

하젤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김세진 님은 바토리를 유인하는 역할이십니다.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지 않습니다. 우리보다도 위험하지 않습니다. 바토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청룡의 생포'이니까요.

"···아. 맞네.“

하젤린이 손뼉을 짝 치고는 몸을 일으켰다. 뒤이어 주지혁, 이혜린, 김선호, 수인레젠이 그녀를 따랐다.

"···유백송 씨? 안 가세요?“

유백송만 제외하고.

그녀는 몸을 꼬물거리며 김세진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서 안오고 뭐하는 거니?“

하젤린이 약간 불편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사실 놀랍게도, 하젤린과 유백송은 동갑이었다.

"괜찮아요. 나중에 또 만날 수 있는데 왜 이러실까.“

혹시 헤어지기 싫어서 이러나. 김세진은 그녀를 대견해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순간 하젤린의 눈에 불길이 솟았으나, 그걸 모르는 유백송은 고개를 살짝 젓고는 쑥스럽게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말 해요.“

"······준다고 했잖아 너, 그······.“

그러나 유백송은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과부하에 걸려버렸다. 도대체 뭘 말하려고 이러지?

시뻘개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세진은 흐뭇하게 웃었다.

"저 기 요. 안 오고 뭐하냐니까?“

하젤린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쳤다. 유백송은 그에 떠밀려 결국은 말해버렸다.

"너 냄새, 네가 없어도 맡을 수 있게 해준다면서··· 손수건 준다고 했잖아.“

"······아.“

세진은 그제서야 납득했다. 분명히, 몇 주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정작 자신이 찬밥신세 될까 만들어 놓고 안 줬지만.

"당연히 준비해왔죠.“

그는 떨떠름해하며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마나 문신을 통해 만들어낸, 늑대의 체취가 진하게 베어나오는 손수건이다.

"···고마워!“

유백송은 그걸 훽 낚아채고는 김세진의 곁에서 재빨리 벗어나, 발을 동동구르는 하젤린에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약간 허탈했다.

역시 그녀에게 김세진이라는 본체는 그저 부수적인 부분일 뿐이다. 오직 냄새만이 실체일 뿐······.

"..그건 뭐니?“

"김세진 냄새가 나.“

"······줘봐.“

김세진은 그들의 대화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싫다.“

"왜. 친구끼리는 나눠야 하는 거라고 하잖니. 나한테도 한번 줘보렴.“

"꺼져.“

"···뭐라고? 너, 너 방금 뭐라고 말했니?"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계실의 문이 쾅- 닫히고 말았다.

남은 것은 적막 뿐.

사람냄새가 가득했던 소파에 홀로 앉은 김세진은,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40. 겨울나기 (4)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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