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몬스터-134화 (134/174)

< 39. 사냥을 위한 준비 (3) >

아스모데우스와 격전을 벌이는 이탈리아 서부의 방어전선. 기사단은 정규군과 합작하여 아스모데우스를 지중해로 유인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원군은 아직입니까?!“

아스모데우스는 신장이 피사의 사탑과 비슷하였고, 오우거보다 육중한 몸을 지녔다. 그러나 몸놀림은 우람한 몸체 답지 않게 기민하여 기사들의 날렵한 합공에도 쉬이 당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로마 기사단의 단장 브레폰이 처절하게 외쳤다. 김세진과 약속된 바는, 지중해로 '크라켄'을 파견할 테니 크라켄과 합작하여 아스모데우스를 처치하라는 것. 청룡이 아닌 크라켄을 보내는 대신, 로마 쪽에서 지불해야하는 비용이 줄긴 했지만···

'도대체 언제 오는거야!'

그가 그런 원망을 김세진에게로 품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지중해가 거칠게 일렁였다.

쿠구구구구? 바다거품이 피어오르는 바다 속에서 크라켄이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을 가리우며 높게 솟았다. 크라켄의 등장은 마치 바다의 한 면이 통째로 치솟은 것처럼 요란했고, 그만큼 웅장한 크라켄은 아스모데우스를 크기에서부터 압도했다.

-쿠르르···

아스모데우스를 노려보던 크라켄은 곧장 기다란 다리를 활용하여 놈을 감쌌다. 놈은 순간적으로 업화를 뿜어냈다.

놈의 업화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러나 '열기'는 빼앗을 수 있다.

크라켄은 빨판에서 혹한의 냉기를 뿜어냈고, 그 냉기는 업화의 열기를 중화시켰다.

그제서야 놈은 당황한 듯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트, 틈을 놓치지 마라! 돌격! 돌격!“

그와 동시에, 계속 물러서기만 하였던 기사들이 아스모데우스에게로 뛰어들었다.

"저 크라켄은 지원군이다! 돌격하라!"

* * *

"유로 대신 받아온 아스모데우스의 뿔과 마나석입니다.“

김선호가 전리품을 건넸다. 세진은 그것들을 살펴보며 넌지시 물었다.

"사랑이는 얼만큼 활약했답니까?“

전투가 이뤄지는 동안에는 레비아탄으로 변해 사랑이-크라켄-에게 힘을 실어주긴 했다만, 아스모데우스를 상대로 얼만큼 선전했는지는 아직 전후복구 중인지라 밝혀진 바가 없다.

"로마 기사단의 말로는, '압도적'이었다고 합니다. 크라켄이 뿜어내는 먹물이 아스모데우스의 불길을 얼렸다며 거듭 격찬하더군요.“

"···다행이네요.“

김세진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문신으로 크라켄이 지닌 수(水)속성을강화시켜주고, 빨판에 A등급 급속냉각 무기를 달아준 보람이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그 크라켄을 이런 의도로 계속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김유손 단장님.. 아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요?“

그러다 문득 흘러나온 김유손의 이름에, 김세진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손 씨는 괜찮으십니까?“

병상에 누운 김유손은 요즈음,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많아졌다.

김세진은 언젠가 한번 그의 병문안을 갔던 적이 있었다. 한 손에는 심혈을 기울여만든, 거의 엘릭서에 준할 효능의 포션을 가지고서.

허나 그는 포션을 들이키지 않았다. 김세진도 강요할 수 없었다.

몸과 정신이 쇠잔해진 그는 이제 더 이상 특성이 발현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입가에 새겨진 밝은 미소를 미루어보아, 그는 오히려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미래로부터 해방된 꿈은 이제 과거의 행복을 비추기 시작하였으니······.

"······의사 말로는 3개월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고 합니다.“

김선호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코끝이 찡해진 김세진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큼. 그렇군요. 근데, 방배동 마법사는 요즘 어떻답니까?“

1년도 안 되어 23권의 마기서 수정이라는 압도적인 재능.

방배동 마법사는 무미건조하던 마법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최고로 뜨거운 셀럽이 되었다.

특이하게도 방배동 마법사의 마기서는 권당 5억 수준으로 가격이 무척 싸다. 그러나 그는 수정본을 워낙 적은 량, 오직 '100부'만을 판매하기에, 냈다 하면 품절이라 만성품귀에 시달린다. 증쇄해달라는 마탑들의 요청은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선착순에 모든 사활을 걸어야만 했다.

서로 사이좋게 공유하면 좋으련만. 이기적이고 시기어린 폐쇄적인 마탑이 그럴 리는, 당연히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현재, 방배동 마법사가 낸 마기서는 총 23권.

허나 위에 말한 특성 탓에 이 희귀한 마법서를 전권소장한 마탑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그래서 마탑의 '방배동 마기서 보관함'에는 1권이 있으면 2~3권이 없고, 4권이 있으면 5~6권이 없는 등, 조각을 잃어버린 퍼즐마냥 군데군데가 비어있다.

"하하··· 덕분에 우리 길드 품격이 한 단계 올라갔습니다. '마탑도 소장하지 못한 방배동 마법사의 마기서 전권이 더 몬스터의 길드원 전용 도서관에 있다!' 라는 식으로요.“

김선호는 핸드폰을 꺼내 그 현황을 직접 보여주었다.

[(속보) 방배동 마법사, 방배동 마법서 No.24 8월 발매 예정. 마탑들은 벌써부터치열하게 경쟁 중.]

-와. 마기서 원래 이렇게 빨리 쓰는거 아니지 않나? 슈퍼천재네 진짜;

-방배동 마법사 때문에 방배동에 마법사들 존나 많아졌음ㅋㅋ 술집하는 우리 외삼촌은 엄청 좋아하시던데. 돈 막쓴다고.

-근데 마기서 다 한글로 쓰여진 탓에, 마법사들 한글 배우고 난리났음. 요즘 방배동에 한국어 학원 많이 생긴거 그거 다 외국인 마법사들 때문임ㅋㅋㅋ 내 친구가 교사인데, 외국애들이 가입동기에 '원서를 읽으려고 한국어를 배운다'라고 함 ㅋㅋ김세진은 웃으며 감상하고서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방배동 마법사는 다른 마법사가 10년에 할 일은 1년만에 해내고 있으니까요."

"하하.. 그런가요? 아 맞다. 선호 씨, 저 그리고········· 아, 아닙니다. 일단 일 보러 가세요. 저 할 일이 있거든요"

바토리를 솎아내려는 계획은 일단 김선호에게도 비밀이다.

"예. 알겠습니다."

김선호는 별 다른 생각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돌아가고 난 뒤, 김세진은 아스모데우스의 전리품을 들고 지하 개인 훈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김세진은 아스모데우스의 마나석은 흡수하고 한 가지 스킬을 얻었다.

[지옥의 업화] [숙련도: D등급]

화속성의 공격에는 피해를 입지 않고, 화속성의 공격을 할 시에는 '업화'라는 불길이 솟습니다. 업화는 술사의 의지가 아닌 이상 결코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꽤나 좋은 스킬이라 할 만하다. 레비아탄의 폼이든 인간의 폼이든 이제 '화염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는데, 그 화염이 '업화'로 등급이 상승하는 것이니까.

'업화(業火)의 브레스' 듣기만 해도 뭔가 위엄있지 않은가.

그리고 뿔은 갈아서 포션으로 만들었다. 심장을 비롯한 근육 전반은 물론, '마나'에도 스며들어 강함을 2배 이상 증폭해줄 비장의 포션이다.

"이 정도면···."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됐겠다 싶어, 그는 노스페라투와 통하는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들리십니까.“

지지직- 거리는 소리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릴리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들립니다.

"저는 준비가 된 것 같은데, 그쪽은 어떠세요?“

-···.

잠시 동안의 침묵.

-저희는 괜찮습니다만······ 너무 시일이 빠른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되네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바토리는 그렇게 쉽게 볼 위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으로 잡히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성체 레비아탄의 비늘이 있잖습니까.“

드래곤에 견줄만한 바다의 괴수, '성체 레비아탄'.

레비아탄 폼으로 그 성체의 비늘을 섭취하면, 비늘에 담긴 성체 레비아탄의 관록과 마나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급격하게 성장할 터. 그러면 바토리 따위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저희도 내부 세작을 풀어서, 동해 쪽에 사람이 없을 12월으로 바토리를 유도해보겟습니다.

"그럼 너무 멀지 않나?“

-아니요. 그 동안 결계를 비롯한 제반 준비가 필요합니다.

"흠. 예, 뭐. 알겠습니다.“

김세진이 송신을 끊으려던 찰나에, 릴리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 그리고 혹시 능력이 뛰어난 마법사 한명을 지원가로 둘 수는 없을까요?

"···마법사는 왜?“

-당신이 믿을 만한 마법사가 필요해서요.

"···.“

김세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믿을 만한 뛰어난 마법사'라는 범주에 어울리는여인 한 명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로부터 일주일 뒤, 더 몬스터 길드 사옥.

하젤린은 도서관에서 방배동 마법사 저(著) 마기서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여기는 이렇게 움직이는게 더 편하구나······“

왜 마법사들이 방배동 방배동 하는지 이제야 알겠네.. 하젤린은 호오-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젤린이 방배동 마법사 -하젤린은 방배동 마법사가 김세진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마기서의 효율이 배가된 직관성과 친절함에 감탄하고 있을 때

"언니? 뭐하세요?“

"···!“

어느새 유세정이 불쑥 다가온 물었다. 세정은 표지를 슬쩍 훑어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배동 마법사······ 요즘 유명한 마법사가 발매한 마기서네요?“

"어? 어.. 그렇단다. 원래 익혔던 마법이긴 한데, 더 효율적으로 수정됐다길래.“

하젤린이 슬그머니 마기서를 덮었다. 이상하게 쪽팔렸다. 오래전에 마법계를 떠난 자신이, 그것도 ?공식적으로는- 데뷔한지 1년도 안된 후배마법사의 마기서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게···

"근데 갑자기 웬 마기서예요?“

유세정이 지닌 여자로서의 직감이 '의문'이라는 물음표를 띄웠다. 심지어 그녀는 하젤린의 옆자리에 앉기까지 했다.

"나, 나도 왕년에 마법사였잖니.“

하젤린은 그런 그녀가 불편하고 미안했다. 김세진에게 품은 자신의 감정은 말로만 사랑이지, 세정의 입장에서는 영 몹쓸 감정에 불과하니까.

"흐음······ 이 마기서 희귀한거 아니예요?“

"으, 으응. 그렇더라고? 나도 의문이었단다. 왜, 이 마법사 마기서는 출간되자마자 품절되잖니. 근데 어떻게 우리 길드에..“

"···그거는 뭐, 오빠 능력이죠~“

유세정이 말꼬리를 늘리며 즐겁게 웃었다. 그리고 하젤린은 왠지 모를 쓰디쓴 뒷맛을 느끼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공부나···."

승리감에 살짝 도취된 유세정은 그녀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노트북과 여러 전문서적을 피고 지적인 뿔테안경까지 촥 끼더니···

벌컥!

순간 휴게실의 문이 급히 열어젖혀졌다.

"아 깜짝···.“

유세정이 급히 안경을 벗고 뒤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커다란 외침이 천둥처럼 터져나왔다.

"신입단원 이유진 입니다아앗─!“

"으갸! 으.. 뭐니 쟤?“

하젤린이 귀를 부여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 아 맞다. 우리 신입단원 뽑았지.“

요 근래 이뤄졌던, 더 몬스터와 13개소 기사단이 함께 나서서 '더 몬스터에 누가 어울립니까?' 라는 대국민 투표까지 실시했을 정도로 반향이 컸던 신입단원 선별.

"이유진.. 아. 저 사람이 됐구나."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김세진은 분명 뽑았다 말했다.

유세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축하드려요.“

"아, 넵! 감사드립니다!.“

"잘 지내봐요 우리.“

그 뒤를 이어 김세진이 들어왓다. 그는 유세정을 발견하곤 몸을 흠칫 떨었다.

"어, 오빠? 무슨 일이야?"

"···어, 나···.“

사실 하젤린과 중요한 대화를 나누러 온 것이었다. 말만 '도와주세요'라고 했을 뿐이지, 정확한 내막을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이유진 씨 소개시켜주려고 했지.“

그러나 유세정과 그녀가 함께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하였기에, 대충 이유진을 앞으로 들이밀며 변명했다.

"얘기들 해.“

"아, 오빠 잠깐.“

"···왜, 왜?"

김세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세정은 그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곤 까치발로 서서, 그의 목에 손을 두르고 입을 맞춘다. 단순한 입맞춤이 아닌 진하고 깊은 키스였다. 옆에 선 이유진이 그 혀의 얽힘을 보며 얼굴을 붉힐 정도로.

"······뭐야 갑자기."

1분 정도 이어진 키스를 끝내고, 김세진이 멋쩍어하며 물었다.

"그냥. 하고싶어서.“

유세정은 웃으며 김세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는 볼을 긁적이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광경을 괴롭게 지켜보던 하젤린은 이를 꽉 깨물 수 밖에 없었다.

"···.“

부럽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무슨 칼로 후벼파는 것처럼.

게다가 무의식적으로 상상까지 해버렸다. 그와 자신이 키스하는 모습을. 유세정 대신에 자기였다면,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만년필이 으스러져라 세게 움켜쥐었다. 눈물까지 핑 돌았다. 진짜 너무 부러워서, 질투도 나서, 근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게 너무 힘들어서······.

"흠흠~"

유세정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금 하젤린의 옆자리에 앉았다. 하젤린은 애써 감정을 꾹꾹 누르며 마기서에 집중했고, 유세정은 그런 그녀를 힐끗 살피고선 슬그머니 웃었다.

< 39. 사냥을 위한 준비 (3) > 끝

ⓒ 지갑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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